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가해 12월16일 금요일 [(자)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수도회] 무엇을 하며 기다릴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이사 56,1-3ㄴ.6-8
† 복음 요한 5,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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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당신이 진정한 메시아이심을
밝히십니다. 이를 위해 당신을 증언할 사람으로 세례자 요한을
들지요. 먼저 요한은 빛을 내는 등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등불이
어둠을 밝히는 역할을 하듯이 요한도 어둠을 밝혀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이끌었지요.
또한, 등불은 뜨거운 열을 발산합니다. 요한도 뜨거운 열정으로 하늘
나라가 다가왔음을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아울러 등불은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다가 마침내 꺼지고 맙니다. 요한 역시 그러했지요.
자신을 다 태운 등불처럼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을 증언하려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머물지 않으시고, 당신의 사명을 더 큰 증언으로
제시하십니다.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증언은 추상적인 메시지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것을, 그리하여
살아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1요한 1,5).
그런데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오셨는데(요한 1,9 참조),
그 빛이 예수님이십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동보다
더 큰 증언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시려고 생명까지 바치셨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 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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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사랑의 말씀과 행동으로, 죽음을 통해
2016년 가해 12월16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6,1-3ㄴ.6-8
복음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6
저희 성지에서는 후원회원들을 위해서 매달 묵상노트를
발송해드립니다. 성지를 아끼고 사랑하시는데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또한 이분들이 주님의 말씀 안에서 생활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묵상노트를 만들어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편으로 발송하다보면 반송되어 오는 묵상노트가 있습니다.
‘주소지 불명’이라는 이유가 제일 많고 이사 등의 기타 사유가
있습니다. 반송되어 돌아온 묵상노트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들더군요.
우편물을 받지 않았을 때 이 우편물은 누구에게 되돌아갈까요?
그렇습니다. 우편물을 보낸 사람에게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반송되면 누구에게 손해일까요? 정말로 내게 필요한 우편물이라면
받지 못한 사람에게 손해입니다. 또한 누구의 잘못일까요? 대부분이
받지 못한 사람에게 그 이유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의 은총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세상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셔서 당신의 은총을
보내주십니다. 그런데 이 은총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세상의
것들에 대한 욕심과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해서 은총의 삶을 멀리하고
대신 세속적인 삶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은총은 어떻게 될까요? 맞습니다. 내가 받지 않았으니 다시 하느님께
되돌아갈 것입니다. 또한 은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요? 당연이 내 탓입니다.
이 점에 집중해서 묵상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야 더 이상
하느님 탓을 외치고, 내 이웃 탓을 말하는 어리석은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으신 분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은 비극적인 죽음이었지만, 그가 온 삶을 바쳐서
주님을 증언했던 노력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사랑의 말씀과 행동으로, 심지어 당신의 죽음을 통해
사랑의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에게 직접 증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 주님의 증언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우편물을 받지
않으면 다시 우편물은 발송자에게 되돌아간다고 했던 점을
기억하면서,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주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은총 역시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세상에 알리고 전파할 때
하느님의 은총 안에 영원히 머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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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준 쪽은 타인이지만 그 상처를 수용하는 쪽은 나 자신입니다
(박수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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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있어야 할 것(‘좋은생각’ 중에서)
일생 열쇠를 고쳐 온 장인이 있었다. 기술이 훌륭해 많은 사람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찾아왔다. 게다가 정직하기로 유명해 존경받았다.
장인이 은퇴할 때가 다가오자 사람들은 누가 그의 뒤를 이을지 궁금해
했다. 그는 지금껏 기술을 전수한 수제자 두 명을 불렀다.
“시험을 치러 후계자를 정하마.”
장인은 금고 두 개를 준비해 하나씩 열게 했다. 첫 번째 제자는 십
분도 안돼 금고를 열었지만, 두 번째 제자는 삼십 분이 지나서야
간신히 열었다. 사람들은 첫 번째 제자의 승리를 확신했다. 장인이
첫 번째 제자에게 물었다.
“금고 안에 무엇이 있더냐?”
그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돈과 금괴가 많더군요.”
장인이 두 번째 제자에게도 묻자 그가 말했다.
“저는 안에 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금고를 열라고 하셔서 그것만
보았습니다.”
장인은 기뻐하며 두 번째 제자를 후계자로 정했다. 그리고 뜻밖의
결과에 당황한 첫 번째 제자에게 말했다.
“열쇠 장인은 마음속에 열쇠만 있어야지 다른 게 있어선 안 된다네.”
내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면서 참으로 많은 것들에 신경을 쓰고 시간을 소비하는
우리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이 점에만 집중한다면 가장 충실히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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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무엇을 하며 기다릴까?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가해 12월16일 금요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요한 5,33-36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요한 5,36)
무엇을 하며 기다릴까?
주님의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떤 기대와 희망을 품고
선의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런
기다림에는 애정이 담겨 있고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빛이 스며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다림은 사랑과 선을 확장시키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요. 그래서 기다림은 거룩한 정화의 계기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기다리는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요한 5,35-36)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었지요. 요한의 증언은
타오르는 등불과 같았으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
자체가 그보다 더 명확한 증거가 되는 까닭입니다(5,36). 의식을
깨우는 불타는 혀보다 더 강력한 것은 완전한 사랑을 온전히 살아내는
삶입니다. 사랑 앞에 더 이상 인간의 증언은 필요하지 않지요.
우리가 기다리는 분은 바로 기꺼이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그
사랑이요, 고통 중에 함께하시려는 임마누엘이십니다.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시며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이 주님의 유일한
바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을 통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 일생 동안 우리를 향한 사랑의 순례를 미친
듯이 계속하셨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엇을 하며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와 같은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까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라. 행복하여라, 이를 실천하는 사람! 어떤
악행에도 손을 대지 않는 이.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주님의 종이 되려고 주님을 따르는 이을 기쁘게 하리라.”
(이사 56,1-2.6-7)
성탄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선물이 곧
도착합니다. 놀랍고 귀한 하느님의 선물을 받기 위해 더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실천하도록 합시다. 마음의 울타리를 허물고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된 예수님을 찾아갑시다. 사랑이 나를, 우리를
찾아오시는데 사랑 없이 기다린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지요.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목적은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 우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해야겠습니다. 공정과
정의는 진실 안에서 불평등과 불의, 차별과 소외를 없애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의 진리를 따라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말하는 사람과 사회가 건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주님을 믿는 사람답게 진실만을 말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한국사회를
보면서도 참담함에 젖어 체념하거나 감정적 비난을 쏟아내는데
머물지 말고 낱낱이 진실을 밝혀 바른 질서를 세움으로써 하느님의
의를 드러내야겠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해야
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오늘도 진실하고 의롭고 사랑 넘치는 마음과 열정으로,
끊임없이 주님의 일을 실천함으로써, 당신을 맞이하기에 합당한
저희가 되도록 이끌어주소서! 아멘!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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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태양 앞의 횃불
2016년 가해 12월16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다.>
† 요한 5,33-36
태양 앞의 횃불
저는 젊은 시절을 한적한 바닷가에서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잘 적응이
안 되더니 지내다보니 좋은 점도 많더군요. 당시 워낙 청정 해역이라
바닷가로 나가면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특히 물때가 좋은 토요일이면
동료들과 의기투합해서 밤바다로 나갔습니다.
대단한 준비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나무막대 끝에 둥글게 천을 댄
다음 단단히 묶습니다. 석유를 듬뿍 적셔 불을 붙이면 근사한 횃불이
되었습니다. 저마다 횃불을 하나씩 손에 들고 물이 빠져나간 해안가를
샅샅이 훑는 것입니다. 작업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여기
저기 유심히 살피다보면 팔뚝만한 문어도 줍고 주먹 만한 해삼도
주웠습니다. 때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도 수두룩하게
잡혔습니다.
그렇게 수확한 녀석들은 한곳에 모으면 횟집 저리가라였습니다.
저희는 바닷가에 둘러앉아 횃불을 밝히고 주워온 녀석들을 삶고
지지고 볶았습니다.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됫병짜리 소주를 나눠
마시며 그렇게 밤을 지새웠습니다.
술김에 큰 목소리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밤이
지나갔습니다. 멀리 동녘 바다 수평선 너머로부터 어둠이 가시고
붉고 둥근 해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칠흑 같은 한 밤중에 그리도 요긴하던 횃불이었는데, 태양이
떠오르니 정말이지 보잘 것 없어지더군요. 한 밤중에는 활활
타오르던 횃불이 그리도 있어 보이더니 태양이 온 누리를 비추자
존재감이 확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가리키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요한복음 5장 35절)
예수님 말씀처럼 세례자 요한의 삶은 한 때 참으로 멋있었고 잘
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했어도 그는 한계를 지닌 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목적지가 아니라 이정표였습니다. 메시아가
아니라 선구자였습니다.
태양보다 더 밝은 예수님의 등장 앞에 등불 같은 존재였던 세례자
요한의 삶은 급격히 빛을 바랬습니다. 창조주이시면서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존재감 앞에 한갓 피조물이요 신하였던 세례자
요한의 존재감은 순식간에 쇠락하고 말았습니다. 찬란한 광채를
지니신 예수님의 등장 앞에 더 이상 횃불인 세례자 요한의 존재는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시작이요 마침이신 분, 그분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분
존재 안에 이 세상 모든 것이 수렴되고 완성됩니다. 세상 만물이
그분으로 인해 빛을 얻습니다. 그분으로 인해 가치와 의미를 지닙니다.
영원한 태양이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우리 각자 안에서 영원히 활활
타오르실 것이니 더 이상 다른 불은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밝은 빛이 이토록 어두운 이 나라, 갖은 의혹과 비리 투성이의
이 나라를 샅샅이 비춰주시길 청합니다. 그래서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명명백백하게 가려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 살레시오회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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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대림 제3주간 금요일
2016년 가해 12월16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6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의혹들에 대해서 심층보도를 하는 프로입니다. ‘PD 수첩,
추적 60분’도 비슷한 프로입니다. 묻혀질 것 같은 많은 문제들이
밝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 사실과 진실을
밝히거나, 제보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귀찮기도 하고,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지만 정의를 위해서 야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프로를 통해서 억울한 사람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권력을 등에 업고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진실을 이야기하고, 정의를
실현하고, 어두움을 밝히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진실을 밝히는 프로를 제작하던 분이 있습니다. 20년 동안 그런
프로를 제작했지만 세상은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밝히면서 보람도 있지만 마음은 점점 메말라가고,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니 화난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마음을 바꾸어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들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선진국들의
정치, 의료, 복지, 교육에 대한 프로를 제작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 신부님의 이야기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마음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가족들도 아빠가 변했다고 합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니 환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증인’입니다. 이웃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도 기꺼이 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친구가 겉옷을 빌려달라면 속옷까지도 빌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립 30년을 맞이하는 ‘요셉의원’이 있습니다. 저의 아버님께서도
설립 초기에 요셉의원에서 봉사를 하셨습니다. 진료카드를 작성해
드리고, 서류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요셉의원은 고인이 되신
‘선우경식’ 선생님께서 설립하셨습니다. 요셉의원은 그동안 봉사자
700명과 후원자 8000명의 희생과 헌신으로 60만 명에 이르는 어려운
이웃을 무료로 진료해 왔습니다. 요셉의원은 앞으로도 가난한 이들,
아픈 이들, 노숙인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어 줄 것입니다. 사랑의
증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보면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전주의 한 주민 센터 앞에는 매년 성탄 즈음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돈을 나누는 분이 있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적지 않은 돈을
나누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그분은 ‘사랑의 증인’입니다.
예전에 있던 본당의 신자 분들이 오셔서 마치 친정집에 온 것처럼
편하게 지내다 가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함께 했던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삭막한 세상에서 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작은 행복입니다. 신앙생활과 전례에 대해서 제게 전화로
질문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가 아는 것들을
말씀드립니다. 그분들에게는 제가 수호천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녀들도 다 자라서 친 손자들이 있음에도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입양하셨습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정상이 되도록 수술을 시켜
주셨습니다. 학교생활을 잘 하도록 매일 학교로 데려다 주셨습니다.
아이는 키도 크고, 바르게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는 언젠가 고마워
할 것입니다. 장애를 지닌 자신을 입양시켜서 행복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 주신 양 부모님이 수호천사였음을 알 것입니다.
작은 촛불이 모여서 커다란 파도가 되었듯이, 작은 사랑이 모이면
세상도 변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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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주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나서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가해 12월16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다.>
† 요한 5,33-36
주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나서라.
“길을 찾아 헤매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길을 물었습니다.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길이 어딜 가다니요? 길은 여기 있고 당신이 어디론가
가고 있지 않소?’”우리가 가야할 길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하느님나라에로 가야 합니다. 하늘은 우리가 온 곳이요, 동시에
가야할 곳입니다. 그곳은 우리 집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알면서도
다른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요한5,3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증언에 의해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예수님께서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과 하느님에 의해서 증명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먼 이들을 보게 하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걷게 하며,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귀먹은 이들을 듣게 하며, 죽은 이들을
되살리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게 하였습니다(루카7,22).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루카9,35).하시며 아버지께서 그를 증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미움과 질투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이려는 적대자들이
있었습니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들도 주님께 증언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행동이 뒤따를 때 입으로 하는 말은 효과가 있으며, 누구에게나 벅찬
감동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에페5,15.20). 또한 “모든 더러움과 그 넘치는 악을 다
벗어 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야고1,21).
그리고 마침내 여러분의 빛나는 삶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사람들이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십시오(마태5,16).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표현을 빌면 '아버지 하느님은 항상 우리에게
가까이 오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아드님을 파견하셨습니다.' 파견된
아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충실히 수행하셨듯이 우리도 주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나서야 하겠습니다.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야고2,26)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삶을
통해 주님을 증거 하는 기쁨이 충만하시기 빕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10,20).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부원장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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