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일 아주 작은 믿음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6-10-02 06:34:20    조회 : 441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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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6년 다해 10월2일 주일 [(녹) 연중 제27주일 (군인 주일)] [수도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과 겸손으로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하바 1,2-3; 2,2-4 ○ 제2독서 티모 1,6-8.13-14 † 복음 루카 17,5-10 오늘은 연중 제27주일이며 군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성원하는 군인 주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더하여 주시기를 주님께 간청하며, 오늘 복음에 나오는 종처럼 우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라고 말하는 주님의 성실한 종이 되기로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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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늘의 묵상 “어찌하여 제가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재난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제 앞에는 억압과 폭력뿐, 이느니 시비요 생기느니 싸움뿐입니다.” 하바쿡 예언자의 외침은 시공간을 가르고 오늘날에도 전해집니다. 열심히 성당에 나가 미사에 참례하고, 봉사 활동을 하며, 기도를 열심히 해도 정작 세상은 별로 변하는 게 없어 보입니다. 불의한 세상은 변할 줄 모르고, 폭력은 여전히 세상 도처에서 일어납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라는 제자들의 호소는 우리의 가슴속에서 오늘도 솟구쳐 오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과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설마 우리에게 겨자씨만 한 믿음조차 없을까 의아해할지도 모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믿음이 겨자씨만도 못한 것이 아니라, 겨자씨보다 더 큰 불신과 미혹이 풍성한 나무가 될 겨자씨를 짓누르는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고, 그것을 잘 간직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격려는 우리의 믿음이 세상의 목소리보다 주님의 목소리를 더 듣고자 할 때 성장하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오늘은 이 땅의 평화를 지키는 군인들과 군 사목을 하는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군인 주일입니다. 교회가 군인들을 사목하는 이유는 국가의 안전을 위한 평화의 지킴이인 군인들을 격려해 주고, 그들이 국가에 봉사하면서도 하느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소명을 잊지 않도록 사목할 책임을 교회가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군사력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에 대한 믿음에 있음을 잊지 맙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 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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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천] 겨자씨만큼의 믿음 2016년 다해 10월2일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제1독서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 하바쿡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2-3; 2,2-4 제2독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1,6-8.13-14 복음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5-10 우리나라 경제의 큰 문제로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난 기사를 보니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라고 합니다. 2014년 12월에, 청년 실업률이 9%나 된다면서 큰 일 났다고 이야기했는데, 10%를 넘어서 12.5%에 도달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청년 장기실업자가 18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하니 한국 경제의 문제를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요즘 힘주어서 노력하는 부분이 바로 소위 스팩 쌓기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자격증을 소지하기 위해 공부하고, 해외 연수를 다녀오는 것 등을 통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써 넣어야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스팩 쌓기라는 말을 들으면서 우선 그 목적이 ‘자기 내부의 열정’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는 나’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내부의 열정 없이 보이는 나만을 만들려다보면 ‘자기 부정’의 모습을 갖게 된다고 하더군요. 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아무리 노력해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등이 있으면 많은 스팩을 쌓았어도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열정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고 믿어줄 수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 보니 등산이 아주 유행이었습니다. 휴일만 되면 신학생들은 모두 산으로 향했습니다. 저 역시 남들을 따라 산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기만 하고 만족스럽지가 않은 것입니다.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다니니까 저도 다녔을 뿐이지요. 지금 어떨까요? 신부되어서는 산에 간 적이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남들 따라 하는 것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스스로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그 열정을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키워나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없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너무나 작고 미약하기 때문에 믿음을 더해 달라고 청했던 것이지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믿음을 통해서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크고 두터운 믿음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씨인 겨자씨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하시지요.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함께 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비하할 일이 없으며,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에 열정을 갖고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과연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이 세상을 더욱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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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표를 가진 사람은 성실하지만 꿈을 가진 이는 행복하다(이동섭).
20161002_01.jpg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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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추한 과학자(‘좋은 생각’ 중에서) 아인슈타인은 어수룩한 차림으로 유명했다. 일 년 내내 검은색 가죽 상의를 걸치고 양말도 신지 않았다. 넥타이나 멜빵을 쓸 줄도 몰랐다. 강연하다 칠판에 적을 때면 한 손은 필기도구를, 한 손은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잡느라 바빴다. 그가 유명해지기 전, 거리에서 우연히 친구와 마주쳤다. 친구는 대뜸 물었다. “몰라보겠군. 왜 그리 누추한 옷을 입고 다니나? 새 코트를 하나 장만하게.” 그러자 아인슈타인이 웃으며 답했다. “뭐 어떤가? 어차피 뉴욕에서 날 아는 사람도 없는데 뭘 입든 누가 뭐라 하겠나?” 몇 년 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하루는 길에서 친구와 다시 만났다. 친구는 아인슈타인의 옷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자네, 아직도 그 낡은 옷을 입는가?”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태연히 말했다. “그렇다네. 이제 여기서 날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야.” 친구는 이인슈타인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가 다른 사람처럼 옷차림이나 시선에 신경 썼다면 아마 상대성 이론 같은 위대한 업적을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런 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였다. 그녀는 언제나 남편의 여행 가방을 챙겨 주었다. 그런데 돌아올 때면 매번 가방 안이 흐트러짐 없었다. 아내의 추궁에 그는 조심스레 고백했다. “사실 가방을 열어 본 적 없소. 여행 내내 떠날 때 입은 옷 한 벌로 생활했다오.”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아인슈타인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는 무엇이 중요한 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에게 보이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지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남의 시선은 절대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20161002_02.jpg 누추한 과학자 아인슈타인.
  •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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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과 겸손으로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10월2일 연중 제27주일, 루카 17,5-10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루카 17,6)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과 겸손으로 하바쿡 예언자는 유다가 칼데아인의 침략으로 패망의 길로 치닫고 있을 때에 주님께 탄원합니다. "제가 언제까지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 제가 언제까지 '폭력이다!' 하고 소리쳐야 합니까? 어찌하여 제가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재난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제 앞에는 억압과 폭력뿐, 이느니 시비요 생기느니 싸움뿐입니다.”(1,2-3) 예언자의 하느님 앞에서의 처절한 절규가 오늘 이 땅에서도 울려 퍼지는 듯합니다. 노인과 청년 자살률 1위, 생계가 어려워 국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출산율, 실업과 고용 불안, 국가 부패지수 세계 9위(2016년 WEF가 141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국민을 섬겨야 할 정치권력의 횡포와 패륜적 행태, 자본가들의 끝을 모르는 탐욕 등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공분이 치밀어 오릅니다.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기고만장하는 이들이 너무나 불쌍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이 땅의 부끄럽고 절망스런 모습을 보며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자신의 못난 모습에 고개를 숙입니다. 제 역할을 못하는 교회를 바라보는 마음도 아려옵니다. 오늘 그렇게 예수님의 제자들과 더불어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하고 간절히 청합니다. 정말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불의한 국가폭력과 인간존엄성 말살 앞에서도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실낱같은 믿음이라도 지닐 수 있길 애원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그 믿음으로 우리 오늘 이 땅의 고통과 아픔과 불의를 대신 끌어안고 억울하게 죽어간 예수님을 살리기 위해 일어서야겠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동료 인간들의 존엄성이 훼손될 때 적극적으로 연대하여 맞서야겠습니다. 공동선을 침해하는 일체의 거짓과 불의, 폭력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겨자씨만한 믿음만으로도 하느님과의 관계는 형성되고, 그 관계 안에서 하느님 친히 사랑과 선과 정의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믿음을 지녔다 해도 주님 친히 모든 것을 다스리시니 거기에 구원이 있고 영원한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믿는 사람답게 주님께서 주시는 믿음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으로”(2티모 1,7), 공동선을 위한 협력과 인간존엄성의 회복을 위한 연대,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 힘써야겠습니다.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가 실현되고 정의가 실현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랑의 투신을 할 때입니다. 세상과 담장을 쌓고 내면의 평화에만 만족하고 이웃의 고통에 침묵하는 비겁한 '종교인'이 아니라 “성실함으로 살며”(하바 2,4),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함으로써(2티모 1,8) 사랑의 기적, 생명의 기적을 이루는 '신앙인'이었으면 합니다. 오늘 바로 이 거리 저 골목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삶의 절규를 살맛나는 세상의 행복한 웃음으로 바꿔나가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17,10)임을 기억하여 실행할 수 있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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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10월2일 연중 제27주일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루카 17,10) 우리는 부여받은 일을 잘 끝내고나면 응당 그에 상응하는 상이나 보답을 기대합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하였으니 일이 잘 되게 해 주시고 건강하게 해 주시며 재물의 복까지 좀 주시겠지... 내가 이런저런 봉사를 열심히 하였으니 회식은 당연하고 그에 상응하는 칭찬이 따르겠지... 이런 기대에 미치지 못한 상황이 되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그 일을 시킨 상급자를 욕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무슨 일을 시킨다면 보상을 바라고 그 일을 할까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그 때문에 칭찬이나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고 주인을 욕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수고와 희생을 하고 큰 봉사를 하였다 하더라도 그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일뿐입니다. 어떤 칭찬의 말이나 박수가 없어도 보상이나 선물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잘했니 못했니 욕만 얻어먹는다 하더라도 그건 정상입니다. 나는 내가 받은 소명을 충실히 종으로서 잘 수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또 그 때문에 칭찬을 받든 욕을 먹든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나의 수고와 성실함을 다 알고 있을 테니까요. 오늘도 나에게 부여된 일 종으로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수행합시다. 그 결과에 연연치 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고백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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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 5) 한상우 바오로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10월2일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 5) 우리의 인간성 안에서 믿음을 성찰하는 주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믿음이란 하느님의 뜻에 먼저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복종할 때 우리의 비천함까지도 은총으로 변화시켜주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참된 믿음이란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믿음안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삶의 한가운데서 믿음을 찾는 우리들이 되어야합니다. 성실한 믿음을 추구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삶은 분명 하느님만을 원하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믿음의 삶으로 자라나야합니다. 믿음은 겨자씨처럼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베푸시는 은총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믿음은 감사하는 생활로 하느님께 기쁨을 드려야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인 까닭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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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2016년 다해 10월2일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 루카 17,5-10 오늘은 군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예전에 이런 말들을 하곤 하였습니다. 면제를 받은 사람은 ‘신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18개월 방위를 받는 사람은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30개월 현역으로 입대하는 사람은 ‘어둠의 자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만큼 군 생활은 따분하고, 힘들고,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사유가 있어서 군 면제를 받은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군 생활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3년간의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 부당한 방법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면 잘못입니다. 저는 1986년 1월에 군대엘 갔습니다. 30년 전입니다. 군대의 추억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군번입니다. 저의 군번은 ‘13660791’입니다. 30년이 더 지나도 군번은 기억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추억은 동기생들입니다. 저의 동기들은 모두 특과병이었습니다. ‘번역을 하는 동기, 붓글씨를 쓰는 동기, 테니스장을 관리하는 동기, 요리를 하는 동기’가 있었습니다. 저도 성당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국방부의 시계는 돌아간다.’ 라는 말을 믿으며 제대하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들이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다가, 제대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처음 군대 생활을 할 때 3년이 언제 갈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가고 제대하는 날은 오기 마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똑 같은 시간을 선물로 주십니다. 어떤 분은 그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여 보람 있게 사용합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그 시간을 낭비하여, 흘려보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이라는 선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우리들의 선택입니다. 물론 선택의 결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군 생활 중에 틈틈이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그것이 씨앗이 되어서 제대를 한 후에는 돈 보스코 센터에서 외국 분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고, 신학교 복학 후에는 성체대회 통역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제가 된 후에는 필리핀에 소공동체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캐나다에 연수를 2년간 다녀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군에서 시간을 아껴서 영어 공부를 한 것이 제게는 큰 결실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 주십시오!’라고 청하였습니다. 밥을 청한 것도 아니고, 재물을 청한 것도 아니고, 높은 자리를 청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강한 믿음을 청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가족들을 떠났고, 생업을 포기하였으며,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기에 ‘강한 믿음’을 청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 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실함과 믿음은 신앙생활의 두 날개입니다. 믿음은 하느님과의 거래가 아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삼국지에서 제갈 공명은 ‘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바오로 사도는 ‘성실함과 믿음’은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니, 성령의 도움을 청하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고, 고난도 참을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 10월의 첫 번째 주일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청하며, 성실함과 믿음으로 신앙의 알찬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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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성가 407번 하나이신 천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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