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5일 생명의 빵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만납니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8-05 07:12:13    조회 : 229회    댓글: 0

※ 2018년 나해 8월5일 [(녹) 연중 제18주일]

제1독서 탈출 16,2-4.12-15
제2독서 에페 4,17.20-24
복음 요한 6,24-35

**********
◈ [서울] 연중 제18주일

2018년 나해 8월5일 연중 제18주일

처음 본당 신부가 되었을 때의 기억입니다. 교우들을 위해서 매주
약수터로 가서 물을 떠 왔습니다. 주일날 교우들이 제가 떠온 물을
마시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일 미사를 마치면 주보 정리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했습니다. 깨끗해진 성당과 화장실을 보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설날, 추석이면 성당 봉고차를 몰고 차량운행을
하였습니다. 본당 신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성당에 오시는 교우들은
고마워하셨고, 그분들을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낚시해서 잡은 붕어는 약을 내려서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에게
드렸습니다. 어르신들이 아들보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시면 그것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봉사하기보다는 봉사를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위로하기보다는 위로받는 때가 많았습니다. 이해하기보다는 이해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처럼 말로만
하느님을 찬미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자리에 앉을 때면 늘 상석에
앉도록 배려 해 주셨습니다. 어딜 가면 차량 봉사하시는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식당에 가면 늘 제가 먹고 싶은 것을 먼저 주문해
주셨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섬김을 받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오늘의 성서 말씀을
통해서 한번 알아보았으면 합니다. 한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인간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약속된 땅에 이르자면, 즉 성숙한
자유로운 신앙인이 되려면 극복해야 할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파라오의 정치적 권력이나 거짓된 마술사 같은 사기꾼들 그리고 물과
바다와 같은 자연의 재난, 인생의 사막과 광야를 건너는 동안 겪게
되는 뜨거운 열기와 뱀 그리고 갈증과 허기, 또는 이방인들로부터의
학대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이와 같은 외적인
요인이 아니라, 오늘 모세가 겪는 것과 같이 우리의 내부에서 오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불평입니다. 백성들을 구원의 땅으로 인도하던
모세는 자기 백성의 저항에 부딪혔고, 광야를 통과하는 동안 하느님께
반항하며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야훼의 손에 죽느니만 못하다.
너희는 거기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우리를 이
광야에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이냐?” 하는 불평이 모세와
아론에게 쏟아집니다. 그러나 야훼 하느님은 신비스러운 음식인
만나를 내려 주심으로써, 당신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항상
함께하심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기는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영광스러운 예수의 변모를 보고 초가집 짓고 한평생 살자고
했다가 혼쭐이 났습니다.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조르다가 창피만 당했습니다. 가리웃
사람 유다는 잿밥에 눈이 어두워 그만 스승 예수를 팔아넘기기도
했습니다.

사제들 모임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한 여행사에서 유람선
여행 설명을 들어주면 점심을 제공한다고 했습니다. 설명도 듣고,
맛있는 점심도 먹을 수 있다기에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사
직원은 회원 가입을 권유했습니다. 매달 일정 금액을 입금하면
목돈이 되어서 유람선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명은 가입해야 할 것 같아서 회원 가입을 했습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었습니다. 어르신들만 선물을 받고 고가의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길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진리가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듣고
배웠다면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잿밥보다는 염불에 관심을 가지는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 시간과 정열을
투자하기보다는 영원히 썩지 않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의
시간과 정열을 바쳐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랑의 상처의 가장 완벽한 치료법

2018년 나해 8월5일 연중 제18주일

<사랑의 상처의 가장 완벽한 치료법>

복음:요한 6,24-35

‘로마의 휴일’로 순식간에 전 세계의 가장 사랑받는 스타가 된 오드리
헵번은 사실 두 번의 결혼을 모두 실패한 매우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나이도 많고 별로 유명하지도 않았던 배우 멜 페러란
사람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남편의 재기를 위해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남편을 위한 배역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자신 주연의
영화 상대 주인공으로 남편을 추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유명세 때문에 자신이 가려진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남편의 촬영장에 나타나 허드렛일을 하며 남편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흥행 보증수표였던 그녀는 남편이 출연하는 별로 인기도 없는
영화에 동반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하게 합니다. 물론 남편이 연출한
형편없는 영화에 함께 출연하여 최초로 흥행에 참패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겐 오래 전부터 다른 여인이 있었습니다. 오드리 햅번은
남편의 불륜 현장을 목격했음에도 이혼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임신을 하여 남편을 잡아두려 했지만 남편이 자녀를 원하지도 않고
결국 영화 찍다가 낙마하여 유산되고 맙니다. 그런 아내를 돌보지도
않고 오직 돈과 재산만을 바라는 남편과의 결혼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어 14년 만에 이혼하고 맙니다.

둘째 남편은 이탈리아 의사였습니다. 그녀는 여행 중 우연히 만난 그
사람과 또 사랑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남자도
역시 바람둥이였습니다. 남편의 바람피우는 현장을 신문에서 보고야
알게 됩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던 오드리 헵번의
결혼생활은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왜 그녀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원만치 못했던 것일까요? 바람둥이만
남편으로 맞아들였던 것일까요? 남편들의 책임도 있겠지만 오드리
헵번 역시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녀에겐
‘배고픔’이란 게 있었습니다.

그녀가 7살 되던 해 아버지가 가정부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딸에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지옥 같은 일이라며 집을 나가버립니다. 그 이후로 오드리
헵번은 아버지를 만나지 못합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아버지의 사랑에
목말라하고 배고파했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것이 피해의식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의식을 타인을 통해 채우려하게 됩니다.

이렇게 배고프고 목이 마르니 남자를 만날 때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자들도 자신들을 통해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려는 오드리 헵번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보이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 이용당하는 것을
느끼는데도 사랑이 생겨나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어렸을 때부터 크고 작은 이런 상처들을 받고 자라옵니다.
대부분은 부모에게서 받습니다. 가장 사랑도 많이 받지만 가장 상처도
많이 받는 대상이 부모입니다.

이 상처는 ‘배고픔’과 같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느낌입니다. 어릴 적
배고플 때 먹지 못하면 상처가 됩니다. 그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는
성장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려 살아갑니다. 몸만
어른이지 배고픈 아이가 그 사람의 주인인 것입니다. 

어렸을 때 받았던 사랑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어른이 되면 자신의
힘으로 치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을 이용해 내 배를 채우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배고픔을 채워주며 저절로 치유되는
방식입니다. 전자는 폭력으로 타인을 이용해 치유하려는 방식이고,
후자는 사랑을 하면서 과거의 상처받은 아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방식입니다. 

히틀러는 가정부였던 자신의 어머니와 유태인 주인과의 불륜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 상처를 모든 유태인을 가두고 죽이는 데서 치유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치유가 아닌 가학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많은 피해를 받지만 정작 더 피해를 받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사랑은 사랑으로만 치유될 수 있는데 그 사랑받지 못한
원망만 치유한다고 그 상처가 치유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강요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복한다고 그 빈 공간이
채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비틀즈의 명곡 ‘헤이 주드(Hey Jude)’는 폴 매카트니의 자작곡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같은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논의 아들 줄리안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폴 매카트니가 존 레논이 좋아해서 그의
아들에게 이 노래를 만들어준 것은 아닙니다. 당시 존 레논은 아내와
아들을 버리고 외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에 아빠를 찾는
아이가 불쌍해 힘을 주기 위해 만든 곡입니다.

폴 매카트니도 어렸을 때 어머니를 일찍 여읜 상처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 없이 사는 고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줄리안에게 존 레논의 빈자리를 채워주려 했지만 아버지를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슬픈 현실을 밝은 미래로 바꾸어보자는
희망찬 노래를 써서 선물하게 된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이 있습니다. 이 빵은 우리 모든 배고픔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랑 자체이십니다. 그런데 사랑은 내어주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사랑인데 빵인 것입니다. 빵은 타인의 배를 채워줄 수
있는 무엇입니다. 사랑은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보다는 타인의 배를
채워줌으로써 사랑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원히 목마르고 영원히 배고플
것이라고 하십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영락없이 또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주시며 서로 사랑하라는 계약을
갱신하십니다. 그래서 성찬례 때 예수님의 피를 ‘계약의 피’라고 하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면 내어주어야 합니다. 내어주는 게 사랑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내어줄 때에만 배고픔이 진정으로 사라지고
목마름이 진정으로 가셔집니다. 전쟁터에 나가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총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랑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겐
사랑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두 번의 결혼 실패 후 7년 간 자취를 감춥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는데 아프리카와 같은 오지에서 유니세프
자선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가 사망하자 전 세계가 세상을 윤택하게 한
가장 사랑받을만한 여인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슬퍼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에 사랑을 함으로써 자신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완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상처는 사랑하면 다 사라집니다. 물이
부족했던 땅에 수로가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수로가 지나가는 주위
땅이 메마를 수 없습니다. 사랑 하려고 하면 결코 배고프거나
목마르는 일은 없습니다. 사랑에 담겨지기 때문이고 사랑이 나를
통해 이웃에게 가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양식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전해주려고 할 때 내 안에 가득 차게 됩니다. 사랑하려는
사람만이 모든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모든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면 사랑의 통로가 됩니다. 빵을 내려주는 사람이
됩니다. 구약의 모세가 되고 신약의 예수님이 됩니다. 그러면 비로소
사랑받게 됩니다. 사랑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 [수도회] 성체성사의 결론, 동료 인간이 겪는 고통에 대한 작은
관심과 배려!
 
2018년 나해 8월5일 연중 제18주일

성체성사의 결론, 동료 인간이 겪는 고통에 대한 작은 관심과 배려!

요즘 몇몇 수녀원 현관에서 제 두 눈으로 확인한 특별한 광경이 하나
있습니다. 몇몇 아파트 단지에서도 같은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혹서에 고생하시는 택배기사님들이나 우편집배원님들 위한
배려입니다. 시원한 물이나 음료수를 편안히 드시거나 가져갈수
있도록 작은 공간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친절히 안내문까지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무더위에 얼마나 고생 많으세요? 시원한 음료 한잔 하시고 힘내세요.
오늘도 안전 운전하시길 기도합니다.”

지극히 작은 배려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 동료 인간을 향한
정성과 배려, 따뜻한 마음이 참으로 돋보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불볕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죽을 고생을 하고 계시는
경비 어르신들을 위해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경비 초소에
에어컨을 달아드렸답니다. 무더위를 한번에 씻게 하는 산들바람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한 인간을 참으로 기쁘게 하고 살맛나게 하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동료 인간이 겪는 고통에 대한
작은 관심과 배려, 작은 연민의 마음, 작은 친절이 한 인간을 춤추게
만들고,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성인(聖人)들의 생애도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인간들을 향한 따뜻한 동료애, 동지애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발휘했던 사람들이 성인들이었습니다.

성인들은 균형을 잃고 살아가는 동료 인간들을 위해 본인 스스로
균형 잡힌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동료 인간들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깃들게 하기 위해 우리보다 좀 더 탁월한
유머감각을 지녔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보다 좀 더 큰 연민의 마음과
관대한 마음을 소유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동료 인간 안에 깃들어 계시는 주님 현존의
자취를 발견하고자 노력합니까? 우리가 매일 만나는 이웃들 역시
나와 함께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빵을 먹고 구원되어야 하는
소중한 존재로 여기고 있습니까? 그 동료 인간들의 삶이 활짝
꽃피어나도록, 그 동료 인간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도록 배려하고 동반하고 있습니까?

이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동료 인간들을 위해 하신 가장 위대한 업적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빵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한번만 주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굶주리지 않도록
무한리필 생명의 선물로 주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복음 6장 35절)

우리는, 우리 공동체는 예수님의 권고에 따라, 매일, 그것이 아니라면,
자주 생명의 빵을 정성껏 모시고 있습니까? 매 미사에 우리 안에
쪼개지고 나눠지는 성체는 우리를 참으로 인간답게 살게하는
에너지원이 되고 있습니까? 성체를 영한 우리 공동체는 성체의
진정한 의미인 나눔과 배려, 공유와 희생을 잘 실천하고 있습니까?

성체성사의 핵심 정신이요 영성인 사랑과 자비, 친교와 환대가 우리
매일의 삶속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을 때, 우리의
성찬례는 전례요 예식으로만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 [수도회]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 35)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8월5일 연중 제18주일.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 35)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생명의 빵을 만나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이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습니다.
생명이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생명의 빵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생명의 빵은 사랑으로 우리를 살게 하십니다.

생명의 빵은 내려옴으로 용서를 이끌어 내십니다.
생명의 빵은 우리를 한 없이 기다려 주십니다.
생명의 빵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당신 생명을 온전히 바치십니다.
생명의 빵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만납니다.
생명의 빵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갑니다.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생명이 오늘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 빵으로 오십니다.
썩어 없어질 욕심을 내려놓고 영원한 생명을 기쁘게 받아 먹습니다.
생명의 빵이 우리의 배고픔과 우리의 목마름을
영원한 기쁨으로 채워주고 계심을 진심으로 믿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