☆ 2017년 가해 12월25일 월요일 [(백)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수도회] 말구유 탄생의 신비와 사랑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2사무 7,1-5.8ㄷ-12.14ㄱ.16
○ 제2독서 로마 16,25-27
† 복음 루카 1,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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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한처음에 하느님 곁에 계셨던 말씀, 하느님이신 외아드님께서 우리의
시간과 역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의 꿈이나 환시를 통하여 말씀하셨지만,
신적 계시의 완성이 이루어질 때가 되자, 외아드님을 통하여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외아드님께서는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만물을
지탱하는 능력의 말씀이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머무르시며
충만한 은총과 진리의 빛을 비추시고 계십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에 오신 예수님의 성탄은 구세사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탄의 신비를 내다본 이사야 예언자는
감탄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구세주의 탄생으로 세상의 땅끝까지 하느님의 구원이
선포되고, 모든 민족들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은총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성탄의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하는 사도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죄악의 어둠을 비추시고 넘치는 생명의 은총을
주십니다. 빛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말끔히 없애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마음에 사랑의 불을 환하게 밝히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의 살 안에 살아 계시고, 우리의 심장
안에서 숨 쉬고 계십니다. 우리는 외아드님의 영광을 전하는 일꾼,
생명의 빛을 내뿜는 신앙인이 되고, 이 땅에 성탄의 평화와 사랑이
강물처럼 넘쳐흐르도록 오늘 두 손을 모으게 됩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매일 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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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2017년 나해 12월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제1독서
<땅끝들이 모두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2,7-10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1-6
복음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8<또는 1,1-5.9-14>
사람들이 종종 제게 영양제를 선물로 주십니다. 건강하게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잘 전달하라는 이유겠지요. 그런데 워낙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그리고 여기에 저의 게으름이 더해지면서
주신 영양제를 좀처럼 먹지 않게 됩니다. 옆에서 일일이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니 영양제의 숫자만 늘어납니다.
며칠 전, 우연히 영양제 병 겉면에 붙어 있는 유통기한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그 기간까지 도저히 더 먹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깝기도 하고 또 이를 주신 분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라고 하는 이 영양제를
하루에 한 움큼씩 먹었을까요? 아니면 시간이 날 때마다 영양제를
복용했을까요? 그러고도 싶었지만 이렇게 했다가는 영양제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우선 열심히 빠짐없이 먹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찾아오시는 신부님들에게 이 영양제가 너무나 좋다면서
억지로 먹이기도 했습니다.
이 유통기한을 보면서 우리 역시 유통기한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무한대의 유통기한이 아닌 언젠가는 이 세상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서게 되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날과 그때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통기한에 맞춰서 약을 복용하는 것처럼, 나의
유통기한에 맞춰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통기한에 다다르게 되면, 내 자신을 만들고 이 땅에 보내신 주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오늘 우리는 주님의 성탄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게 되었습니다(요한 1,14 참조).
그런데 주님의 성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혹시
단순히 매년 맞이하는 하나의 커다란 행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성탄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전하는 커다란
사랑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땅에 완전한 인간의 육체를 취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모든 민족이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사 52,10 참조).
그런데 전지전능한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시자마자
근엄하게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니면 놀라운 기적을 베풀면서
하느님의 힘을 세상에 보였습니까? 아닙니다. 가장 약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인간과 완전하게 함께 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럴 수가 없지요.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아주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이 어린 아이와
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른들이 노는 방식으로 놀면 아이가
즐거워할까요? 아닙니다. 어린 아이가 쓰는 언어와 행동을 해야지만
아이와 즐겁게 놀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점잖으신 백발의
할아버지께서 어린 아이의 수준으로 내려가서 코맹맹이 소리를
내기도 하고, 또 우스꽝스러운 행동도 거침없이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를
낮춰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언제고 주님의 사랑만을
받으면서 살아야할까요?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삶의
유통기한이 있기 때문에, 즉 마지막 심판 때를 떠올리면서 주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임박해서 한꺼번에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이렇게 보여주신 주님께서는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내 자신만을 위한 사랑의 삶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삶을 통해서
유통기한이 다해 주님 앞에 가게 될 때, 분명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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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예물은 없다(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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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다스리는 법(정균승, ‘내가 나로 살아갈 자유’ 중에서)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무작정 걷는다. 화난 마음을 속으로 삭이는
대신, 걷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치유하는 것. 하염없이 걷다 보면
화가 풀린다. 그러면 그 자리에 나만 알 수 있게 막대기로 표시해
둔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왜 그토록 화났는지 이유를 돌이켜 본다.
화난 이유를 알면 마음은 평정을 되찾는다. 이것이 에스키모인들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살다 보면 또 화가 치미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면 에스키모인들은 다시 길을 나선다. 노여운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무작정 걷는다. 그렇게 걷다가 예전에 꽂아 둔 막대기를
발견하면 그걸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진단한다.
‘아, 지금 내 마음이 예전보다 힘들어하는 구나!’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면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다시 걷는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분노했는지 되돌아보면서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걸어도 막대기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아, 내 마음이 전보다 견딜 만한가 보구나!’ 하고
삶에 고마워한다.
이렇듯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났을 때 싸우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화를 다스린다. 화가 치민 현상보다
왜 화가 났는지 본질을 보려는 거다.
에스키모인들의 화를 다스리는 방법, 한 번 사용해 볼 만 하지
않을까요?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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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말구유 탄생의 신비와 사랑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나해 12월25일 월요일. 주님 성탄 대축일 낮미사
이사 9,1-6; 티토 2,11-14; 루카 2,1-14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다.”(루카 2,11)
말구유 탄생의 신비와 사랑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합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릴
것입니다."(이사 9,5)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주님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9,1-2)
오늘 구세주께서 연약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티토 2,11) 베틀레헴 들판의 목자들이 맨 먼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구원자 그리스도"(루카 2,12)를 보고 경배드립니다.
경사롭고 경이로운 구세주의 탄생입니다. 모든 한계와 제약을
뛰어넘으시는 분께서 살을 취하시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모든 선이시요 자비이시며 지혜의 샘이신 분께서
스스로 먼지가 되기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이 없으시고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힘을 지니신 분께서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는 왜 가장 비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을까요? 주님께서는 그렇게 힘들어하고 아파하며 외로워하는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연약함의 순종’을 통하여 사랑으로 다가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과 함께하시려고 인간의 제약 안으로
끼어드신 것이지요. 주님께서 살을 취하신 경이로운 신비는 그분의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 외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시려고 주먹만한 아기의 모습으로 작아지신
것입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우리의 처지를 공유하시려고 저
들판 베틀레헴 말구유에 나신 것입니다. 아무런 보호장치나 도움의
손길 없이 살아가는 우리를 받아들이시고 지켜주시려고 울타리도
없는 마굿간에서 나신 것입니다. 우리의 슬픔과 고통, 두려움과
근심걱정, 억울함과 소외를 공감하고 함께 겪어주시려고 추운 겨울
한데서 나신 것이지요.
왜 구세주께서는 힘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저 변두리에서
태어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의 길에서 찾아야 할
힘은 세상의 강한 힘이 아님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그 어떤 것으로 무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는 그
어떤 권세도 재물도 무력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권능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오직
사랑의 힘으로 정의를 실천하며 희망과 기쁨을 잃지 않고 사는 법을
알려주러 오신 영원한 선물이십니다.
오늘 나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연약함 속에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선으로 향하게 하는 거룩함과 사랑의 힘을 우리에게 선사하셨습니다.
사랑의 힘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그렇게 말구유에 오신
주먹만 한 분이 우리 편이 되어오셨습니다. 우리의 어두움을 비추어
주시고 고통을 덜어주시며,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슬픔을 위로해 주실
그 빛이 오늘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지요.
"주님, 오늘 인간의 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과 결합되었으니,
저희가 이 거룩한 교환의 신비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
(예물기도)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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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추억 속의 성탄절
2017년 나해 12월25일 월요일 주님 성탄 대축일
추억 속의 성탄절
성탄절이 돌아올 때 마다 제 어린 시절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대여섯살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함박눈을 맞으며, 어머니 손을 잡고
십여리 길을 조심조심 걸어 성탄 밤미사를 드리러 가곤 했습니다.
미사 시간 내내 군용천막 성당은 너무나도 추워 코끝까지 다 시렸지만,
선교사 신부님의 미소와 넓은 품은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꼬마 입장에서는 꽤나 벅찬 성탄 미사를 다녀오는 조건으로, 직장
일이 끝난 아버지는 양손 가득 성탄 선물로, 당시로서는 어린이들에게
최상의 선물이었던, 큼지막한 ‘**종합선물세트’를 들고 오셨습니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밤새 이 과자 저 과자 맛보면서 그렇게 성탄절을
만끽했습니다.
은총과 축복의 성탄 전야에 성탄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성탄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각자에게 건네시는 종합선물세트!’
완성을 추구하지만 언제나 미완성인 우리들, 완벽을 추구하지만 늘
결핍된 존재인 우리들, 충족함과 충만함을 갈구하지만 늘 뭔가
허전하고 허탈한 우리들의 그 부족함과 한계를 가득 채워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값지고 정성스런 선물이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세상 가장 작고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신 하느님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육화강생에 담긴 그
큰 은혜와 감동, 우리를 향한 큰 사랑과 깊은 의미를 침묵 속에 천천히
되새기는 이번 성탄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탄절은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을 담으면 성탄은 우리의 것이 됩니다. 우리
내면에 자비와 측은지심으로 가득한 주님 사랑의 기운이 있다면, 우리
안에 주님께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세상만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정화될 때 성탄의 참모습이 우리
앞에 드러납니다. 매일의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우리가 환하고 해맑게
웃으면, 우리 안에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한없이 겸손하신 하느님을 따라 심연의 바닥으로 내려갈 때, 우리는
거기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뵙게 될 것입니다.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신 아기 예수님을 따라 우리 매일의 삶 속에서 겸손의 향기가
풍겨날때, 우리의 얼굴은 성탄의 은총으로 빛날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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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나해 12월25일 월.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영원한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 척박한 이 땅에 또 오셨습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 땅에 가장 약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작은 것으로 우리 마음에 들어 오시려 하십니다.
예수님 성탄을 통해 어느쪽을 향해 가야할지를 알게됩니다.
성탄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모든 여정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 되십니다.
껍질을 깨면 작은 아기로 오신
하느님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습니다.
여전히 이기적인 우리를 받아주시기 위해
말씀이 사람이 되시고 빛이 되시어 함께 하십니다.
기다렸던 이 성탄이 어두운 우리 마음을 밝혀주는
빛의 성탄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빛이 된다는 것은 말 없이 돌본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돌보신 분이 돌봄을 받는 아기로 오신 신비입니다.
이제 하느님과 우리는 둘이 아닌 하나의 돌봄이 되었습니다.
성탄의 신비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돌봄의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친히 작아지심으로
우리의 돌봄을 탄생시키려 하십니다.
생명을 돌보는 마음의 성탄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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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매일의 성탄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7년 나해 12월25일 월요일. 성탄 낮미사 (요한 1,1-5.9-14)
매일의 성탄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오늘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기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어둠을
비추는 빛이십니다. 구세주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여러분과
가정에, 온 누리에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말구유에 태어나셨다는
것은 겸손과 당신을 밥, 양식으로 내어주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복음을 보면, “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1,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1,14).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적양식을 주셨고,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눈높이를
맞추시고자 하신 사랑입니다. 그리고 성체성사를 통하여 오늘도
밥이 되어 주십니다. 영양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6,51).하셨습니다. 구유에 모셔진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며
예수님을 더 잘 모실 수 있기를, 더 자주 영성체할 수 있도록 다짐하는
봉헌의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에
겸손함으로 머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웃에게 또 하나의 양식으로,
영양으로 복이 되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탄은 우리를 구원하러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역사 속으로 들어온
뜻 깊은 날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서 내 앞에 오신
날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하필이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에는 방을 얻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방은 많았지만
내어 놓은 방이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구세주인 것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방을 내놓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비천한 마구간을 통해서 모든 가난한 사람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셨습니다. 말구유에 눕혀서 당신의 앞으로의 삶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도 목수인 아버지 요셉과 함께 일하심으로써
사람들의 노고와 땀, 보람을 몸소 체험하심으로써 위로와 격려를
주십니다. 그러나 끝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이들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 총독은 그분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말하면서도
사형선고를 내리고 손을 씻었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죄악을 짊어지고
죽으셨으나 부활을 통해 죽음을 이기셨고 사랑의 승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부활하시어 영원히 사시는 ‘임마누엘’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오신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탄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사람이 되고,
예수님과 함께 죽지 않는 삶을 사는 새사람으로 오늘 이 성탄축일에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 마음 안에서 거듭
거듭 태어나시도록 마음의 방을 내 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천번 만번 태어나신다 해도 내 마음 안에 그분을 낳아 드리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탄은 단순히 과거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날 소명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둠이 짙어 오지만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가슴에 모시고 그 어둠을
비추어야 합니다. 죄악의 어둠, 시기와 질투, 분노, 적개심,
미움으로부터 벗어나 용서와 화해, 기쁨과 평화,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성탄입니다.
어느 날, 마더데레사 수녀님께서 길을 지나시다가 한 어린이의 고름을
만지며 치료하고 있을 때 함께 살고 있던 분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수녀님, 수녀님은 잘사는 사람이나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질투나 시기심이 생기지 않나요?
수녀님은 정말 이런 삶에 만족하십니까? 그랬더니 수녀님께서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수녀님께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9,35).는 주님의 삶을 이미 살고
계셨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마태20,28) 하신 말씀이 가슴 안에 살아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지 않고는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당시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끝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구세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메시아가 탄생하면 당연히 자신들을 찾아와서
메시아임을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잘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잘 믿고, 교리도 많이 알고 그래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자신 만만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겐 ‘아는 게 병’이었습니다.
헤로데 왕은 권력의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처음부터 자기가 아닌
다른 왕이 태어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입으로는 나중에 동방박사들에게 경배하겠다고 했을 뿐 마음으로는
이미 아기를 죽여 없애버렸습니다. 이는 누구든지 나보다 더 낫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학식이나 인물, 돈을
잘 번다든지 인기가 높다든지 칭찬을 더 받든 나 보다 더 나은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성격을 지닌 사람이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
정말 이것도 큰 병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고유한 달란트를 가지고
그것을 활용하기도 힘든 데 말 입니다.
진실하게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분은 데레사수녀님처럼 허리를 굽히는
사람입니다. 허리를 굽혀야 하고 말구유로 내려오신 밥통 안에서
‘나는 네 밥이야’하고 자신을 아낌없이 내놓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2,5).
주님께서는 높은 데가 아니고 낮은 데에 계십니다. 우리가 이런 분을
생각하면 거기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니 거기에 이미 와
계십니다. 혹 우리가 이미 와 계신 분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의
문이 아직 그분에게 향하고 있지 못한 까닭입니다. 우리 마음을
그분께로 돌려야 하겠습니다. 자기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에로 돌리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눈으로
보고 그분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매일 매순간 사랑하는 것이
매일의 성탄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사랑에 굶주려 그대를 바라보십니다. 친절에
목말라 그분은 그대에게 구걸하십니다. 충절에 헐벗어 그분은
그대에게 희망을 겁니다. 그대 안에 머물 집이 없어 그분은
간청하십니다. 그대는 그 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겠습니까?
- 마더 데레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이 되어서 세상을 밝게 비추고 기쁨과
평화를 나누어 주시길 희망합니다. 우리의 이웃이 여러분을 만난
것이 참 기쁨이 되고 큰 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도록 그에 걸 맞는
삶을 봉헌하시길 바랍니다. 내 삶의 자리에 예수님을 낳아드리는
매일의 성탄을 이루시길 기도 하며 다시 한 번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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