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2일 하느님 나라의 품삯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8-22 07:09:07    조회 : 247회    댓글: 0

☞ 2018년 나해 8월22일 수.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제1독서 에제 34,1-11
복음 마태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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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2018년 나해 8월22일 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교구 인사이동으로 제주도 엠마오 연수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3개월 동안 강의를 들으면서 충전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시간이
나면 오름도 오르고, 올레길도 걸으려고 합니다. 청을 들어주신
교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한 자매님께서 연수 중에도 묵상 글은 계속
쓰는지 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도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늘 하던 대로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되면 좋겠습니다. 동창 신부님이
배려를 해 주어서 중앙동 성당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28일까지는 중앙동에서 명동으로 출퇴근을 하려고 합니다. 후임
신부님을 위해서 도배를 한다고 합니다. 사제관이 성당 안에 있었고,
명동에서도 사무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출퇴근하는 기회를 주셨으니, 기쁜
마음으로 다니려고 합니다. 

성서를 보면 예언자들이 있습니다. 예언이란 무엇일까요? 사람과
세상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예언이란,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정의로운 일인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일인지를
성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언자는 불의를 행하는 사람,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가시와 같은 존재입니다. 불편한
존재입니다.

나단 예언자는 다윗 왕에게 예언하였습니다. 다윗 왕은 부하인
우리야를 죽게 하였고, 그의 아내 바쎄바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왕이라고 해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으면 예언자들에게는
견책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왕에게
예언했습니다. 헤로데 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잘못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들에게도 그들의 위선에 대해서
예언을 했습니다. 

방송과 언론은 정부가 하는 일, 정치인들이 하는 일을 평가하고,
감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언론과 방송을 사회의 목탁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정부는 끊임없이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해 주도록 요청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부정과 부패의 늪에 빠지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추적 60분, PD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시사매거진 2580’과 같은
프로는 권력을 가진 사람,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있어야 사회는 더욱
정의로워지고, 하느님의 뜻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는 자비를 만나야 꽃이 피고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비를 이야기하십니다.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는 사람에게도 하느님께서는 천국의 문을 열어주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에 자비를 청한 십자가의 죄인에게
‘당신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으로 갈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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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만들 수 있는 천국과
지옥

2018년 나해 8월22일 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내가 만들 수 있는 천국과 지옥>

복음: 마태오 20,1-16

제 인생의 가장 지옥 같았던 때를 회상해보라면 저는 주저함 없이
고등학교 시절이라 말하겠습니다. 추억의 학창시절?이 아니라 그냥
지옥이었습니다. 군대를 한 번 더 갔다 오라면 갔다 왔지 고등학교
시절을 다시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 고등학교 시절이 고통이었을까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목표와
경쟁’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만 하는 목표,
그리고 그것을 위해 경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 가장 완벽한 두
스트레스가 교차하는 시절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만 했지만 성과는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고3병을 앓고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급기야는 마지막 2달 동안은
신경정신과에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성적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경쟁은 지옥이다.’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도, 직장에 다녀도,
결혼을 해도, 자녀를 낳아도 그 경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지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영원히 지옥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귀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누가 가장 인간에게 해를
끼치게 했는지에 대해 자랑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마귀는 음란으로,
어떤 마귀는 돈으로, 어떤 마귀는 술과 마약으로 사람을 절망에
빠뜨렸다고 떠들어댔습니다. 그러자 마귀 중 가장 마귀 같은 마귀는
“나는 사람들이 게으름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정신없이
경쟁하며 살게 했습니다.”라고 말했고 다른 마귀들은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정신없이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쟁하며 살아가는 것, 그곳이 지옥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인은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고
아침, 점심, 오후, 저녁에 나가 사람들을 고용했습니다. 저녁에 온
사람들부터 약속한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습니다. 아침에 와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은 더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들에게도 한 데나리온만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오히려 그들을 꾸중합니다. 한 데나리온 받기로 하고
일을 했고, 한 데나리온을 받았는데 왜 불평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비교’하는 데 있었습니다. 타인과 비교하니 자신은 덜
받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옥입니다. 학교가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공부를 시킨다면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데서 큰 기쁨을
찾는 천국이 되겠지만, 다른 사람을 넘어서는 경쟁의 장이 되면
학교는 지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아이들을
경쟁으로 몰아가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들 자살률이 1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보다 잘 하는 사람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나 질투와 불만족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만족이 있으면 자아는 그것으로 무언가에 집착하도록 만듭니다.
집착이 고통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려면 그 누군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주면 됩니다.

“옆집 남편은 돈도 잘 벌어오는데,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애들과도
잘 놀아주더라.”

이러면 남편을 지옥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자녀에게도 마찬가지고 이웃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교해서
열등감을 느끼게 만들고 경쟁하게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옥의
고통에 빠집니다.

자기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경쟁의식을 느끼게 만들면 지옥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비교하는 지옥에서 벗어나려거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감사할 거리는 한 데나리온으로 똑같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서 감사의 마음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지옥이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이 두 데나리온을 받는다면 행복할까요?
받을 때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며칠 뒤엔 똑같아질 것이고 그
다음엔 하루 종일 일을 해서 한 데나리온 받아서 행복한 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의 기대치를 자신이 그만큼 높여놓았기
때문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행복은 재물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우냐에 달려있습니다. 옆집이 더 큰
집으로 이사해도 이것만 알면 크게 부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행복은
그것과 관계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집을 방문해보니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힘들게 사는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냥 지금의 처지에서
내 결심에 의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감사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포도밭에서
일하며 하루 종일 일하도록 써주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며 밖에
있다가 한 시간 남기고서야 간신히 고용이 되어 집에 한 데나리온을
가져갈 수 있게 된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합니다. 그리고 일찍 고용해
준 주인에게 감사해야합니다.

감사 일기를 쓰고 매 순간 감사할 거리를 찾아서 감사기도를 드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절대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불만족에 빠질 일이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내가 지금 감사하느냐, 불평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리고 감사하고 불평하는 것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천국과 지옥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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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하느님 나라의 품삯/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8월22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20,1-16: 포도밭의 일꾼들

오늘 복음에서 밭 임자는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주인은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고
사람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낸다. 이른 아침 여섯시에, 아홉시에,
열두시에, 세시에 그리고 다섯 시에 자기가 만난 사람들을 포도밭으로
보냈다. 포도밭은 하느님의 계명들이고, 이곳에서는 온갖 덕이
포도나무 가지처럼 늘어져 있다. 즉 친절, 순결, 온유, 인내, 고결함
등이다.

교부들은 이 비유를 설명하면서, “하루”를 구원의 역사로 해석하고
이른 아침에 아담과 에녹의 시대에 살던 이들을 부르셨고, 아홉시에는
노아와 그와 함께 있던 이들을 부르셨고, 열두 시에는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오후 세시에는 모세와 다윗을 부르셨으며, 오후 다섯
시에는 다른 민족들을 부르신 것이라고 한다. 그들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6절)라고 묻는다.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한다. 그들은 모두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였다.

저녁에, 즉 시대의 끝자락에 밭 임자는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품삯을 내주라고 한다. 맨 나중에 온 사람들은 고생은 하지
않고 주인의 후한 덕으로 가장 먼저 보수를 받는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영광을 받은 것이다. 맨 먼저 온 사람들은 나중에 온
사람들보다 더 많이 수고를 하였다. 그래서 나중에 온 사람들이 받는
품삯을 보고 자기들은 더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주인은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고 있다. 그들은 불평을 한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12절) 이렇게
말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받은 축복을 기분 나빠했다. 그것은 시기와
질투였다. 이제 밭 임자는 그 사람의 시샘을 꾸짖는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15절)라고
하였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지 될 것이다.”(16절) 언제
부르심을 받았든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한 시간을 열심히 일하여 하루의 품삯을 받은 이들처럼 우리의
삶도 지금 최선을 다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신 품삯을 모두 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항상 깨어있는 자세를 말한다.

이것은 품값이라기보다 은총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우리가 일한 대가, 보수, 노임이 아니라, 그분의 선하심과 은총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우리가
불림을 받은 후의 삶을 충실히 하여 그 선물을 받도록 하자.
주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우리를 채워주실 것이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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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봉사와 섬김의 여왕
 
2018년 나해 8월22일 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봉사와 섬김의 여왕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母后) 기념일입니다. ‘모후’라는 말은 ‘왕의
어머니’, 또는 ‘여왕’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 가장 충실히 협조하셨던 성모님의
머리위에 빛나는 왕관을 씌워드린 것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모후’라는 호칭은 단순하고 소박하신 성모님, 고향에
계신 우리 어머니 같은 성모님께 그리 잘 어울리는 호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언제나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는 분,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시는 분이시지요. 마니피캇 찬가의 내용처럼,
그분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흩어 버리십니다. 권세있는 자들을
자리에서 내치십니다. 부요한 자들을 빈손 돌려보내십니다.
‘나야 나!’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바닥으로 내동댕이 치십니다.

그 대신 주님께서는 미천한 이들을 끌어올리시는 분이십니다. 주리는
이들을 은혜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부족해서 안됩니다.’라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한사코 끌고 와서 축복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언제나 한결같은 충실함으로 아들 예수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셨던 지극히 겸손하신 성모님께 큰
축복을 내리시어,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성모님은 모후요 여왕이기는 하시지만, 사치와 허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후가 아니십니다. 대신 지극히 인간적인 여왕, 한없이
겸손하신 여왕이십니다.

우리의 성모님은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갖은 고통과 상처로
힘겨워하는 어린 양들을 측은지심의 눈빛으로 굽어보시고, 살뜰하고
극진히 챙기시는 봉사와 모후이십니다.

우리의 성모님은 언제나 큰 죄인인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하면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심초사하시는 위로와 격려의
여왕이십니다.

세상의 왕들은 백성들을 힘과 권력으로 다스리지만, 하늘의 여왕이신
성모님께서는 영원한 왕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랑과
인내, 섬김과 봉사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승천하신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천상 모후의 관을
받으신 후에도, 한결같이 자애롭고 온유한 모습으로, 죄인인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봉사하고 계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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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상황 초월 : 오늘의 능력 말씀

2018년 8월22일 수요일

오늘은 “상황 초월”이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다니엘 3장 18절 말씀에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나치 수용소의 벽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비추지 않을 때조차 난 태양을 믿네.
느끼지 못할 때조차 난 사랑을 믿네.
침묵하실 때조차 난 하나님을 믿네.”

최악의 위기와 고통의 순간, 어느 누군가가 신앙으로 그 고통을
이겨나간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놓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역시 이러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다니엘과 함께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던 그들에게
금 신상에 절을 하되, 만일 절을 하지 않으면 뜨겁게 타오르는 풀무불
가운데로 던져질 것이라는 어명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며 정녕 하나님께서 풀무불에서
건져주지 아니하실지라도 결단코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겠다
말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러한 신앙이 바로 상황을 초월한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를 반드시 구하여 주시고
건져주십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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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어떤 일이든 사랑을 담아서 하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8월22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마태20,1-16)

어떤 일이든 사랑을 담아서 하라.

하느님께서 주신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애정이나 남을 동정하는
마음을 인정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또한
나누며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은 따뜻한 마음을 지녀서
인정미 넘치는 사람으로 부르고 어떤 사람은 야박하여 인정머리가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바로 몰인정한 사람입니다. 몰인정한 사람은 세상에는 좋은
것이 많은데 좋지 않은 것을 더 많이 얘기하고 그것으로 마음에 화를
담기도 합니다. 물론 더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꾸만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봐야 될 것을 올바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는 잘하고 있다고 확신을 하고 있는데 남들이 보면 전혀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잘한다고 하는 것이 자기모순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인정
있는 사람이 되어야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포도원 일꾼과 품삯에 대한 비유입니다. 9시, 그리고
12시와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5시쯤에 일꾼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일꾼들의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하였습니다.
주인이 품삯을 계산하는데 5시에 온 사람을 먼저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일찍 와서 일하던 사람들은 약속과 다른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가 무너지자 실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 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주인이 약속을 어긴 것도 아닌데 상대적인 박탈감, 시기심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입니다. 그는 정의를 강조하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다른 이가 좋은 것을 얻는 모양새를 두고 내 안에서
악을 꺼내는 감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상대의 좋은 것을 파괴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못된 욕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어렵고 힘든 사람이 그 시간에 일해서 당당하게
그 만큼을 벌었다고 한다면 그는 남에게 손을 벌려 동정을 받지
않았기에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절박함에 처한 사람이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정의보다는 사랑이 먼저 입니다. 사랑은 정의를 포용하지만 정의는
결코 사랑을 포용할 수 없습니다. 사실 불평불만도 습관이 됩니다.
그러니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서 만족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노력할 것이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불평을 할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후하다고 해서 시기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비에 감사하고
나도 크게 베풀 줄 아는 인정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인력시장에 가보신 적 있으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일을
하기 위해서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매일 팔려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날은 누구도 자기를 사가지 않습니다. 종일 기다리다
허한 마음으로 쓰디쓴 하루를 마감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수가 좋아서 일찍 팔려 나갑니다. 그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고역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찍 일을 나간 사람이 뒤늦게 일을 한 사람과 똑같은
임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찍부터 일을 한 것이
재수가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이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주인에게 실망해서 불평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주인이 잘못한 것인가요? 실망과 좌절로 기다림에 지쳐있다 뒤 늦게
일을 한 사람은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주인의 자비가 얼마나 크고
사랑이 많은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기쁜 소식이고
복음입니다. 만일 우리의 업적에 따라 보상이 결정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희망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족함에도 후하게
주시기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정성을 쏟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가 먼저
입니다. 그러므로 매사를 긍정으로 생각하고 정성을 쏟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늘나라의 관점은 정말, 일의 성과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잘 가꾸어야겠습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였어도 사랑이 담기지 않으면 적게 일한 것이고, 적게 일한
것처럼 보여도 사랑이 담기면 많은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던지 사랑을 담아서 하기 바랍니다.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마태6,23)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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