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우리의 보물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2016년 다해 6월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람들은 요아스에게 기름을 부은 다음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1,1-4.9-18.20
복음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9-23
인터넷을 통해 인상적인 초등학생 시험문제와 그 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시험지에는 사진 한 장이 삽입되어 있었는데, 낡고 초라한 옷을 입고
있는 아주 마른 어린이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빵을 주워 먹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했습니다.
“다음 그림을 보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그림 속의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5분간 그림을 보며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등장합니다.
‘내 자신을 그림 속의 아이와 비교해 봅시다.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이유를 들어서 설명해 봅시다.’
이 문제에 대해 초등학생 아이는 이렇게 답을 썼습니다.
“남의 아픔을 보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이 아픔을 해결해 주려하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될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남의 아픔을 보고서 자신의 행복함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요. 그보다는 그런 아픔에 함께 하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올바른 모습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남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따돌림을
당하는 ‘왕따’가 등장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는 바른 생각도 또 스스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실제로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 행동도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어느 동네에 원로한 의사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이 선생님께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추임새처럼 ‘멋지다’
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오늘 너무나 의상이 멋진데요?
와~ 지금 하신 말씀, 정말로 멋져요.” 등등의 표현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동네 사람들에게 이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아주 멋진 분”이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멋지다’라고 표현하시다보니 실제로도 멋진 분이 되신 것입니다.
‘사랑’을 표현하시는 분은 어떨까요? 실제로 사랑 가득하신 분이 됩니다.
하지만 늘 부정적인 말씀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요? 늘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이 많이 사용하는
단어에 따라 자신도 거기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보물은 과연 무엇인가요?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서 보물을 찾는다면 내 마음 역시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마음으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곳, 주님 안에서
보물을 찾는다면 어떤가요? 내 마음 역시 주님과 함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보물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데로 실제로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 안에서 그리고 주님과 함께 있는 곳에서 보물을 발견하고
기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경청할 줄 알면 말이 서툰 사람에게서조차 이득을 얻는다(플루타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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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없애기.
현대인이 겪고 있는 병의 모든 원인이 ‘스트레스’라는 말을 합니다. 각종
암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하며, 60세 이전의 심장마비 사망자의
90%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 스트레스를 없애는
것이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해소 방법으로는 첫
번째, 평소 생활 패턴으로의 회복입니다. 두 번째는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식사입니다. 세 번째는 가벼운 운동과 심호흡, 스트레칭입니다. 네 번째는
술과 카페인 제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무엇일까요? 바로
지인과의 대화입니다.
마지막 방법인 지인과의 대화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부분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지요. 실제로 나의 말을 잘
들어주는 누군가와 오랫동안 대화를 하다보면 마음이 시원한 경우가 참
많지 않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주님과의 대화를 나누는 우리 신앙인들은
어떨까요? 기도를 통해 주님과의 대화를 계속해서 나누는 사람은
스트레스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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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어디에 눈길을 두고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6월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마태 6,19-23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Treasure in heaven
어디에 눈길을 두고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6,19-21)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이 어디에 집중되어야 하며,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말해 줍니다. 사실 ‘재물’은 우리가 애착을
갖는 것, 소유하고자 하는 보이는 대상을 포괄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관심을 두고 소유하려 안간힘을 쓰는
일이 참으로 부질없음을 말해 줍니다.
녹은 쇠에서 생겨나 결국 쇠를 갉아먹고, 사람은 재물로써 부를 이루나
그것을 소유하고 거기에 애착을 두게 됨으로써 고통을 겪고 비참한 상황에
내몰리기도 합니다. 더 많이 소유해야 하고 더 힘을 키워야 한다는 가치관은
경쟁을 부르고 지배와 폭력이 되풀이되곤 합니다.
행복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공통적인 바람입니다. 그러나 있다가도
없어지는 물질과 재화, 어떤 인물, 인간관계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면
헛수고만 할 뿐입니다. 인간이 가치 있게 여기는 재물은 언젠가 사라지고
말 것이기에 그런 행복은 영원한 행복, 참 행복일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선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만족을 주는 것들에
대해 집착합니다. 그 집착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감을 불러일으키고 결국에는 하느님을 도외시하는 엄청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인간은 물질에 관심을 두면 물질이 되어가기에 관심을
하느님께로 돌려야만 합니다.
하느님을 소유할 때에야 우리는 영원한 행복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고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하느님의 빛으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보화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모든 생명, 모든 성덕의 근원으로 보게
만드는 그 겸손에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행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선을 추구하고
자신을 내놓는 이타심을 지니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온전히 하느님께로만
향하고 하느님을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중심으로 삼는 삶이 행복한
인생일 것입니다. 베풂과 자기헌신, 공동선을 위한 연대와 투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함 등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을 보려면 눈을 떠야 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
(6,22)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모든 이들과 더불어 느끼며, 모든 존재와 함께 호흡할 때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느님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겠지요. 거기에
참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위대한 영혼은 영원한 것을 그리워하고, 영원하지 않는 것은 자기에게는
부당하며, 무한하지 않는 것은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한다.”
(‘365일의 잠언’에서)는 말을 되새기는 오늘이길 희망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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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6월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 6,21)
여러분은 어떤 보물들을 가지고 있나요?
글쎄 별로 없다구요?
그냥저냥 그런거지 보물이라 할 거는 딱히 없다구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루 중에
가장 많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람도 있고 재물도 있고 일이나 관심사도 있을 겁니다.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이 나의 귀중한 보물입니다.
내가 가장 아끼고 자주 이용하는 물건은 무엇인가요?
그게 나의 보물입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있는 분야나 일은 무엇인가요?
그게 바로 나의 보물입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대상들이니까요.
그런데 그 보물들이 썪어 없어질 것이고
오래 가지 않아 싫증날 것이라면 진짜 보물은 못될 겁니다.
그러니 그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영원한 것,
오래 두어도 싫증나지 않고 오래 보아도 싫지 않고
오래 될수록 더 고귀하고 우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나의 보물은 과연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 보물이 진짜 보물인지 아니면 그것을 과감히 버리고
참 보물을 찾기를 소망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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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2016년 다해 6월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마태 6,19-23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신부님들께서 ‘묵주’를 선물로 가져오셨습니다.
특이하게도 묵주 알에는 3잎 클로버가 새겨져있었습니다. 장미가 새겨진
묵주를 본 적은 있지만 3잎 클로버가 새겨진 묵주는 처음이라서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묵주를 가져오신 신부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4잎 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행운을 바라기
때문에 많은 3잎 클로버를 무심하게 바라봅니다. 나만의 행운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처럼 찾기 힘든 4잎 클로버를 찾으려 합니다. 3잎
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주변에 많은 3잎 클로버처럼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입니다.’ 신부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예전에 읽은 글이 생각났습니다. ‘행복은 좋아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하는 것은 특별한 행운을 원하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도 행운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도 많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바라
보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님을 보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신 아들 예수님을 가슴에 안으셔야 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행운은 성모님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성모님은 행복하셨습니다.
해야 할 일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드님께서 하시는 구원사업에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행운은 저와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말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키도 작은 편이고, 운동신경도 별로 없는
편입니다. 키가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운동을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건강 체질로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혈압도 높아서 약을 복용해야 했고, 40대부터 염색을 했으며,
치아가 튼튼하지 않아서 음식을 먹을 때도 불편함이 있습니다. 4잎
클로버의 상징인 행운은 역시 쉽게 찾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저와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3잎
클로버처럼 돌아보면 행복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성소국에 있으면서
신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보는 것도 행복입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새로운 임지로 떠나는 것을 보는 것도 행복입니다. 기회가 주어져서
학생들에게 ‘설교학’을 가르치는 것도 행복입니다. 젊은 신부님들이 강론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교구 엠이 봉사를 하면서
가정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부부를 보는 것도 행복입니다. 새천년 복음화 사도회의
담당신부를 맡고 있습니다. 복음화 학교는 신자 재교육을 통해서 참된
신앙의 길을 안내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 보다는 하느님의 것을 먼저
찾으려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보람이고 기쁨입니다.
찾기 힘든 4잎 클로버와 같은 행운을 바라기 보다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3잎 클로버와 같은 행복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행복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물’입니다.
과연 내 마음의 보물은 무엇이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할 재물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화’는 금과 은이 아닐 것입니다. 보험과 적금 통장도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화는 십자가입니다. 바로 이웃을 위한 희생과
봉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화는 사랑입니다. 죄인까지도
품어주는 사랑이며, 아무런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이며, 수난과 고통까지도
감수하는 사랑이며, 끝까지 믿어주는 사랑입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
준다.’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보물이 있다.’고 하신 말씀과 비슷합니다. 요즘
내가 가족들과 함께 한다면,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한다면, 봉사활동을
자주한다면 바로 그 시간들이 나의 보물인 것입니다. 요즘 내가 자주 가는
곳, 내가 자주 읽는 책,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생각해 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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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나의 보물 1호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다해 6월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마태 6,19-23
나의 보물 1호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마태6,21).
하신 예수님의 의중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 '눈이 몸의 등불'이라는 말은
곧 한 사람이 제대로 살아가려면 그 안에 빛이 있어야 하고, 그 빛은 '눈'의
상태에 의존한다는 뜻"입니다.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은 관대한 사람이요,
성하지 못한 눈을 가진 사람은 질투심 많은 인색한 사람입니다. 관대한
마음을 가질 때 몸 안이 빛으로 가득 차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고,
인색한 마음을 가질 때 어둠 속에 싸이게 됩니다. 나의 보물 1호는
무엇인가요? 천상을 그리워하면서도 마음은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보물1호가 무엇인지 중요합니다. 그것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예수님으로 족합니까? 감히 '예'라고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이 시간 맑은 눈을 가진 관대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감히 종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지배하고 더 많이 소유하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를 피곤하게 합니다. 서로를 섬기면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되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심으로써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믿는 이의 삶은 당연히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머리로는 아는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아는 바를 행함으로써 선한 열매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워 기도하신 후 특별히 열 두 제자들을 뽑으셨는데 뽑힌
이들을 보면 아주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죄인으로 멸시 받던 세리 마태오,
혁명당원 시몬, 배반자가 된 유다, 베드로…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밤새워
기도한 것이 실패였나요? 그 반대입니다. 품이 크시니까 모든 과거를
용서하시며 미래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 희망을 안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의 허물을 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하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하고 아버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용서가 무엇인지, 악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오직 사랑이라는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때때로 기적을 베풀고 죄인들과 어울리면서 능력을
드러냈을 때, 딴지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소신 있게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맑은 눈을 지니면 하느님의 뜻에
의합하고 선한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가게 됩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하신 예수님의 의중을
살펴 부디 맑은 눈으로 주님을 닮을 수 있는 은총의 날이 되길 희망합니다.
한 점 욕심이 없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보이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요, 모든 것이 기쁨입니다. 주님의 눈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볼 것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의 문은 여기 삶의
자리에서 열리고 있는 만큼 인색함으로 세상에 매이지 말고 마음이 늘
하늘의 보물을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부행정원장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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