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9일 연중 제17주일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7-29 06:27:30    조회 : 237회    댓글: 0
2018년 7월 29일 연중 제1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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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2열왕 4,42-44

그 무렵 42 어떤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왔다. 그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자루에 담아,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져왔다.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하고 일렀다. 43 그러나 그의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44 그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놓으니,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제2독서 에페 4,1-6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복음 요한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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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께서 부부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물어보십니다. 저는 부부간에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셨는지를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말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제게 어떻게 말할지 뻔하니까요.”라고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반응을 미리 예측을 하니 대화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예측이 꼭 맞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 아예 대화를 하기 싫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대방을 지례짐작으로만 예측하고 있으면 절대로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즉, 상대방의 다양함을 인정해야 그의 말과 행동에 집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주님에 대해서도 이렇게 지례짐작을 하면서 뻔한 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을 거야. 저렇게 죄를 많이 짓는 사람은 분명히 벌하실 거야. 주님께서는 나만 미워하셔....’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작고 편협한 생각을 뛰어넘어서 다양하고도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불가능한 것이 전혀 없으시며, 믿기만 한다면 주님의 무한한 사랑을 매순간 느끼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들이 잊지 말고 따라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서 따라옵니다(요한 6,2 참조). 주님께서 따라오라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따라온 것입니다. 이는 곧 주님께서 그들의 의식주를 굳이 해결해줄 필요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어떤 의도이든 당신을 따라오는 사람들을 소홀히 하지 않으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요한 6,5)라고 필립보에게 물으시지요. 굳이 저들에게 먹을 것을 줄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더군다나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어치의 빵으로도 부족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바로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한 전지전능하신 분이기에 그분께 철저히 맡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뻔한 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봉헌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잡습니다. 바로 모두가 함께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주님의 감사기도입니다. 아직 기적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감사기도를 바치십니다. 즉, 감사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요한 6,12)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께 주신 것을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임금으로 삼으려는 군중을 피해서 주님께서는 산으로 물러가십니다. 어떤 행동에 대해 보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바라고 있으며, 또 많은 것을 실제로 주님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정성이 담긴 봉헌을 하고 있습니까? 아무런 봉헌 없이 얻으려고만 하는 욕심과 이기심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요? 나의 이웃들과는 함께 한 마음이 되었나요? 혹시 친한 사람들과만 함께 하는 것은 아닌지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감사기도는 하고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면서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닐까요? 혹시 사람들에게 보답 받고 인정받으려는 마음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에페 4,4.5)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주님과 하나를 이루는데 더 큰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오늘 복음을 통해 보여주신 그 과정을 그대로 따라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과 이웃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모습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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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귀로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머리로는 남의 행복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훌륭한 사람이다(유일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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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목정성지, 신나무골성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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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지난 월요일부터 어제까지 저는 우리나라의 성지를 순례했습니다. 솔직히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번에는 가급적이면 많은 성지를 다니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한 성지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어떤 성지에서는 주차할 곳이 없어서 불법주차를 하고서는 얼른 성지에 가서 사진 찍고 스탬프 찍고서 그냥 나온 경우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성지순례의 장소인 상주 신앙고백비를 보고서는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비는 자연석 기단 위에 세워진 십자형 돌비석으로 한국교회의 유일한 신앙고백비라고 합니다. 김삼록 도미니코 증거자가 천주교에 대한 정부의 공격이 강하던 병인박해 때, 박해를 피해 유랑생활을 하다가 박해가 잦아들자 고향으로 돌아와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 비를 세웠다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는 천주님을 두려움(마음)으로 모신다.
둘째는 교황님을 받들어 모신다.
셋째는 주교님을 받들어 모신다.
넷째는 신부님을 받들어 모신다.
다섯째는 신자들(교우)을 받들어 모신다.

우리는 지금 신앙인이라고 말을 하면서 과연 신앙 고백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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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순교성지, 상주신앙고백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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