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나의 존재 안에서 이루어지는 빵의 기적을 체험하셨으면 합니다.
2016년 다해 5월29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청소년 주일)
제1독서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4,18-20
제2독서
<여러분은 먹고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1,23-26
복음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1ㄴ-17
일본의 시인이자 동화 작가인 미야자와 겐지가 교사였을 때, 학생 중에 종종
백지로 답안을 제출하더랍니다. 답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백지로 답안을 제출했겠지요. 어쩌면 반항심을 가지고 그럴 수도 있고요.
아무튼 이렇게 백지로 답안을 제출한 학생에게 어떤 점수를 주었을까요?
빵점일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백지 답안을 냈다고 해도 절대로
빵점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름만 써도 20점을 주었지요. 사람들이 아무것도
쓰지 않았는데 왜 점수를 주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록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빵점짜리 존재는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말이지요. 형편없어 보이고 도무지 쓸데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존재 자체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지난달에 태어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를 분양받았습니다.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릅니다. 어색하게 걷고 뛰는 모습만 보아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게 달려와서 같이 놀아달라고 낑낑대는 것도 예뻐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강아지가 실제로 눈에 보이는 어떤 도움을 준 것은
없습니다. 나가서 돈을 벌어오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저 대신에 부엌에 가서
밥을 하지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할까요? 아닙니다.
그냥 제가 다 해줍니다. 밥도 제가 주고, 개장 청소도 제가 해줍니다.
정기적으로 주사도 놔주어야 하고, 회충약이나 사상충약 등도 잊지 않고
먹여야 합니다. 이렇게 개를 키우다보니 일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있음 자체로 저의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합니다.
존재 자체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의 존재 자체를 좋아하시는 주님이시기에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지만 사랑해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제자들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주님의 말씀에 커다란 난관에
빠집니다. 장정만도 5천 명인 사람들을 어떻게 다 먹일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그 많은 음식을 어디서 사오고 어디서 날라 올 것인가 라는
문제이지요. 결정적으로 이 모든 것을 구입할 돈을 어디서 구해 오냐는
문제에서 그들은 앞이 캄캄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돈이
아닌 다른 수단을 찾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복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십니다. 그 결과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나 될 정도로 차고 남았음을 전해줍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한 끼 식사로 먹는 빵의 양은 3개 정도라고 합니다. 사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기에 너무나도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양이라도 주님께는 충분하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능력과 재주가 있어야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봉헌을 할 때에도 많은 재물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늘 빵의 기적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조금의
재물이라도, 또 부족한 능력과 재주라도, 아니 어쩌면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존재 그 자체만이라도 주님 앞에 내어놓았을 때 생각지 못했던
커다란 은총과 축복이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내는 오늘, 나의 존재 안에서 이루어지는
빵의 기적을 체험하셨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부족한 나라도 기쁘게 봉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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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의 하루는 25시간, 실패한 사람의 하루는 23시간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는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살았냐에 결정된다(김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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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성공
어떤 분이 장사를 의욕 넘치게 시작했지만 몇 년 하지 못하고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서 도저히 운영을 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는 자신의 실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너무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었어. 가게 위치가 좋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나는 너무 운이 없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다음에 또 다른 장사를 해도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요즘 경기가 안 좋다고 하지만 장사가 잘 되는 가게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지요. 또한 가게 위치를 제대로 찾기가 힘들 정도로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도 사람이 미어터질 정도로 잘 되는 곳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실패는 이런 부분들을 내가 잘못해서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번에는 분명히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물론
스스로 성찰을 잘한다고 해도 꼭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지요.
사업에서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스스로 성찰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겪고 싶지 않은 실패의 삶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일에서의 모습 안에서, 기타 등등의 모든
곳 안에서 내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나의 어떤 모습을 바꿔야
할지를 계속해서 성찰했을 때 분명히 지금보다 더 좋은 상황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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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 안에서의 연대와 나눔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5월29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루카 9,11ㄴ-1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루카 9,17)
Feeding of Five Thousand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 안에서의 연대와 나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생명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사랑으로
병든 이들을 고쳐주십니다(9,11). 말씀도 행동도 모두 하느님을 건네주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모두 내어주시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곁에는 열두 제자들도 있었지만 예수님을 찾아온 군중들도 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제자들은 군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예수님께 그 책임을 떠넘깁니다. 날이 저물고, 황량한
곳이라는 이유로(9,12) 그들은 군중을 돌려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시라고 청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빵이요 영원한 거처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장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해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제안한
방법들을 보면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도 그분의 신원에 대한 이해도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도 이처럼 날이 저물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벌판처럼 여겨지는 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생명이신 주님을
두고 어디로 달려갔으며 내가 믿는 신앙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손을 내밀긴 했으나 오히려
고통스런 현실을 회피하고 그분께 짐을 떠넘겨버리지 않았는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해결책을 청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9,13) 하십니다. 이 말씀은 생명의 빵으로 오신 자신을
건네주셨듯이 제자들도 스스로를 남김없이 내어주라는 것입니다. 곧 사랑의
동기로 각자에게 정의로운 분배를 실천하라는 말씀이지요. 얼마나 많은
것을 나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전부를 나누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하고 말씀드립니다. 그들은 자신을, 지금까지 당신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생명을,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예수님을 ‘지금 여기서’ 내어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금 여기에 예수님과 군중과 자신들이 함께 있고,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외적인 수단과 물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연대와 일치의 정신이었습니다.
어떻게 연대하여 이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갈지를 고민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군중을 분리시킨 채 자신들 밖의 힘에 의존한 것이지요.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당신의 몸과 피를 건네시며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25)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그분의
죽음을 넘어선 생명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이웃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나의 존재 전부를 지금 여기서 나눔으로써 분배 정의를 실현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끌어안고 연대함으로써 모두가 배부르게 되는, 곧 생명을 호흡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오늘도 기꺼이 서로를 나누고 어떤 역경과 시련 중에도 사랑의 연대를 이룰
수 있도록 힘쓰는 복된 날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에 대한 공경을 표하는 우리다운 태도일 것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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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5월29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1코린 11,24)
사람의 뇌는 많은 것을 기억하지만 또 많은 것을 잊어먹습니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면 아마 머리는 터져버리겠지요.
그러나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아주 강렬한 흔적을 남기고 있기에 잊어버릴 수가 없지요.
여러분은 잊을 수 없는 좋은 기억들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요?
그리고 나쁜 기억들은요?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고
나쁜 기억들은 별로 없는 사람은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기억의 종교입니다.
2천년 이상이 되어도 여전히 예수라는 인물을 기억합니다.
그는 자신을 잊지말라고 빵과 포도주를 볼 때마다
자신을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술을 마실 때마다 그분이 나를 위해
어떻게 죽으셨고 부활하셨는지를 기억한다면
그분은 늘 우리 가슴 속에 살아계실 겁니다.
오늘 나의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기억해 보면 어떨까요?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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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체 성혈 대축일
2016년 다해 5월29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청소년 주일)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 루카 9,11ㄴ-17
정진석 추기경님께서는 1931년 양띠이십니다. 염수정 추기경님께서는
1943년 양띠이십니다. 조규만 주교님께서는 1955년 양띠이십니다.
그래서인지, 이분들은 모두 양 냄새 나는 목자의 삶을 보여 주십니다. 지난
목요일, 조규만 주교님의 원주교구 교구장 착좌식엘 다녀왔습니다.
주교님의 사목표어처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는’ 목자의 모습을 보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여섯 번째 말씀은 ‘다 이루었다.’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하느님의 자비로운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승리의
요소와 더불어 패배의 요소도 이용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인류 구원 섭리에
따라 인간의 타락 때에 협력하였던 세 가지 요건이, 인간의 구원의 때에도
똑같이 필요하였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에 대응하여 그리스도의 순종이
필요하였습니다. 하와의 교만에 대응하여 성모님의 겸손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의 선악과나무에 대응하여 십자가 나무가 필요하였습니다.
이렇게 인류 구원 사업의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이 있습니다. ‘춘잠도사 사방진, 납촉성회 루시건’입니다.
뜻은 이렇습니다. ‘봄누에는 죽을 때까지 실을 뽑고, 초는 재가 될 때까지
불을 밝힌다.’입니다. 살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적당히
넘어갈 때도 많았습니다. 우주의 많은 별들도 자신의 길을 충실하게 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 예수님, 주님이 인류 구원 사업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죄를 보상하는
속죄는 제가 할 일입니다. 속죄는 주님과의 일치를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의 생명, 주님의 진리, 주님의 사랑에 다시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 주님은 우리 죄인을 속량하시는 일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직도 십자가에 달려 계십니다. 이제 주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드리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인간 각자가 주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각자 자기 육체의 욕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바오로 사도가 전해 주었습니다.
- 그러므로 주님 대신에 제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까지 제가 할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각 사람의 인생에 성금요일의 수난이 없는 한, 부활의 기쁨도
없을 것입니다.
- 어리석음의 자줏빛 겉옷을 걸치지 않는 한, 지혜의 흰 외투를 입지 못할
것입니다.
- 머리에 가시관을 쓰지 않는 한, 승리의 화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전투가
없는 한, 승리도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는 한, 빈 무덤의 기쁨도 없습니다.
갈증이 없는 한, 천국의 기쁨도 없습니다. 예수님, 이 힘든 작업을 제가
마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사람의 자녀들이 영광에 들어가려면
수난과 고통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광야에서 지치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만나는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배부르게 하는 ‘만나’보다는 영혼을 살리는 ‘성체와 성혈’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면 우리는 영적으로 충만해집니다.
어릴 때, 물을 퍼 올리던 펌프가 생각납니다. 펌프에는 늘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있습니다. 아낌없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부어주고 펌프질을
하면 수백 수천 배의 물이 흘러나옵니다. 이것은 어린 저에게는 참으로 큰
체험이었습니다. 한 바가지의 물이지만 기꺼이 내어주니, 모든 사람이
마시고도 남는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낌없이 마중물이
되어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꽃동네, 마더 데레사의 사랑의 선교회, 이태석
신부님은 모두 한 바가지의 마중물 정신을 사신 분들입니다.
어느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교회가 없어서 대학교의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이
늘어나서 대학교의 강당에서는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는 교회를 신축하기 위해서 200억을 모금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짓기 위해서 200억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늘어난
신자들은 4곳의 교회로 나누었고, 다른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짓기 위해서 마련한 200억 원을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짓는데 사용하였습니다. 탈북자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고, 베트남, 러시아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공장을 세웠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의 공동체는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를 알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그대로 이웃들의
발을 씻겨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성체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지금도 ‘마중물’이 되시어 수많은
신자들의 가슴에 용기와 생기를 주고 위로와 힘을 주십니다. 축복을
받았으면 나누시기 바랍니다. 엄청난 은총이 되돌아 올 것입니다. 바다의
물이 마른 적이 없듯이, 하느님의 사랑은 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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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영혼 보양식
2016년 다해 5월29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영혼 보양식
먹어야 산다는 말은 이젠 옛말. 이젠 잘 먹어야 살 맛 난다겠지요.
모든 병은 먹는 데서 시작된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역전된 것 같네요.
몸에 좋은 음식 엄청 발전시키니 앞으로 200년 더 세상살이 하겠어요.
험한 세상 200년 더 사는 것보다 영혼 보양식 드시는 게 더 나을 걸요?
바로 그 보양식 먹는 식사모임이 가톨릭의 미사시간인 거 다 아시죠?
영혼 보양식, 자신을 음식으로 주신 예수님의 방법 참 기발해 놀라워요.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루카 9,16~17)”
영혼 보양식을 하시려면 사전에 회개와 용서로 배를 굶겨야 정상이겠지요.
보양식 식후에는 감사와 기쁜 소식을 전하며 평화롭게 지낼 일이이겠고요.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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