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8일 하느님을 알고 전할 수 있는 은혜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7-18 07:33:48    조회 : 241회    댓글: 0

◎ 2018년 나해7월18일 [(녹)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제1독서 이사야 10,5-7.13-16
복음 마태 11,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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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2018년 나해 7월18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예전에 읽은 글입니다. 사마귀는 하루살이를 잡으려고 집중합니다.
사마귀 뒤에는 참새가 있습니다. 참새 뒤에는 매가 있습니다. 매
뒤에는 포수가 있습니다. 다들 앞은 보지만 뒤에 있는 위험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신앙이고, 그것은 지혜이고, 그것은 나눔인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살지만,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하고, 땅에 살지만,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며, 이 세상의 곳간을 채우기보다는 하늘나라의 곳간을
채우는 것입니다. 

태국의 이야기입니다. 학생들과 코치는 동굴에 갔다가, 폭우 때문에
갇혔습니다. 실종된 학생들을 찾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모였습니다.
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전문가들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정부의
노력과 사람들의 염원이 함께 했고, 학생들과 코치가 구조되었습니다.
코치는 학생들에게 힘을 주었고, 학생들은 코치를 믿고 따랐습니다.
어둡고, 두려운 동굴에서 학생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하루에 한
시간씩 명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코치는 수도승이었었기 때문에
명상을 통해서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코치를 믿었기 때문에 명상할 수 있었습니다. 코치는 다른 학생들이
모두 구조된 후, 마지막으로 구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불경에서도 수미산은 겨자씨 안에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겨자씨 이야기를 하십니다. 책을 이만 권이나 읽어서 별명이 이만
권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미산이 겨자씨 안에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스님께 찾아갔다고 합니다. ‘해와 달이 머무는 수미산이
어찌 저렇게 작은 겨자씨 안에 있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당신은 별명이 이만 권인데 어찌 작은 당신의 머리 안에 책이 이만
권이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만 권인 사람은 스님의 말씀을 듣고
겨자씨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반도체 산업이 발전해서 겨자씨보다 작은 공간에 전 세계의 모든 책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경제학자, 수학자, 과학자들은 머리로 해결하려고 하니 신앙의 신비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믿음으로, 사랑으로 바라보면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도, 그분이 십자가를 지신 것도 이해가 됩니다.
모든 분자와 원자들은 우주와 지구의 시작 이후 소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지 형태가 변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겨자씨 안에 수미산이 있다면 하느님 나라가 겨자씨와 같다면 성령의
잉태도, 십자가와 부활도, 동정녀의 잉태도 모두 이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심에 가득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화를 내는 자존심이 가득한 사람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믿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몸으로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이슬람
신자들은 하루에 5번씩 메카를 향해서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가
신앙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저의 부모님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런 믿음을 보고
자란 자녀들은 신앙이 삶의 중심이 됩니다. 두 번째는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믿음의 응답을 잘합니다. 재물의 봉헌은 축복으로
되돌아온다는 믿음의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몸으로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온 마음으로 응답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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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권불십년(權不十年)
 
2018년 나해 7월18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권불십년(權不十年)>

복음: 마태오 11,25-27

중국 온 천하를 최초로 통일시킨 진시황(秦始皇)은 ‘덕은 삼황(三皇)
보다 낫고 공적은 오제(五帝)보다 높다’라고 하여, 삼황오제
(三皇五帝)의 글자를 따서 황제(皇帝)라는 칭호를 최초로 사용한
인물입니다. 자신은 첫 번째 황제이므로 ‘始(처음 시)’를 써서
‘시황제(始皇帝)’라 하였고, 아들을 이세 황제, 그 다음을 삼세 황제라
하여 자자손손 만년토록 권력이 이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기세등등했던 진시황의 왕조는 이세 황세인 호해(胡亥)에
이르러 2대 15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맙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도 10년을 가지
못한다는 말로 권력을 쥐었을 때 사라질 것을 미리 생각하라는
지혜가 담겨있는 말입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이 10년
가기 힘들다는데 보통 권력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권력을 잡으면 그 권력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빠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여 주시지 않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세상 권력도 결국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에 동의하십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예수님께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세금을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나라 땅을
강제로 차지하고 지배하는 나라에 세금을 내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상 권력에 순종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런 예는 바오로 사도나 베드로 사도의 편지에서도 많이 나타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해야하고, 어린 사람은 나이 든 사람에게, 종은 주인에게
순종해야 하며(콜로 3,22; 1베드 2,18 참조) 심지어 자신이 살고 있는
모든 제도에 복종하라고 말합니다(1베드 2,13 참조).

그렇다면 우리가 촛불집회를 했던 것이 잘못되었던 것일까요?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체제에 저항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흑인 독립을 위해 전쟁을 해서는 안 되었던 것일까요?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적어도 순종하여 죄를 짓게 되는
경우라면 분명 권력과 체제에 반항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범죄가
저질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신고만 하면 되는데 하지 않아서 범죄가
저질러진다면 그것을 보고도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도 책임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나를 범죄자로 만드는 집단에서는 그
체제에 저항을 할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해적선에 타서 자신도
똑같은 해적이 되는 상황이라면 그 체제에 저항해야 해적질을 하지
않게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권력을 가진 이들의 의식입니다. 피지배층이
되는 것도 권력층이 되는 것도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권력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즉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모든 권력은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지도자라면 적어도 국민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권력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고 주님께서 가져가실 수 있기에 권력이
10년 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혼내는 ‘아시리아’란 국가가
그런 상황입니다. 아시리아는 하느님을 섬기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지만 당대 가장 강한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혼내야 할
일이 생겨서 하느님께서 아시리아를 강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리아가 자신의 힘을 믿고 날뛰기 때문에 하느님은 이런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마치 몽둥이가 저를 들어 올리는 사람을
휘두르고 막대가 나무도 아닌 사람을 들어 올리려는 것과 같지
않으냐? 그러므로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그 비대한 자들에게 질병을
보내어 야위게 하시리라. 마치 불로 태우듯 그 영화를 불꽃으로 태워
버리시리라.”

아시리아의 멸망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영화와 권력은
하느님께서 원하면 주시고 또 원하실 때 거두어 가실 수 있습니다.
아시리아의 경우처럼 세상의 힘은 그 나라가 합당해서라기보다는
필요하기 때문에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권력이라 생각하면, 적어도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데
사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필요에 의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필요가
없어지면 금방 가져가실 것이 세상 영화이고 권력입니다. 있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고 없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도 이런 경우를 명확히 목격하고 있습니다. 권력이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면 결말은 언제나 좋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모든 권력에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종들에게 착한
주인에게만 순종하려하지 말고 악한 주인에게도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렇게 끝맺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1베드 5,5)

권력이나 힘이나 지위나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안다면
결코 교만해 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 앉든 그 자리에
앉혀주신 분이 원하는 일을 하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권력을
잃었을 때 굴욕을 당하지 않습니다. 항상 아무 힘도 없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힘을 사용한다면 그 힘을 잃었을 때 더 보람된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모는 나이가 들어 힘도 돈도 없을 때를
생각해야하고, 성직자는 가난하고 힘없는 신자가 된 것처럼
살아야하며, 권력자는 다시 한 시민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야합니다.
이런 지혜는 모든 힘은 주님에게서 오고 모든 권력의 주인은
하느님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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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마태 11, 26)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7월18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 26)

철부지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입니다.
오히려 철부지를 통해 우리가 누군지를 알게됩니다.
철부지들도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철부지에게서도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집니다.
철부지들과 언제나 함께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우리모두가 사랑속에 살고 있음을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철부지가 우리의 마음을 닦아줍니다.

철부지의 어리석음으로 우리의 어리석음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서로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볼 수 있는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작고도 단순한 삶의 기쁨을 철부지들에게 배우는 행복한 날 되십시오.
즐겁고 신나는 철부지의 새날 되십시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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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쉼 없는 기도 : 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7월 18일 수요일
 
쉼 없는 기도

오늘은 “쉼 없는 기도”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말씀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017년 북한에 2년 7개월 동안 억류되어 종신노동교화 형에 처했다가
풀려난 임현수 목사님이 계십니다. 추운 겨울 12월에 수감되자마자
목사님은 얼어붙은 땅을 깨고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는 중노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 발가락 10개가 다 새카맣게 동상에 걸려 다시 회복할
때까지 참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임현수 목사님은 석방되기 15분전에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캐나다의
총리가 자신의 전용비행기 2대와 함께 특사를 북한에 보내 직접
목사님을 석방시켜 준 것입니다.

임 목사님은 “일을 하는 동안 참 쉼 없이 기도를 했습니다. 어려운
순간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이겨낼 힘을 주시고 낙담과 분개의
시간이 있었지만 이는 곧 회개와 환희와 감사와 평안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낙담과 분노의 순간이 와도 하나님께 기도를
쉬지 말고 하므로 낙심의 시간을 평안의 시간으로 평안의 시간을
고요의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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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하느님의 철부지가 되어야 한다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7월18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마태11,25-27)

하느님의 철부지가 되어야

예수님의 가르침이 당시에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배척을 당하였습니다. 소위 잘나고 똑똑한 내로라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최고였기 때문에 주님의 가르침이 들어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철부지들에게는 받아들여졌습니다. 그야말로
촌놈들, 상것들, 별 볼일 없는 못난이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단순함이 있었고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겸손이 있었기에 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그것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일찍이 노자는 “알면서도 모르는 게 으뜸이요, 모르면서
아는 게 병통”이라고 하였습니다. 

때 묻지 않은 철부지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철부지들의 특징은 의탁입니다. 철이 없고 세상 물정을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보호자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함께야). 그들은
그야말로 잔머리를 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단순한 사람을
미덥게 여기십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보호가 절실한 이들이고
우리는 하느님의 철부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이 결코
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물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리키며 친숙해 지는 것, 그리고 감정을 이해하며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결국 알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남녀가 결혼을 통해 가장 깊이 만나는 것을‘안다’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안다고 하는 것은 당신의
사랑으로 충만히 채워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눈이 맑아져서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고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마태11,27). 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과 하느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그
아버지에 관해서 아들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고 그분이 알려준 아버지를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분을 알리기 위해서 그분을 알아야 하는데 그 첫
자세가 “어린이와 같이”(마르10,15)단순한 마음으로 온전히 의탁하며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단순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뜻을 더욱 잘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전할 수 있는 은혜가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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