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1일 아픔과 상처로 울고 있는 이를 위하여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6-06-11 06:23:14    조회 : 434회    댓글: 0

◈ [인천] 아픔과 상처로 힘들어 울고 있는 사람을 향하여

2016년 다해 6월11일 토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제1독서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21ㄴ-26; 13,1-3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3

신학생 때 도대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다른 여러 책을
읽어봐도 그 교수 신부님의 강의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지요. 개인적으로
만나면 너무나 좋은 신부님이신데, 강의는 왜 이렇게 어렵게 하시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러다보니 좋은 성적을 맞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묻고
싶어도 성적도 좋지 않은 나를 별로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아서 교수
신부님을 더욱 더 멀리 하게 되었고, 그 과목은 더욱 더 어려운 과목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 신부님과 함께 일을 할 기회가 생겨서 며칠을
함께 다니면서 일을 도와드리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지요. 그때
이 교수 신부님께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신학생들을 안타까워하시면서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후부터 신부님께 용기를 내어 많은 질문을 던졌고, 신부님께서는 제가 잘
이해될 수 있도록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좋아하는 과목이
되었고, 성적도 좋아졌지요.

좋은 스승과 나쁜 스승의 차이는 바로 이렇지 않을까요? 나쁜 스승은 공부
잘하는 제자만을 사랑하지만, 좋은 스승은 오히려 잘 이해 못하고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에게 더 큰 사랑을 쏟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그렇지요. 의사
선생님께는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 필요한 법입니다. 스승이나
의사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드러낼 수 있는 길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종종 교회 안에서 문제 있는 사람에 대한 말들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느냐?’라고 하면서 자격논란을
따지며 거부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죄로 물들어진 우리들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 가까이 온 하늘 나라를 선포하고 그들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존재 이유가 아닐까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만 오라고 한다면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의 진정한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 교회의 구성원들인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사람들만 좋아하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문제 있는 사람을 교회 밖으로 내쫓아서는
안 됩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는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면서, 오히려 문제 있고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혹시 아무런 문제없는
사람만을 챙기고 그들과만 가까이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라는 이 말씀은
문제없는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너무 많은 사람이며 아픔과
상처로 힘들어 울고 있는 사람을 향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때때로 우리가 작고 미미한 방식으로 베푼 관대함이 누군가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 놓을 수 있다(마가릿 조).  

*****

노인과 어르신의 차이

어떤 지인이 좋은 글이라면서 제게 보내주신 글입니다. 생각할 것이 많은
글이네요.

노인은 늙은 사람이고, 어르신은 존경 받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몸과 마음이 자연히 늙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자신을
가꾸고 젊어지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자기 생각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상대에게
이해와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상대를 자기 기준에 맞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좋은 덕담을 해 주고, 긍정적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상대에게 간섭하고 잘난 체하며, 지배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스스로를 절제할 줄 알고, 알아도 모른 체 겸손하며 느긋하게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대가없이 받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상대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고독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주변에 좋은
친구를 두고 활발한 모습을 가진 사람입니다.

노인은 이제 배울 것이 없어 자기가 최고인 양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언제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자기가 사용했던 물건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그 물건들을 재활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노인은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그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노인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어르신이 되시겠습니까?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 [수도회] 하느님 손 안의 연장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6월11일 토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 마태 10,7-13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Saint Barnabas, Apostle

하느님 손 안의 연장

바르나바는 키프러스 출신의 유다인으로서 레위였습니다. 그는 자기 밭을
처분한 돈을 사도들의 처분에 맡겼습니다(사도 4,37). 그는 성령과 믿음으로
가득 찬 훌륭한 사람이었기에 조정과 화해의 몫을 잘 수행하였으며,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바르나바는 바오로 사도에 대해 여전히 적개심을 지니고 있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그를 지지하며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이교인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안티오키아의 형제들을 격려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바르나바는 사울을 다르소에서 안티오키아 공동체로 데려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바오로의 제 1차 선교여행에
동행하였습니다. 그는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바오로와 함께
추방되었을 때에도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49년 예루살렘 공의회 이후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그들이 복음을
전한 곳을 다시 방문하려 했습니다. 그때 바르나바가 자기의 사촌이며
복음사가인 마르코를 데리고 가려 하자 바오로가 반대해 서로 심한 언쟁을
합니다. 결국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러스로 가고(사도 15,39)
바오로는 실라를 데리고 시리아로 갔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화해합니다.

우리도 사도 바르나바처럼 하느님 손 안의 연장으로서의 소명에
충실해야겠습니다. 복음은 바르나바처럼 성령과 믿음으로 가득 차고,
기꺼이 자신의 것을 되돌리고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선포될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자신을 선전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르나바처럼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복음선포를 위해 조력자,
중개자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단체의 대표가
되고 자신이 모든 일의 중심에 서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처신할 때
주인공이신 하느님은 선포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선포하려면 탐욕을 버리고(10,8ㄴ-10), 명예심을 버려야
합니다. 복음선포는 나 자신이나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기에
진정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는 가난한 존재가 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복음을 선포할 때에는 하느님께만 의존하고 그분을 반사하는데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사도들처럼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가난함과 극도의 검소함
(10,9-10), 그리고 애정 깊은 태도로 하느님의 사랑을 반사하는 하느님 손
안의 연장이 되도록 마음을 모았으면 합니다. 내 안에 하느님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난과 철저한 투신, 남김 없는 내어줌을 살아내는
우리이길 기도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6월11일 토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8)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 좋은 것은 대부분 거저 받은 것들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생명도 거져 받았고 친구도 선생님도
내가 필요할 때 하느님께서 주셨습니다.
세례도 선물로 주시고 성령도 거져 주셨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들도 거져 받은 선물이고 내가 필요할 때
특별한 인연으로 협력자들을 주시고 영적인 도반들도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의 선물인데도
자칫 내 노력과 수고의 결실인 양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하느님의 무상의 선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무상으로 나눌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쉽게 다른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거저 받은 게 많지요?
그렇다면 거져 주어라고 하시네요. 
오늘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거저받은 은총의 선물에 감사하고
나도 거져받았으니 필요한 이웃에게 거져 나눔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그런 날 되시길 축원합니다.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 [서울]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2016년 다해 6월11일 토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 10,7-13

서울교구는 사제양성에 대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신학생들은 사제가 되면 당연히 본당사목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제서품을 받으면 본당에서 사목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도 다른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교구에 속한 신학생들은 당연히 본당 사목을
하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서울교구는 사제성소가 꾸준하게 있어왔습니다.
사제는 사목자이면서 동시에 선교사입니다. 서울교구는 신학생들에게
선교사로 지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1학년 여름 방학에는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2학년을 마치면 해외에서 선교체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언어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해외
선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제서품을
받으면 여름 방학 중에 이스라엘에서 한 달 정도 선교 체험 프로그램을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는 사제가 필요한 곳이면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목이고, 사도들이
하였던 사목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바르나바 사도 축일입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초대교회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방인을 위한 선교를 많이
하였습니다. 이분들의 땀과 노력이 결실을 맺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유대인의 회당이 아닌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교회란 무엇일까요?

저는 교회는 고속도로의 휴게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먼 길
운전을 하다, 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 잠시 쉬기도 합니다. 간식을 먹기도
하고, 차에 기름을 넣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시설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우선 깨끗하고, 음식도 맛이 있고,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아무리 고속도로의 휴게소가 좋아도 그곳에서
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시금 목적지를 향해서 떠나게 됩니다. 인생이라는
고속도로에 많은 휴게소들이 있습니다. 사찰, 회당, 사원, 교회들이
있습니다. 각 종교는 저마다 삶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인생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영원한 삶을 이야기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2000년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사’를 통해서 신자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교회에 다닐까요?

고속도로의 휴게소에는 누구나 머물 수 있습니다. 교회도 누구나 다닐 수
있습니다. 아프고, 가난한 사람도, 외롭고 지친 사람도 교회에 올 수
있습니다. 인생을 잘못 살았고,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은 교회에 와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양심대로 살았고,
인생을 올바르게 살았던 사람도 교회에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늘 순결하고, 깨끗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빛이 교회를
비추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교회에 다닐 수 있을까요?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은 톨게이트에서 티켓을 뽑아야 합니다. 휴게소를
이용하면서 비용을 지불합니다. 교회에 다니기 위해서는 먼저 교리를
배워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인지, 종교란 무엇인지, 하느님은 어떤 분인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지, 성사는 무엇인지, 성서는 어떻게 쓰여졌는지,
교회의 법과 제도는 무엇인지, 기도와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는지와 같은
것들을 배웁니다. 교리를 다 마치면 세례를 받고 세례를 통해서 지난날의
모든 죄는 사해지고,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누가 교회를 세웠을까요?

길이 먼저 있었고, 그 길 위에 휴게소가 생기듯이 교회는 길이요 진리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고, 그분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여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했고, 그 가르침을 성사로
구체화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셨듯이 제자들은
세례를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해 주었듯이 제자들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고픈
사람들을 측은하게 생각하시고 5000명을 먹이셨듯이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빵을 나누었고, 마지막 날에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셔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을 기억하며 제자들은 함께 모여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여 마지막 만찬을 재현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가정을 축복하였듯이
제자들은 혼인을 축복하였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셨듯이 제자들은 성령의 은사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셨듯이 제자들은 교회를 위해서 봉사할 사람들을
선발하였습니다. 이런 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성사’입니다.   

신앙인들은 교회를 통해서 삶의 위로를 받고, 새로운 길을 향해서 나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 영성생활입니다. 영성생활은 왜 필요합니까?
세상의 것들에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증오, 분노,
시기, 질투가 내 안에서 생겨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기쁘고 행복하지 못 하기 때문에 ‘영성생활’이
필요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