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0일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8-10 07:04:33    조회 : 246회    댓글: 0

※ 2018년 나해 8월10일 금. [(홍)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9,6ㄴ-10

복음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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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2018년 나해 8월10일 금.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서울 교구에는 외국에서 온 신학생들이 있습니다. 신학생들은
‘레뎀또리스 마테르(구세주의 어머니)’라는 이름의 신학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남미, 유럽, 아시아에서 온 학생들입니다.
젊은이들이 모였을 때 제비를 뽑았고, 한국으로 정해진 젊은이들이
왔다고 합니다. 말을 배우는 것도 힘들고,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고, 제비에 뽑혀서 왔다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힘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모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미를 드리며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
같았습니다. 신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선포하고,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생각이
변하였기에, 좋아하는 일이기에 가족들을 떠나서 멀리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1982년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교에는 내규가 있었고,
신학생들은 내규를 지켜야 했습니다. 외출이 허락되는 날이
있었습니다. 침묵을 지켜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침기도, 미사,
양심 성찰, 묵주기도, 저녁기도, 끝기도가 있었습니다.
즐거워하기보다는 의무감으로 했습니다. 학기 중에는 잘 지켰지만,
방학 중에는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몸은 규칙을 지키지만, 생각과
마음이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좋아하고, 성서를 읽는
것을 좋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았다면 학교의 내규는 저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영적으로 성장시키는 은총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서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의무감으로 돌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습니다. 부부는 의무감으로 살아서는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참아 줄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의무감으로 한다면 날개는 있지만, 새장에 갇혀서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새와 같을 것입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 같지만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연필의 영성’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연필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연필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 역시 우리 스스로 무엇인가를
내세우기보다는 하느님께 먼저 의지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연필은
깎여야 하고, 조금씩 없어지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희생과 봉사를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필은 겉모습보다는 연필심이 중요합니다. 결국,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연필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겉모습을 꾸미기보다는
우리들의 마음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연필은 잘못 쓰면 지울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과정에서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이웃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필로 쓴 것은 지울 수 있지만, 흔적은 남게 됩니다. 우리도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흔적이 남게 됩니다. 그러기에 더욱더 신중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작은 연필도 자세히 보면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있어야 가뭄도 견디고, 바람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집도 기둥이 있어야만 오랜 세월 지탱할 수 있습니다. 나무의 뿌리와
같은 사람, 건물의 기둥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봉사자들입니다. 예비 신학생들의 여름 행사에 봉사자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간식을 준비해 주시고, 방문해 주시는 성소 후원회
임원들이 있습니다. 후배가 될 학생들을 위해서 땀을 흘리는
신학생들이 있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도 많은 봉사자를 보았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 분, 삼계탕을 끓이는 분,
어르신들 간식으로 전을 부치는 분, 수박을 나르는 분, 사진을 찍는
분, 고기를 굽는 분,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저는
겉으로 드러난 꽃이라면 봉사자들은 어둠 속에서 양분을 찾는 뿌리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라우렌시오 부제도 바로 그런 봉사자였습니다.
더운 여름을 식혀주는 소나기처럼, 우리는 모두 주님을 위한 봉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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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기쁘게 죽는 밀알이 존중 받는다

2018년 나해 8월10일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기쁘게 죽는 밀알이 존중 받는다>

복음:요한 12,24-26

저의 어머니는 부산에서 자라셨습니다. 결혼해서는 경기도에서
사셨습니다. 얼마 전에 어머니가 부산에 가고 싶다고 해서 지인들
몇과 함께 일박이일 동안 부산여행을 하였습니다. 반 년 전에도 같은
멤버들과 똑 같은 코스로 여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해운대, 수영, 용두산 공원, 자갈치 시장, 시간이 되면 용호동까지
같은 코스로 가기를 원하십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자랐던 곳에 계속
가고 싶으시겠지만 같은 지인들을 계속 데리고 가는 저는 그들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반년 전에 갔던 곳 또 가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어머니 듣는 데서 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공치사한다고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반 년 전
겨울에도 마지막에 제가 공치사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여행
내내 어머니를 위해 내가 무언가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마지막엔
공치사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독서엔 바오로 사도가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합니다.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게
되면 자신이 희생한다고 생각하여 그 시간도 행복하지 못하고
공치사까지 하게 됩니다. 주는 것이 기뻐야합니다. 기쁘려면 주면서도
즐겨야합니다. 나를 위해 준다고 생각해야지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의롭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받았으면 받은 만큼 갚아야하는 게 의로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께 받은 은혜를 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갚아야할까요?
필요한 이들에게 갚아야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목숨을
내어주시며 우리도 이웃들에게 목숨을 내어주라 하십니다. 목숨을
내어주되 즐겁게 내어주어야 의로운 사람입니다. 

며칠 전에 2박3일 동안 아는 아이들과 물놀이를 다녀왔습니다.
이번엔 아이들에게 무언가 해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즐겨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물에서 7시간 놀았더니
몸살이 걸렸습니다. 사진을 보니 아이들보다 제가 더 즐거워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몸은 좀 안 좋아졌지만 제 자신에게 참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여행을
마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드님이 가난한 우리들에게 당신의 목숨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으니
우리도 기쁘게 내어주어야 합니다. 기쁘게 내어주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으로 아버지께 존중받게 됩니다. 

수단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던 샘 칠더스라는 미국 목사님이 기관총을
들고 반군들과 10년 이상을 싸워 천여 명의 아이들을 구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 수단은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심할 때였는데
반군들이 고아원의 아이들을 마구 잡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폭탄 자살 테러용이나 소년병사로 훈련시키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일일이 아이들을 찾아다니느니 고아원을 습격하는
것이 용이했던 것입니다.

샘 칠더스 목사는 자신도 어둠의 세계에서 자랐고 마약밀매와
조직생활을 거쳐 감옥살이를 한 뒤 이제야 방황을 그치고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수단으로 건너온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보다 더 못한 전쟁 병기들로 사용되는 것을 눈뜨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수단 정부, 심지어 미국 정부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도움을 청하러 갔을 때, 또 다시
들이닥친 반군들이 고아원 운영을 돌보던 사람들을 죽이고 아이들을
데려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목사는 더 이상 어찌 할 방법이 없어서 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부군에 합류하여 많은 아이들을 구해내었고 지금은 3백여 명의
아이들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군들은 그 목사의 아이들을
건드렸다가는 어떻게 되는 지 잘 알기 때문에 더 이상 그 곳은 넘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샘 칠더스 목사가 운영하는 고아원은
수단에서도 가장 안전한 곳이 된 것입니다. 기관총 목사로 불리는 샘
칠더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총을 든 내 행위가 죄악이라면, 나는 죽어서 당당히
지옥에 가겠다.”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이라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되 기쁘게 미워해야합니다. 기쁘게
희생할 수 있어야합니다. 폭력은 분명 안 좋은 것이지만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총을 든 목사의 행동에
누구도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을 줄 알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도 그를 존중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으로 그리스도처럼 ‘기쁘게’ 목숨을
내어놓는 이를 존중해주십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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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8월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복음: 요한 12,24-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

로마의 일곱 부제 중의 한 분이신 성 라우렌시오(+258)는 교황
식스또 2세의 부제였다. 성인이 모시던 교황께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성인은 매우 슬퍼하였다. 이 모습을 본 교황은 라우렌시오 역시
삼일 안으로 당신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라우렌시오는
사형을 당할 때 석쇠 위에서 불에 태워져 순교하셨다.

그분의 일화 중에 석쇠 위에 누워서 한참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제 한 쪽이 알맞게 익었으니 뒤집어 놓게!” 하셨다고 한다.
이 성인의 순교를 통하여 로마가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고, 로마에서
이교 신앙이 종말을 고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의 문장은 석쇠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24절)고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자신이
없어져야 한다. 여기서는 죽는 것으로 표현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모두 없어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죽는다는
표현은 지금까지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모두 버린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거기에서 풍성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없이하는 것은 새로운 모습의 나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25절)라고 하신다.

복음에서 죽는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을 죽이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신앙인이기 때문에 대
사회적으로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그리고 나의 이웃을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많은 경우에 나 자신을,
나의 의지를, 나의 고집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묵은 나를,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여 세상의 뜻을 따라가는
나를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조류를
역행하는, 거슬러 사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어렵고 되지 않는 것은 내가 세상을 거슬러 살고 또 거기에
죽는 것을 견뎌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우리는 첫 발을
내딛기를 망설이고, 과감히 내딛지를 못하기 때문에 항상 제자리에
서있는 경우가 많다. 신앙인이든 다른 사회에서나 내가 여기에 멈추어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있겠으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뒤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공동체의
일치의 대열에서 스스로를 이탈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26절)라고 하신다. 나를 죽이는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영광을 하느님 안에 있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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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8월10일 금.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

하느님안에 있는 죽음과 생명입니다.
집착과 미련으로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놓아주어야 할 하느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모든 것을 다시 얻을 수 있습니다.
죽어야 다시 깨어날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 더 풍요로일 수 있는
우리 생명의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생명은 부여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생명입니다.
죽는 밀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삶과 죽음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하느님의 것이며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죽는 밀알의 모습에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다시금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죽어야 살고 죽어야 진짜 생명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죽음이 생명이고 생명이 죽음이듯
죽음없이는 결코 열매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집착과 미련을 내려놓읍시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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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말씀의 손전등

2018년 8월10일 금요일

오늘은 “말씀의 손전등”이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 말씀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성경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십니까?

하나님 말씀을 절대 신뢰하는 석유 회사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출애굽기 2장을 읽다가 어린 모세를 역청을 바른
갈대 상자에 넣었다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역청은 굳은 상태의 석유라는 것을 알았던 이 직원은 그 장소를
조사했고 드디어 석유를 발굴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세계적인
석유 기업이 된 회사가 스탠더드 오일 회사입니다.

시편 119편 가운데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참된
인도자가 되심을 은유적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어두운 밤길 손전등 하나만 있어도 얼마나 환합니까? 우리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등과 빛이 되는 말씀이 없으면
인생길의 앞을 전혀 볼 수 없어 방황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운 인생길에 넘어져 있다면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비추어 다시 일어서서 새롭게 시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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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8월10일 금.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요한12,24-26)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적게 뿌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2고린9,6).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소유한 것이
무엇이든지 하느님 앞에 씨를 뿌려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탈랜트, 시간을, 능력, 재능을, 물질을, 믿음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몇 갑절로 늘려 주셔서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데
어찌 열매가 풍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의 밀알을 심는 것은 열매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원하면 그만한 정성과 사랑으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밀알이 땅속에 묻히면 죽어서 싹을 틔우게 됩니다. 만약에
씨앗이 땅속에 묻히길 거절한다면 아마도 새한테 먹히거나 짐승한테
밟혀 으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묻혀야 합니다. 밀알이
땅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어짐을 뜻하지 않고 생명을 낳기 위하여
뿌리를 내림을 뜻합니다. 사실 죽는다는 것은 곧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얻기를 원하는 만큼 심어야 합니다. 얻기를 원하는
만큼 죽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예수님의 죽음은 생명을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진정한 생명을 위하여
감당한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그리고 더 높은 가치 때문에 지상의 생명을 거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과 그분의 나라 때문에 지상의 매력에 집착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삶 안에서 이웃을 위하여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 생명의 기쁨이 더해집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12,2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하고
결국 그리하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함께해 주시고 또
영광스럽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감당하고 있는
모든 일상의 삶을 기왕이면 밀알의 삶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순명으로 하면 주님의 일이 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내일일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랑하면 ‘내 나라’가 만들어지고,
예수님처럼 사랑하면 ‘예수님의 나라’가 만들어집니다. 사실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기억하는 라우렌시오 성인은 “로마 교회의 부제직을 수행하고
거기에서 거룩한 피의 봉사자로 일하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성 아우구스띠노). 그는 모진 박해를 예상하고
교회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으며 총독에게 “나는
주 하느님을 경배하며 그분만을 섬기니, 네 잔인한 고초를 두려워하지
않는도다.”하며 믿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총독이
라우렌시오를 불타고 있는 장작더미 위에 눕혔는데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후 "모든 것이 잘 구워졌으니, 뒤집어서 잡수시오!" 하고
말했답니다. 바로 그 믿음의 씨앗이 오늘 우리에게 신앙의 열매로
주어진 것입니다. 과연 “순교자의 피는 믿음의 씨앗입니다”
(성 예로니모).

일상 안에서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상대를 위한 배려를
하다가 그만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젠 당신도 바뀔 때가
되었지 않느냐! 이제는 철이 들 때가 되었지 않느냐! 왜 나만
양보해야 하느냐! 이제는 당신차례야!”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된다는 것은 남에게 미뤄야 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묻혀 썩어야지 남이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한12,24). 그렇다면 열매를 맺고 안 맺고는 나의 죽음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차례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할 만큼 했다고 생색을 내지 말고 끝까지
항구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해 주시는
그날까지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최선에 최선을 다하는
기쁨을 차지해야 합니다.

지금은 미약하게 보일 지라도 풍성하게 해 주시는 주님을 믿고 밀알의
두려움을 극복하십시오.“하느님은 당신의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필리2,13). 그러므로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2코린 6,1).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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