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0일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6-30 15:43:15    조회 : 324회    댓글: 0

◎ 2018년 나해 6월30일 [(녹)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주님께 소리 질러라, 딸 시온의 성벽아.>
○ 애가의 말씀입니다. 2,2.10-14.18-19

복음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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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2018년 나해 6월30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한국 순교 성직 수도회와 교회사 연구소가 주최한 ‘교우촌의 믿음살이’
 심포지엄을 다녀왔습니다. 저도 교우촌에서 태어났고, 교우촌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교우촌은
박해시대에 신앙인들이 박해를 피하고, 신앙을 지켰던
터전이었습니다. 교우촌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장소였고, 신앙을 전수하는 학교였습니다. 많은 교우촌에서 한결같이
전해지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학교는 가지 않아도 성당은 꼭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재물과 권력은 주지 못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신앙을 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기도문을 외워야 했고, 매일 기도를 해야 했고, 기도에
소홀하면 밥도 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했기
때문에 박해를 견디어낼 수 있었고,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교우들은 전국의 교우촌과 긴밀한 교류가 있었습니다. 교우촌은 다른
교우촌과 혼인이 있었고, 박해가 일어나서 교우촌이 없어지면 다른
교우촌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교우들 간의 혼인은 신앙을 지키는
힘이 되었고, 교우들 간의 혼인은 가정을 화목하게 하였습니다.
혼인은 하느님께 드리는 약속이기에 힘든 일이 있어도 가정을 지키는
것이 신앙인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릴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매일 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기도하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성당은 꼭
가야만 했습니다. 기도로 다져진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힘든 일은 함께 이겨낼 수 있었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박해도 끝났고, 도시에서 살면서 우리는 예전처럼 교우촌을 이루면서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1980년대 이후에 세례를 받는 신자들은
교우촌에 대한 이해가 적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교우촌에
대해서 성찰하는 것은 교우촌이 주는 강점이 크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교우촌은 바로 영원한 생명을 현실의 삶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앙은 기도와 교육을 통해서 지켜지는 것입니다. 교우촌은 박해의
시기에 신앙을 지켰던 선조들의 지혜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신앙인들은 박해의 시기에는 순교를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나눔을 통해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교우촌은 나눔의 실천을 보여 주는 장소입니다. 

교우촌이 커지면서 공소가 생겼습니다. 공소에 신부님이 오시면
성당이 되었습니다. 신부님의 수도 늘었고, 성당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사제들의 못자리인 교우촌은 예전처럼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성당의 못자리인 교우촌은 예전처럼 신앙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가정이 교우촌이 된다면, 우리들의
반과 구역이 교우촌이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박해와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어르신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 청년이 혼인하기 위해서
본당 신부님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본당 신부님은 배우자 집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예전에 그 부모님이
신부님과 말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본당 신부님과
말다툼을 할 정도의 신앙인과 혼인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답니다.
청년은 본당 신부님의 말을 듣고 신앙이 깊은 집안의 딸과 혼인을
하였고, 지금까지 신앙을 지키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삶의 중심에
하느님의 뜻이 먼저인 집이 바로 교우촌입니다. 이런 교우촌에서
신앙이 태어나고, 신앙이 성장하며, 하느님께로 가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1997년 제기동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성당 마당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었습니다. 파란 감들이 주렁주렁 가지에 매달려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감나무에서 감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감나무는 왜 감을 떨구어 냈을까요? 본당 신부님께서는
제게 “감나무는 더 크고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서 스스로 작고
볼품없는 감들을 떨구어 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01년
적성 본당에는 대추나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도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대추나무들도 더 크고 알찬 대추를 맺기 위해서 스스로
작고 볼품없는 대추들을 떨구어 내고 있었습니다. 욕심 때문에, 미련
때문에 참 많은 것들을 채우고 있는 저에게는 좋은 가르침이었습니다.

오늘 백인 대장을 봅니다. ‘그저 한 마디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의 종은 깨끗하게 치유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동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백인 대장과 같은 믿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스스로 작고 볼품없는
것들을 떨구어 내는 나무들에서 백인 대장의 모습을 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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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믿음은 일상을 감사로 만든다|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6월30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마태 8,5-17

믿음은 일상을 감사로 만든다.

대전교구 신리 성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 일랑 이종상 화백이
3년에 걸친 재능기부로 그려진 순교화들이 전시된 전시관이
있습니다.

일랑 이종상 화백은 37세 국내 최연소 화폐 영정화가가 될 정도로
명망 높은 미술인입니다. 그분이 우리가 쓰는 지폐의 율곡과
신사임당을 그린 분입니다. 그분이 그리면 카드와 같은 아주 작은
그림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한다고 하는데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들은 그 크기가 웬만한 작은 방 벽면과 같으니 값어치로 따지기
어려운 작품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들은 복사본이라고 합니다.
진품은 오랜 보관을 위해 특별히 지어진 커다란 금고에 들어있습니다.
그 금고는 벽면이 매우 두껍지만 넓어보였고 습기 때문인지 공중에
붕 떠 있는 방식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진품의 오랜 보존을 위해 철저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계속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왜 굳이 작품을 만들어서 유지비를 계속 지출하는
것일까요? 작품 안에는 만든 이의 고귀한 피와 땀이 서려있기
때문입니다. 방치하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림도 일단 그려졌으면 유지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계속 지불되는데,
작품 중의 작품인 인간을 위해서는 그 만드신 분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계실까요? 세상에서 저절로 유지되는 작품은
없습니다. 자녀를 낳았으면 낳은 이유로 많은 정신적 물질적 희생을
쏟아부어야합니다. 그래서 아예 낳기를 포기하거나 제한하기도
합니다.

작품은 유지비가 많이 듭니다. 인간도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되고
건강을 잃고 허물어져가다가 결국 흙이 되고 맙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모든 기적은 아픈 사람들을 초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상된 작품을 재건하는 방식입니다.

오늘 하인의 병을 치유해달라는 이방인 백인대장의 청을 들어주시고,
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고생하자 그것도 치유해주십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치유가 일어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 작품들을 만든 책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책임이 있으니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작품이기에 일상이 당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독일도
80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작품 가치가
높을수록 더 많은 유지비가 들어갑니다. 작은 실수에도 작품은
훼손될 수 있습니다.

작품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의 힘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치유의 기적이 필요 없다면 이미 치유의 기적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대단한 미술작품도 실온에 오래 놔두면 삭아버리게
됩니다. 인간도 주님의 손길이 아니면 일상을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지금 일상이 감사하다면 이는 주님께서 나에게 끊임없이 기적을
베풀고 계심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비용이
들어서라도 유지될 수 있는 작품임도 아는 것입니다.

일상이 감사가 되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 인간을 작품으로
창조하셨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사야서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작품들인 우리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들어라, 야곱 집안아 이스라엘 집안의 남은 자들아,
모태에서부터 업혀 다니고 태중에서부터 안겨 다닌 자들아.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이사 46,3-4)

우리는 주님께서 만드셔서 주님께서 안고 가시는 작품들입니다.
그러니 일상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는
것부터가 기적입니다. 이미 우리는 주님의 손을 잡고 있어 끊임없이
병이 치유되는 기적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님께서 칭찬한 이방인의
믿음이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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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톨레랑스 : 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6월 30일 토요일
 
톨레랑스

오늘은 “톨레랑스”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5절 말씀에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톨레랑스(Tolerance)는 정치, 종교, 사상의 영역에서 즉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타인과 논쟁은 하되 폭력을 행하지 말고 그들을 받아들이고
존중하자는 관용의 정신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어떠한 죄든 다 관용하고 용서하셨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17장 3절 말씀에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말씀을 하십니다. 죄를 범해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는데
용서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범죄 한 형제에게는 바로 경고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도록 이끌어주되 회개하는 형제에게 용서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톨레랑스’가 없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바로 교회는 용서의 교회요, 관용의 교회입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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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좋은 칭찬 한 마디에 나는 두달을 기쁘게 살수 있습니다!
 
2018년 나해 6월30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좋은 칭찬 한 마디에 나는 두달을 기쁘게 살수 있습니다!

미국 현대 문학의 효시이자 대부인 동시에 탁월한 정치사회
비평가였던 마크 트웨인(1835~1910)의 칭찬과 관련된 어록은 언제
들어도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좋은 칭찬 한 마디에 나는 두달을 기쁘게 살수 있습니다.”

큰 프로젝트 하나를 성공시켜 위기 앞에 서 있던 회사를 되살린 한
직원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고마웠던 최고 경영자는 모든 직원들 앞에
그를 크게 칭찬하면서 표창장을 수여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후, 그 모범 직원의 삶에는 큰 변화가 하나
생겼답니다. 그 전까지는 출근 시간이 그리도 힘들었는데, 칭찬
이후에는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지더랍니다. ‘오늘도 빨리 회사 가서
열심히 일해야지!’하는 마음에 서둘러 출근한답니다. 회사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면 가슴이 설렌답니다. 보십시오. 진심어린 칭찬의
엄청난 효과입니다.

그러나 칭찬도 제대로 된 칭찬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웃이나
공동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 업적을 남긴다든지, 크게 기여했을 때
수여하는 것이 표창장이요, 공로패요, 훈장입니다.

그런데 불의했던 사람, 평생 자기 몫만 챙기는데 혈안되었던 사람,
민주 사회 건설을 몇십년 뒷걸음치게 만든 사람에게 국가가 훈장을
수여한다면, 국민 대다수를 포함하여, 지나가던 강아지들조차 웃을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쯤 누군가는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을
내동댕이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잘못 수여된 훈장은 회수되어야
마땅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인류 구원사업의 주무대인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시면서, 첫번째로 취하신 행동이 칭찬이었습니다.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중풍으로 고생하는 자기 종의 치유를 청하는데,
치유를 청하는 기본적인 자세며, 어투가 예수님 마음에 쏙들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오 복음
8장 8절)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며
즉시 느낀 바가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급격한 신앙의 약화요
쇠퇴였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신앙 빼면 시체인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앙 안에서 성장해왔고, 신앙은 곧 이스라엘의 힘이요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과 더불어 성전이 커지고, 예식이 강조되었습니다.
율법이 강화되고 제사에 목숨 걸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신앙은
뒤로 밀려나고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신앙은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자연스런 만남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유다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영적인 나병에 걸리고
만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위기 상황에서 예수님의 눈길을 ‘확’ 끌어당긴 신앙이
있었으니, 바로 백인대장의 신앙이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단순하고
순수했습니다. 열렬하고 절대적이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백인대장을
향한 예수님의 칭찬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오 복음 8장 10절)

군인정신으로 똘똘 뭉쳐진 백인대장의 단순하고 우직한 신앙은
오늘날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봉헌하는 미사 때 마다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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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믿음이 구원의 문을 열게합니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6월30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마태8,5-17)

믿음이 구원의 문을 열게 합니다.

오래도록 위암으로 고통을 받고 계신 형제님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언제나 맑고 밝은 웃음을 가지고 미사참례를 하고 구역모임에도
빠지지 않으시려 애를 쓰셨습니다. 근황을 여쭈며 어떤 생각을
하시느냐? 고 했더니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자유를 누릴 때가 곧
오겠구나!”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꿈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좋은 꿈도 있고, 그렇지 않은 꿈도 있는데 요즘은 아주
나를 옴싹달싹 못하게 하는 꿈에 시달리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꿈이란 것을 가톨릭 성가29번 ‘주 예수 따르기로” 1절에
비유해 주셨습니다. “주 예수 따르기로 나 약속했으니 내 친구 되신
주여, 늘 함께하소서. 주 함께 계시오면 나 든든 하옵고 주 나를
이끄시면 바른 길 가리다.” 그리고 좋지 않은 꿈은 2절 “이 세상 온갖
유혹 내 맘을 흔들고 내 모든 원수들이 늘 괴롭히오니 주 나를 돌아
보사 내 방패 되시고 내 옆에 계시옴을 깨닫게 하소서.”에 빗대시며
3절은 주님께 맡기고 또 주님의 고유권한이시라고…. “저 영광 빛나는
곳 주 내게 보이니 그 아름다운 곳을 사모합니다. 주 예수 섬기기로
나 약속 했으니 끝까지 따라가게 용기를 주소서.”

‘성가로 하는 기도는 2배로 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냥 입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담아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에
감사했습니다. 내용하나하나가 나의 미래를 비춰주고 유혹을
극복하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성가를 부를 때 가슴으로, 온
마음으로 불러야 하겠습니다. 

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씀드립니다. 꿈은 꿈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꿈이고, 아무리 나빠도 꿈입니다. 그러나 그 꿈을 주님의 눈으로
보고, 더 큰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꿈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귀합니다. 꿈을 통해 메시지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모든 것은 주님의 섭리 안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마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백인 대장이 예수님께 자기 하인이 중풍으로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마’하셨습니다. 이에 백인대장은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하시며 백인대장의 종을
고쳐 주셨습니다. 참으로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이방인 군인이
보여주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라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유다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을 주님으로 모시지 않는 이들이
많고 이들은 훗날 반드시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빛을 거부하는데서 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세례를 먼저 받고
나중에 받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래된 신자, 새 신자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얼마나 의탁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세례를 받은 지 오래 되었다고 저절로 믿음이 생기는 것도 더 많은
은총을 체험하는 것도 아닙니다. 새로 영세받은 신자가 훨씬 더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시기 질투하지
마십시오.“믿음은 세상을 충만케 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까롤로 까레또). 매 순간 하느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제로 사는
믿음이 구원의 문을 열게 합니다.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구하는 바를 넘치게 받고 또 다른
것도 더 받을 것이지만 믿음이 부족한 사람은 감히 청하지도 못하고
그럼으로써 얻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 믿는 대로 이루시길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천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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