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7일 주님 공현 대축일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1-07 05:49:35    조회 : 443회    댓글: 0

☆ 2018년 나해 1월7일 주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수도회] 모두에게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삶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이사 60,1-6
○ 제2독서 에페 3,2.3ㄴ.5-6
† 복음 마태 2,1-12

***** ***** *****
◈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의 빛이신 분의 탄생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인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이루어집니다.
메시아의 탄생을 그토록 기다렸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도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보지 못했고, 헤로데는 행여 자신의 권좌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예수님을 없애려고 모략을 쓰기까지
합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동방에서 별을 보고 먼 길을 찾아온 박사들의 모습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이 유다 민족을 넘어 온 인류에 펼쳐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인류가 겪고 있는 전쟁과 폭력, 살인과 죽음, 죄악과
고통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인류를 구원할 참된 빛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갈망하던 동방의 박사들은, 하늘의 별이 안내해 주는 표징을
따라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유다인들보다 먼저 들었고,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만나 경배하며 예물을
바치는 영광을 얻습니다. 그들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기쁨에
넘쳤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별이 하나씩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불공평과 가난, 미움과 질투, 병과 죄의식 속에서도 여전히 내 영혼을
비추고, 세상의 어둠을 이겨 내는 빛나는 별을 갈망하며 삽니다.
그리스도교는 이 구원의 빛을 체험한 제자들이 성령의 계시를 통해
스스로 복음이 되고, 이 복음을 증언하는 이들이 한 지체가 되어 구원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확신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전통과 제도의 틀에 갇혀 성령의 인도로 일깨워지고 지탱되는 ‘신앙
감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다를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 미사 -

***** ***** *****
◈ [인천] 주님께 맞갖은 예물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2018년 나해 1월7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제1독서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0,1-6

제2독서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3,2.3ㄴ.5-6

복음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오랫동안 사용하던 노트북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 노트북을
들고서 A/S 센터를 찾아가서 수리를 부탁드렸지요. 기사님께서는
전원을 켜 보지도 않고 먼저 노트북의 모델을 확인하더니 곧바로
“이 노트북은 정상입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했더니만, 구입한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지요.

사람의 몸도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면 우리는 무조건 비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람의 몸은 가끔 병이 나는 것이 정상이라고
하네요. 우리 몸의 정화 시스템은 부패한 것들을 밖으로 보내는데
이것이 바로 예상치 못한 ‘병’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따라서
‘병’이 오히려 몸의 정화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하네요.

우리는 고통이나 시련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정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일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내 자신을
지금보다 더 성장시켜주는 가장 정상적인 일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지금 어떠한 상황에서도 좀 더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아주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이 얼마나
비정상입니까? 여기에 화려한 궁전이 아닌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마을인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탄생하셨다는 것 역시 비정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를 비정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처음에는 세상의 관점을 정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관점을 가지고 예루살렘의 헤로데 임금을 찾아가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라는 말을 했던
것이었지요. 이 세상을 구원할 임금은 화려한 궁전에서 그리고 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으며 태어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손길이 이 세상의 관점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은 긴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초라한 마구간에 누워있는 연약한
아기의 모습은 세상의 관점으로는 비정상이지만, 하느님의 관점에서
이것이 지극히 정상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의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이사 60,1) 말씀이 실현되었음을 알고,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봉헌했던 것이지요.

우리는 과연 세상의 관점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을까요? 세상의 관점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일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고 늘 불평불만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마음이 들 때, 먼 땅에서 부름을 받아 별의
인도에 따라 찾아갔던 동방박사들을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철저한 순명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별에
이끄심에 자신을 맡겼으며,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에
순명하지요. 분명히 세상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순명을 했기에 하느님을 만나고 또 하느님의 일을
하는 큰 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면서 주님께 맞갖은 예물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가장 낮은 위치를 피하지 않으셨던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그분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랑의 예물을 봉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의 관점이 아닌 하느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빛이신 주님을 맞이하고, 주님과 함께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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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눈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거니와
오직 마음뿐이다(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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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한 걸작품(‘따뜻한 하루’ 중에서)

로마제국 말기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높은 산과 바다의 거대한 파도와 굽이치는 강물과 광활한
태양과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경탄하면서 정작 가장 경탄해야
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경탄하지 않는다."

이 말은 산, 바다, 태양, 별들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바로 우리가 가장
귀한 걸작품이라는 말입니다.

"당신의 외모를 바꿀 수 있다면 바꾸겠는가?"

어느 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상당수의 남성과
여성들이 바꿀 수 있다면 자신의 외모를 바꾸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외모를 포함하여 자신의 존재나
인생에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한 번 바라보십시오. 당신과 똑같은 얼굴,
똑같은 생각, 똑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당신뿐입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 바로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보물입니다. 당당한
자신감으로, 가장 귀한 걸작품답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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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모두에게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삶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8년 나해 1월7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 60,1-6; 에페 3,2.3ㄴ.5-6; 마태 2,1-12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태 2,2)

모두에게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삶

주님 공현 축일은 하느님의 신비가 온 세상 만백성에게 드러난 것을
회상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동시에 이날 우리는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각자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빛을 반사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사실 주님의 공현은 우리와는 상관없이 드러난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길을 가는 우리에 대한 도전이자
부르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페르시아왕 키루스의
허락으로 유배를 마치고 귀향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땅에서
지내던 비참의 늪에서 벗어나 이제는 고향 땅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확인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가슴 벅찬 귀향길의
끝에는 냉엄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다 지배층은 부패했고 페르시아에 기대어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합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성전을 파괴되고, 예루살렘은
페허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감도는 예루살렘에는 인간의
탐욕과 주님과 헛된 우상이 뒤섞여 드러납니다. 기쁨이 슬픔으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이사야는 그런 참혹하고 암담한 현실 속에서 위로를 전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60,1-4)

이사야는 하느님께서는 절망과 슬픔과 폐허를 뛰어넘어 희망을 주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동시에 그는 예루살렘이 이제는 모두에게 하느님의
빛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함을 촉구합니다. 빛이신 하느님께서는 이제
세상의 빛인 당신 백성을 통하여 온 세상에 구원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으로 이제는 인종과 언어와 민족에 관계없이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됩니다.”(에페 3,6)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이제는 이스라엘을 넘어 만민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주님은 모든 이의 구세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오늘 동방박사들이 따라갔던 별빛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습니다.
주님 공현은 주님께서 온갖 장벽을 무너뜨리고 모든 사람을 찾아오신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도 변함없는 빛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세상의
빛’(마태 5,14)이 됨으로써 우리의 삶 자체가 공현이 되어야겠지요.

동방박사들은 기뻐하며 “땅에 엎드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바치며 아기 예수께 경배 드립니다(마태 2,11). 예수님은 동방박사들의
예물을 받으심으로써 단지 ‘유다인의 임금’의 지위를 넘어 만백성의
왕, 온 세상의 경배를 받아야 할 보편적 메시아로 드러나신 것입니다.
주님의 빛은 그렇게 ‘모두’를 차별 없이 비추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온갖 장벽을 허물고 조건 없이 모두를 품음으로써, 모두에게
의미와 희망과 절대가치로 다가오신 주 그리스도의 권능과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냈으면 합니다. 유아학살로 치달았던 헤로데의 탐욕의 길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살리는 정의와 자비에 헌신했던 예수님의 길을
찾아가는 우리이길 희망합니다. 우리에게는 헤로데가 일러준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자기 고향에 돌아간 박사들의 새로운 눈이 필요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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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 2)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1월7일 주님 공현 대축일.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 2)

여기까지 그냥 온 것이 아닙니다.
애쓰며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빛을 따라 나설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사랑의 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 공현은 구원의 여정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황금과 유향 몰약의 여정을 지나갈 것입니다.

온전히 사랑하시기위해 온전히 당신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은 늘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은 분명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여기 하느님께서 오늘 기꺼이 스스로 당신을 알려주십니다.
주님 자신을 이방인들에게 드러내신 축복의
주님 공현은 우리모두를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또한 동방박사들처럼 영원하신 하느님을
향해 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삶또한 주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주님을 드러내는 여정이길 바랍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께로 향하는
은총의 주님 공현 대축일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주님 공현은 보편적인 주님 사랑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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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제2의 성탄 축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1월7일 주의 공현 대축일: 나해: 제2의 성탄 축일

주의 공현 대축일은 제2의 성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주님의 탄생
신비에 대한 몰이해를 더 강조하면서 동시에 주님의 탄생을 세상에
선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유다인들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한 몸의 지체가 되도록 불림을 받은 이방인들을
위해서도 오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의 공현은 성탄의
신학적 내용을 확대시켜주고 깊게 해준다.

오늘의 전례는 이 예루살렘 대신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인다. 이제 이렇게 예수를 중심으로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땅 극변에까지 쏟아 부어야 할 새로운
예루살렘은 교회이다(교회 1항). 교회의 기본적 사명은 복음 선포와
교회 각 지체들의 삶을 통해 세상에 그리스도의 공현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복음: 마태 2,1-12: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복음에 보면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을 찾고 있다. 이 때에 헤로데가 당황하고 예루살렘이 온통
술렁거렸다고 한다. 여기서 헤로데는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다
모아놓고 그리스도가 탄생할 곳이 어딘가를 알아본 뒤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웠고, 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예수를 만나 경배한다
(마태 2,4-12 참조). 

오늘 복음은 너무나도 놀라운 역사적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누구이며, 몇 명이고 어떤 나라에서
왔는지가 아니다. 복음은 가까이 있다고 하는 이들, 즉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헤로데처럼 그를 해칠 계략을 짜는 반면
멀리 있는 이들, 즉 이방인들은 신앙의 빛의 자극을 받아 예수께서 비록
가난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지만 그분을 찾고 알아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11-12절).

복음에서 별은 동방박사들을 예루살렘에까지 인도한 후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 “아기가 있는 곳 위에”(9절) 머물게 된다.
이 별에 대해서는 하나의 혜성으로도 생각했고, 현대 과학자들은 기원전
7년에 발생한 물고기 성좌에서의 목성과 토성의 접함을 연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별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그 별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신앙의 내적 빛일 뿐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요한 6,44 참조) 우리는 그분을 알아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 둘째로는 마태오는 별의 표징 아래 나타날 메시아를
예언했던 발람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민수 24,17). 이제
구약의 계약이 나자렛 예수를 통해 실현되고, 그분의 빛은 이미 온
세상에 빛난다. 왜냐하면 이교도들도 신앙을 통해 그분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사들이 길을 떠났을 때, 동방에서 본 별이 다시 나타나 아기가 있는
집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고 그들은 대단히 기뻐하였다(9-10절)고
한다. 그들이 기뻐한 이유는 그것이 대단한 수고를 치르고 얻은
기쁨이고, 오랜 싸움 끝에 얻은 기쁨이며, 때로는 실망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얻은 기쁨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가 신앙 안에서 갖는 여러 가지 체험들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쉽게 이루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계시하신 뒤
감추심으로써 당신을 다시 찾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공현축일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빛’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빛나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을 찾기 위해 동방박사들처럼
오랫동안의 고달픈 때로는 실망을 가져다주기까지 하는 여정을 끝내
달릴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만 밝게 빛나시는 분이시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12절). 그들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그 빛을 받아 널리 퍼져나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헤로데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폭군에게 그리스도를 살해할 구실을 마련해줄 뿐만
아니라 다시 어두움 속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예루살렘에서는
그 별이 사라지지 않았던가! 

헤로데와 예루살렘에는 그리스도의 빛이 스며들 수가 없다. 만일 빛이
스며든다면 모든 것이 붕괴된다. 왜냐하면 ‘숨은 생각들을’(루가 2,35)
드러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사들의 나라 ‘동방’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미 빛이 스며들어 그 빛을 보다 더 널리
확산시켜나갈 수 있다. 예루살렘보다도 동방에서 그 빛이 더 강하게
퍼져나간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제2독서: 에페 3,2-3a.5-6: 모든 민족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하느님께서 당신의 심오한 계획을 알리는 사절이
되게 하셨다고 하면서 자신에 의해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된 복음의
조명을 통해 주님의 공현은 더욱 확대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방인의 세계를 대표했던 동방박사들은 완전한 자격으로 교회에
들어왔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불행히도 교회 밖에 머물러 있다.
예루살렘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베들레헴이 메시아의 탄생지라는
것은 가르쳐 줄 줄은 알았지만 그 메시아께 경배를 드리러 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빛에서 빛으로’(2고린 3,18)
옮아간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밝은 빛처럼 변화시켜 더욱더
깊게 그리스도의 빛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또한 영원한 영광 중에
결정적으로 드러내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뵙기를 갈망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주님을 직접 뵙게 되는 그곳에서 주님의 공현은 영원히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항상 찾아 만나
뵙게 되는 것은 주의 공현의 의미를 사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가능함을 잊지
않고 순간의 삶을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 수원 교구 상하 성모세 성당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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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주님 공현 대축일

2018년 나해 1월7일 주님 공현 대축일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 2,1-12

지난 12월 31일에 모 방송국에서 2017년을 빛낸 영웅이라는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정치인, 재벌, 과학자, 교수, 종교인, 연예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사람들을 영웅으로
보도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영웅이라고 하였을까요?

화재의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려다 함께 추락한 소방대원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부상의 후유증이 남아있지만 화재의 현장에 기꺼이 달려가는
소방대원이 우리들의 영웅이었습니다. 칼을 휘두르면서 사람들을
위협한 남자를 제압하려다고 부상을 당한 이웃이 있었습니다. 부상이
커서 장애 등급 판정을 받았지만 지금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똑 같은
일을 하겠다는 그 남자도 우리들의 영웅이었습니다. 불이 난 현장에서
90대의 할머니를 구했던 스리랑카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위험을 무릅쓰고 행하였던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들의 영웅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길에 쓰러진 할머니를 위해서
기꺼이 롱패딩을 벗어 주었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한 학생들이 우리들의 영웅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밝게 비추는 별은 능력, 재력,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며,
그런 고민을 성실하게 삶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밝게
비추는 별입니다. 지금 이 일을 꼭 해야만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결국
그 일을 꼭 했어야만 했다며 자신을 추스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밝게 비추는 별입니다.  

저도 세상을 밝게 비추는 우리들의 영웅을 본적이 있습니다.

비가 엄청 내리는 여름날이었습니다. 한 형제님은 성당에 와서 열린
문을 모두 닫았습니다. 하수구에 쌓인 오물을 모두 걷어내고,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였던 그 형제님은 영웅이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 학비를 도와주던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추석과
설날에는 독거노인들을 위해서 떡을 나누어드린 형제님은
영웅이었습니다. 성당 청소, 점심 준비와 같이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 함께 하였던 자매님은 영웅이었습니다.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예비자들을 성당으로 초대했던 어르신도 영웅이었습니다.
집에는 늘 기도초가 켜져 있었고, 손에는 묵주가 떠나지 않았으며,
미사 시작 1시간 전에 성당에 오셔서 기도하셨던 어르신도
영웅이었습니다. 그런 영웅들이 있었기에 본당의 모든 일들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축복을 주셨고, 힘든 일들을
풀어갈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제 방과 사무실에는 3년간의 일정표가 있습니다. 2년 동안 있었던
일정표와 앞으로의 일정을 기록할 일정표입니다. 일정표를 보면서 과연
나는 일어나 비추었는지, 주님의 일을 하면서 부끄러움이 없었는지
돌아봅니다.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가진 것을 나누기보다는 제가
원하는 일,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새해에는 제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2019년이 시작될 때에 저의 일정표를 보고 미소 지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멀리 동방에서 별을 따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온 세 명의 박사이야기입니다. 멜키올과 발다살 그리고 가스발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먼 길을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인도해준 ‘별’을 따라
왔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 명예, 권력, 부와 건강이라는
별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별은 참된 진리의 별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남을 속이게 되고, 분쟁과 갈등으로 공동체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별은 무엇이어야 할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요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드릴 선물은 무엇이어야 하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드려야 하는 첫 번째 선물은 희생이었으면 합니다. 두 번째는
인내였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는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최민순 신부님의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여! 오늘의 나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내가 가는 길에서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 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넓은 길, 편편한 길, 그런 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도록 더욱 깊은 믿음 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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