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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다해 12월4일 주일
[(자)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사회 교리 주간)]
[수도회] 진정한 회개를 시작할 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이사 11,1-10
○ 제2독서 로마 15,4-9
† 복음 마태 3,1-12
오늘은 대림 제2주일이며, 한국 교회가 정한 인권 주일이고 사회 교리
주간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사회를 보는 올바른 눈을 가지게 하는 사회 교리를 배우고 익혀 시대의
징표를 예민하게 읽고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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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오늘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회개하라는 요한의 외침이 선뜻 들어오지 않습니다.
살아가며 크게 잘못한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느라
힘들기만 하지요.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보상은커녕 고통을 안겨
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요한이 원하는 회개는 하느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살던 사람이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일을
인간적 시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각으로 보고 판단하겠다는 결심이
회개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끝내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의 외침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려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주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심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주관자는 하느님뿐이라는
것을 드러내시려고 우리에게 까닭 모를 어려움마저 겪게 하신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속죄하려고 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유 없는 고통까지도 주님 뜻으로 받아들이고, 끝내 이를 잘
극복한 분들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고통과 행복의
의미를 하느님의 시각에서 새롭게 생각하지요. 오늘 세례자 요한의
외침대로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나와 하느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 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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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2016년 다해 12월4일 주일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사회 교리 주간)
제1독서
<그는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11,1-10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5,4-9
복음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12
어떤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제 삶 안에서도 결단을 요구할 때가
참 많았음을 깨닫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야 할지를 여러 측면으로
계산을 한 뒤에 결정했고, 또한 사제품을 받기 직전에 과연 사제가
되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할지를 따지면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사제가
되어서도 제가 맡은 자리에서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제가 갑곶성지에 와서 계속해서 듣게 된 건의사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고해소의 문제였습니다. 고해소의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아서,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고해소 앞에 서 있으면 안에서 말하는 소리들이
다 들린다는 것입니다. 방음처리 공사를 해야 할지가 고민되었습니다.
문제는 성지에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방음공사를 하는데 망설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조그맣게 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그맣게
말하면 고해성사를 보는 사람들이 자주 “신부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리지가 않아요.”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사를 보러
오신 신자들이 너무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경우도 많더군요. 그래서
방음공사를 하자고 다짐하지만, 잠시 뒤에 또 재정 문제가 걸려서
망설이게 됩니다. 이렇게 거의 1년을 공사를 ‘하겠다.’,
‘안 하겠다.’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결국 이번에
공사를 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복잡한 공사도 아니었고, 공사비도 그리 많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단을 하지 못하고 망설여서 이렇게 오랫동안 불편 속에
살았던 것이지요.
결단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저처럼 잘못될까 봐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결단의 순간을 미루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나 설사 실패의 가능성이 있어도
결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삶은 의미를 잃고 그냥 시간만 흘러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림 제2주일을 맞이하는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은 참으로 대단하지요. 황량하다고 말할
수 있는 유다 광야에서 낙타털로 된 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 꿀을 먹고
살았던 그였습니다. 사실 그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사제였기 때문에
부유하고 존경받는 집안의 아들입니다. 따라서 부유한 삶을 누리면서
편하고 쉬운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렵고 힘든 삶을
결단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길이 주님을 준비하는 가장 의미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도 결단이 필요합니다. 가장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내가 지금 당장 선택할 결단은 무엇일까요? 어떤 결단이 가장
주님을 잘 준비하는 것일까요? 세례자 요한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결단을 지금 당장 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의 결단이 없다면 분명히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결단을 선택한다면 분명히 하늘 나라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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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지혜는 단 두 단어 "기다림"과 "희망"으로 집약된다
(알렉산드르 뒤마).
세례자 요한이 생활했을 광야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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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따뜻한 하루’ 중에서)
한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고 박물관에 임시직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남보다 일찍 출근해서 박물관의 바닥을 닦았습니다.
청년은 바닥을 닦으며 항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사람이 바닥청소를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그러자 청년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이곳은 그냥 바닥이 아니에요. 박물관이잖아요."
그는 성실성을 인정받아 박물관의 정직원으로 채용됐습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일들을 시작했습니다. 알래스카 등을
찾아다니며 고래와 포유동물에 대한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고고학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미국 뉴욕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 관장까지 맡았습니다. 이 사람은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 박사입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큰일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매 순간을 기쁜 마음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가십니까?
세례자 요한이 태어나신 곳.-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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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진정한 회개를 시작할 때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가해 12월4일 주일 가해 대림 2주일, 마태 3,1-1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 3,8)
진정한 회개를 시작할 때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당신 부전부패가 만연하고
백성들은 주변 강대국들의 위험에 놓인 상황에서 메시아에 대한
희망과 평화의 왕국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며 백성들을 위로합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이사 11,1)
이사야는 놀랍게도 오실 왕을 ‘이사이의 그루터기’라고 부릅니다.
오실 왕을 이사이의 줄기이자 뿌리로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 오실
왕은 메시아 혈통의 뿌리이자 근원이시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하느님의 정의를 세울 주님께서 오신다는
것은 심판의 기회이자 새로운 창조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3,2)고 선포합니다. 그는 세례를 받으러 온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3,7-10) 하고 호되게 꾸짖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사야 예언자 시대처럼 오늘 이 사회도 부정부패와 불의,
거짓과 탐욕으로 대변되는 정치적 윤리적 타락의 극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주 회자되는 것이 사이코패스이지요.
이들은 반사회적 행동, 공감 능력과 죄책감의 결여, 극단적
자기중심성과 기만, 자기 행동에 대한 약한 통제력 등의 기질이 강한
사람을 일컫습니다.
사이코패스들도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스스로에게도 직접 영향을 미칠
경우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상인과 다른 점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선악을 구별할 줄 알고 옳고 그른 것을 말하는 능력이 있으나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일에
개의치 않지요. 옳은 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행하는 것 사이의 분열이
심합니다.
우리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라!”는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죄의 그늘에 있을 때, 그
뿌리에는 사이코패스 정도의 심각성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모습들이 드러날 때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뿌리가
독버섯처럼 몰래 움트기 시작할 때 자신도 사회도 병들게 하는 무서운
암적 존재가 되겠지요.
우리 모두 간절하고 애타는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하느님과 상관없이 살아온 삶을 청산해야겠습니다. 교만과
탐욕과 무관심과 게으름의 어두움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회개한 사람답게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여야겠습니다.”(로마 15,5.7)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임으로써 사랑을 실천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 동참해야 할 때임을 의식해야 할 것입니다.
소극적이고 피상적인 평화에 만족하지 말고 정의 실현을 위해
투신하고, 서로 존중하며, 화해와 협력, 공동선의 추구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겠지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질 것이며(마태 3,10), 정의롭지 못한 사랑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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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 2)
한상우 바오로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가해 12월4일 대림 제2주일.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 2)
매달려 있던 한 잎 마저 떨어져 내립니다.
대자연은 떨어뜨리는 잎사귀들을 통해 집착이 아닌
새로워지는 새로움을 가르쳐줍니다.
새로워지는 하늘 나라에 실패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회개하는 회개만이 있을 뿐입니다.
회개하는 회개의 눈물 안에 하늘 나라가 있습니다.
눈물의 회개로 하늘 나라의 문이 이제 열립니다.
회개는 병든 우리를 치유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회개는 죄스러운 우리 자신을 위해 진정 울 수 있는 사람이 되게합니다.
요한 세례자의 세례수가 어떻게 우리가 살아왔는지를 잘 비추어줍니다.
회개는 지금 여기 이곳에서 하늘 나라를 우리가 체험하는 것입니다.
온 삶으로 회개하는 우리모두는 하늘 나라의 시민들입니다.
목적을 위한 하늘 나라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하늘 나라입니다.
목적을 위한 인권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인권입니다.
멈출 줄 모르는 권력의 욕망으로 대접받아야 할
소중한 많은 인권이 마구 유린 당하고 있습니다.
고통 당하는 많은 인권을 위해 어리석은 욕망을 멈추어야 합니다.
가까이 온 하늘 나라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회개가 필요한 우리시대가 어리석고 천박한 욕망에서 벗어나
서로의 소중한 눈빛을 마주하는 따뜻한 세상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진정으로 남는 것은 우리의 회개뿐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 3, 8)
어둠을 치유하는 것은 회개의 빛임을 요한 세례자는 일깨워줍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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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2016년 다해 12월4일 주일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사회 교리 주간)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마태오 3,1-12
지난 금요일에 묘지엘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동창 신부님이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캐나다에서 지인이 찾아왔고, 신부님의 묘소를 보고
싶어 하셔서 함께 갔습니다. 추운 겨울, 묘지를 둘러보면서 묵상을
하였습니다. 아팠던 사람도, 고통 중에 있었던 사람도, 건강했던
사람도, 가난했던 사람도, 부유했던 사람도, 성직자도, 교우들도,
죄를 지었던 사람도, 누군가를 도와주었던 사람도 모두들 아무 말
없이 누워계셨습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았고, 눈이 내리면 눈을
이불삼아 덮었습니다.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병들었던 사람도, 업적이 있던 사람도, 걱정을 주었던 사람도 모두
평안하게 누워계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 들의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을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에 심수봉 씨가
불렀던 ‘젊은 태양’을 들었습니다.
'햇빛 쏟는 거리에선 그대 그대
고독을 느껴보았나 그대 그대
우리는 너나 없는 이방인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햇빛 쏟는 하늘 보며 웃자 웃자
외로움 떨쳐버리고 웃자 웃자
우리는 너나 없는 나그네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종소리 바람소리 고이고이 잠들던 날
먼 하늘에 저 태양이 웃는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올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에 이사야 예언자는
놀라운 꿈을 이야기 합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 새싹이 돋을 것이고
그 싹이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영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느님의 영은
아브라함에게 강한 믿음을 주어서 새로운 민족이 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모세에게 놀라운 지도력을 주어서
파라오의 압제를 벗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지혜와 슬기의 영이며 경륜과
용맹의 영’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하면 늑대가 어린양과
함께 놀고, 어린아이가 사자와 함께 놀 수 있게 만든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꿈이고, 이것은 어떠한 과학과 기술로도 이룩할 수
없는 새로운 질서입니다.
하느님의 영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거짓된
영들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나는 할 수 없다는
열등감을 버려야 합니다. 열등감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곪게 만드는 미움과 분노를 버려야 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러한 행위를 ‘회개’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거짓된 영들을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거짓된 영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오랫동안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늑대와 같았던
바오로 사도, 사자와 같았던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여서
순한 어린양과 같이 되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새로운 기능의 제품을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의 영혼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낡은 영혼을 새롭게 변화시켜 줍니다. 하느님의 영은 이웃의 아픔을
보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 예언자가 보았던 꿈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혜와 슬기, 경륜과 용맹의 영’으로 꿈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영을 받을 수 있으며, 하느님의 영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
주님!
조 요셉 사제와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우리들 또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 때까지 서로 위로하며,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가톨릭 성가 448번 능하신 말씀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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