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4일 Fiat !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7-12-24 06:45:29    조회 : 460회    댓글: 1

☆ 2017년 가해 12월24일 주일 [(자) 대림 제4주일]

[수도회] 믿음과 희생과 사랑으로 만드는 내 구유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2사무 7,1-5.8ㄷ-12.14ㄱ.16
○ 제2독서 로마 16,25-27
† 복음 루카 1,26-38

***** ***** *****
◈ 오늘의 묵상

제대 앞에 켜져 있는 네 개의 대림초는 구세주를 기다려 온 인류의
오랜 기다림을 상징합니다. 하와의 불순종으로 구원의 통로가 막혔던
그 순간, 하느님께서는 인류 구원 계획을 예고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마를 저주하시면서도 죄가 가져온 악을 없애 줄 구세주를
약속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
제1독서에서 다윗 임금은 하느님께 영원한 왕좌를 약속받습니다.
다윗은 하느님께 화려한 성전을 지어 바치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왕좌를 차지할 다윗 가문의 메시아를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 왕국의 분열과 멸망을 보며,
약속된 메시아는 모든 민족을 구원할 인물임을 점차로 깨닫게 됩니다.
오랜 세월 감추어 있던 구원의 신비가 주님 성탄으로 온 세상에 환히
드러납니다. 하늘 위에서 내리는 이슬처럼, 의로움의 구름처럼
하느님의 구원은 강생의 신비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는 아무 준비 없이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는 구세주의 탄생은 온
우주와 피조물이 기다려 온 대사건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순종으로 구세주의 탄생이 이 세상 안에 실현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우리 가정과 이웃에 이루어지도록 성모님처럼
응답합시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삶 안에 탄생하시고 살아 계시도록
욕심을 비우고 죄악을 깨끗이 치웁시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매일 미사 -

***** ***** *****
◈ [인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

2017년 나해 12월24일 대림 제4주일

제1독서
<다윗의 나라는 주님 앞에서 영원할 것이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7,1-5.8ㄷ-12.14ㄱ.16

제2독서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가 이제는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6,25-27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사막의 교부 안토니우스는 하느님 심판에 대해 물었습니다.

“주님, 어떤 사람들은 젊어서 죽고 어떤 사람들은 고령으로 죽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사람들은 가난하고 다른 사람들은
부유합니까? 어째서 악인들이 부유하고 의인들은 가난합니까?”

그에게 다름과 같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안토니우스, 너 자신에게 집중하라. 이 심판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니
그것을 안다고 너에게 좋을 것은 없다.”

우리는 내 자신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다른 외적인 것에 집중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특히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불평불만을 품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자신이 행해야 할 것들, 특히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삶을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역이 아닌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 분을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어머니이며
우리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받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할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은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대단하고 하느님을 찬양할 만한 일이지만, 당사자인 성모님의
입장에서는 어떠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주님 잉태
소식을 듣는다면 어떠시겠습니까? 제가 만약 이 말을 듣게 되면
이렇게 말씀을 드릴 것 같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님, 물론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하지만,
저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독신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신부(神父)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를 가져보십시오. 해외토픽
감입니다. 이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아기를 가져서는 안 될 이유들을 세상의 논리를 내세워서 펼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면 이러한 일이
과연 불가능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하시고자 하시면 분명히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의 입장에서 그리고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단정을 내리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천사의 말에
전혀 의심을 품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 믿음은 오늘 제1독서에서 나탄 예언자를 시켜 다윗 임금에게 하신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겠다.”(2사무 7,12)가 실현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믿음이 바로 하느님께서 이 땅에서 강생하시는 큰 기적을
일구어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신비가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끌게 하였지요(로마 16,26 참조).

하느님의 영역을 전혀 침범하지 않는 그 믿음이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이렇게 살아야 함을 분명히
전해줍니다. 즉,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대신 내 자신의
영역에 최선을 다하는 삶, 그리고 이 삶은 주님의 뜻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네 개의 대림초가 모두 환하게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
드디어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강생하신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주님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매년 똑같이 반복적으로 맞이하는
성탄절이라면서 하루 즐기고 쉬는 날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영역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 믿음을 가지고
내가 지금 해야 할 일들에 최선을 다할 때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을
가장 기쁘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에 대해 성녀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느님 사랑, 돌아가신 하느님이 아닌 살아 계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 ~~~~~ ~~~~~
봄을 기다리는 나무는 시들지 않는다(황태영). 

~~~~~ ~~~~~ ~~~~~
행복이란?

제가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지금의 고통과 시련이 장차 있을 행복을 보장해준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지금의 어려움과 힘듦을 피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어려움과 힘듦을 피하지 않는 것은 좋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장차
있을 행복만을 바라보면서 ‘지금을 버티자.’라고만 생각한다면 지금의
삶이 너무나도 어둡게만 보입니다. 나중에만 만족스러운 삶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행복한 사람은 지금을 만족하며 기쁨
속에 사는 사람이 아닐까요? 이러한 사람만이 지금도 행복하고 먼
훗날에도 똑같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버티자’는 생각에서 ‘즐기자’라는 생각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등산을 할 때, 산꼭대기를 바라보고 거기에 이르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산에 오르는 것이 별로 재미없습니다. 산 정상에서
“아 좋다.” 한 마디 하고 그냥 내려올 뿐이지요. 그러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오르는 그 길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을 느끼고, 산
속에서 울려 퍼지는 각종 소리에 집중하면 어렵고 힘들어도 그 길이
즐겁습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다음 기회에 또 등산을 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지금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즐기는 마음으로 각종 내 주변에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면
분명히 커다란 행복 속에서 살아갈 것이고, 먼 훗날에도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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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믿음과 희생과 사랑으로 만드는 내 구유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나해 12월24일 대림 제4주일
2사무 7,1-5.8ㄷ-12.14ㄱ.16; 로마 16,25-27; 루카 1,26-38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믿음과 희생과 사랑으로 만드는 내 구유

주님께서 나탄 예언자를 시켜 다윗 임금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2사무 7,12.14.16)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우리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로마 16,25)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 1,31-32) 하고 일러줍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을 받아들이라는 천사의 말에 몹시 당황하며 혼란에
빠집니다.

마리아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한 것입니다. 이 도전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온전히 내려놓으라는 도전이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비난과
그에 따른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는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계획을 통째로 포기하는 것은 죽음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 엄청난 도전 앞에서 마리아는 주님의 권능과 계시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며 '예' 하고 응답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1,37). 자신의 욕망을 버림으로써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에 대해 죽음으로써
사랑이신 분을 품어 사랑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마리아는 우리
모두에게 재탄생의 다리를 놓아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예수님은 바로 우리에게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리는 표지이지요. 예수님은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계시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마리아가 엄청난 무게의 도전
앞에서 보여주었던 믿음과 선택, 포기와 결단이 없이는 우리 안에서
태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탄생하셨던 참된 사랑이신 예수님은 이제
우리가 다시 이 세상에 사랑으로 태어나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의
제자인 우리가 주님을 이 세상에 보여 드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분명한 길은 바로 '사랑'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사랑의 주님을
체험하고 주님 안에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 참된 사랑의 증인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가난하고 약하고 소외된 예수님께서 내 안의 보잘것없는 구유에서
태어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야겠습니다. 사랑이 오시도록
사랑으로 아기 예수님이 누우실 자리를 뎁혀야겠습니다. 마리아처럼
자신을 포기하며 희생하고, 주님께 온 존재를 내맡기며 사랑을 품어
낳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 안에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을 위한
구유를 마련할 때, 주님께서는 다시 태어나실 것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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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Fiat !
 
2017년 나해 12월24일 대림 제4주일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 루카 1,26-38

Fiat !

제가 최근에 받은 여러 초대 중에 아주 기분 좋은 초대가 한번
있었습니다. 태안에서 사목하는 신부님한테 이런 전화가 왔습니다.
“신부님, 여기 빨리 오셔야겠어요. 저녁 미사 끝나고 방파제 한 바퀴
도는데, 숭어떼가 들어왔는데, 여기 완전 물 반 고기반이예요! 전국
낚시꾼들이 다 모였고, 넣었다 하면 순식간에 한 마리씩 막 올라와요!”

안타깝게도 저는 그때 한창 바쁜 때라서 그 초대에 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저는 한 가지 신비 체험을 했습니다. 분명히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시 있으니 어두웠던 천장이 점점 밝아지더니,
천장이 바뀌는 것입니다. 뭘로? 수족관으로 바뀌면서 밤새 숭어떼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루카복음 1장 26절 이하에는 그 유명한 초대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하느님의 초대장을
마리아에게 건네주고 있습니다.

그 초대는 너무나 엄청난 초대였고, 끔찍할 정도로 부담이 되는
초대였으며, 그렇게 하겠노라는 응답으로 인해 다가올 고초가 만만치
않음이 분명한 초대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걸 라틴어 한 단어로 줄여서‘Fiat!’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성모님의 Fiat은 그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틈만 나면 성모님은
또 다른 도전, 또 다른 부르심, 또 다른 난감한 상황 앞에 서셨는데,
그때 마다 계속해서 ‘Fiat!’ 이라고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수태고지 장면을 곰곰히 묵상해봤습니다. 당시 마리아의 나이는
아직 10대였습니다. 천사의 가브리엘의 엄청난 초대 앞에 마리아의
최초반응은 어떠했겠습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천사님 잘 오셨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을까요?

절대 아니었을 것입니다. 10대 소녀가 어떻게 태연했겠습니까? 참으로
두려웠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을 것입니다.

우선 마리아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했을 것입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마도 이랬을 것입니다.

‘이 난감한 사실을 약혼자 요셉에게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연
요셉이 이 사실을 믿을 것인가? 요셉이 과연 끝까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혹시라도 요셉이 이 일 때문에 내게 앙심을 품고 딴
생각을 한다면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닌가?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천사의 제안을 수락할 경우 마리아 앞에 펼쳐질 상황은 암담하기만
한 것이었습니다. ‘나자렛의 우물가에 모인 아낙네들의 입방아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한 가냘픈 소녀가 불러오는 배를 주체
못하고, 또 그것에 대해 똑 부러지게 변명 할 수도 없게 될 상황,
그것이 바로 마리아 앞에 펼쳐질 미래였습니다.

성모님의 Fiat은 그 길이 분명 고통스러운 길, 험난한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뻔히 알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 주님을 위한 길이기에 기꺼이
길 떠나겠다는 의미에서의 Fiat이었습니다.

끊임없는 피앗, 평생에 걸친 피앗의 결과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성전, 새로운 성도(聖都) 예루살렘이 됩니다. 이제
마리아는 그 안에 메시아가 끊임없이 살아 계시는 계약의 궤가 됩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성모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울 같은 분이십니다. 성모님의 얼굴은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가장 맑고 투명하게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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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수도꼭지/전삼용 요셉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나해 12월24일 대림 제4주일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 루카 1,26-38

수도꼭지

어느 날 파우스티나 성녀는 어떤 영혼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즉시 주님께 9일기도를 바치기로 결심하고,
미사시간에 양쪽 다리에 고행용 쇠사슬을 착용하고 기도와 함께
고행을 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3일이 지나고 고해성사 때가 되어 영적 지도자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보러갔습니다. 영적 지도자에게는 숨기는 것이 없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있는 고행을 말하려고 했고 영적 지도자도
그것을 당연히 허락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적 지도자
신부님은 허락도 없이 그런 고행을 하는 것에 크게 놀라고 건강
때문이라도 그런 고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행하는 대신 예수님께서 왜 당신을 낮추셔서 세례를
받으셨는지 묵상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녀에게는 하느님에
대해서 묵상하는 것은 고행이 아니라 즐거움이었습니다. 정말 힘든
것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고해신부님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희생 같지도 않은 것으로 한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수녀님은 고해신부의 말에 순종하여 고행용 쇠사슬을 풀고
묵상을 하기 위해 성당에 앉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들렸습니다.

“나는 네가 은총을 주라고 청한 그 영혼에게 그 은총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네가 스스로 선택한 고행 때문에 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네가
나의 대리자에게 완전히 순명했기 때문에, 네가 전구하고 자비를
청한 그 영혼에게 은총을 주었다. 네가 네 자신의 의지를 접을 때에,
나의 뜻이 네 안에서 군림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들의 뜻을 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순명을 해야만 하기 시작하면서, 특별히 논문을
쓰면서 그런 것을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학생의 생각이 교수님의
생각과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논문은 교수님이
통과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이 교수님이 바꾸라고 하는 것은
바꾸어야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공부를 하여 머리가 커질 대로 커진
저로서는 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박사 논문 첫 째 장을 제출하고는 교수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걱정하여 음식을 먹고 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꾸라면 다
바꾸어주겠다.’라고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는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즈카르야도 처음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천사의 말대로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으라고
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그랬더니 입이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저는 이제는 즈카리야도 파우스티나 성녀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큰 고통을 감수해야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자신의 뜻을 접는다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일인데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접고 윗분의 뜻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은총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합니다.

파우스티나 성녀가 고해사제의 뜻을 따름으로써 한 영혼이 구원되었고,
즈카리야가 자신의 뜻을 접음으로써 입이 풀려 찬미가 솟아나왔으며,
저 또한 제 뜻을 굽히고 교수님의 뜻을 따라줌으로써 학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치 수도꼭지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당신의
은총을 쏟아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자아가, 나의
교만이, 나의 뜻이, 나의 아집이 그 통로를 막고 있습니다.
나의 뜻을 죽이면 그 통로가 열려 은총이 쏟아져 내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수도꼭지를 여는 열쇠입니다.

예수님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이것이
당신 뜻입니다. 그러나 당신 뜻을 십자가에 못 박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랬더니 그 분 옆구리에서 피와 물, 구원의
은총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교만 때문에 닫혔던
은총의 통로가 성모님과 그리스도의 Amen으로 다시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파우스티나에게 노트 한 쪽 페이지에 엑스 표를 하고 그
위에 “오늘부터 나 자신의 뜻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쓰게 하시고,
그 뒷면에는 “오늘부터,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고 모든 것에 있어
나는 하느님의 의지를 행한다.”라고 쓰게 하십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를 통해서도
주님의 은총이 흘러나오게 될 것이고 우리 자신도 그분의 은총으로
가득찰 것이기 때문입니다.
 
- 수원교구 영성관장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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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대림 제4주일

주님의 탄생을 맞이하면서 각 교구의 교구장님들께서 교구의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주된 내용은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본 받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가난한 이들의 모습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맞이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교구의 교구장님들은 ‘보육원, 요양원, 장애인 공동체,
노숙인’들을 찾아가셔서 성탄 미사를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화려한 성탄 장식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연말에 이루어지는 각종 시상식에 계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력, 명예, 재물이 가득한 곳에 계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던 분들이 있습니다. 양들을 돌보던
목동들이었습니다. 별자리를 보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왔던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은 깨어있었고,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기 위해서 행동을 하였습니다. 많이 배웠고, 율법의 수호자라고
했던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가득한 책 속에서 탄생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헤로데와 대사제들도 예수님의 탄생을
몰랐습니다. 권력의 중심은 예수님께서 태어나기에는 너무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양양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습니다. 시간은
단축되었지만 가는 길에 많은 터널을 지나야 합니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느끼는 것들이 있습니다. 밝았던 시야가 좁아집니다. 주변의
경치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터널을 지날 때는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터널이 끝날 즈음에는 곧
밝은 빛이 비추고,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면서 4개의 터널을 지나온 것 같습니다.

대림 제1주라는 터널에서는 ‘깨어 있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지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 이 세상은 잠시 지나가는 정거장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 영원한 것들을
추구하게 됩니다.

대림 제2주라는 터널에서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은 깎아져서 평평하게
되리라.’고 이야기 합니다. 교만과 욕망의 산을 깎아서 겸손과 온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어둠과 절망 그리고 고통과 걱정은
희망과 사랑 그리고 나눔과 봉사로 메워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이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하느님을 닮은 소중한 모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림 제3주라는 터널에서는 ‘자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과 예수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랐던 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픈 이들의 고통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외로운 이들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대림 제4주일입니다. 그 주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사람의
뜻, 세상의 뜻, 욕망과 성공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대림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에게 오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림의 진정한 의미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했던 성모님처럼 우리들 또한 이제 나의
뜻이 아니라, 욕망과 욕심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행동하는 것입니다.   

대림 4주일을 지내면서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는 ‘신비’를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입니다. 부족하고, 죄를 많이 지었고, 별로 잘 한 것도
없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권능과 모든 권세를 가지진 분이
아주 연약한 아이의 모습으로 비천한 마구간에 태어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한해를 보내며 많은 모임이 있는 때입니다. 후회와
아쉬움도 있는 때입니다. 걱정과 근심이 나의 앞을 가로 막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다가올 성탄을 생각하면서 좀 더 경건한
마음으로, 좀 더 기쁜 마음으로,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나를 위해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주님과
함께 주님과 더불어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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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작성자: 안나님     작성일시:

밀알님들~
Merry Christmas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