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0일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것이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8-19 06:49:54    조회 : 229회    댓글: 0

☞ 2018년 나해 8월19일 [(녹) 연중 제20주일]

제1독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 잠언의 말씀입니다. 9,1-6

제2독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5,15-20

복음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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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20주일

2018년 나해 8월19일 연중 제20주일

‘사필귀정, 회자정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끝이 있기
마련이고, 만남은 또 다른 이별을 예고한다고 합니다. 지난 금요일에
교구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구장님의 허락을 얻어서 3개월
동안 제주도 엠마오 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주교 회의에서는
제주도에 사제들을 위한 연수원을 마련하였습니다. 강의를 듣고, 다른
교구 사제들과 만남을 통해서 친교를 이루는 자리입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신청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지혜’입니다. 지혜는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힘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겸손입니다.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분별력입니다. 떠나야 할
사람을 박수치며 떠나보내는 것도 지혜입니다. 새로이 오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지혜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알고 인정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인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였고, 에너지의 발전은
인류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인간의 몸이 에너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도구를 만들어서 인간은 에너지의 힘을
증대시켰습니다. 불의 발견과 이용은 추위를 이길 수 있게 하였고,
인간의 영양 상태를 좋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석탄,
석유, 전기, 원자력’으로 인류는 에너지의 사용을 확대하였고,
현대문명은 에너지를 먹으면서 성장한 것입니다. 저 역시 현대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편안하게 먼 거리를 이동합니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작업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얻습니다. 디지털화된 전자기기를 통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있습니다. 연극, 영화, 뮤지컬을 통해서 다른
이들의 생각과 상상을 공유하게 됩니다. 

새는 하늘을 날 때 ‘좌, 우’의 날개를 함께 사용합니다. 그래야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서 날 수 있습니다. 저는 인류가 ‘에너지’라는 날개를
발전시키고, 이용하는 것은 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류는
‘영성’이라는 날개를 키우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화려한 집은
있지만, 화목한 가정은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는
누리지만 고독과 소외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지만, 10억 명가량이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30%는 에너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가꾸었던 지성, 영성이라는 날개를 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참된 지혜와 영원한 생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디지털 문명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입니다. 그것은 에너지의
발전으로는 키울 수 없는 말입니다. 그것은 지성과 영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소유하는 삶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주라는 배에서 단 한 명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만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時間, 空間, 人間’이라는 말은
모두 관계의 틀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임을 깨달아야만 알 수 있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과 피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생명의 피에 대한 신앙적인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피는 우리의 몸을 돌면서 영양분을 공급해 줍니다. 우리 몸에서
발생한 노폐물들을 내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피는 우리 몸에
들어온 나쁜 병균들을 물리치는 일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영혼은 ‘믿음, 희망, 사랑’의 영양분을 공급받게 됩니다. ‘분노, 시기,
원망’과 같은 노폐물을 내보내게 됩니다. 유혹, 욕심, 게으름과 같은
악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둘째, 피는 가문과 혈통을 뜻합니다.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족보는 가문의 혈통을 말해주는 보물입니다. 성서는 예수님의
탄생에도 예수님의 족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동물과 식물에도
품종이 있습니다. 우수한 품종은 보존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는 품종, 더 건강한 후손을 낳은 품종들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이보다 더
자랑스러운 혈통은 없습니다. 혈통은 자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지만, 우리는 우리들의 노력과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크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피는 기운을 뜻합니다. 혈기왕성한 사람은 의욕이 넘치고,
창의적이며 매사에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혈기가 없는 사람은
젊은이라고 해도 매사에 의욕이 없고, 나약하며 시련이 닥치면 금세
좌절하고 맙니다. 우리 민족은 많은 외침을 받았지만, 민족의 혈기가
강해서 모두 이겨냈고, 오늘날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인은 그리스도의 혈기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협조자인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교회를 보호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통해서 성령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넷째, 피는 희생과 봉사를 상징합니다. 예전에는 희생 제물로 동물의
피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피를 맑게 하려고 운동을 하고,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피를 맑게
하도록 우리는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미사에 정성껏 참여해야
합니다. 규칙적으로 기도를 하고,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만 동맥경화에 걸리고, 심장 질환에 걸리고, 당뇨에 걸리고,
고혈압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도 동맥경화, 심장 질환,
당뇨와 고혈압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그것은 지상 최대의
힘입니다. 읽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것은 지혜의 샘입니다. 웃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것은 영혼의 음악입니다. 사랑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느님이 부여해 주신 특권입니다. 나누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이기적이기에는 우리의 하루가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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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마음에 드는 법

2018년 나해 8월20일 연중 제20주일

<마음에 드는 법>

복음: 마태오 16,13-23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의 마음에 들려고 합니다. 자신이
좋을 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사람들이 좋아해주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면 자신은 외적인 매력을 좋아해서 외적으로 예쁘게 꾸미면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줄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외모보다는 성격을
더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지나치게
외모에 신경 쓰는 사람은 오히려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상대의 마음에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의 마음에
들려면 먼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타인을
좋아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영화 ‘지니어스’(2016)는 실존했던 전설적인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와
천재 작가 ‘토마스 울프’에 대한 실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맥스웰 퍼킨스는 당대 최고의 소설 편집자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프랜시스 스콧, 피츠 제럴드를 발굴하여 대문호로 만든 최고의
베테랑입니다. 날마다 일에 치여 사는 맥스는 어느 날 우연히
무명작가인 ‘토마스 울프’의 원고를 읽게 됩니다. 토마스 울프는 워낙
글을 길게 써서 어떤 출판사도 그의 글을 출판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맥스는 그 엄청난 양의 원고 속에서 보석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출판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문제는 톰의 글을 줄이는 일입니다. 톰은 우선 자신의 글을
출판해주는 것에 고마워 허락은 했지만 자신의 글이 붉은 펜으로
한없이 지워져나갈 때는 자신의 심장이 찢겨나가는 아픔을 겪습니다.
결국 300여 페이지를 줄여 책 한 권으로 출판할 분량을 만듭니다. 그
책이 토마스 울프의 첫 작품 ‘천사여, 고향을 보라’입니다. 이 책은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토마스 울프는 헤밍웨이, 피츠
제럴드에 이은 천재 작가라는 칭송을 받습니다.

첫 작품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톰은 바로 두 번째 원고 작업에
들어갑니다. 자신감을 얻은 톰은 쏟아지는 영감과 타오르는 창작열로
이번엔 5,000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맥스에게 넘깁니다.

인기를 등에 업고 조금은 교만해져있는 톰의 글을 줄여나가는 작업은
처음보다 어려웠습니다. 첫 작품 땐 한 장을 붉은 펜으로 날려버려도
잘 참았던 톰은 단어 하나 없애자고 하는 것을 가지고도 크게
거부합니다. 그렇게 거의 편집에만 2년이란 세월이 흐릅니다.
옥신각신하며 겨우겨우 책 한 권 분량으로 만들어 출판합니다. 그
책이 ‘때와 흐름에 관하여’입니다. 이 두 번째 책도 역시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맥스의 편집 덕분에 좋은 책을 내게 되었다는 식으로
톰의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물론 맥스는 자신에 대한 감사는 절대
책에 넣지도 말라며 모든 영광을 작가인 톰에게 돌립니다. 하지만
톰은 그런 평가에 분노해 맥스에게 질투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와 더
이상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는 먼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그의 머리엔 이미 결핵균이
퍼져있었습니다. 그는 병원에 입원하여 죽기 직전 맥스에게 한 잘못을
뉘우칩니다. 그래서 자신 안의 보석을 찾아 끝까지 자신과 같은
괴팍한 성격을 이끌어준 맥스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쓰고는 숨을
거둡니다.

하느님은 마치 맥스가 톰의 속에서 자신이 발견하려는 보석을 찾듯
우리 안을 살펴보십니다. 맥스는 자신의 것을 톰 속에서 찾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도 우리 안에서 당신의 것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만을 자랑할라치면 주님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의
것이 있어야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챙기십니다. 그분의 것을 가지고
있다면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의 신붓감을 찾아오는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누구를
당신 마음에 두려고 하시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임종에
다다르자 아들 이사악에게 돌아갈 재산을 하인에게 맡겨 이사악의
신붓감을 구해오라고 합니다. 하인은 낙타 열 마리와 금은보화와
장신구들을 잔뜩 싣고 레베카라는 여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녀를 이사악의 신붓감으로 원하신다는 것을 아시고
그에게 자신이 가지고 온 모든 재산을 줍니다. 그녀는 그 낙타를 타고
받은 장신구를 걸치고 받은 것들을 가지고 이사악에게로 옵니다.
이사악은 자신의 장신구를 걸치고 자신의 낙타를 타고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오는 신붓감을 멀리서도 알아봅니다.

어차피 다시 가져오게 될 낙타와 장신구는 왜 굳이 준 것일까요?
그것을 잘 보존하여 다시 봉헌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서 찾을 수 있는 가장 귀한 보물은
인간이 피조물로서 자신의 힘으로 바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당신께서 주시는 성령입니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받은 용돈으로 다시
부모에게 선물하듯, 아내가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남편에게 좋은
음식을 차려주듯, 사랑하면 자신이 준 것을 받을 때 큰 행복을
느낍니다. 하느님도 당신이 주신 은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다시
봉헌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가장 귀한 선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당신 아드님입니다.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성모님께서
아드님을 잉태하셨을 때 이 세상에서 성모님만이 하느님께 가장
사랑받는 분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보물을 품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려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고
그분을 주인으로 모셔 성령의 힘으로 그분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받아 모신다고 그대로
머무시지 않고 그 뜻이 성취될 때에만 우리 안에 머무십니다. 내 뜻을
죽이고 그분의 뜻을 실현시키면 하느님의 보물은 나에게 장신구가
되어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보물을 잘 간직하면 그
보물을 간직한 사람을 사랑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가
청혼하기 위해 여인의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세요?” 집안에서 여인이 묻자 남자가 말했습니다.
“나예요.”
그러나 여인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데 왜
그랬을까요? 남자는 여러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후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남자는 다시 여인의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세요?” 남자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입니다.”
그러자 비로소 여인은 밖으로 나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상대의 눈으로 나를 보아야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에게 받아들여집니다. 마음 안에 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들려면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하느님께
보석이란 사랑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사랑입니다.
성령이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을 모시고 그 사랑의 열매를 간직합시다.
그러면 하느님 안에 머물게 되고 그러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우리 안에서 찾고 계십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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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겸손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거룩한 성체성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합시다!
 
2018년 나해 8월19일 연중 제20주일

겸손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거룩한 성체성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다음의 선언을 통해 성체성사에 대한 정의와 핵심,
본질과 효과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복음 6장 54~55절)

요한 복음이 기술되던 당시, 이미 여러 교회에서 성체성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당시 성체성사에 대한 유다인들의 오해와
반감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이란 표현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내 살’, ‘내 피’란 용어를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전통 안에서 피는 절대로 마셔서는 안 되는, 엄중하게
금지된 것이었기에, 그들의 귀를 엄청나게 거슬리게 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자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다만 생명 곧 피가 들어 있는 살코기를 먹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창세기 9장 4절)

신명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베푸신
복에 따라, 너희가 원하는 대로 어느 성에서든지 짐승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
(신명기 12장 16절)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생활에 깊이 빠져있었던 유다인들, 핵심과
내용보다는 겉꾸밈과 포장에 더 관심이 많았던 유다인들이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놓쳤습니다.

유다인들은 구원의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려는 예수님의 깊은 뜻을
간과하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인육제가 벌어지는가보다 하고 단정 짓기도
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 말씀 안에 깃든 심오한 뜻, 숨은 뜻, 더 중요한
의미를 간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제정하시려는 성체성사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똑똑한 첫 했지만, 사실 어리석기 짝이 없었습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갖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데 익숙하다보니
전체적인 맥락을 읽어나가는데 실패했습니다. 작은 것에
연연하다보니 정작 가장 큰 것을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았기에 예수님께서 던지시는 생명의 말씀,
구원에로의 초대 말씀조차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 다른 모든 이방인들조차도 행복한 얼굴로 들어가던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향한 길에서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초대 얼마나 행복한 초대인지 모릅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영원한 삶에로의 초대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과 더불어 영원히
불사불멸하는 구원에로의 초대입니다.

더 행복한 일이 있습니다. 그 초대에 응하는 것이 너무나 쉽고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체성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성사에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변화를 겸손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마침내 사제의 손으로 나누어지는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일입니다. 이로서 우리 안에 매일 매 순간 구원이 이루어지며, 그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매일의 작은 구원들이 합쳐져
언젠가 영원한 구원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미사는 기도의 진수이자 기도 중의 기도입니다. 사실 우리는
주기적으로 봉헌하는 미사를 통해 매일, 혹은 매 주간 살아갈 양식을
챙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사에 대한
정성이요, 몰입이요, 진지한 접근입니다.(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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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것이다.(요한 6, 58)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8월19일 연중 제20주일.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살 것이다.(요한 6, 58)

빵으로 출발해 빵으로 완성되는 성체성사의 신비입니다.
성체성사는 생명의 보편적인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생명은 서로 주고받는 살아 있는 상호관계입니다.
서로 주고받으며 생명은 생명으로 존재하며 성장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또한 빵의 관계 안에서 공동체가 됩니다.
빵의 공간은 생명과 사랑 나눔의 진실된 공간이 됩니다.
성체성사는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가 가야 함을 잘 보여줍니다.
빵의 신비는 자기 중심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살과 피로 우리의 욕망을 정화합니다.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하느님 사랑뿐임을
성체성사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생명을 먼저 우리에게 내놓으십니다.

영원한 생명의 시작은 사랑을 받아들이고 내어놓는 감사에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빵과 사랑의 빵은
하나가 되어 우리를 살리고 있습니다.
모두를 살게 하시는 구원의 하느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입시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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