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0일 따름으로써 얻게 되리라.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6-11-30 06:28:44    조회 : 494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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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6년 다해 11월30일 수요일 [(홍)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수도회] 예수님과 함께하며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사도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로마 10,9-18 † 복음 마태 4,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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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늘의 묵상 안드레아 사도는 참 남성적이었나 봅니다. 안드레아라는 이름이 그리스어로 “사내다움”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동생이고, 벳사이다의 요나의 아들(마태 16,17; 시몬 바르요나는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는 뜻이다.)이었던 안드레아는 요한 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안드레아는 복음서에서 가끔 등장하지만, 그의 등장은 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굶주린 군중 앞에서 안드레아는 예수님께 기적을 보여 주시라는 듯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소년을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성전 파괴를 예언하시는 예수님께 마지막 날에 나타날 표징이 무엇이냐고 묻고는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종말에 관한 긴 설교 말씀(마르 13,3-37)을 직접 들은 제자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네로 황제의 대대적인 박해 때에 마케도니아 남쪽의 파트라스에서 체포되어 X자 형의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고기를 잡던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부르십니다. 고기를 잡던 어부였던 그가, 주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이생의 생명 줄인 배와 아버지를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따라나서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된 모습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할 모범을 가장 압축해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매일 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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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천] 우리 역시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2016년 가해 11월30일 수요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제1독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0,9-18 복음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8-22 세상에 고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쩌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고민의 연속일 것입니다. 저 역시 큰 고민이 휩싸였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가 고민이었지요. 이런 고민으로 인해서 어떤 해결점을 보았을까요? 솔직히 어떤 해결점도 없었고, 고민하느라 시간만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시작해서 꾸준히 해왔다면 어떤 결실을 맺었을 텐데 고민만 하다가 시간을 보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 역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일에 대한 것도 있고, 제가 근무하는 성지 안에서의 고민 역시 그 크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전과 다른 것은 고민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했을 때 자그마한 결실이라고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림시기가 되면서 특강 부탁을 많이 받습니다. 이번 주만 해도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강의가 있습니다. 성지 미사도 제가 모두 다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고민이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이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칠 것이라는 것이지요. 고민은 고민일 뿐, 시간이 지나가면 언제 고민을 했냐는 듯 잊힐 것입니다. 오늘 안드레아 사도 축일을 맞이해서 복음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그물을 과감하게 버렸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고민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고기 잡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어떻게 쉽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물을 버립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바로 즉각적인 복종을 바라십니다. 세상 것에 매달리는 모습을 통해서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속된 욕망을 버리는 것은 많은 것을 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의 눈에서는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게 됩니다. 바로 구원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었을까요? 세상의 일, 물질적인 재산,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려는 욕심과 이기심에서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고민으로는 절대로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고민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대신 어떠한 일이라도 최선을 다했을 때 고민에서 벗어나서 분명히 주님께 더 큰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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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간을 사랑하라. 그러면 그 순간의 에너지가 모든 경계를 넘어 퍼져 갈 것이다(코리타 켄트).
20161130_01.jpg 성 안드레아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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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평과 감사 심리학자 할 어반은 70만 명을 대상으로 24시간 동안 절대 불평의 말을 하지 말라고 시킨 다음, 24시간 후에 솔직한 불평여부를 측정했습니다. 사람들은 평균 6~12번의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에 단 한 번도 불평을 하지 않은 사람은 실험에 참가한 70만 명 중에서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글쎄 딱 4명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참으로 많은 불평불만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불평불만으로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요? 또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모든 것이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는 불평불만보다는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보면 어떨까요?
20161130_02.jpg 심리학자 할 어반.
  •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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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예수님과 함께하며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사도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가해 11월30일 수요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마태 4,18-22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마태 4,20) 예수님과 함께하며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사도 시몬 베드로의 동생이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아는,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요한이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말하자, 이튿날 다른 제자와 함께 예수님을 따라갑니다(1,37). 예수님께서 “무엇을 찾느냐?”라고 물으시자 그들은 “라삐,어디에 묵고 계십니까?”하고 되묻습니다(1,38). 이에 그분께서 “와서 보시오.” (1,39) 하시며 그들과 함께 묵으십니다. 안드레아는 이렇게 처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며 그분을 알아보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안드레아는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1,41) 하며 형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이것이 그의 첫 복음선포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사돈어른의 치유를 도왔고, 굶주린 군중을 위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소년이 있다고 예수님께 알려드렸습니다. 선을 발생시키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지요. 또한 안드레아는 올리브 산에서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하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종말에 관한 말씀을 듣기도 했습니다(마르 13,32-37). 축제를 지내러 온 그리스 사람들 몇이 예수님을 뵙게 해달라고 청하자 그는 필립보와 함께 그분께 말씀드리기도 했지요. 그때 그분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12,24) 하고 가르치십니다. 성 안드레아 사도는 이 말씀대로 주님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됩니다. 그는 예수님의 승천 후 예루살렘을 비롯해서 러시아 남부에서 발칸반도를 거쳐 북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선포하다가, 네로 황제의 박해 때인 70년경 마케도니아 남쪽의 파트라스에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X자로 못 박혀 순교했다고 합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형장에 끌려갔을 때 십자가 앞에 꿇어앉아 두 손을 높이 쳐들고 기쁨에 가득 차 “내가 바라고 사랑하며 오랫동안 찾던 영광의 십자가여! 너를 통하여 나를 구하신 주님께서 나를 받아 주시도록 속히 나를 이 세상에서 끌어 올려 주님 곁으로 가게 해주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도 성 안드레아 사도를 본받아야겠습니다. 그는 메시아의 오심을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의 선포를 듣고 단순하게 받아들였으며,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곧바로”, “버리고”, 주님을 “따른” 것입니다(마태 4,20).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서는 주저함이 없이 단순하게 즉각적으로 따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제자로 살아가려면 나의 가치기준과 소유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고 이웃을 사랑하려면 유연하게 떠나야만 합니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포기와 결단을 말합니다. 하느님을 차지하기 위해 나와 세속과 재물로부터 떠나는 결단이 필수적이지요. 나아가 따른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또는 남는 것을 가지고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헌신과 투신을 말합니다. 오늘도 안드레아 사도처럼 기꺼이 자신을 떠나 선을 발생시키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 이웃을 돕고 사회를 밝히며 사랑과 정의의 질서를 바로 세우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썩어 없어지는 한 알의 밀알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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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의롭게 됨과 구원 됨의 차이 2016년 가해 11월30일 수요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독서: 로마서 10,9-18 1961년 4월 17일 새벽, 여덟 척의 함정이 쿠바 남쪽해안 ‘돼지 만 (Pig's Bay)’을 향해 출항합니다. 그 함정에 탄 미군 정예부대 ‘2505 공격여단’, 임무는 쿠바를 기습해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는 것. 그러나 불행히도 함정은 암초에 걸렸고 돼지 만에 상륙한 미국 정예부대 대부분은 쿠바군에 의해 사살되거나 체포됩니다. 이 사건은 미국정부에 저질러진 가장 우스꽝스러운 실패로 평가됩니다. 이것은 미국 케네디 정권시절, 쿠바가 한창 소련과 손잡고 미국 본토를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을 들여놓으려 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서 낮과 밤을 새우며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다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가지각색의 주장과 논리들이 난무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낮과 밤을 넘기며 계속 토의하다보니 결국 의견이 한 방향으로 결집되었습니다. 정예의 특수부대를 돼지 만에 침투시켜 카스트로 정권을 정복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돼지만 참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케네디와 그의 뛰어난 엘리트 참모들이 어떻게 그런 엉터리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요? 미국의 심리학자 재니스는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도 서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폐쇄된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논의하다 보면 돼지 떼처럼 무의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애초 엉터리 같은 계획에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독선에 빠진 나머지 반대하는 사람을 부도덕한 존재로 규정하고 만장의견일치로의 압력을 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수가 동의하여 내린 집단의 결정은 이렇게 가끔은 엄청난 불행을 초래하게 됩니다. [출처] EBS 지식 프라임, 돼지만(Pig's Bay)의 참사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드님을 내어주셨는데 누구든지 그를 믿는 이는 멸망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피로써 우리 죄를 씻어주셔서 주님 앞에 나설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의화(義化)’라고 합니다. 의롭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우리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우리가 덮여지게 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인한 무화과 잎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가죽으로 만든 옷만으로 가려진다는 사실과 같습니다. 이것만 믿으면 의로움을 얻게 되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과연 의로움이 곧 구원이 되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도 교만해져서 우리 스스로 이정도만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는 않을까요? 모세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사랑이 있어서 자신의 백성을 괴롭히는 이집트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을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나이 산에서 주님을 만나 목숨을 걸고 이집트에서 자신의 백성을 빼내오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었을 때 비로소 그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처음에 이집트로 가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웃을 위해 목숨을 걸고 그들을 구해냈을 때에야 비로소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의화’와 ‘구원’의 차이를 명확히 알아야만 합니다. 의화란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 설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 서려면 빚이 없어야합니다. 빚이 없으려면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분만이 참 구원이시라는 믿음이 그분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게 합니다. 마치 자캐오가 믿음과 희망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실천되지 않으면 구원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캐오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내어주겠다고 고백한 순간에 비로소 구원이 이 집에 들어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구원 받을 자격을 얻었다고만 해서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운전 면허증은 도로에서 운전을 할 수 있는 자격입니다. 그 면허증을 가지고 운전을 하는 행위는 법에 걸리지 않는 의로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음주운전을 한다거나 난폭운전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운전할 자격이 주어졌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그 자격을 증명해 내는 행위가 따라야만 그 의로움이 구원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오늘은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안드레아가 사도로 뽑히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은 그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그분의 순교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렇게 구원까지 이르려면 그 의롭게 해 주신 분에 대한 합당한 자세를 가져야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선교만큼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것을 완성시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고 목숨을 내어줄 자세도 되어있지 않으면서 믿으니까 당연히 구원받는다고 여긴다면 우리도 어쩌면 우리 오만으로 돼지만의 실패로 가고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이웃을 위해 피를 흘리는 삶을 살았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평생 그 증명을 해 보지도 않고 주님께로 가는 사람이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수원 교구 영성관 관장 전사묭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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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2016년 가해 11월30일 수요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 4,18-22 오늘은 교구장이신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의 축일입니다. 저는 교구청에서 지내기 때문에 매일 교구장님을 뵐 수 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고, 회의를 통해서 뵙게 됩니다. 교구장님은 지칠 줄 모르는 탱크와 같은 체력을 지니셨습니다. 사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열정을 지니셨습니다. 다른 이들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주시는 따뜻함을 지니셨습니다. 국장 신부들에게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축일을 맞이하시는 교구장님께서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번 서품 대상자들과의 면담에서 교구장님께서는 3가지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부제님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고 대답을 하였고, 사제가 되기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하였고, 부족하지만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두들 진지하게 본인이 누구인지 고민하였고, 교구장님께 있는 그대로 자신들의 모습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주변의 모든 물건들은 ‘정체성’이 있습니다. 스피커는 소리를 전달하는 것이고, 스탠드는 불을 밝히는 것이고, 컴퓨터는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고, 인터넷은 정보를 검색하고, 소통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교구장님의 질문을 듣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두 번째는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끄셨고,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는가?’입니다. 학생들은 신학교에서 기도 중에,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공부를 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진흙과 같았던 자신들을 질그릇으로 만들어 주셨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통해서,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지금 나는 혼자의 힘으로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저 역시도 교구장님의 질문을 듣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이끄셨을까? 나는 또 어떻게 변화 되었을까? 세 번째는 ‘지금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였습니다. 학업이 십자가인 친구도 있었고, 나이가 많은 것이 십자가인 친구도 있었고, 건강이 십자가인 친구도 있었고,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것이 십자가인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나의 욕심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십자가인 친구도 있었고, 시기와 질투가 십자가인 친구도 있었습니다.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교구장님의 질문을 듣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부제님들을 보셨다면 아주 흡족했을 것 같습니다. 준비된 사목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아니라, 신학교라는 못자리에서 신학, 영성, 철학을 공부한 신학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사목의 일선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준비한 사목의 그물을 힘차게 던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끌어 주셨고, 나는 어떻게 응답하였는가? 지금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를 묵상한다면 11월의 마지막을 피정하는 기분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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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주] 따름으로써 얻게 된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가해 11월30일 수요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 4,18-22 따름으로써 얻게 되리라. 축일을 맞이한 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리며 사도의 삶을 잘 살 수 있는 은총을 입으시길 기원합니다. 제자들은 처음부터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다른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기꺼이 따름으로써 큰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따르려니까 자기의 모든 것을 버려야 했고 마침내 버림으로써 주님을 얻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은 단지 순명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행동의 변화와 더불어 무엇보다도 주님을 따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 43,18). 도전할 때 새 일을 만날 수 있고 또 그 안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순명과 실행을 통해서 주님의 섭리와 안배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말씀은 ‘나를 믿어라’하지 않으시고 ‘나를 따라라’하셨습니다. 믿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따름으로 확고하게 믿게 되는 것입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시몬 베드로와 형제지간 입니다. 특별히 요한과 길을 걷다가 예수님을 만난 일이 있는데 그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1,41)하며 형에게 말하고 예수님께 자신의 형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에게도 소개하였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요한6,8-9)를 가진 아이를 예수께 데려간 사람도 안드레아입니다. 그는 혼자만 메시아를 따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하는 열성을 보였습니다. 그는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의 생활에 참여함으로써 삶의 쇄신과 회개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체험을 전해야 합니다. 마태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5,16). 주님을 따름으로서 믿음을 견고케 할 수 있듯이, 믿음이 약한 이들이 우리를 보고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먼저 우리의 믿음을 다져야 하겠습니다. 큰 나무는 잘 부러지지 않고 큰 강물은 소리를 내지 않으며 깊은 샘물은 마르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답니다. 예수님께서 크신 분이셨듯이 우리 모두가 큰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의 모범과 표양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생활성가]김정식 2집 - 나를 따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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