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3일 사랑, 용서, 인내, 나눔, 성실함으로 바꿀 수 있어야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9-02-13 08:09:47    조회 : 266회    댓글: 2

▣ 2019년 다해 2월13일 [(녹)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제1독서 창세기 2,4ㄴ-9.15-17
복음 마르코 7,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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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5주간 수요일

2019년 다해 2월13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지난 월요일에는 교구청엘 다녀왔습니다. 동창 신부와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동창 신부는 다른 데서 점심을 먹기보다는 교구청 식당에서
먹자고 하였습니다. 주방에 미리 이야기해놓았다고 합니다. 순간 잠시
망설였습니다. 전에는 살았지만 떠난 곳에서 다시 식사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들은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고, 맛있는 점심을
함께하였습니다. 교구청의 음식은 여전히 맛이 있었고, 신부님들의
대화는 즐거웠습니다. 망설이게 한 것은 ‘저를 기쁘게 맞이해 줄까?
떠난 사람이 왜 왔나? ’라는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그런
시간이 온다면 여전히 망설일 것 같습니다. 

성소국에 있을 때입니다. 신학교에 합격한 신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신학, 성서, 철학, 심리학, 교리
교수법을 배울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친교를
나눌 것입니다. 운동도 할 수 있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학교에는 꼭 지켜야 할 내규가 있습니다. 크게
3가지입니다. 이는 신학생만이 지켜야 하는 내규가 아닙니다. 모든
사제가 꼭 지켜야 하는 삶의 지침입니다. 

첫째는 영성입니다. 영성은 매일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배워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침기도, 미사, 낮기도, 묵주기도, 저녁기도를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 기도 생활을 충실하게 하지 못하면 다른
것들을 잘한다고 해도 신학교에서 지낼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제는 사제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지성입니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신학과 철학 그리고 심리학은 오랜 시간 공부를 요구하는 학문입니다.
수업을 충실하게 듣고, 면학에 열중해야 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해도
학업 성적이 나쁘면 신학교에서 지낼 수 없습니다. 공부하지 않는
사제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건강입니다.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남을 돌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매일 꾸준하게 운동을 해야 합니다. 건강은
몸의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사람은 신학교에서 지낼 수 없습니다. 다른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세상은 모두 성지였습니다. 모두 하느님의 발자취가 가득 담긴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아무런 흠이 없이 ‘원죄 없이’ 창조해 주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하느님의 창조계획과 질서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흔들리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교만함입니다.
교만함이 원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지순례를 다니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교만함으로 일그러졌던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고, 이
세상이 다시금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으로 가득한 ‘에덴동산’이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을 오염시키는 것은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인간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 때문입니다. ‘시기, 질투, 교만, 인색, 탐욕,
욕망, 미움, 원망’과 같은 것들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무질서하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악한 것들이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밖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내면의 갈등과 우리 내면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의 뿌리를 자를 때
비로소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잘 다스릴 줄 알면 우리는 외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악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욕심, 시기, 질투, 탐욕, 인색, 게으름은
모두 내 안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 용서, 인내, 나눔,
성실함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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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마음을 정결하게 지키는
방법

2019년 다해 2월13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마음을 정결하게 지키는 방법>
복음: 마르코 7,14-23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에서 한 권사님의 사례가 있어 인용합니다. 그
권사님의 간증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교회에서 매우 인정받는
신도입니다. 매일 새벽예배에 빠지는 적이 없고 단식과 기도를 철저히
수행하는 분이셨습니다. 일어나기 싫어도 매일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깨워주었다고 합니다.

그날도 한 존재가 자신의 방에 들어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분은 얼른 일어나 앉아 “저기 혹시 누구세요?
예수님이세요? 천사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존재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합니다. 마귀의 얼굴을 한
이가 자신을 보며 웃고 있더랍니다.

‘마귀가 왜 매일 새벽예배에 가도록 나를 깨웠을까?’

그 이유를 그날 새벽예배에 가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나는 매일 새벽예배를 거른 적이 없는데, 새벽 예배에 한 번도 안
나오는 장로들은 뭐야?’, 혹은 ‘나는 자주 단식하는데 단식 한 번도
하지 않는 목사님은 뭐지?’라며 자신도 모르게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새벽예배 나오는 것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줄 알았더니
결국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어 더럽히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면서 외적인 모습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판단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속은 썩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다 더러운 것이고, 마음이
깨끗해야 다 깨끗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마음’을 건드릴 수 없기 때문에 손을 씻고 먹던
안 씻고 먹던 우리를 더럽힐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다
더러운 것이고 마음이 깨끗하면 다 깨끗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더럽혀지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이 말씀은 모든 악은 인간 ‘마음’에서 나온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인간
마음 안에 악의 원천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악의 원천은 뱀과
파라오로 상징되는 ‘자아’입니다. 그 자아로부터 나오는 나쁜 욕구가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모든 악행은 다 자아의 욕구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아의 세 욕구가 ‘세속-육신-마귀’인데
예수님께서 나열하신 저 모든 것들은 이 세 욕구에 다 포함됩니다.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지키는 방법은 자아의 욕구들이 올라오지 않게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정결해지려면 자아가 ‘욕구’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욕구는
이미 우리 안에 넣어져있기 때문에, 그 욕구를 발로 밟고 다른 욕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의 가장 상징적인 모습이 바로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것입니다. 인간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물속에 빠져들게 되어 있습니다. 자아의 욕구에 오염된다는 뜻입니다.
그 자아의 욕구가 원죄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태어났기에 자신의
힘만으로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자아의 욕구와
반대되는 욕구를 받아들여야하는데 그 욕구를 우리는 ‘신성(神性)’
이라 합니다. 하느님의 본성은 사랑이신데 사랑도 욕구입니다.
자아의 욕구와 반대되는 욕구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아의 욕구에 빠지지 않고 그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그도 자아의 욕구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니 다시 자아의 욕구에 빠져듭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정결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우리는 ‘기도’라 합니다. 저는 신학교 때에
성무일도 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습니다. 기도시간이 끝나도 어깨가
뻐근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저는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은 것입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그 바라보는 대상과의 대화의 시작이기에 생각도 그분에게 머물러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기도한다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육체-영혼-영(마음)’입니다.
이는 마치 ‘개울-강-바다’처럼 서로 영향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개울이 오염되면 강이 오염되고 강이 오염되면 바다가 오염됩니다.
그런데 바다가 오염되면 그 오염된 것을 먹은 물고기를 또 인간이
먹기 때문에 인간이 비록 땅에 살기는 하지만 역시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는 감각입니다. 우리가 감각으로 안 좋은 것들을 들여보내면
그것들이 영혼을 오염시킵니다. 영혼은 이성이 작용을 하는 부분인데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에 의해 생각이 오염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오염되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마음이
오염되면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들은 오염된 것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과 행위, 생각과 욕구가 모두 더러운
것들이 나와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해를 끼치게 됩니다. 

제가 첫 보좌를 할 때 주임신부님이 편찮으셔서 13,000명이 넘는
성당에서 혼자 미사를 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주일미사 여섯
대인데 제가 다섯 대를 했습니다. 고해성사는 미사 시작 전과 후에
계속 주어야했습니다. 주일 저녁쯤 되면 초죽음이 되고 이미 하루
종일 마신 성혈로 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그러다가 실수를 여러 번
했습니다. 제가 성찬례를 하면서 미사 끝나고 청년들과 술자리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혈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말아 먹어라...”

국수 생각을 했나봅니다. 물론 신자분들은 신부가 고생을 하는 것을
다 아시고 계셨기에 잘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겉으로 보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보고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보고는 있지만
보고 있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을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그분을 본받으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결한 이들이었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술자리를 보고 있었고 그렇게 거룩한 순간에도 마음이 더러워질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항상 기도하고, 항상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자신의 모든 감각을 예수님을 바라보고
듣고 느끼는 데 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아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물 위를 걷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자신을 보며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이 모두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데 사용되어 정결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기뻐지게 되는데 이것이 마음이 정결한 상태입니다. 마음이 기쁘지
않다면 그 사람은 부정한 것입니다.

항상 예수님께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예수님께로부터 오시는
성령을 육체로, 영혼으로, 영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 자신을
정결하게 지킬 수 있고 나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들이 거룩할 수
있습니다. 매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모든 것에서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그렇게 마음을 기쁨과 평화로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죄로부터 구원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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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연중 제5주간 수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2019년 다해 2월13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 7,14-23: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예수님은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15절)고 하시며 금기 식품은 없다고 하신다.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란 음식을 말하는데, 어떠한 음식을 어떻게
먹든 음식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 그 사람을 죄로 더럽힌다는 것이다. 즉 자연의
음식물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결단이 사람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시면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배 속으로 들어가서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마태 15,11.17 참조) 그리고 주님께서는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19절)고 밝히셨다. 율법에 얽매인 자들이
부정하다고 선언한 것들을 먹는다고 해서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입술이 앞뒤 가리지 않고 지껄이고 끼어들면서 우리가 더러워질
수 있다.

그런데 레위 11장에 보면 부정한 음식물의 종류가 나오고 있다.
그것은 유다인들의 전통에서 신앙처럼 지켜오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
중에 대표적인 것이 돼지고기가 있다. 2마카 6장에서는 안티오쿠스
에페파네스는 유대교를 근절시키려고 유다인들로 하여금 돼지고기를
먹게 하였고, 그것을 안 먹는 유다인들은 왕명을 거스른 죄로 수백
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역사적인 사건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런 유다인들에게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은 그들에게는 깜짝 놀랄
말이었다. 즉 그들은 부정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사람이 부정하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내왔고 죽어가면서도 지켜온 그들의 율법을
무시하는 듯한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본뜻은 무엇이었는가? 물건, 음식이란 그 어떤
것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입장에서 볼 때 “부정한 것이다”
“깨끗한 것이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데 믿음의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이라는 창고
안에 무엇을 쌓아 놓고 있으며, 그 안에서 무엇을 내어놓으며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악한 생각들이란 마귀가 나에게 불어넣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의 나쁜 생각에 힘을 보태고 부추길 수는 있지만
그러한 생각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며 이러한 생각이 일어날 때, 마귀가 그것을
정당화시키고 그렇게 행하도록 부추기는 거시다.

즉 어떠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느냐에
믿음의 근본 의미가 있는 것이며,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물건이나
음식이 아니라 사람 자신에서 나오는 생각과 행위라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기울이고 살아가라는 주님의 말씀이다. 이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여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은총을 주님께 구하면서
기도하고 은총을 구하도록 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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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우리 주님만으로 충분한 하루, 우리 주님만으로 행복한
하루!

2019년 다해 2월13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우리 주님만으로 충분한 하루, 우리 주님만으로 행복한 하루!

인간의 마음! 가만히 들여다보니 참으로 신비스럽더군요. 때로 제
마음은 태평양보다더 더 넓고 관대합니다. 아무리 높은 파도나
불순물도 다 받아들입니다. 그 어떤 시련이나 고통도 모두
수용합니다. 견딜 수 없는 모욕이나 박해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우리 순교자들이 그러하셨습니다. 체포하러 온
포졸들 앞에서도 담담했습니다. 굴비엮듯 줄줄이 엮여 압송되어갈
때도 찬미가를 불렀습니다. 번뜩이는 휘광이의 칼날 앞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로 제 마음은 순식간에 요동칩니다. 어제의 태평양 같던
관대함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늘 제 마음은 작은
옹달샘보다 더 작고 초라해져 있습니다.

송곳 하나 꽂지 못할 정도로 옹졸하고 팍팍합니다. 미세한 외부 충격
한번에도 크게 흔들립니다. 평소같으면 허허 하고 웃어넘길 이웃들의
스쳐 지나가는 말 한 마디에 목숨을 걸고 부글부글 속을 끓입니다.

어떻게든 마음을 잘 다스려야겠습니다. 부단히 마음 정화(淨化)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음 속에 가득 찬 미워하는
감정,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시기질투심, 욱하는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지적하신 ‘사람에게서 나와 사람을 더럽히는
악한 것들’을 내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몰아내야겠습니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오늘도 주님 당신께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시고, 지속적으로
머물러주시기를 청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만으로 충분한
하루, 우리 주님만으로 행복한 하루, 더 이상 다른 아무 것도 필요치
않은 행복한 하루를 엮어가야겠습니다.(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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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속이 중요하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년 다해 2월13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마르7,14-23)

속이 중요하다.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이 그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보시니 좋더라.”, “보시니 참 좋더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조된 모든 것은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더럽히고, 안 더럽히는 것은 사람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실 좋고 나쁨은 사람들이
서로 비교하여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더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좋게 창조된 것이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자기 욕심을 채우는데 쓰려고 하면 더러움을
만들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 안에 품은 육의 욕망들은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을 밖으로 표출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를 자주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정작 문제는
외적인 것에 있지 않고 내적인데, 외적인 것에 연연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그러니 내면을 깨끗이 하십시오.

우리는 ‘얼짱’ ‘몸짱’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외면을 중시하는
말입니다. 어떤이는 성형수술을 하고 겉모양을 가꾸는데 온갖 노력을
다 쏟아 붓습니다. 반면, 속을 가꾸는 데에는 소홀히 해서 내면을
황폐하게 버려둡니다. 심지어 ‘감정에 충실하자.’ ‘솔직한 것이 좋지
않으냐?’하면서 자신의 악한 생각을 합리화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서 많이 무뎌졌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겉뿐만 아니라 속까지도 보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16,7) 그러니
내면을 더 깨끗하게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입술로만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마음짱'이 소중합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닮아 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내 마음 속 욕망을
살펴야 합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나오는 글입니다.

“당신의 행동에 있어서는 활달하며 당신의 대화에 있어서는 조리를
지키며 당신의 사상에 있어서는 방황하지 말고 당신의 영혼에
있어서는 내적인 분란과 외적인 혼란을 없애고 실생활에 있어서는
여가가 없을 정도로 분주한 생활을 하지 말라.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고 당신을 갈기갈기 찢고 당신을 저주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고 이러한 것들이 순결하고 현명하고 건전하고 올바르게
머물려고 하는 당신의 영혼을 방해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투명하고 맑은 샘물가에서 샘물을 저주한다
하더라도 샘물은 결코 식수를 제공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진흙이나 오물을 집어넣었다 하더라도 샘물은
이것들을 흘려보내고 씻어내어 전혀 더럽혀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평범한 우물이 아니라 영원한 마음의 샘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그것은 만족과 단순과 겸손으로 결합된 자유를 스스로
끊임없이 누리면 된다”(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진정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을 닮은 사람을 만들어 숨, 영, 얼을
불어넣어주셨으니 그 본래의 아름다움을 잘 지키고 가꾸며 하느님의
좋은 작품인 만물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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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2월 13일 (수) - 하나님이 기뻐하는 시스템

오늘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시스템’이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창세기 1장 2절 말씀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 흑암을 빚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어둠과 좌절과
낙심과 고통과 슬픔을 빚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참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지요. 좋은 것을 나쁘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나쁜 것을 좋게 만드는 사람이 있지요.

제가 아는 기우진 선생님이라는 분이 사회적 기업을 하나 만들었는데,
즉, 남들이 버리는 폐품을 활용해서 좋은 제품으로 만드는
사업입니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들에게 2-3배 더 비싸게 사서 그것을
가공하여 벽에 거는 액자로 만들어 판매를 하여 폐지 줍는 사람에게도
이익을 주고 사는 사람에게도 저렴하게 살 수 있게 하며 이들과
다리를 놓는 기우진 선생도 선한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어둠과 흑암과 혼돈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이 세상으로 만든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가는 그 자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가 되고 절망을 소망으로, 어둠을 밝음으로
만들어낸다면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를 진정한 참 성도로 인정해 줄
것입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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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작성자: 미리내님     작성일시:

항상 기도하고, 항상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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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내게 주문할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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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님!!
 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올 해 방송대학교 문화교양과에 입학 하였는데요
 지난겨울,이것저것 교양도서를 읽느라 조금은 바빴습니다
 젊은시절 느꼈던 대학과정과는 조금 다르겠지요
 
 -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 번 뿐인데 ......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나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요~~^^

작성자: 안나님     작성일시:

추위가 아직 물러가기 싫어서인지 날씨가 매우 쌀쌀하네요.
오늘은 시동생 부부와 시누이와 같이 시부모님이 계시는
안성 천주교 묘지에 다녀 왔습니다.

날씨는 추웠지만 햇빛이 좋고 맑고 상쾌한 날이었어요.
주님께서 시간과 교통과 좋은 날씨를 주심에 감사하면서
잘 다녀왔습니다.

미리내님! 축하드리고 열심히 생활하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도 그렇겠지요?

늘 주님안에서 기쁘게 승리하는 생활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