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6일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6-06-26 06:17:57    조회 : 512회    댓글: 0

◈ [인천]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2016년 다해 6월26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제1독서 
<엘리사는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섰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9,16ㄴ.19-21

제2독서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5,1.13-18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51-62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1999년에 우리나라에 ‘토종들풀 종자은행’을 최초로
세우신 강병화 교수님의 인터뷰 내용이 가슴에 크게 와 닿아서 이렇게
소개해 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이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입니다.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사람도 같습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하고, 뻗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다리를 뻗고 뭉개면 잡초가 된답니다.”

지금 내 자신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산삼과 같이 귀한
존재로 취급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을까요? 아니면 잡초처럼 필요 없는
존재로 취급받는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결국 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나의 신분도 바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스스로를
산삼이 아닌 잡초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잡초 역시 생명력이
길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차하면 뽑혀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당신께로 오라고 부르시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그 부르심을 거부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물론 아주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조건을 늘 내
걸고 있지요. “주님, 제 일이 모두 끝내고 은퇴하게 되면 그때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습니다. 더 이상 할 일 없으면 그때 봉사활동 하겠습니다.”
등등 어떤 조건을 내걸면서 아직은 신앙생활 할 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공부를 마치면, 일을 마치면, 손주 보는 것을 마치면, 지금 이렇게 힘 있을
때 여행도 다니면서 즐기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되면.... 참 많은 신앙생활의
조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나를 따라라.”라고 이르십니다. 그러자 한
사람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불가능한 부탁일까요? 인간 세상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고 당연히 이 부탁을
들어주셔야 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물론 주님께서 세상의 일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상의 일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하느님 나라의 일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세상의 일을
중요하게 여기다가 정작 귀한 ‘나’라는 존재가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귀한 존재인 나를 위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조건들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인생에서 해 온 모든 일을 되돌아 볼 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이기거나
더 잘했던 순간보다 그들의 삶에 기쁨을 준 순간을 회상하며 더 큰 만족을
얻을 것이다(해롤드 쿠시너).

*****

우승의 비결

우리나라 프로골퍼인 신지애 선수가 메이저 대회를 포함해서 2주 연속
우승을 한 뒤에 어떤 기자가 ‘우승의 비결’을 물었답니다. 그러자 이렇게
답변했다고 하지요.

“나만이 잘하는 것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못하는 것만 지적했고 거기에
집중하다 보니 내 장점을 잃어버렸습니다. 재활하는 동안 이제까지 나의
우승 영상을 보면서 내 장점에 집중한 것이 메이저 대회 포함 2주 연속
우승의 비결입니다.”

내가 못하는 단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장점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단점만을 바라보다 보면 자신의 장점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게 되지요. 그래서 산삼과 같은 귀한 내가 쓸데없는
잡초처럼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만을 바라보는 하루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멋진 하루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 [수도회] 과거의 애착을 버리고 먼저 자비와 용서를 행함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6월26일 연중 13주일 루카 9,51-62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루카 9,62) 

The would-be followers of Jesus

과거의 애착을 버리고 먼저 자비와 용서를 행함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십니다.”(9,51) 예수님의 인간 구원을 향한 순례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시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시고, 예루살렘에서
죽으시어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이 죽음의 길을 자발적으로 기꺼이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에 들르려 했으나
그들은 예수님을 냉대합니다. 죽음을 통한 생명의 길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묻습니다(9,54).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십니다(9,55).

예수님은 역사적, 종교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었던 사마리아인들을
배척하거나 비난하시지 않고 온정을 베푸셨습니다. 오히려 적대 감정을
지니고 그들을 없애버리려 한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의 치유와 해방을 위해 죽기까지 자신 전부를 바치신 것입니다.
우리도 모든 이를 차별 없이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겠다는 이에게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9,58)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현세 재물이나
권력, 명예를 얻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님을 상기시켜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공동체의 삶을 보면 ‘장’(長) 자리에 연연하고 직무를
마치고도 ‘장’이란 호칭을 듣기 좋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장'이 가장
많은 곳이 교회인 듯합니다. 또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에서 권력이나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의 힘에 기대려 합니다. 허세도 없고 진실하신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지요.

또한 예수님께서는 먼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고 따르겠다(9,59)는 이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9,60) 하십니다.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따르겠다(9,61)는 이에게는“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9,62)고 하십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생명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할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모르는 죽음의 세계, 인간적인 인연, 자신의 과거에 매여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세속에 죽고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 안에 살아야겠지요. 우리의 부르심은 오직 세상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고, 조건 없이 그리고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며 철저히
주님을 따르는 삶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절대적이며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하는 길입니다.
오늘도 나의 일, 현세의 가치를 추구하는 몸짓을 멈추어 하느님께 눈길을
돌리고, 과거의 애착을 끊어버리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그 사랑과
정의의 길을 먼저 추구하는 행복한 날이 되길 기도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6월26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나를 따라라.”> (루카 9,59)
 
우리 인생은 길을 걷는 여정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고속도로처럼 잘 뚫려진 길이 아니라
곳곳이 울퉁불퉁하고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곳도 많아
전문가의 도움이 없이는 그 길을 잘 걷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 길을 들면 엄청 고생을 해야하고
마치 광야에서 40년이나 방황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하늘나라의 목적지까지 가기가 무척 힘들게 될 겁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한결같이 "따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엘리사는 부모를 떠나 엘리아를 따라 나섭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아야지
육을 따라 살면 망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전폭적으로 투신하려는 사람은 적어보입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오늘 예수님이 여러분을 초대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실 겁니까?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 [수도회] 청빈의 아름다움
 
2016년 다해 6월26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 9,51-62 

청빈의 아름다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극단적 청빈은 이미 그가 예수회 회원이던 시절,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교구장 시절부터 유명했습니다. 그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된 후 교황 명을 무엇이라고 하겠냐는 질문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오랜 교회 역사 안에 교황 좌에 앉았던 수많은 역대 교황님들
가운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란 이름을 선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예수회 회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교황명으로 택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회
출신의 새로운 교황님께서 교황 명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선택했다는
뉴스를 접하는 순간 온 몸으로 강렬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크게
안심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 안에 정말이지 현존하시는구나.
하느님께서 가련한 인류를 나 몰라라 하지 않으시는구나.’하는 느낌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우리가 잘 아는 바처럼 평생토록 가난이란
주제를 삶의 모토요 영성으로 삼았던 성인, 가난과 결혼한 사람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러한 행보는 자신이 교황직에 머물고 있는 동안
앞으로 어떻게 사목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예시했던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명의 선택은 극단적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이 세상을 가난의 영성으로 정화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가난의 표상이자 가난한 이들의 친구였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따라 극단적 가난을 온 몸으로 살겠다는 다짐인 것입니다.
지금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돈이면 다!’ 인줄 아는 세상 사람들 앞에
돈이 다가 아님을, 가난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추기경 시절부터 그는 럭셔리한 추기경 관저에 머물지 않고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널찍한 추기경 관저는 가난한 선교사들이 마음
편히 쉬고 갈수 있도록 아낌없이 내 줬습니다. 세상의 모든 주교나
추기경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타고 다니는 꽤나 무게가 나가는 전용차는
미련 없이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버스로 도보로 그렇게 시내를
활보했습니다.

최근 바티칸으로부터 날아온 교황님과 관련된 한 가지 소식을 듣고 속으로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릅니다. 사회적 약자들 앞에서 많이 부끄러운
아르헨티나 정부가 교황청 산하 교육 재단인 스콜라스 오쿨렌테스 재단에
한화로 약 14여 억 원의 후원금을 지원했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크게 분노하시며 즉시 재단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 “그 돈을 당장 돌려줘라!”로 질책하셨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공공요금 대폭 인상 등 서민의 고통을 강요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민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재단은 아르헨티나 정부에 단 한 푼도 요청하지 마십시오. 사제로서 그리고
형제로서 말하는데, 여러분은 부패로 직행하는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에 막
올라섰습니다. 제 표현이 불쾌하다면 용서하십시오.”

“저임금으로 사람들을 착취하고 노예로 만들어 번 돈으로 교회를
후원하려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그들에게 말합니다. ‘그 돈을 도로
가져가십시오!’ 하느님 백성에게 그런 더러운 돈은 필요치 않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그리고 제2의 프란치스코 영성 운동을
전개하고 계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그리도 극단적 청빈을 목숨처럼
추구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봅니다.

대답은 너무나 간단하더군요. 우리의 주님이요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분 역시 이 땅에 머무시는 동안 극단적
청빈의 삶을 사셨습니다. 스스로 얼마나 가난하게 사셨는지 있는 그대로
고백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복음 9장 58절)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압축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습니다. 경제적인 능력이 다른 그 어떤 기준보다 상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경제적 능력이 보장되지 않을 때 구박받기 십상이며 어디가나
찬밥입니다. 그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시는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악령보다 더 무서운 천박한 자본주의의가 판을 치며 수많은 착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리미리 돈에 너무 목숨 걸지 않는 연습을 해봐야겠습니다. 미리미리
가난하게 사는 훈련에 맛을 들여야겠습니다. 돈 외에도 참으로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이웃이 극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용기를 내서 손을 내밀어줘야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 [서울] 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2016년 다해 6월26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 9,51-62

신학교에서는 방학을 앞두고 9일기도를 바치는 전통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유혹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9일기도를 바치면서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고, 다시 신학교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느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9일기도 중에 부르는 성가가 있습니다. ‘오 예수’입니다.   

“오 예수여! 나의 사랑하는 예수여! 내 당신을 온전히 사랑하나이다.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이 신학교로부터, 당신으로부터 다른 길로 떠나지 않으리다.
우리를 보호하시어 지켜 주소서. 신학교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세속 마귀와
무서운 괴물들이 우리에게 달려들고, 거룩한 곳으로부터 우리를 불러냅니다.
그러나 오 예수여! 당신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나이다. 나보다 자기 것들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진실로 내게 합당하지 않고, 나의 제자가 될 수도 없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성소와 간택이 확실해지도록 너희는 힘쓰고
죄를 멀리하여라.” 

신학생들이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고, 주님께 의탁하며 지내기를 바랍니다.
방학이 끝나면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3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첫 번째 유형의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신학교에 입학은 하였지만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매일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은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분신처럼 여기던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괴로움입니다. 신학교는 더 이상 젓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세상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생활을 하던 이집트를
그리워하던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하느님을 배반하는 사람들입니다. 신학교에 입학은 하였지만 다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성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신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재물, 권력, 명예)에
마음을 빼앗기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힘은 마치 블랙홀과
같습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말은 하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 사도와 비슷합니다.   

세 번째 유형은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신학교에서 학업에 충실하고, 동료들과 사랑을 나누고, 기도 중에 하느님을
만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방학 중에도 신학교에서와 같은 생활을 하는
학생들입니다. 매일 새벽미사에 참례하고, 책을 즐겨 읽는 학생들입니다.
방학은 자유로운 시간이기도 하지만, 방학은 영적인 성장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학생들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사제가 될 수
있습니다.   

축구에서 중요한 3가지 요소가 있다면 '체력, 기술, 조직력’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체력이 받쳐 주지 못하면 90분간의 경기를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체력이 좋아도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을 수 있는 것은 선수들의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축구는 체력만으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다음은 조직력입니다. 개인의 기량이 뛰어난 것도 필요하지만 선수들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서 팀을 이루어야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한국과 같이 기술이 열세인 나라는 체력과 조직력으로 부족한
기술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 3가지를 말한다면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 악,
죽음’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나를 구원하시고,
나는 그분을 따를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교회에 머물고, 교회에서 교리를 배우며,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죽어서도 살 것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학자들은 예수님을
알지만 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알던 사람도 성경책을 몇 번
읽었고, 종교서적을 연구했지만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서 행복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다고 하여도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선포하지 않는다면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나의 형제요 자매입니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를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이고 악의 세력과
끊임없이 영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며 삶속에서 증거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