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8일 걱정 근심을 주님께 맡겨 드려라.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6-06-18 06:44:26    조회 : 465회    댓글: 0

◈ [인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2016년 다해 6월18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17-25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4-34

소크라테스는 “결혼하는 편이 좋은가, 아니면 하지 않는 편이 좋은가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어느 편이나 다 후회할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는 것이나 하지 않는 것이나 모두 후회하는
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혼한 사람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또 반대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을 못해서 안달입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젊은이들은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우선 취업이 힘들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가 쉽지 않답니다. 이런
상태에서 결혼을 하는 데는 너무나 큰 걸림돌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비용도 만만치 않고, 결혼 후에는 자녀 양육과 교육에 대한 걱정을
하다 보니 결혼을 하지 않는 쪽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
이런 식으로 걱정을 하다보면 걱정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의 한 산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수명이 400년이나 되는 것으로 지금까지 총 14번의 벼락을 맞았고
수많은 눈사태와 폭풍우를 냈었습니다. 그런데 400년 만에 쓰러진
것이지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딱정벌레 떼가
나무속을 파먹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자연의 거센
흐름도 이겨냈던 고목이 손가락으로 문질러도 죽일 수 있는 작은 벌레들에
의해 쓰러진 것이지요.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내
삶의 큰 고통과 시련은 이겨내면서도 ‘걱정’이라는 작은 생각들로,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해서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요?

잘 생각해보면 결혼이 꼭 걱정만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 그래서 의지할 수 있고 더욱 더 성숙한 삶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나를 닮은 자녀까지 갖게 되니 얼마나 좋은 일이
많습니까?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없는 것투성인 세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걱정을 어떻게 맞설 것인가가 아닐까요? 집착하지도
또 욕심내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걱정을
하는 사람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하시지요. 그래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한 걱정으로 힘을
쏟기보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라고, 그래야 다른 모든
것들도 곁들여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내 앞을 찾아오는 수많은 걱정들, 그 걱정을 어떻게 맞서겠습니까?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해 걱정하기 보다는 지금을 더욱 더 충실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

누구나 어려운 시기를 겪는다. 그러나 어려움은 잠깐일 뿐이다. 인생에는
‘그럼에도’라는 반전이 도사리므로(김수림). 

*****

냄새를 맡다.

올해 들어서 잔병치레가 많았습니다. 특히 입과 코 안이 헐어서 많은
시간을 힘들어 했었지요. 미사나 특강을 통해서 말을 많이 하다 보니 더욱
더 어려워지더군요. 그러한 제 모습을 본 동창신부가 코 안이 헐었을 때에는
상처 났을 때 바르는 연고를 바르면 바로 괜찮다면서 직접 발라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정말로 괜찮아졌습니다.

그 뒤 저는 코 안이 헐기만 하면 이 연고를 발랐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아주
이상한 것입니다. 글쎄 냄새를 하나도 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화장실에 갔을 때에도, 집안을 청소할 때에도 전혀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깜짝 놀라서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을 5일 정도
먹으니 희미하게 냄새가 어디선가 나는 느낌이었고, 일주일을 먹으니
드디어 선명하게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글쎄 냄새가 맡을 수 있다 보니 일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입고 있는 옷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을 발견해서 빨래를 자주 해야
합니다. 집안에서도 홀아비 냄새가 나서 청소를 하게 됩니다. 제가 키우는
개한테도 냄새가 나서 힘들어도 목욕을 시킵니다.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할 일이 많아졌다고
해서 다시 냄새를 맡을 수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까요? 아니지요.
냄새를 맡을 수 있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으로부터 받은 여러 능력과 재능도 그렇지 않을까요? 일이 만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받은 만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의 선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불평불만보다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기쁨의 시간을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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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걱정 근심을 주님께 맡겨 드려라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6월18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마태 6,24-34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 6,34)

Dependence on God

걱정 근심을 주님께 맡겨 드려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6,25)

돈과 재물은 인간의 삶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인가를 성취하게 해주고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큰 힘을
지니고 있다 보니 매우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옵니다. 그 매력에 이끌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돈과 재물을 중요시 하게 되고 결국은 하느님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네 삶에서 돈과 재물을 대하는 태도는 여러 가지인데, 그것을 보면
어디에 중심을 두고 살아가는지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돈과 재물을
하느님보다 더 중요시 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과 재물을 하느님과
대등한 존재로 여기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사는 사람도 있지요.

돈과 재물을 하느님과 대등한 존재로 여기며 사는 사람은 일견 그것을
하느님보다 더 중시하는 사람보다 나은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양다리를 걸치며 사는 사람이기에 역시 하느님을 도구화 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하느님을 최고의 가치요 삶의 중심으로 모시지
않는 삶의 태도는 우상숭배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돈과 재물을 섬기며 사는 사람은 늘 근심걱정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많은 재물을 소유한다 해도 그것으로 소중한 목숨을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있다가도 없어질 재물은 늘 변화무쌍한
것이어서 인간에게 불안을 안겨줄 뿐입니다. 변하고 흔들리는 가치를
영원한 것인 양 착각하며 붙들고 살아가는 인생이야말로 얼마나 불쌍한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재물에 대한 애착과 숭배는 우상숭배이며 돈은
우상화하면 하느님을 섬길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살면서
걱정하여도 자기 수명을 조금도 늘릴 수 없습니다(6,27).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늘의 새들도 거저 먹여주시거늘 새들보다 더 귀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고 사랑으로 보살펴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삶에서 중요한 것은 굳건한 믿음이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는 의탁의 자세입니다. 삶이 고통스럽고 인간관계가 꼬이고
경제적으로 궁핍함을 느낄 때 우리는 인간적인 해결책과 재물의 힘에
기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6,30-34)

주님! 저의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외롭고 힘들어도 오직 당신만을 갈망하게
하시고 당신만으로 만족하는 지혜로운 제가 되도록 굳건한 믿음을 주소서.
당신만이 참 행복의 원천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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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 6, 34)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6월18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 6, 34)

걱정한다고해서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우리의 걱정을 치유하여 주시며 가장 좋은 것만을
그때 그때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우리의 오늘이며 주님께서 주실 우리의 내일입니다.

내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나 우리의 오늘입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을 내려놓습니다.
걱정을 내려놓아야 순간순간 새로운 것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고 아둔한 우리를 생명의 신비와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순간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어야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걱정이 아니라 먼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우리가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입니다."(마태 6, 33)
믿음이 약한 우리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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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6월18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 6,34)
 
여러분은 걱정이 많으세요?
무슨 걱정이 그리 많나요?
내가 도대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한번 하나하나 짚어 보세요.
 
사실 우리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걱정은 쓰잘데 없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대한 걱정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아직 현실화 되지도 않은 것이기에 아무 소용이 없으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소용 있는 것이라면 오늘 걱정 정도이겠지요. 
예수님도 오늘 쓸데없이 앞날 걱정하지 말라네요.
내일 걱정은 내일 하고 오늘은 오늘에 충실하라는 말씀이네요.
 
오늘은 제가 종신서약을 발한 날이네요.
서약을 발할 때는 과연 내가 이 서약에 끝까지 충실할 수 있을까
염려스러워서 고민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그때 선배 형제님이 하루하루 충실히 살기만 하면 되니
너무 걱정말라 하시며 권고해 주신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답니다.
죽을 때까지 충실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오늘에 충실하렵니다.
 
내일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 어떻게 충실할까
고민하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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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016년 다해 6월18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 마태 6,24-34

신학생들은 오늘부터 방학입니다. 저도 덕분에 목요일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방학은 학생들에게도 기분 좋은 선물이지만 선생님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으려는 사람들은 방학이 피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서 에너지를 얻으려는 사람은 방학 중에도 새로운
것들을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감각의 세계, 경험의 세계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곤 합니다. 천년을
같은 자리에 있는 바위, 몇 백 년을 홀로 서있는 나무들을 봅니다. 방학 중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당신이 주는 물을 마시면 계속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I feel your pain.'(나는 당신의 아픔을 함께 느낍니다.) 공감을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깊은 울림을 주었던 스승들은 모두 탁월한 공감의
소유자였습니다. 꿈을 이루었던 사람, 함께 꿈을 꾸었던 사람, 다른
사람들의 꿈을 키워 주었던 사람들은 공감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공감의 첫 번째 조건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제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아름다운 것은 가난한 이들과 외로운 이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문모 신부님께서 복자가 되신 것은 박해 받는 교우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조건은 경청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십니다. 비록 부족해도 끝까지 들어주었습니다. 화목한 가정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봅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나의 주장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지한 마음으로 들어 줄 때가 많았습니다.
슬픔과 아픔은 치료해주는 것 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들어 줄 때 진정으로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조건은 겸손함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이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로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 등장하는 ‘갑질’은 겸손함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했습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도,
권력을 가진 사람도, 많이 배운 사람도 교만하면 눈총을 받기 마련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가진 것을 나눌 줄 압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약한
사람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지식을 어둠을 밝히는
등불로 사용합니다.   

네 번째 조건은 감사함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언제나 기도하고, 늘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축복이 있기 마련입니다. 욥 성인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주셨을 때 감사드렸다면,
나에게 나쁜 것을 주신다고 할지라도 감사할 것입니다.’ 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 것처럼, 감사하면 감사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원망하면 원망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공감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입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족을 이루고,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 먼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을 나는 새도, 들의
꽃도 다 먹이고 입히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기 때문에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실 때, 많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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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하느님의 의로움을 선택하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다해 6월18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 마태 6,24-34

하느님의 의로움을 선택하라.

일상을 살아가면서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남모르는 걱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사실 모두가 근심걱정을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엇을
걱정하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걱정해 봤자 소용없는 것을 걱정하는
어리석음은 그만둬야 하겠습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것에 충실하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나 하 나 쯤이야, 이런 것쯤이야 하는
소홀함 때문에 큰일을 겪게 됩니다. 물론 큰일을 겪음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겪지 않아도 될 것을 감당하면서 혼돈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을 뿐입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랍니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라고 합니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시편저자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그분께서 네 마음이 청하는 바를
주시리라.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37,4-5).하였습니다. 결국 믿음을 가진 사람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이는 주님께
의탁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여 근심을 끌어안고 삽니다. 그러나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믿고 맡기며 최선에 최선을 다하고는
주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구로 쓸 뿐입니다. 

루카복음에 보면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마르타에게 주님께서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10,41-42). 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위치를
확인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머물면 쓸데없는 일로 바쁘지
않을 것이요, 또 괜한 걱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유지하기위한 음식과 몸을 보호하기위한 의복의 걱정에 앞서서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변함없이 주님을 선택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매일 것이 아니라 보다 가치 있는 것, 하느님의 나라와 의로움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안에 있고, 주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공중의 새나 들판의 꽃들조차도 하느님의 안배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만물의 영장’입니다. 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우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신뢰하며
모든 근심걱정을 송두리째 맡겨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이러한 물음은
인간적인 걱정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고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도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헛된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여정에 우선적인 선택이
주님이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의탁하고 섭리에 맡기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 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5,7).

최선에 최선을 다하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때 영원한 새 삶이 시작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부행정원장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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