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2일 용서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6-06-12 06:16:28    조회 : 449회    댓글: 0

◈ [인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2016년 다해 6월12일 연중 제11주일

제1독서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2,7ㄱㄷ-10.13

제2독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2,16.19-21

복음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6―8,3<또는 7,36-50>

돼지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하느님께 인간을 고발했습니다.

“하느님, 정말로 억울합니다. 글쎄 인간들은 탐욕을 부리면서 많이 먹는
사람을 가리켜서 ‘돼지처럼 먹는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을 뿐, 절대로 과식하지 않습니다. 위의 7~80%만 차면
세상의 산해진미를 코앞에 갖다 놓아도 절대 먹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인데,
많이 먹는 사람에게 욕하듯이 ‘돼지’라고 지목하는 것은 저희들에게 큰
모욕이 아닙니까?”

짐승은 자기 위에 넘치게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요?
배가 터지도록 먹기도 합니다. 그만큼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인 것입니다.
음식만 그렇습니까?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에 취해서 제대로 말하지도
또 걷지도 못할 정도로 마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요즘에 일중독에
빠져서 과로로 쓰러지는 분들을 봅니다. 그런데 동물들 중에서 과로로
쓰러지는 경우를 봤습니까? 또 한 가지, 동물은 절대로 몸에 좋지 않으면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몸에 좋지 않은 것들에 빠져서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는 경우도 참으로 많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먹는 것, 마시는 것,
일하는 것 등등 절제하지 못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인간이지만, 이 인간 역시 동물보다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나보다 더 낫거나 못한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래에서 똑같은 존재로 모두가 사랑받아야 하며, 모두가
존중받아야 할 거룩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비교하고 판단하고 또
단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받아 가십니다. 그런데 이 집에 한
여인이 향유 옥합을 들고 나타나지요. 그리고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바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손님을 초대해서 행하는 최고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는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합니다.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보여준 여인의 정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여인은 죄인이고 자신은 옳다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정성을 다할 생각은 하지 않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별 다른 말을 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보여준 여인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께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지금 여러분은 주님께 어떤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주님께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보여드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선물이다(패디 S. 웰스). 

*****

나의 입장? 너의 입장?

인터넷에서 아주 재미있는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내가 화장을 하다가 갑자기 우는 것입니다. 남편은 갑자기 우는 아내에게
깜짝 놀라서 물었지요.

“왜? 갑자기 왜 우는 거야?”
아내는 서럽게 울면서 말합니다.

“나이가 드니 내 얼굴이 쭈글쭈글 말이 아닌 거야. 이렇게 늙어가는 것을
보니 슬퍼서 눈물이 저절로 나오네요.”

그러자 위로를 해 준답시고 남편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야 거울을 볼 때만 그 쭈글쭈글한 얼굴을 보지만, 매일 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나는 어떻겠소? 참고 지내고 있는 나를 생각해서라도
울음을 멈추고 참으시오.”

아내를 위로한다고 한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아마 전쟁이 났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러했을까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했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위로의 말은
내가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말해야 한다는 것.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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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용서 체험이 부르는 사랑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6월12일 다해 연중 11주일 루카 7,36-8,3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루카 7,47) 

The pardon of the sinful woman

용서 체험이 부르는 사랑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하고 계실
때 그 고을의 죄인인 여자가 다가와 그분의 발을 눈물로 적신 뒤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리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는 향유를 발라드립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 모습을 보고 못마땅해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7,47) 하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여러 가지 동기로 발생합니다. 사랑은 근원적인 생명의 이끌림이나
좋다는 느낌, 욕구의 충족, 친밀감 등이 동기가 되어 생겨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와는 달리 죄의 용서를 많이 받은 만큼
용서해주는 대상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는 새로운 사랑의 동기를
알려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용서는 영혼의 치유입니다. 누구나 자신을 치유해주고
자신의 어두움을 수용해주는 대상으로부터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죄의 용서는 영혼에 불을 밝히는
것이기에 용서받은 죄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죄인인 여인의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큰
죄인이었던 그녀는 예수님으로부터 그 큰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녀가
체험한 용서 체험은 바로 사랑 체험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사랑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래서 값비싼 향유를 준비한 것입니다. 영혼을
치유해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는 것이지요.

사랑은 그 어떤 수치심도 멀리 쫓아버립니다. 그녀는 큰 죄인이었다는
수치스런 과거의 이미지를 그대로 안은 채 사람들과 식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찾아가 그분의 발을 눈물로 적십니다. 그녀가 안고 있던 영혼의
어둠을 예수님 발 아래 봉헌한 것입니다. 이어 그분의 눈물 젖은 발을
머리카락으로 닦는 극단의 참회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는 최고의
향유를 발라드립니다.

누구나 사랑 받고 싶어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사랑을 주고 나누어야 합니다.
사랑 표현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야겠지요. 하나는 자신을
내놓는 거ㅛ입니다. 자신의 시간과 능력, 재물 등을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 전부를 기꺼이 나누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 자신을 내놓지 않으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사랑의 다른 방향은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죄와 허물,
영혼의 어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죄의 용서야말로 영혼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치유를 이루고 사랑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조건 없는 사랑으로 서로의 죄를 용서함으로써 더 큰 사랑을
체험하고 사랑이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아름다운 날이 되길 희망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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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6월12일 연중 제11주일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2사무 12,13)
 
요즘 뉴스를 대하면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죄를 지어 놓고도 뻔뻔스럽게 말하고 웃고
내가 뭐 그리 큰 죄를 지었다고 그러느냐는 둥 기가 막힙니다.
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어 보이고 또 큰 죄의식도 갖지 않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한결같이
"저저 쳐죽일 놈!"이라 손가락질 하며 분노합니다. 
다윗왕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당신도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나탄 예언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다윗왕은 발뺌하지 않고 겸손되이 고백합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그렇습니다.
우리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과 말과 행위로
사람을 죽이고 상처를 주고 무시하거나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통 그것 정도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며 스스로 위로합니다. 
오늘 그래 내가 바로 그런 죄인이구나 하며 겸손되이 하느님께 고백합시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더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 더 사랑하게 된다고
주님이 복음에서 말씀하시니 제가 더 큰 죄인임을 고백합시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다윗왕을 용서하시어
더 당신을 사랑하게 하여 성왕이 되게 하시고 시몬의 집의 그 여인이
더 사랑하게 만드신 것처럼 나를 용서하시어
당신을 더 사랑하도록 만드실 겁니다. 아멘.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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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11주일

2016년 다해 6월12일 연중 제11주일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 루카 7,36―8,3<또는 7,36-50>

VIP라는 말이 있습니다. Very important person. 즉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MVP라는 말도 있습니다. Most valuable player.
즉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경제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은행에서는 큰돈을 맡기는 사람을 VIP로 모시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에 맞는 대우를 해 줍니다. 전용 창구가 있고, 환율을
할 경우에는 우대를 해 주기도 합니다. 항공사에서는 비즈니스 석을 자주
이용하는 고객을 VIP로 모시고 있습니다. 화물을 부칠 때도 먼저 부칠 수
있도록 배려를 합니다. VIP 고객을 위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식당에서는 자주 찾아오는 고객을 VIP로 모시고 있습니다. 좋은 재료가
있으면 전화를 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예약을 하지 않았어도, 좋은 자리를
마련해 드리기도 합니다.   

직책이나 지위에 따라서 VIP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회의원, 장관,
장군과 같은 사람은 특별한 대접을 받습니다. 현행범이 아니면 잘못을
했어도 체포를 당하지 않습니다. 공항을 이용할 때도 전용 출구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직책이나 지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한 법을 제정하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장관은
국민을 위해서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장군은 국민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어떤 사람들이 VIP가 될까요?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높은 직책이나 지위를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게 VIP 대접을 받았던 사람들은 몇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지난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벌하지 않고,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용서해 주시는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을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의
죄가 진흥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하얗게 해 주시고, 우리의 잘못이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뉘우치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기만 하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으로 받아 주십니다.

두 번째는 뉘우친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죄를
지었던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고, 자신의 머리로 닦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 자캐오는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고, 자신의 재산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4배로 갚아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집과 이 가정은 구원 받았다.’라고 축복을
주셨습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닙니다. 신앙은 실천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제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 주소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모든 성인과 성녀들은 자신의 뜻이 드러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살았습니다.   

‘요한바오로 2세 교황, 넬슨 만델라, 마하트마 간디’는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직업,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친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분들에게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한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을 암살하려고 저격한 청년을 감옥으로 찾아가서 용서하였습니다.
또한 교회가 인류와 역사 앞에서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 겸손하게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에서 감동을 하였고,
그분이 세상을 떠났을 때,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의 사람들도
깊은 애도를 하였습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27년간 억울하게 감옥에 있었습니다. 백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받았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만델라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백인들에게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를 포옹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만델라 대통령의 나라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 최초로 월드컵 경기를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용서와 화해가 주는
힘 때문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복과 폭력은 또 다른 보복과 폭력을 양산할
뿐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유명한 ‘비폭력 저항’을 하였고,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인도를 독립할 수 있도록 했던 정신적인 지도자였습니다. 그분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I respect Jesus, but I don't respect Christian!' 예수님은
존경하지만 예수님을 따른다는 사람들은 존경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은 ‘용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용서는 씨앗이 되었고,
인도 독립의 기초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용서와 치유는 법으로 될 수도 있지만 법만으로는 정말 힘들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미사를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면 우리는 용서가 상대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용서가 나의 분노와 나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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