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일치와 화합
2016년 다해 6월19일 연중 제12주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남북통일 기원 미사)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30,1-5
제2독서
<서로 용서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29─5,2
복음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9ㄴ-22
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면서 술래잡기(‘숨바꼭질’이라고도 하지요?)를 했던
기억이 떠올려집니다. 한 명이 술래가 되어서 눈을 가리고 얼마의 숫자를
세고 나서 숨어 있는 사람을 찾는 놀이지요. 저와 다른 친구들은 술래에게
들통 나지 않기 위해서 구석진 곳, 찾기 힘든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술래가 찾지 못하도록 한참을 숨어 있다가 술래보다 먼저 정해진 지역에
들어가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모두가 술래에게
들통 나지 않고 정해진 지역으로 들어가서 이겼다고 신나있는데 정작
술래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술래를 찾으러 다니다가
결국 못 찾고 집으로 돌아갔지요. 다음 날, 알고 보니 배고파서 집에 갔다고
하더군요.
혼자서 할 수 있는 놀이가 있을까요? 그리고 자기만의 규칙을 내세워서
한다면 어떨까요? 놀이의 재미도 사라질 것이고, 아무도 함께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놀이라는 것은 함께 해야 재미있는 것이고, 서로가 규칙을
잘 지켜나갔을 때 함께 재미를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는 휴대전화를 통해서도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휴대전화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내
전화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즉, 내 말을 듣고
함께 이야기할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전화가 꺼져
있는데 그냥 혼자서만 말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전화를 걸지도 않고서
상대방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던지고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이렇게 혼자만의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함께 라는 세상을 살고
있으며, 이 세상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함께 보다는 혼자를 강조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인 오늘,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청했는데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땅에 있는 두 사람의 마음이 모이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형제들의 일치와 화합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면서도 불구하고 남과 북으로 오랫동안 서로
분리되어 있지요. 그 과정 안에서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었습니까?
그리고 이 안에서의 미움과 다툼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더욱
더 마음을 모아서 기도해야 합니다.
*****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면 이발을 하고, 한 달을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면 자동차를 사라. 일 년을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면 근사한 집을
지어라. 평생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면 정직하게 사는 방법밖에 없다
(영국 속담).
*****
변화의 시작점(‘좋은생각’ 중에서)
2010년, 이나모리 가즈오가 일본 항공의 최고 경영자로 취임했다. 당시
일본 항공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 부채가 20조 원에 달해 상장
폐지되었고, 정부의 관리를 받았다. 사람들은 새 경영자가 회사를 되살릴
대책을 내놓길 바랐다. 하지만 이나모리는 엉뚱한 지시를 내렸다.
“임원들은 한 달간 교육에 전념해 주세요.”
교육 내용은 간단했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 열정을 가져라. 배려하라. 일의
목적과 의미를 명확하게 하라.” 임원뿐 아니라 중간 관리자와 직원들에게도
차례로 교육했다. 또한 이나모리는 일본 항공의 경영 이념을 “전 직원의
행복을 물심양면으로 추구한다.”라고 정했다. 위기에 빠진 회사에는
한가롭게 들릴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의 전략에 모두 고개 흔들며 기대를 접을 무렵, 변화가 생겼다. 회사의
사명과 목적에 대한 직원들의 의식이 분명해졌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서로 돕는 문화가 형성됐다. 일본 항공은 높은 수익을 내며 2년 8개월 만에
재상장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직, 신용, 배려, 진심, 도덕 같은 변치 않는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는 걸 보여 준 것이다.
어렵고 힘들 때에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기본으로 다시 돌아갈 때가 바로 변화의 시작점이 되겠지요?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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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남북의 화해와 일치의 길을 찾아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6월19일 다해 연중 제12주일, 마태 18,19ㄴ-22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마태 18,20)
남북의 화해와 일치의 길을 찾아
오늘은 남북한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는 날입니다.
우리 사회는 분단의 엄청난 폐해 속에 심각한 사회적 갈등은 물론 인간다운
삶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분단은 군사적 대립과 긴장으로 이어져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위협하고 있으며, 경제 발전과 복지 사회 건설에도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남북한 모두 분단으로 인한 불필요한 국력 낭비와 이산가족의 아픔,
군사안보비용, 장기간의 군복무, 기회비용의 상실, 통신과 교통 제한과
자원의 분할 사용에 따른 손실 등 유형무형의 엄청난 통일비용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분단은 ‘우리’와 ‘적’으로 가르는 냉전적 이분법과 사상의 획일화,
적대의식과 대립적 사고의 증폭, 군사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의 형성, 남북
간 이질화,경제 격차를 가져왔습니다.
분단이 초래한 공간적, 제도적, 심리적 단절은 공간적 폐쇄성과 정치
경제적 불안정성, 문화심리적 적대성을 생산해 냈고, 양 진영 간의
이데올로기적 대결, 정치적 적대 및 군사적 긴장만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분단 사회 내부의 비민주화와 경화를 유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극단적 이분법의 틀에서 나오는 분단언어는 황폐한
의사소통과 사회 경직화를 초래했습니다. 남한의 경우 입장이 다른 상대를
‘빨갱이’, ‘종북좌파’, ‘극우보수’ 등으로 공격하는 왜곡된 의사소통 구조를
드러내고 있고, 북한의 경우 분단 상황을 이용하여 획일화된 사상으로
시민적 권리와 자유를 억압해왔습니다. 그 결과 남북한 모두 개방된
의사소통과 토론을 통해 통일 역량을 키워가는 ‘통일 언어’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분단의 폐해가 궁극적으로는 남북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저해할 뿐
아니라 분단 상황의 지속은 경제?사회?문화?인권 등 인간 삶의 거의 모든
면에서 발전과 성장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인으로서
서로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고,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에페 4,31-32)
또한 분단의 폐해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훼손된
민족정체성을 회복하고, 엄청난 통일편익을 누릴 수 있으며, 자유와 복지,
인간존엄과 가치라는 혜택을 가져다주는 통일의 초석의 길이기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합니다. 분단 상황을 이용하여 인간을 정치
도구화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는 결국 인격적인 소통을 가로막아
비인간화를 초래하고 사회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민족간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해야 함은 물론 우리 자신부터
화해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삶을 실천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나아가 분단극복과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경제적,
정치적 이득의 추구가 아니라 큰 틀에서 분단을 극복하려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중요한 것은 남북이 교류와 협력을 통해 적대적인 분위기를
불식시키는 정치적, 사회적, 교회적 노력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통일을
정치이념의 틀 안에만 가두게 될 때, 통일을 향한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제2의 냉전’, ‘비인간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인간이 배제된 냉전적 이분법적 사고와 분단언어를 극복하여
화합을 이루고,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의 폭도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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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 21)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6월19일 주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남북통일 기원 미사).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 21)
같은 민족끼리 같이 산다는 것조차 이렇게 힘든 일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눈에 보이는 장벽과 눈에 보이지 않는 수 많은 장벽들을
허무는 길은 형제의 발을 우리가 먼저 씻어주는 사랑의 길에 있습니다.
사랑의 길만이 서로를 물어뜯는 아픈 비극을 멈추게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분단의 딱딱한 이 현실을 녹이게 하는 것은 기도하는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는 같은 피와 같은 살로 이어진 같은 혈육 같은 민족입니다.
같은 혈육 같은 형제는 서로를 이끌고 밀어줍니다.
서로를 탓했던 무지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된 기도는 서로를 하나로 묶어줄 것을 믿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보게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민족이 시작된 하나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시간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흐르고 있는 마음이 화해의 마음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고 알고있는 단순한 마음 단순한 기도에서
다시 시작하는 화해와 일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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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6월19일 주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통일 기원 미사)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에페 4,32)
6월은 우리 민족에게 잊지 못할 달입니다.
4월도 세월호 사건으로 인하여 더욱 잔인한 달이 되어버렸고
5.16/5.18로 인하여 계절의 여왕인 5월도 가슴아픈 달이지만
6월은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 때문에 가장 가슴 아리는 달입니다.
오늘 교회는 6.25로 인하여 갈라진 남북이 하나가 되기를 기원하며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원 미사"를 봉헌합니다.
화해와 일치 그리고 통일로 하나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자비와 우리 서로간의 진정한 용서가 필요하다고
오늘 독서와 복음은 역설하고 있네요.
오늘 하느님의 자비와 축복이 우리 민족에게 내리고
우리 안에 용서의 마음이 더 가득히 자리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오 자비의 하느님이시여 우리로 하여금 용서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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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2016년 다해 6월19일 연중 제12주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남북통일 기원 미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 마태 18,19ㄴ-22
지금은 북한이라고 부르는 ‘북괴’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 시작은
‘반공 포스터’였습니다. 선생님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반공 포스터’를
그리도록 했습니다. 잘된 포스터는 교실 뒤에 있는 게시판에 붙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은 섬뜩한 구호와 그림이었습니다.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은 아직도 생각납니다. 북한 사람은 악마처럼
여겨졌습니다.
청와대를 공격하려 했던 북한의 특수부대 이야기, 남침용 땅굴 이야기,
판문점 도끼 만행 이야기, 문세광과 육영수 여사의 사망 이야기, 아웅산
테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북한은 도저히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는 원수였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적이었습니다. 그 증오와 분노의 뿌리는
‘한국전쟁’이었습니다. 삼국시대 이후 1000년 이상 없었던 민족의
전쟁이었습니다. 형제의 가슴에 총을 겨누었고,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았습니다.
북한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시작은 정치적인 것이었지만
감동은 운동경기에서 찾아왔습니다. 한반도 기를 들고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남과 북의 단일팀이 일본과 중국의 탁구를 이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소 때를 몰고 판문점을 넘는 것도 보았습니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서 포옹하는 장면은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금강산 관광,
개성 관광이 이루어졌습니다. 북한의 응원단이 부산 아시안 게임을
응원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남한의 연예인들이 북한을 방문해서 공연을
하였고, 북한의 예술인들도 남한을 방문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기억을 후손들에게 남겨 주어야 할까요? 또 다시
‘반공 포스터’를 그리는 기억을 남겨야 할까요? 서로의 가슴에 분노와 원망,
불신과 증오의 총을 쏘아야 할까요? 다시금 가난을 대물림하고, 주변의
강대국에게 침략을 당하는 모습을 남겨 주어야 할까요?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남한 학생들이 백두산으로 수학여행을 가고, 북한의 학생들이 명동에서
여행을 즐기는 기억을 남기면 좋겠습니다. 아시아 고속도로가 완공되어서
서울에서 평양, 북경, 모스크바를 거쳐서 파리와 로마를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에서 신의주, 상하이, 방콕, 하노이, 봄베이를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한의 기술과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되어서 세계 최고의
상품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긴장과 갈등의 상징인 비무장 지대가 세계
최대의 환경과 생태의 공원이 되면 좋겠습니다.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성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선택은 역시 우리의 몫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화해하고, 용서를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너그럽게 품어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이론이라도 결실을 맺기 어렵다고 이야기 합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의
싸움을 기억합니다. 사소한 일로 서로 싸우는 아이들이 서로 뒤엉켜
있습니다. 덩치가 작은 아이는 덩치 큰 아이의 급소를 잡고 있습니다. 큰
아이는 작은 아이의 목을 움켜잡았습니다.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합니다. ‘놔!’ 그러나 서로 쉽게 놓지를 못하고 울고만 있습니다. 주위에서
그 모습을 보면 우습기도 하고, 안돼 보이기도 합니다. 어린아이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관계는 꼭 시비를 가려야만 해결되는 것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남과 북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시비를 가리려고 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엉킨 실타래는 더욱
심하게 꼬이게 됩니다. 불가에서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면 원망은 해결되지 않는다. 오직 참음으로써 원망은 해결되나니 이
가르침은 영원한 진리이다. 시비(是非)란 본시 옳은 것만 취한다면 해결되지
않으며, 옳고 그른 것을 동시에 놓아버려야 끝이 난다.
宗敎란 으뜸가는 가르침이라는 한자라고 합니다. Religion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의미가 있는 영어라고 합니다. 으뜸가는 가르침으로 세상사의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이 종교라면 그리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그리하여
참된 구원의 문에 도달하려면 꼭 是非를 가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부처님이 말씀하셨듯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普施와 容恕 그리고 사랑이만이 아름다운 기억을 후손들에게 남겨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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