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2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8-12 07:52:06    조회 : 230회    댓글: 0

※ 2018년 나해 8월12일 [(녹) 연중 제19주일]

제1독서 2열왕 19,4-8
제2독서 에페 4,30─5,2
복음 요한 6,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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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19주일

2018년 나해 8월12일 연중 제19주일

대통령께서 여름 휴가를 지내면서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국수,
소년이 온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를 읽는다고
합니다. 책 한 권에는 30년의 삶이 묻어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90년의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운 여름입니다. 산과 바다로 휴가를
가는 것도 좋습니다.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는 것도 좋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도 더위를
피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홍익히의 세 종교 이야기,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 조지캡벨의 신화의
힘”입니다. 저도 90년의 삶을 사는 것이겠지요. 

세 종교 이야기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평화, 사랑을 이야기하는 종교
이야기입니다. 인류의 복지, 법률, 문학의 시작이 이들 종교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역사의 역사는 우리보다 앞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는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역사는
해석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이야기합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류는 어디로 갈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화의 힘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다른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화는
나약한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고, 윤리적인 체계를 만들고, 우주적인
시각을 가지며, 영원한 삶을 꿈꾸게 합니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면 매년 360년을 더 사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육체적으로 우리는 늙고, 병들고, 죽게 돼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만 굶어도 육체적으로 배고픔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우리의 육체가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다고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빵과 영원한 생명은 무슨 의미일까요? 가치의
시간이며, 의미의 시간입니다. 시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면 천년도 하루와 같습니다.” 이것은 의미와 가치의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자는 군자의 3가지 기쁨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형제들이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들을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빵으로
채울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이는 오래 사는 것으로 얻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아는 즐거움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즐거움입니다. 그런 사람은 순간을 살아도 영원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빵으로 채울 수 없는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삶의 가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빵으로 채울 수 없는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원한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하느님의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았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25살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성인이 되셨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자신을
하느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바쳤던 이태석 요한 신부님은 48세로 삶을
마쳤지만 역시 영원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가치와 의미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 안에서 산다면 우리는 이미 이곳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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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영혼이 없다면 사랑이 왜
필요한가?

2018년 나해 8월12일 연중 제19주일

<영혼이 없다면 사랑이 왜 필요한가?>

복음: 요한 6,41-51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많은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현대에서도 영혼을
증명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특별히 ‘임사체험’을 통해서였습니다.
임사체험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을 말합니다.

‘서프라이즈 –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에서는 한 중요한 임사 실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998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의료기관에서
임사체험과 사후세계에 대한 서로 반대 입장을 가진 두 단체가 모여
실제로 환자를 대상으로 임사체험 실험을 하였습니다.

팜 레이놀즈라는 작사가 겸 가수가 임사체험 실험대상이 되었는데
그녀는 오랫동안 동맥경화를 앓아왔으며 심실정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실정지 수술이란 환자를 저체온상태로
만들어서 일시적으로 사망상태로 만들고 머리에서 혈액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하는 수술입니다.

수술이 시작되었고 그녀를 저체온 상태로 떨어뜨려서 팜 레이놀즈의
심장박동과 호흡이 정지되었고 뇌파도 정지되어 그녀는 완벽히
의학적으로 사망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녀가 의학적 사망한
상태에서 수술이 진행되었고 나중에 수술이 모두 끝난 뒤 다시 깨어난
팜 레이놀즈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놀라운 증언을 하였습니다.

팜 레이놀즈는 “나는 내가 죽어있는 동안 내 영혼이 살아서 내가 수술
받는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다.”고 말해 모든 연구진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수술을 받는 과정과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의 움직임을 똑똑히 보았고 나를 수술하는 의료기구들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놀랍게도 팜 레이놀즈는 그녀가 사망한 상태에서 이뤄진 모든
수술과정을 지켜보았고 전 과정을 기억해낸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의
존재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사실입니다. 또한 그녀는
의료진이 자신의 두개골을 절개하는 모습과 의료진들의 배치,
수술기구들의 종류, 또한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수술도구나 세세한
집기들의 위치까지도 정확하게 설명하였습니다.

나중에 실험참가자들이 수술실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화면을 확인해본
결과 팜 레이놀즈가 보았다고 설명한 모든 것들이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즉, 팜 레이놀즈는 의학적으로 사망한
상태에서도 그녀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현상들을 목격한 것이며
이것은 그녀의 영혼의 존재를 빼놓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영화배우 에스트라다, 샤론 스톤, 엘리자베스 테일러, 가수 팜
레이놀즈는 자신들이 명백히 사후세계를 목격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고 현재 미국에서는 영혼을 연구하는 교과가 100개 이상
의과대학에 개설되었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는 영혼치료에 관한
의과대학 전공서도 출간되었습니다. 

이렇듯 과학이 발달할수록 이전에 믿어오던 믿음들이 거짓이 아님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믿지 않으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영혼의 존재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또한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빵은
음식이고 음식을 먹으면 에너지로 바뀝니다. 즉 당신은 에너지를
주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에너지는 어떤 생명을 내 안에 먹었을 때 그 생명이 죽음으로써
생깁니다. 돼지고기를 먹으면 그 죽은 돼지의 생명이 내 안에서
에너지가 되어 나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빵은 육체에 에너지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가 아니면 그럼
어디에 필요한 에너지일까요? 

중국 전통의학에 따르면 사람에게 영혼이 존재하는데 영혼(魂-혼)은
하늘에서 오며 양(陽)에 속하고 주로 정신감각을 주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넋(魄-백)은 땅에서 나오며 음(陰)에 속하며 사람의 신체를
주재합니다. 이는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인간인데,
영혼은 하늘에서 온 것이고, 육체의 고향은 땅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두 차원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는
육체를 유지시키기 위해 땅에서 나는 생명으로 채워지는 에너지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에너지로 영혼의 에너지인 것입니다.

하늘에서 오는 에너지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늘에서 오는 빵은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니 영혼의 에너지는 사랑인
것입니다.

육체의 에너지가 채워지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낄 수 있고, 영혼의
에너지가 채워지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육체도
배고픔을 느끼지만 영혼도 배고픔을 느낍니다. 이를 세상 용어로는 ‘
애정결핍’이라 부릅니다. 애정결핍에 따른 문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결핍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영혼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디가 그런 결핍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요? 육체는 애정결핍과 상관없이 세상 음식만 먹으면 잘도
성장하고 잘도 생존합니다. 

영혼이 있다면 균형 잡힌 식습관을 가져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랑이 필요 없다면 영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받지 않은 채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랑
받지 못하면 결국 영혼이 죽는 것입니다. 사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영혼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에너지이고 양식인데
그것을 소비할 기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필요한 기관은
육체가 아닙니다. 육체는 땅에서 나는 음식으로 유지됩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필요한 기관은 영혼인 것입니다. 영혼이 사랑으로
양식을 삼고 유지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음식을 해 줄 때
음식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도 함께 줍니다. 음식은 몸의 양식이
되지만 사랑은 영혼의 양식이 됩니다. 영혼을 생각하지 않고는 사랑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땅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스스로 사랑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어떤 피조물도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채울 수
없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지 않고는 결코 인간다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이고 그 빵을 먹어야만 영혼도
배부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돼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왜 영혼에게
양식을 주는 일에 그리도 게으른 것일까요? 모든 생명체들은 이 균형
잡힌 성장을 잘도 합니다.

나무는 인간과 매우 흡사합니다. 나무는 땅에서 자라나지만 하늘의
태양빛과 비가 없다면 자랄 수 없습니다. 나무는 가장 높게 자라는
생물입니다. 그만큼 하늘에서 내려오는 에너지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흙의 영양분만으로는 안 되어 하늘의 에너지를 받기 위해 나무는 서로
경쟁하듯 더 하늘로 치솟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인간도 땅의 것과 하늘의 것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뿌리만 깊이 내릴 뿐이지 위로 치솟으려하지
않습니다. 햇빛을 받지 못하는 나무는 아무리 뿌리가 깊어도 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이 세상에서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먹기는 해야겠지만 하늘에서 오는 양식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먹어야하고 영혼을 위해서도 먹어야합니다. 육체의
양식은 음식이고 영혼의 양식은 사랑입니다. 음식이 부족하면 배가
고프지만 사랑이 부족하면 마음이 허합니다. 마음이 허한 것을
음식으로 채우려다가는 비만만 늘어납니다.

사랑의 에너지가 쓰이는 곳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창조하신 분이 그 영혼을 기르시기 위해
당신 자신이 에너지가 되어 우리에게 먹히시는 것입니다. 만든 분은
그 만든 것을 유지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만 깊게 박히고
위로는 솟지 못하는 불균형한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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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수군거림을 멈춥시다!
 
2018년 나해 8월12일 연중 제19주일

수군거림을 멈춥시다!

삼복더위 기간은 저희 살레시안들에게 있어 가장 큰 대목입니다.
여기저기 캠프장에서, 소년원에서, 살레시안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여름 신앙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업에 지친 청소년들, 때로
상처입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잠깐 동안이나마 저희와 함께 ‘작은
천국’을 맛보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소년원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인생의 간이역에 잠시 내려서 있는 우리 친구들이 너무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기를. 성모님께서 당신 사랑의 망토로 힘겨워하고 있는
그들을 따뜻히 감싸주시기를. 잠시 있으면 더 멋진 근사한 열차가
도착할 터이니, 힘과 용기를 내기를. 그들이 부디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 모든 것을 걸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의 빵을 바라보고 섭취하기를.

공생활 개시를 통해 장엄하고도 화려하게 구세사의 전면에 등장하신
예수님을 향한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안에 수도 없이 등장했던 그 어떤 대예언자도 예수님에
비하면 태양 앞의 촛불 한 자루요, 포크레인 앞의 삽 한 자루였습니다.
발길 닿는 곳 마다 그분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과 치유활동 앞에,
다들 큰 기대와 함께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나 유독 그분의 복음 선포활동이 실패한 지역이 있었으니,
예수님께서 성장하신 고향 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어린 시절, 성장 과정, 부모 친척 등 모든 것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었기에, 갑작스런 변화를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분을 두고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요한 복음 6장 42절)

고향 마을 사람들의 완고함, 낡고 고착화된 사고방식,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는 굳게 닫힌 마음이 몹시도 안타까웠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요한 복음 6장 43절)

예수님의 경고 말씀, “수군거리지 마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박힙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뒤에서 수군거립니다. 정확한 내막을
잘 파악하고 있지도 못하면서 음침한 곳에 끼리 끼리 모여
수군거립니다. 본질, 실체, 정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껍질만
보고 수군거립니다.

예수님 당신의 정확한 실체, 정체성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그분께서는, 우리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진리,
우리를 영원한 생명과 구원으로 인도해줄 불멸의 진리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복음 6장 44절)

예수님을 향해 습관적으로 수근거리는 사람들은 틈만 나면 동료
인간들을 향해서도 수군거립니다. 끼리 끼리 모여 한 사람의 뒷담화를
즐깁니다. 결국 그 내용이 본인 귀에 흘러들어가 피눈물을 흘리게
만듭니다. 극단적 선택을 하게도 합니다.

이런 우리를 향한 바오로 사도의 간곡한 당부 말씀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오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에페소서 4장 31~32절)

예수님과 이웃들을 향한 수군거림을 멈추고, 힘과 용기를 주는 말, 한
인간 존재를 춤추게 하고 참으로 살게하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시작해야겠습니다.(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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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요한 6, 51)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8월12일 연중 제19주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요한 6, 51)

인간의 빵은 부패하지만 하늘의 빵은 결코 부패하지 않습니다.
지나온 모든 길 위에는 생명의 빵이 언제나 함께 했습니다.
생명의 중심에는 언제나 생명의 빵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서는 형제를 살게하는
생명의 빵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됩니다.

생명은 생명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생명의 빵이 우리를 아름다운 사람이 되게합니다.
생명의 빵은 진정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하느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빵이 우리를 이끌고 가십니다.

살아 있는 빵과 우리가 갈망하는 영원한 생명은 하나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당신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참된 사랑이 성체성사입니다.
모든 생명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생명의 세상을 위해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진실로 믿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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