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5일 하느님께서는 모든 출발과 도착이 되십니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8-15 06:49:32    조회 : 238회    댓글: 0

※ 2018년 나해 8월15일 수요일 [(백) 성모 승천 대축일 - 낮 미사]

제1독서 요한 묵시록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제2독서 1코린 15,20-27ㄱ
복음 루카 1,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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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모 승천 대축일

2018년 나해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역사학자 랑케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물질과 과학은 발전하고
진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삶으로
체험한다. 교통수단, 전자제품, 인터넷은 분명 지난 세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입니다. 의학, 생물학, 심리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윤리와 가치, 정신과 영혼이
발전하고 진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원효, 이황, 이이와 같은
사상가를 넘어서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
호메로스, 헤로도토스와 같은 문학가를 넘어서는 사람을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석가, 공자, 예수와 같이 인류의 정신과 가치를
이끌어준 구도자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종교를 가지며,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은
물질과 과학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은 빵만 먹으며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시간과 공간의 틀에서 살지만, 영원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입니다. 물질과 과학의 관점에서 성모승천
대축일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구가 아주 작은 별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를 넘어서 또 다른 별로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우리의 과학으로는 지구보다 더
아름다운 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 안에서 성모승천 대축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정신과
영혼의 관점에서 성모승천 대축일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사건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모두 언젠가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누군가 이야기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영원한 것은 채워짐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채워지고, 사랑이 채워지고, 믿음이 채워지는 것이
바로 영원함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서 우리는 모두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신앙인이 가야 할 미래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의 민족과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승천하신 날, 우리 민족은 해방의 기쁨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모님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큰
은총입니다. 이렇게 기쁜 날 우리가 마음껏 기뻐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현실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휴전 중입니다. 하루속히
평화협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기보다는 경제, 문화, 예술의 교류는 재개되어야 합니다. 또한,
남북 이산가족들의 만남은 인도적인 측면에서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산가족들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어둠이
있습니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물질과 자본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많은 부작용을
동반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정신, 역사, 철학, 종교적인 성찰을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시급한 문제는 ‘소통의 부재’입니다. 부부가 함께
같은 집에서 산다고 소통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묶인 것들은 풀어가야 합니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이 소통은 자연스러워야 하고,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계층, 세대, 지역, 이념’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소통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겸손함과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성모님의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성모승천 대축일을 지내면서
‘마리아의 노래’를 함께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를 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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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모범이 되는 삶의 기쁨

2018년 나해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모범이 되는 삶의 기쁨>

복음:루카 1,39-56

어렸을 때 위인전을 많이 읽으라고 합니다. 그래야 꿈이 생기고 그
꿈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아기는 부모를 닮습니다.
사랑하는 부부는 얼굴도 닮습니다. 닮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면서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복인 것 같습니다. 

폴란드의 한 마을에 살던 다비드란 소년은 축구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특별히 포르투갈 출신 호날두의 경기는 클럽경기뿐만 아니라
국가대항전까지 놓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친구들과 축구를 하러 가는 도중 과속 차량에 부딪혀
사고를 당합니다. 다행히 생명을 건지긴 했지만 수술 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몇 달 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찢어집니다. 의사는 아이가 좋아하던 소리를
들려주면 좋다고 조언해줍니다. 부모는 의사의 충고에 따라 다비드가
좋아하던 호날두 축구경기를 녹음하여 헤드폰으로 들려줍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큰 반응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사고 3개월 후 호날두를 대표로하는 포르투갈과 즐라탄으로
대표되는 스웨덴의 경기가 있는 날에 기적이 발생합니다. 후반 5분
호날두의 첫 골로 포르투갈이 1:0으로 앞서갔습니다. 그러나 즐라탄의
연속골로 1:2로 역전당합니다. 호날두는 후반 31분 다시 골을 넣어
2:2가 되었고, 33분 다시 호날두의 골로 3:2로 역전승을 하게 됩니다.

호날두가 역전 골을 넣었을 때 다비드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잠시 뒤 눈을 떠 의식이 회복되었으며 며칠 뒤에는 말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말은 그 경기가
어떻게 끝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의식불명 상태였음에도
경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회복되었고
이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된 호날두는 그를 초대하여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 때문에 의식불명 상태에 있던
아이가 깨어났는데 호날두는 또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호날두가 다비드를 위해 한 일은 무엇일까요? 그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누군가가 바라는 정상에 선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삶을 바라는 이는 그의 개인적인 친분에 상관없이 그의 미래가
되어버린 사람 때문에 살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힘은 분명
무언가를 닮기 위한 마음입니다. 사실 무언가를 닮기 위한 마음이
크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뜻과 같습니다. 사랑이 삶의
이유입니다. 

오늘 성모 마리아께서는 모든 인간이 바라는 모습으로 하늘에
오르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것은 본래 하느님이셨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 묻히는 것이 당연한 인간이 그
몸을 지니고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말은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사실 우리는 그 하나의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영혼은
‘혼’이고 육체는 ‘백’이라 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영혼과 땅에서 올라온
‘백’이 하나가 되어 살다가 죽게 되면 영혼은 다시 하늘로 가고 육은
땅으로 간다는 사상을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하나가 된 영혼과
육체는 갈라지는 일이 없습니다. 성모님이 영혼만 하늘로
올라가셨다면 크게 존경받으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가 합쳐진 것이고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됩니다. 이는 마치 컴퓨터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것이지 각각으로는 컴퓨터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한
인간의 육체가 땅에 묻히지 않고 하늘로 올랐다는 사실이 흙으로
지어진 우리들도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육체까지 구원받지
못하면 완전히 구원된 모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인류 구원의 모델이 되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인격적으로 흠도 티도 없이 죄에 물들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셨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세상 모든 인류의
모범이 되신 것이 순전히 은총으로만 된 것이라면 그분을 존경해야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만 존경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 사람이 한 행위대로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모님께서
가장 먼저 당신 육체까지 구원받으셨다면 성모님만큼 노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제 아이가 사탕을 너무 많이 먹어 이빨이 다 썩었어요.
사탕을 먹지 말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안 듣습니다. 제 아들은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들어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런데 뜻밖에도 간디는 “한 달 후에 데리고 오십시오. 그때
말해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놀랍고도 이상했으나
한 달을 기다렸다가 다시 간디에게 갔습니다.

“한 달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
“또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하나요?”
“글쎄 한 달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

아이 어머니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으나 참고 있다가 한 달 후에 또
갔습니다.

“얘야, 지금부터는 사탕을 먹지 말아라.”
“예! 절대로 사탕을 안 먹을래요.”
소년의 어머니가 간디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 한 마디 하시는데 왜 두 달씩이나 걸려야 했나요?”
“실은 나도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사탕을 먹고 있었어요. 그런 내가
어떻게 아이에게 사탕을 먹지 말라고 할 수가 있나요. 내가 사탕을
끊는데 두 달이 걸렸답니다.” 

어떤 아이가 냉담하다가 성당에 다니고 싶다고 말해 부모가 놀랐다고
합니다. 부모가 성당을 너무 열심히 다니니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누군가의 모범이 될
수 있고 닮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성모 마리아처럼
이렇게 높은 수준으로 하늘로 오르는 이들이 많으면 성당이 생동감이
넘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모님을 구원의 모델로 삼고 닮고
싶은 마음이 있는 이들은 또 누군가의 모범이 되고 있고 그것이
나중엔 큰 기쁨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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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루카 1, 52)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8월15일 수. 성모 승천 대축일.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루카 1, 52)

삶의 방향은 언제나 하느님이십니다.
삶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우리들에게 삶의
참된 방향이 하늘임을 보여주십니다.
가시밭길을 걸어 하늘로 오르십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고귀하고 거룩한 하늘의 관계입니다.
하늘로부터 출발한 우리의 삶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출발과 도착이 되십니다.
성모님의 삶에서 믿음의 길을 만나게됩니다.
성모님이 없다면 예수님도 없습니다.
인간의 성장은 하느님을 향할 때 이루어집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사람이라는 존재를 알게 해주십니다.

하늘과 분리될 수 없는 사람의 삶입니다.
하늘이 한 사람의 삶과 언제나 함께 하였습니다.
성모님의 삶을 하늘이 맞아들입니다.
더 사랑하기위해 하늘로 오르십니다.
사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장하고 성숙하는 사랑이 있을 뿐입니다.
사랑이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사랑도
하느님께로 오르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피어 오르고 피어 나십시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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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심기증

2018년 8월15일 수요일

오늘은 “심기증”이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 말씀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기침 한 번 했을 뿐인데, 폐렴에 걸린 게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이 하나 생겼을 뿐인데, 암이 아닐까 걱정하며 큰
병원부터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주 사소한 증상에도 지나치게 신경 쓰고 집착해서 중병에
걸린 게 틀림없다고 아예 확신하고 장시간 깊은 걱정에 빠져 있는
증세를 일컬어 ‘심기증’이라 합니다.

다른 말로는 ‘과대망상의 건강염려증’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러한 지나친 염려는 불안을 낳고 불안감이 오래가면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키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모든 염려는 전능하신 주 예수님께 다 맡기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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