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꼭 필요한 존재
2016년 6월7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제1독서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7,7-16
복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3-16
지난 토요일부터 어제까지 2박 3일 동안 갑곶성지 영성센터에서는 피정이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서 4시간 정도 가야 도착할 정도로 먼 곳에 위치하고
있는 백령도 본당 신자들 60명의 피정이었습니다. 보통 저의 역할은 피정
강의만을 담당했지만, 이번 피정의 경우는 기상에서부터 취침까지 다 제가
신경 써야만 했기 때문에 조금 지치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냥
기도문 나눠주고서 알아서 하라고 할까? 그냥 자유 시간을 주면 어떨까?’
등등 저의 편함을 누릴 생각들만 계속 나는 것입니다. ‘그래도 멀리서 오신
분들인데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라면서, 조금이나마 주님을 더 느끼고
돌아가실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신경 쓰면서 피정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어제 낮, 피정을 마치면서 몸은 정말로 힘들었는데 기분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2박 3일의 일정 동안 지치고 힘들어서 종종 마음이 새까매진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모든 일정을 마친 그 순간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돌아가는 교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줄기 빛이 제 마음을 환하게 비추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피정을 마치신 교우들이 너무나 좋은 피정이었다면서
올 가을에도 다시 오겠다고 하시는데, 며칠 동안 고생한 것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라고 생각되면서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될 때 마음이 환하게 되면서 이렇게 큰
기쁨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힘듦만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밝게 빛나는 내 마음의 변화를 느낄 수도 없으며, 당연히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기쁨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리고 ‘세상의 빛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과 빛이 될 것이다.’라는 식의 가정법도 아니고, 먼
미래의 일처럼 하시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고 규정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규정하셨다면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즉, 세상을 환하게 비출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소금처럼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짓밟히는 것처럼,
주님으로부터 내쳐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나만을 위해서 살면 불가능합니다. 솔직히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렇게 이기적으로 자기 욕심만
챙기며 살아가면 그 곁에 사람들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더 어렵고
힘든 삶의 연속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꼭 필요한 존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도록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규정되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사람을 도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 한가한 시간이란
그렇게 많지 않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는 시간은 하느님이 주신
보물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스테폰 포르토시스).
*****
주전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소설책에서 ‘주전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이라는 질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단순하게 물의 배출구, 아니면 손잡이 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주전자 전체가 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느 한 부분도 필요 없는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전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전자가 아닌, 비어 있는 부분이지요. 비어
있는 장소에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밀로라드 파비치,
장편소설 '하자르 사전' 중에서)
이 부분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주전자 자체만 중요하다고 생각했지,
물을 채울 수 있는 비어 있는 부분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역시 이렇게 눈에 보이는 부분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어 있는 부분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생길 것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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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예수님의 제자의 정체성과 소명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6월7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마태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마태 5,13.14)
The similes of salt and light
예수님의 제자의 정체성과 소명
예수님께서는 소금과 등불의 비유를 통해서 당신 제자들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입니다.”(5,13.14) 곧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막는 소금과 같은 존재이고, 인간의 탐욕과 죄악으로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입니다(5,13).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자녀가 세상의 소금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 영광스런 이름이 오히려 오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의 소금이 되기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맛은 하느님의 선이요, 이타적인
사랑이며, 가난한 마음으로 추구해나가야 할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먼저
우리는 선(善)이신 하느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선을 품는다는
것은 ‘긍정의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세상과 동료 인간들, 피조물을 바라볼 때 ‘좋게 보는 시선’, ‘하느님께서
주신 선’을 발견하려는 자세를 지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회가
어렵다보니 더욱더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주변을 보면서도 부정과 비판을
위한 비판, 체념과 절망이 독버섯처럼 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가운데 긍정과 의미와 희망을 불어넣는 소금이 되어야겠지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려면 예수님처럼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이타적 사랑’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질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이기심으로 타락해가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그래도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다운 자존심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은 고달프고
때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금과 빛과 같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도록
해야겠지요(5,14-16). 세상은 하느님을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 하면서 세상이 추구하는 돈과 쾌락과
권력을 더 중요시 여기며 살아간다면 신앙생활을 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교회야말로 세상의 부패를 막고 세상의 어두움을 비추는
대안사회, 대조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권을 추구하고 물질과
효율을 앞세우며, 인간의 존엄성을 뒷전으로 팽개친다면 타락한 세상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나 개인은 물론 교회 공동체가 이 소명을 다하지
못한다면, 하느님께로 향하는 삶의 의미를 상실하며 세상 안에서 할 말을
잃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정신없이 지내는 때가 많은 오늘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누구이며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 인식할 필요성이 절실해집니다. 이제부터라도 삶의 가치를
세상에서 찾지 말고,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하느님의 선과 사랑을 위해
멋지게 자신을 던질 줄 아는 우리가 되도록 마음을 모았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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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6월7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마태 5,14)
여러분 연휴 잘 보내셨나요?
저희 성심원도 2박3일간 축제를 지내느라 여념이 없었답니다.
첫날도 비가 내렸고 어제도 가랑비가 내렸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축제였습니다.
우리 성심원은 1959년 창립 당시에는 육지 안의 섬이었고
사람들로부터 버림당한 어두운 감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성심원이 이제 빛나기 시작하고 그 빛이 점점 밝아져
많은 사람들이 그 빛의 은혜로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봅니다.
웅석봉 산자락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그런가 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산위에 자리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는 법이지요.
웅석봉 아래 십자봉이 있고 마을 한가운데 성당과 종탑이
어디서나 잘 드러나는 빛이신 예수님이 계시는 고을이라 그런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빛이 되어 다른 사람을 비추어 줄 수가 있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우리 한가운데 모셔들일 수만 있다면.
우리가 빛이 아니라 빛이신 예수님을 반사하는 작은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빛이신 예수님을 맞이함으로써
늘 빛 가운데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빛을 비추어주는 그런 작은 등불 되시길 축원합니다.
저희 축제를 위해 함께 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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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고춧가루와 소금
2016년 6월7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 5,13-16
고춧가루와 소금
저희 수도원에서 아침식사 때 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메뉴가 하나
있습니다. 영원한 에너지원 삶은 계란입니다. 그런데 요즘 저염식(低鹽食)
이 유행이다 보니 삶은 계란을 그냥 먹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소금 없는 삶은 계란은 ‘앙꼬 없는 찐빵’같아 별의미가
없습니다. 삶은 계란은 살짝 소금을 쳐서 먹어야 절묘한 맛의 조화가
살아납니다.
언젠가 속병으로 한 일주일 잠깐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었습니다. 매콤하고
짭짤한 음식을 좋아하는 저였기에 식사 시간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끼니 때 마다 제게 배달된 음식은 정말이지 밋밋했습니다.
먹는둥 마는둥 식판을 원위치 시켜놓으면서 제 머릿속은 온통 칼칼한
육개장이며 얼큰한 매운탕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따지고 보니 소금은 참으로 고마운 조미료입니다. 소금에 절여지지 않은
김장 김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값비싼 소꼬리곰탕이라
할지라도 소금으로 간을 하지 않으면 심심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서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음식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어가는 소금의 역할은 아주 지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소금 같은 존재로 살아가라고 당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오 복음 5장 13절)
살다보면 마치 고춧가루 같은 사람을 만납니다. 틈만 나면 남의 인생에
고춧가루를 뿌려댑니다. 안 그래도 깊은 상처 입어 쓰라린 부위에 계속
매운 고춧가루를 뿌려대니 존재 자체가 십자가입니다. 늘 요란스럽습니다.
틈만 나면 여기 저기 들쑤시고 다니니 공동체가 편할 날이 없습니다.
반면에 소금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 특징이 소금처럼 공동체
안에 조용히 스며들어있는 것입니다. 확연히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기 맡은
바에 충실합니다. 남들이 보건 말건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공동체 삶을 맛갈지게 만듭니다. 공동체를 살맛나게 만듭니다.
대단한 것 같고 요란스럽지만 실속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로는 뭐든
다 합니다만, 결실이 없습니다. 이웃들에게 주는 것이라곤 씁쓸함이요 쓴
맛입니다. 요란한 괭가리에 불과한 삶입니다.
그러나 소금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소금의 가치나 위력은 자신이 완전히
사라져야, 자신이 완전히 녹야 내려야 제대로 발휘됩니다. 비록 드러나지
않지만 공동체의 발전과 쇄신을 위해 ‘나’는 없어지지만 그로 인해 이웃을
빛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고,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에 소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실제로 이 세상에 충만히 현존하고 계신다는 가장
확실한 징표입니다.
조용히, 묵묵히, 뒷전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그렇게 소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참 그리스도인이며 세상의 빛입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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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2016년 6월7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 5,13-16
많은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있는 꽃동네를 생각합니다. 처음 시작은 아주
미약했습니다. 본인도 구걸을 하면서, 더 아픈 이들을 위해서 음식을 나누던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본 신부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이런 체험을 합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은총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꽃동네를 방문하셨고,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은총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꽃동네가
시작된 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성가 복지 병원이 있습니다. 입원환자는 치료비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병원은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26년이
넘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들과 봉사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자신이 이룬 성공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병원을 운영하시던 수녀님들은 함께 기도하였고,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가능한 것은 역시 은총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들레 국수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20년간 수도자로 살았던 그분은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고, 또
다른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굶주린 사람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손님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따뜻한 정성이 담긴 식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이웃을 위한 나눔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교우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장대비가 내리는 여름날 성당에
오셔서 창문을 닫았던 형제님께서 하수구에 있는 오물도 치웠습니다.
성모상 앞에서 조용히 기도하시고 떠나시던 형제님은 세상의 빛이었습니다.
동네에 사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떡을 나누어주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비를 도와주는 형제님은 세상의 소금이었습니다. 본당
신부가 피정을 가면, 성당에 오셔서 눈도 치우고, 수녀님을 도와 드리던
형제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시몬과 같았습니다. 음식을 나누고,
쓰레기를 치우던 자매님은 예수님의 피와 땀을 닦아주던 베로니카와
같았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사렙타에 사는 과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가뭄이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밀과 기름으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요청을 합니다. 마지막 남은 밀과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먼저 엘리야를 위해서 주고, 남은 음식을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과부는 마지막 음식을 먼저 남에게 주고 남은 음식을 아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엘리야는 사렙타 과부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주었고, 비가 내릴 때까지 과부의 집에는 밀과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주었습니다.
현실의 삶에서 우리는 편안하고 쉬운 것을 택하려고 합니다. 많은 것들
중에서 조금 나누는 것도 아까워하는 세상입니다.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Winner takes all)’는 말이 당연시 되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더 행복하다.
(To give is happy than to receive.)'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십시오.” 빛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빛은 어둠을
밝히기 마련입니다. 빛은 그래서 밝고 깨끗해야 합니다. 빛은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생기를 넣어 줍니다. 소금은 녹아야
합니다. 녹아서 다른 것들과 하나가 됩니다. 비록 본 모습은 없어지지만
다른 것들이 맛을 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신앙인은 이렇게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 역시 드러내주고, 모든 것을 주는
것입니다. 세상을 밝고 환하게 비추고, 세상에 참된 맛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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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6월7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 5,13-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이미 소금이 아닙니다. 빛이 빛을 내어 밝게 비추지
못한다면 이미 빛이 아닙니다. 소금이 짠맛을 내고 빛이 빛을 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그 본성을 찾아 자기 몫을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에 충실할 때 빛과
소금이 됩니다. 특별히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영광을 감사하며 그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5,14). 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소금이
되라, 빛이 되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미 소금이요, 빛이라고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맛을 내고, 비추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을 내지 못하고 빛을 내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
사람은 참으로 한심한 사람입니다. 내가 소금이고 빛이라는 것을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음에 부끄러움이 큽니다. 그러니 가끔은 스스로에게
‘정신차려 이 사람아!’ 하고 꾸짖을 필요가 있습니다. 소금의 중요한 역할은
부패를 막는 것과 맛을 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부정부패를 막는
것과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빛나게 됩니다.
그리고 착한 행실은 곧 생활화된 신앙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착한
행실은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칭찬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제자들의 소명이나 오늘 우리의
소명은 결국 빛나는 삶의 행실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모범으로 표양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그저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감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선을 행하되 자신의 공로에 대한 생각이나 칭찬을 구하지 않음으로써
진실하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포장하여 드러내려고 애를
쓰지만 믿는 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통하여 그 믿음의 진실성을 확인
받게 됩니다. 따라서 “하느님에 관하여 탐구하지 말고, 선행을 통해서
하느님을 찾으십시오”(성 골롬바노). 그리고 “이 세상의 선한 행위는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되며 하느님께로 귀결”(십자가의 성요한) 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소금이요, 빛입니다. 그
맛을 잃지 않고 빛을 가리지 않는 가운데 행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위해 헌신할 때 그리스도의 항기가 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언제나
교회를 증명해준다. 비참함에 짓눌린 사람들은 ‘교회의 우선적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된다. 교회는 초기부터 많은 지체들의 과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을 구제하고, 보호하고, 해방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가톨릭 교리서 2448항). "교회는 언제나 잘못과 실수를 범해 왔지만,
가난한 이들과 자비의 활동을 할 때에는 언제나 성령님의 이끄심을
따랐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배려로 그리스도의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부행정원장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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