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일 탈리타 쿰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7-01 06:12:47    조회 : 261회    댓글: 0

◎ 2018년 나해7월1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제1독서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1,13-15; 2,23-24

제2독서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가난한 형제들의 궁핍을 채워 줄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8,7.9.13-15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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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2018년 나해 7월1일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7월의 첫째 날입니다. 2018년도 반이 지났습니다. 어떤 분들은 벌써
반이 지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아쉬움과 미련을 불러올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아직 반이 남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불러올 것입니다. 생각은 우리들의
자유입니다. 어떤 생각으로 7월의 첫째 날을 시작하시겠는지요? 

명동에서 산책할 때입니다. 옆에 젊은 연인이 걷고 있었는데 여자가
“자기야, 내 신발에 껌이 붙었나 봐.”라고 하자 남자는 무릎을 꿇고
여자의 신발을 벗겨서 신발에 붙은 껌을 깨끗이 떼 주었습니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도 예뻐 보였고,
기꺼이 무릎을 꿇고 신발에 붙은 껌을 떼어주는 남자도 듬직해
보였습니다. 사랑이란 참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희망을 품고,
오늘 세상을 떠날 것처럼 뜨겁게 살자!’ 참 좋은 글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천상에서의 영원한 삶을 꿈꾸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하느님을 만날 것 같은 마음으로 충실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책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미래는 바로 여러분의 것입니다!” 졸업식과 신입사원 환영회,
결혼식장에서 자주 들리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열정적으로 인생을 쟁취하고 미래를 소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꿈을 이루고 성공하고 행복을 쟁취하는
비결은 오늘을 온전히 사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 때 더
나은 내일이 찾아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어떤 상황에 있든
어떤 고난을 겪고 있든 상관없습니다. 누구라도 지금 당장 최선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채, 자신을 약하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자존감이 약하며, 자신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와 조건을 귀신같이
찾아냅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우면서 행복한 삶을 먼 미래로
미루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젠가 내 인생도 풀릴 거야. 언젠가 일이
좀 한가해지면 가족과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언젠가 건강을
회복할 거야. 언젠가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하느님의 복을 더
많이 누리게 될 거야. 그러나 언젠가는 절대 찾아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오늘뿐입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오늘뿐입니다. 

긍정의 힘은 이런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인생은 생각을 따라갑니다. 높은 곳에 마음을 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하느님의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성공하도록 지으셨습니다. 말은
씨앗입니다. 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뀝니다. 말로 표현하기 전의
축복은 축복이 아닙니다. 말을 함으로 축복은 이루어집니다. 신중히
말하고, 하느님의 은혜를 선포하여야 합니다. 올바른 생각과 말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제1 독서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선하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라 충실하게
살 수 있도록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은
우리들의 질문에 좋은 답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역경과 고통
중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들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은
오랫동안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고, 주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려고 했습니다. 그런 여인의 믿음이,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께 가까이 갔기 때문에 오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병중에 있는 딸을 위해서 주님을
찾았습니다. 나중에 하인들이 찾아와서 딸이 죽었다고 하였지만,
주님께서는 그 딸을 죽음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절망과 좌절은
주님께로 우리를 이끌어 주지 못합니다. 

오늘 제2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또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어
나중에는 그들의 풍요가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준다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레지오 전단원 교육이 있었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두
분의 교우분이 제게 왔습니다. 한 분은 냉방병이 있다고 하셨고, 다른
한 분은 우울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두 분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분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이야기하였고, 함께
기도하였기 때문에 좋아졌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몇 번 기도를
통해서 치유되는 체험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간절함을 하느님께서는 저를 통해서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우리들의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살아가면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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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믿음의 열매는 믿음
 
2018년 나해 7월1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믿음의 열매는 믿음>
복음: 마르코 5,21-43

전교 꼴찌가 1년 만에 일본 최고 명문 사립대인 게이오 대학에 합격한
사건 아닌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입니다. 게이오 대학은 수험생 2% 안에
들어야 입학 가능한 명문대입니다. 그런데 고 2 때 담배를 피우다
정학을 맞은 평균 30점, 학습수준 초등 4학년, 적국 2% 꼴찌 안에
드는 학생이 어떻게 1년 만에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을까요?

처음엔 ‘어머니의 믿음’이 힘을 줍니다. 어머니는 아들만 챙기는
아버지와 상반되게 두 딸들을 지극정성으로 챙깁니다. 자녀를 위해
그녀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믿어주는 일입니다. 같이 담배를 피운
학생을 고자질하느니 차라리 정학을 맞으라고 말합니다. 왕따를
당하는 딸을 위해서 학교를 전학시킵니다. 그리고 딸이 무슨 행위를
하더라도 믿어줍니다.

엄마의 사랑에 감동한 사야카는 동네 학원에 등록하게 되고 긍정의
달인 학원선생님 츠보타를 만납니다. 사야카를 보자마자 목표를
게이오 대학으로 정하고, 자신이 학생 때 “능력 없으면 때려치우라.”
는 말을 듣고 자라서 자신은 ‘끝까지 믿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빵점을 맞아도 답은 다 체크했으니 잘 했다고 하고,
동서남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일본 지도를 그냥 동그라미 하나
그리는 불량소녀 사야카를 무한 칭찬합니다.

이에 사야카는 머리도 자르고 공부에 매진하여 3주 만에 중학교
영어를 마스터하고 성적을 급속도로 끌어올립니다. 학교 선생님과
아버지는 놀던 아이가 뭔 대학에 가겠냐며 빨리 때려치우라고 합니다.
성적이 많이 오르는 듯싶었으나 모의고사에서 중위권의 성적만
나옵니다. 사야카는 자신은 안 된다고 절망합니다. 엄마가 자신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택배 나르는 일을 하며 고생하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남동생은 아버지의 기대에 대한 부담으로 비뚜로 나가는
상황에서 더 절망합니다. 그리고 포기합니다. 츠보타 선생에게 목표를
낮추자고 하지만 츠보타 선생은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 목표를
낮추면 아무 대학도 못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야카는 모든
걸 포기하고 학원에 더 이상 가지 않습니다.

이때 사야카의 담임 선생님은 가난한 학원선생인 츠보타를 찾아가
괜히 불량한 아이들 붙들어다 돈이나 벌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안 되는 아이들에게 괜한 희망고문을 하니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는
잠만 잔다는 것입니다. 담인 선생은 마치 현 교육체계를 대표하듯
이렇게 말합니다.

“노력해도 안 되는 학생은 안 됩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항상 들어오던 이 말에 무한긍정 츠보타 선생은
이렇게 응답합니다.

“니시무라 선생님, 전 ... 안 되는 학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있다면
오직 무능한 선생만 있을 뿐입니다.”

우연히 이 이야기를 듣고 또 포기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포기해도
괜찮다는 엄마의 따듯한 말에 사야카는 다시 힘을 내고 결국엔
당당히 합격하게 됩니다. 이에 비뚤어지던 남동생도 마음을 잡고
아빠도 사실은 딸을 많이 사랑하고 있었음을 표현하며 온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됩니다.

물론 이 영화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삶 속에서 불량한 친구들과 밤새 노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사야카에게 다시 삶의 에너지를 부여한 것은
어머니와 츠보타 선생의 ‘믿음’이었습니다. 아기가 엄마를 믿는다면
엄가가 아기를 먼저 믿은 것입니다. 사야카의 믿음은 어머니와
선생님이 믿어준 열매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1년 만에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어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느님께서 먼저 믿어주셨기 때문에 구원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기가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을 먼저 믿어주기 때문에 아기는 그
믿음을 받아들여 수천 번을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걷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것과, 12년 동안 하혈병을
앓는 여인의 치유 두 이야기가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두 기적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야합니다.
하혈병이 낫는 것이나 죽은 아이가 살아나는 것은 사실 같은
기적입니다. 기적은 믿음으로 일어납니다. 먼저 하혈병 앓는 여인이
주님을 믿습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그리고 그 믿음이 보상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그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믿음은 없어 보입니다. 복음 안에서는 예수님께서 마치 그
여인의 믿음 때문에 당신 기적의 힘을 빼앗긴 것처럼 표현돼
있습니다.

하지만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장면을 같은 것으로 보자면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먼저 다가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슬퍼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음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십니다. 야이로의
믿음으로 딸은 예수님께 맡겨졌고 본인 스스로 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다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먼저 믿으신 것이고 그분께서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믿음이나 사랑이 저절로 흘러나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성령님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하혈병을 앓던 여인은
자신이 믿어서 기적을 일으킨 줄 알지만 예수님이 먼저 믿어주셨기에
믿음인 생긴 것입니다. 혼자서는 죽은 아이처럼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분이 손을 잡아 일으켜주셔야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한 아버지가 아들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언젠가는 너의 때가 올 것”
이라고 절망하는 아들에게 항상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은행 강도까지 되었습니다. 1997년 미국
네브라스카주에서 일 년에 다섯 번이나 은행 강도짓을 한 범인이
검거되었습니다. 그는 징역 12년 형을 받습니다. 그의 이름은 숀
로버트 홉우드입니다. 그는 몇 년 뒤 미국의 가장 유명한 변호사가
됩니다.

그는 본래 유망한 대학 농구선수였지만 자신의 실력이 평범하다고
여기고 농구를 포기합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군대에
가서 장기근무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합니다. 거기서도 그를 믿어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인생 패배자로 술만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은행
강도와 현상범을 쫓는 추격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를 보고는 은행을 털어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그는 12년 동안 피킨 연방교도소 내에 있는 도서관을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그 도서관엔 법률서적들이 많았는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우연히 한 권을 읽고는 흥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 책은 재판
내용을 적어놓은 판례집이었고 몇 년 동안 4천여 권이나 더 읽습니다.
단순히 재밌어서 판례집을 4천 권씩이나 읽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많은 책을 잃게 만든 기저에는 아버지의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믿으니 자신도 믿은 것입니다.

어느 날 한 마약사범으로 들어온 제소자 존 펠러로부터 대법원에
상고이유서를 작성해 달라는 청을 받았습니다. 상고이유서가
채택되어 다시 재판을 받게 될 확률은 1%였습니다. 보통은 변호사가
작성하는 것이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그 사람을 위해 그것을 써
줍니다. 그런데 얼마 뒤 그의 상고이유서가 채택되었고 그의 변호를
맡았던 미국의 전 법무차관이자 유명 변호사였던 세스 왁스먼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쓴 상고이유서는 내가 지금껏 본 것 중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숀에게 존의 변론을 함께 맡아보자고 제안했고, 결과는 12년
형을 받았던 존의 형량이 8년이 단축되어 4년형으로 재선고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는 복역하는 중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2008년
석방 후 워싱턴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2015년에 정식으로
미국의 상소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항상 “언젠가 너의 때가 올 것이다.”라고 한 말을 그때서야 이해하게
됩니다.

은행 강도였다가 미국의 유명 변호사가 될 확률은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적습니다. 우리가 주님 믿음 안에 들어가는 것은 은행
강도가 도서관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과 닿아 있으면 그분
믿음이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혈병 여인이 예수님 옷에 손을 대는 행위는
그분과의 거리를 좁혔음을 나타냅니다. 멀리서 손을 댈 수는
없습니다. 그분과 가까워지면 구원이 자신에게 저절로
흘러들어온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죽은 딸도
‘손을 잡아’ 일으켜 살려주셨습니다. 그분은 야이로의 딸의 손을
잡기 위해 그 아이에게 가까이 가신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과의
거리가 구원과 직결되어있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더 먼저 오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그분의 믿음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며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믿음 자체이십니다. 믿음이 부족합니까? 그것은
내가 변하고 싶지 않아 그분께 다가가거나 그분과 머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만 하면 그분께 가까이 갈 수 있고 그러면 믿음은
그분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분은 우리를 믿으십니다. 우리도
믿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이런 마음으로 다가가십시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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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사랑스런 교황님
 
2018년 나해 7월1일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사랑스런 교황님

교황 주일을 맞아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바칩니다. 1936년 12월 17일생이시니, 만 82세, 우리나라 나이로
83세이시니, 꽤 고령이십니다. 자신 한몸 건사하기에도 힘든
연세이신데도, 전 세계 가난하고 고통받는 당신의 양떼를 위해
불철주야 뛰고 계시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성인(聖人)’이라고 해도 아무런 거부감 없는 우리 교황님께서 부디
건강하셔서 더 많은 시간 우리 가운데 머물러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찌 생각하니 지금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교회 역사상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대(大)교황님, 가장 예수님을 닮은 착한 목자
교황님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그 자체로, 너무나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성과 가르침, 그분이 삶
자체로 발산하시는 감동은 교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방방곡곡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위대한 교황님은 어느 한 순간 갑자기 기적처럼 우리 눈앞에
‘짠’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요즘 많이 깨닫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오랜 인생여정, 신앙여정을 묵상하면서, 갖은
우여곡절과 더불어 각고의 노력을 통한 점진적 성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01년 2월 21일 베르골리오 주교님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됩니다. 당시 추기경으로 서임되는
성직자들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특전이 있었습니다. 쾌적한 추기경
관저 제공, 고급 전용차와 운전 기사 제공, 전담 요리사 배치였습니다.
그러나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화려한 추기경 관저를 사양하고 작고
허름한 아파트로 들어갔습니다. 전담 요리사를 두지 않고, 직접
시장을 봐오고 요리를 했습니다. 전용차를 사양하고 언제나
대중교통을 애용했습니다.

언제나 예수회 수도자로서 추구했던 극단적 청빈은 교황으로
선출되고 나서도 한결 같았습니다. 넓직하고 쾌적한 교황 전용
공간을 사양하고, 일반 교황청 거주 성직자 50여명이 기거하는 공동
기숙사 성 마르타의 집 201호로 자신의 거주지를 정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교회와 세상 앞에 드러내보이시는 삶의 모습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 한 가지는 구체성입니다. 청빈을
강론대에서만 외치지 않으시고, 삶으로 직접 보여주십니다.

교황이 되고 나서도 시종일관 가난하게 사시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교황명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로 정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일관되게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80회 생신 때, 고관대작이나 정치인들을 식탁에
초대한 것이 아니라 바티칸 인근 노숙자들과 유기견을
초대하셨습니다. 강론 때도 언제나 청빈의 덕을 크게 강조하십니다.
“부디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십시오.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가난을
저주하는 것이 죄입니다.”

당신의 고국 아르헨티나 신자들이 대규모로 바티칸에서 거행되는
교황 즉위 미사에 참석하려한다는 소식을 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바티칸 주재 아르헨티나 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렇게 부탁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동포들이여! 비싼 돈 들여 저를 보러오지 마시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해주십시오!”

교황 즉위식때 ‘이건 너무 지나치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건도 있었습니다. 교황님 형제 자매들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11살 아래의 여동생 마리아 엘레나가 오빠의 교황 즉위식에
꼭 참석하고 싶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황님께서는 끝끝내
여동생을 가족 대표로 초대하지 않으셨고, 마침내 전화까지 걸어
“절대로 즉위식에 오지마라!”고 말렸습니다.

가난과 관련해 당신의 사제들을 향해서도 일관되게 강조하고
계십니다. “가톨릭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더욱 문턱을 낮추고
사제들은 더욱 마음을 열고 낮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비천한
사람들,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저는 관료나 공무원처럼 행동하는 사제를 원치 않습니다.”

한국을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관심은 아주 지대하고 각별합니다.
“저는 아시아의 평화, 특히 한반도의 평화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곳에서 평화가 회복되고 화해의 정신이 자라나기를 빕니다.”

“한반도 평화를 향해 가는 발걸음이 계속되기를 희망합니다.
남북상호간 협력은 사랑하는 한국민들과 전 세계를 위해 계속 풍성한
결실을 낳을 것입나다.”(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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