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1-02 04:15:22    조회 : 412회    댓글: 1

☆ 2018년 나해 1월1일 월요일
[(백)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수도회] 주님의 축복 속에 내딛는 희망의 발걸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민수 6,22-27
○ 제2독서 갈라 4,4-7
† 복음 루카 2,16-21

***** ***** *****
◈ 오늘의 묵상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한 해의 시작과 함께 가장 많이 주고받는
말입니다. ‘복’(福)이란 한자어는, 하느님[示]께서 각자[一]에게 필요한
[口] 밭[田]을 주셨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신 말씀과 상통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복은 재물과 건강, 부귀와 영화겠지만,
하느님 백성인 우리에게 참된 복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상속자들입니다. 인간으로서 감히 얻을
수 없는 하느님의 몫을 상속받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새해 첫 날부터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을 낳으신 성모님의 인생 속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성모님께서는 목자들이 전해 준 믿기지 않을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고
합니다. 화려하지만 사라져 버릴 세상이 주는 복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 놓으신 하느님의 영의 선물을 받으신 성모님께서는
어떤 처지에서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믿음의 복을 누린
분이셨습니다.
복은 혼자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은
서로 빌어 주는 것입니다. 새해 첫 날을 어제와 별 다르지 않은 날로
느끼는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처럼, 행복과 희망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심하는 능력입니다. 새해에
내가 결심하고 하느님께 청한 것이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인지
성모님처럼 곰곰이 되새겨 보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 미사 -

***** ***** *****
◈ [인천] 일류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2018년 나해 1월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6,22-27

제2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4,4-7

복음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6-21

2018년 무술(戊戌)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에게 큰 선물로 다가온
올 새해에는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한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이렇게 새해 인사를 나누면서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언젠가 어떤 분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신부님, 새해가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뭐가 있겠어요. 왜 이렇게
새해라고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지나갈 하루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들이
장사치들의 상술에 넘어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똑같은
날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해가 바뀌는 오늘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더욱
더 열심히 하루를 보내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생각으로 큰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도 다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을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자. 그만큼 기쁘고 힘차게
살 수 있지 않은가?’

삶의 부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생각하는 한해가 아닌, 기쁜 일을 비롯한
긍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생각하는 한해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낭비란 비싼 칼을 사는 것이 아니라, 비싼 칼을 사서 칼집 속에 그냥
넣어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은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야 그 의미를 다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민수 6,24)고 전해주면서, 우리가 늘 좋은 것만을 받았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올 한해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닌, 가장 잘 활용하는 축복의 한해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보내는 우리들에게 복음은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루카 2,19)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하느님의
아들을 낳는 그 순간까지 겪었던 모든 일들을 떠올리면 큰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면 불평불만부터 나오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지요. 하지만 성모님께서 그 어떤
불평불만을 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루카 1,37 참조)는 천사의 말에,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이라고 응답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명하실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새겼던
것입니다.

이러한 순명과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신 그 모습을 통해
우리들이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며, 이로써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들이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갈라 4,4.5)

이 모습을 배우고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더 이상 불평불만 속에서
부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가득한 삶이 아니라, 침묵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노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으며 주님 안에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이기면 일등이 되고, 나를 이기면 일류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이겨서 일등이 되는 삶보다 먼저 부정적인 나를 이겨서 진정한
주님의 자녀가 되는 한해가 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일류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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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속마음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다른 사람을 당신의
속마음으로 들어오게 하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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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만남(‘따뜻한 하루’ 중에서)

정채봉 작가의 에세이 '만남'에 다음과 같은 만남의 종류가 있습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원한을 남기게 되는 만남입니다. 이런 만남은
오래 갈수록 더욱 부패한 냄새를 풍기며 만나면 만날수록 비린내가
나는 만남입니다. - 생선 같은 만남 -

풀은 쉬 마르고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처럼 오래가지 못합니다.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지만 시들게 되면 버려지는 만남입니다.
- 꽃송이 같은 만남 -

반갑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싫은 것도 아니지만, 만남의
의미가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는 시간이 아까운 만남입니다.
- 지우개 같은 만남 -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말처럼 힘이 있을 때는 지키고 힘이
다 닿았을 때는 던져 버리는 가장 비천한 만남입니다.
- 건전지와 같은 만남 -

상대가 슬플 때 눈물을 닦아주고 그의 기쁨이 내 기쁨인 양 축하하고
힘들 때는 땀도 닦아주는 가장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 손수건과 같은
만남 -

2018년을 새롭게 맞이하는 오늘 어떤 만남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만남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제일 중요한 축복은 만남의 축복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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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주님의 축복 속에 내딛는 희망의 발걸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8년 나해 1월1일 월요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민수 6,22-27; 갈라 4,4-7; 루카 2,16-21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민수 6,24)

주님의 축복 속에 내딛는 희망의 발걸음

새해를 맞으며 평화와 자비의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새해에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가난한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아가 각 개인도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보다 더 인간다운 사회를 이루는데 헌신함으로써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제1독서는 다음과 같은 ‘아론의 축복’을 전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6)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의 노예살이로 자유롭지 못했고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혔습니다. 인간적인 습속이 온 존재에 새겨지고, 육체적인
피로와 고통을 쌓여가며, 인간의 욕망에 사로잡힌 반항과 배신은 그들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충실함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이집트 탈출에 동의함으로써
자유의 길로 나아갑니다.

아론의 축복은 백성에게 충실하신 하느님 자비에 대한 찬양입니다.
주님의 축복은 두려움과 탐욕, 집착과 반항 속에 어두운 나날을 지낼
우리 인생길에 대한 주님의 영원한 보증이기도 합니다. 행복의
근원이요 선 자체이며 평화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심이 바로
축복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며 그분 안에 머물기만 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주님 축복의 선물은 악으로부터의 보호, 죄의 용서인
자비, 평화 셋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거저 받을 수 있는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른 평화를 주러
(요한 14,27) 오신 ‘하느님의 축복’ 자체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몸에서 태어나시어 인간의 법에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어 구원을 얻게 하신(갈라 4,4-6)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새해에는 자비요 선이며 평화이신 주님을 더 갈망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삶으로써 주님의 축복 안에 머물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주님의 복된 사람이 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인간적인 나약함과
삶의 고통과 도전 앞에서도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헌신해야겠습니다.
말구유에 나신 가난한 하느님을 알아본 목자들의 깨끗한 눈으로 내
삶의 역사와 세상과 다른 이들을 바라봐야겠지요.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축복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어야겠지요.
주님의 축복을 공유하려면, 성모님처럼 주님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며’(루카 2,19), 목자들처럼 적극적으로 평화의 주님을
찾아내 찬미를 드리도록(2,16-18)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네 삶이 비록 변변찮고 고통과 시련이
많아도 매순간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최고의 선과 사랑과 평화를 주고자
하시는 주님의 축복을 회상합시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축복받은 사람들임을 기억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합시다. 평화의 주님께서 새로이 내딛는 우리의 발걸음을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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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새해 새 아침에

2018년 나해 1월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 루카 2,16-21
 
새해 새 아침에

또 다시 새해입니다. 우리를 향한 극진한 사랑과 자비의 표시로
주님께서 새해 아침을 선물로 열어주셨습니다. 그분의 넘치는 은총과
자비에 크게 감사하면서 기쁘게 이 한해를 살아가야겠습니다.

오늘은 눈물겹도록 은혜로운 날입니다. 우리 안에서 낡은 것과 새
것이 교대하는 날, 인간의 비참과 하느님의 자비가 교차하는 날, 빛나는
얼굴의 내가 죄에 물든 나와 작별하는 날, 분노와 질투의 화신이었떤
내가 사랑과 자비의 사도로 다시 태어나는 날입니다.

이토록 은혜로운 날, 우리 가톨릭 교회는 한해 동안 본받고 살아갈
모델 한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천주의 성모!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입니다. 그분은 나약한 인간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무한한
성장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온 몸으로 증거하신 분이십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분,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가장 큰 영예를 얻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비결은 바로 지극히 겸손한 순명이었습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별 것도 아닌 인간 존재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첨단과학이 점점 발전하면서, 인간은 큰 착각에 빠집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착각, 그러면서 하느님의 영역,
하느님의 자리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니 인간 측의
가장 큰 문제는 겸손의 결핍이군요.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도를 넘어서는 지나친 자신감이 문제입니다.

이런 면에서 성모님의 겸손이 유난히 돋보입니다. 성모님은
영광스럽게도 하느님을 자신의 태중에 모신 분이십니다. 과분하게도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으신 분입니다.

장차 구세주의 어머니로 살아가며 누리게 될 세속적 영예나 특권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구세주의 어머니란
타이틀이 성모님의 신앙 여정에 마이너스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언제나 가난하고 작은 사람으로 남기를
원하셨기에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오직 메시아를 담아내기 위한 질그릇 같은 인생에
불과하다는 것을 평생 잊지 않았던 성모님의 겸손, 여기에 그분의
위대성이 있습니다.

아들 예수님 일생에 여백 같으셨던 분 성모님, 예수님 탄생 순간부터
갈바리아 산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예수님 뒤에서 조용히 서 계시던
성모님, 아들 예수님이 커지시도록 한없이 작아지셨던 성모님, 늘
예수님 그늘에 서계셨던 성모님이셨습니다. 이토록 겸손하셨던
성모님이었기에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분을 인류의 어머니로
끌어올리신 것입니다.

겸손의 덕은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신 덕행이며,
그리스도교 안에서 으뜸가는 덕행입니다. 참된 겸손은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로부터 시작합니다. 참된 겸손은
하느님께서 나를 극진히 사랑한다는 것을 인식함에서 시작합니다.

참된 겸손은 그 사랑에 힘입어 내가 하루하루 살아감을 고백함에서
시작합니다. 참된 겸손은 하느님을 떠나있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음에서 시작합니다. 참된 겸손은 나는 매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축복과 은총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함에서 시작합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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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무술년 개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개띠는 58년생입니다. 저의 형님이 58년 개띠입니다. 개는 인류와 함께
지낸 친숙한 가축입니다. 예전에 주일학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목자이고, 본당 신자들은 양이라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럼 보좌 신부님은 양들 옆에 있는 개인가요?”
당시에 보좌신부였던 저는 본의 아이게 개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반려견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개는 집을 지키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와 같은 동물이 되었습니다.
충무로에는 애견센터가 많습니다. 며칠 전 그 길을 걸으면서 창가에
있는 강아지들을 보았습니다. 어찌나 귀엽던지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새해에는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면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이 되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동양화를 감상하는 법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첫째 원근이 잘 나타났는가? 먼 곳과 가까운 곳이 잘 표현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늘 높이 있는 달과, 눈앞에 있는 나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원근이 잘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둘째 구도가 잘 잡혀있는가? 산과 강, 나무와 배, 꽃과 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지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셋째 선이 뚜렷하게 보이는가? 강과 산의 경계, 하늘과 산의 경계,
땅과 물의 경계가 뚜렷해야 한다고 합니다.

넷째 명암이 잘 드러나는가?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잘 표현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꽃은 더 아름답게 드러날 것입니다. 달밤은
더욱 운치 있게 표현 될 것입니다.

다섯 번째 여백이 있는가? 한 폭의 그림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합니다. 마음에는 여유가 있어야 하듯이,
그림에도 여백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다섯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 잘된 그림이지만 작품은 아니라고
합니다.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아, 묘, 신’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는 선비 아인데 그림에 품격이 있어야 하고, 묘는 그림에 평범함을
넘어서는 묘함이 있어야 하고, 신은 그림에 신비함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3가지가 있으면 비로소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구원의 역사에 대해서 잠시 묵상해
보았습니다.

첫째, 구원은 하느님 약속의 실현입니다. 창세기 3장, 미가서 5장,
이사야서 7장에 예언된 하느님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사건이
구원의 역사입니다.

둘째, 연약한 처녀의 응답을 전제로 합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느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시지만 우리의
응답을 기다려 주십니다.

셋째, 역사의 기준이 됩니다. 기원전, 기원후라는 표현은 주님의
탄생전과 주님이 탄생한 해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구원의 역사는 ‘마리아의 노래’에서 볼 수 있듯이 명암이
드러납니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시며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시고, 배고픈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초라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평범한 시골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많은 여백을 남긴 체 탄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2018년이라는 도화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 희망, 사랑, 나눔, 희생, 친절, 온유의 물감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때로 고통, 절망, 아픔이라는 얼룩이 질지라도 그
그림은 하느님께서 어여삐 여기시는 그림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욕망, 분노, 미움, 시기, 질투, 편견이라는 물감으로 볼썽사나운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재물, 권력, 명예가 화려하게 보일지라도 그 그림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그림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아기 예수님을 처음 받아 준 손은 목수 요셉의 거친 손이었고,
그분을 처음 맞아들인 장소는 누추한 구유였습니다. 그분께 찬미와
찬양을 드린 첫 번째 사람도 밤을 지새우던 가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 강생의 짧은 이야기는 약하고 보잘것없는 곳, 비천한 사람들
안에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핵심 진리가 있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내 안에 깊이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그곳이 나를 구원할 내 ‘인생의 구유’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세계 평화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총과 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거창한 행사나 사업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처럼 겸손과 순명으로 삶의 모든
파도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귀양살이
끝날 때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하소서.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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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작성자: 안나님     작성일시:

Happy New Year ~
올 한해 승리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