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6일 연중 제21주일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8-26 21:59:22    조회 : 241회    댓글: 0
2018년 8월 26일 연중 제21주일
?fname=http%3A%2F%2Fbbadaking.speedgabia.com%2Fehomp%2Fimg%2F2018_07.jpg

제1독서 여호 24,1-2ㄱ.15-17.18ㄴㄷ

그 무렵 1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느님 앞에 나와 섰다. 2 그러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15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16 그러자 백성이 대답하였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17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제2독서 에페 5,21-32

형제 여러분, 21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22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3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 24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5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26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7 그리고 교회를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며,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8 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9 아무도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시는 것처럼 오히려 자기 몸을 가꾸고 보살핍니다. 30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31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32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복음 요한 6,60ㄴ-69

그때에 60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fname=http%3A%2F%2Fbbadaking.speedgabia.com%2Fehomp%2Fimg%2Fline01.jpg

책을 좋아하는 저를 향해 어떤 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저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책을 그렇게 많이 읽을 수가 있습니까?”

사실 저 역시 학창시절에 이와 비슷한 마음을 갖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는 것보다는 다른 건설적인 일들을 하는 것이 더 이롭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러나 지금 현재에는 누구보다도 많은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는 무슨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들보다도 일찍 노안이 와서 돋보기를 쓰고 책을 보는 불편함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책을 통해 얻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것은 물론이고, 단어들과 문장들을 통해 제 가슴 속에 커다란 울림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이 과연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마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연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일까요? 신앙생활을 통해 주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었고, 이 주님 곁을 결코 떠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았지만 성당에 잘 나가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릴 때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고통과 시련이 있을 때에는 성당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게 되지요.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이 말은 누가 한 것이었을까요? 예수님을 반대했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과 함께 했었던 제자의 말이었습니다. 제자들도 이럴진대 다른 사람은 어떠했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지요. 이 말씀은 하느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이 위격의 일치에 따라 한 분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에 베드로가 말하지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마치 제1독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쫓아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여호 24,18)라는 고백했던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을 알려고 노력했고, 주님의 뜻에 맞추는 삶을 살았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주님과 단순히 함께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단순히 세례를 받은 신앙인이라고 해서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일주일 동안 주일 미사 한 번 봉헌한 것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멈추지 않는 기도와 묵상을 통해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알게 되고, 주님을 절대로 떠나지 않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듣기 거북한 것이었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주님의 이 말씀이 결코 거북하지 않고 오히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커다란 힘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을 사는 우리를 향해서도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하시겠습니까? 주님을 알면 알수록, 주님의 뜻을 따르면 따를수록 주님 곁을 절대로 떠날 수 없습니다.
?fname=http%3A%2F%2Fbbadaking.speedgabia.com%2Fehomp%2Fimg%2FFile0006.jpg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공자).

?fname=http%3A%2F%2Fbbadaking.speedgabia.com%2Fimg%2F20180826_01.jpg

?fname=http%3A%2F%2Fbbadaking.speedgabia.com%2Fimg%2F20180826_02.jpg

?fname=http%3A%2F%2Fbbadaking.speedgabia.com%2Fimg%2F20180826_03.jpg
천호성지.

?fname=http%3A%2F%2Fbbadaking.speedgabia.com%2Fehomp%2Fimg%2Fline02.jpg

28 천호성지

천호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천호성지는 그 이름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하느님을 부르며’ 살아온 신앙의 터전입니다.

천호성지는 기해박해(1839)를 전후해 형성된 유서 깊은 교우촌으로, 다리실 교우촌(천호공소)을 포함한 총 7개의 공소가 있었습니다.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각 지역은 산세가 험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 말할 정도로 첩첩산중이었습니다. 이런 곳으로 숨어들어 와 땅을 일구고 신앙생활을 하던 교우들의 피와 땀이 지금의 한국 천주교회를 일구었던 것입니다.

천호성지는 호남이 사랑하는 천주교의 대표적 사적지로 1866년 12월에 전주 여산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네 분인 이명서 베드로, 손선지 베드로,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한재권 요셉 성인과, 같은 해 8월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아우구스티노,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열 분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순교자들이 묻혀 있습니다.

천호산 기슭에 형성되었던 박해 시대 교우촌의 엣터와 현재도 순교자들의 후손들이 신앙의 전통을 이어 오는 천호 공소는 전 주민이 신자인 국내 유일의 교우촌으로서 박해시대 교우촌의 입지적 특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미사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11시에 봉헌됩니다. 사전 예약을 하시면 피정과 식사가 가능합니다. 주소는 전북 완주군 비봉면 천호성지길 124이고, 전화는 063-263-1004~5입니다.

?fname=http%3A%2F%2Fbbadaking.speedgabia.com%2Fimg%2F20180826_04.jpg

?fname=http%3A%2F%2Fbbadaking.speedgabia.com%2Fimg%2F20180826_05.jpg

?fname=http%3A%2F%2Fbbadaking.speedgabia.com%2Fimg%2F20180826_06.jpg

?fname=http%3A%2F%2Fbbadaking.speedgabia.com%2Fimg%2F20180826_07.jpg
전주교구 천호성지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