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6일 재의 수요일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9-03-07 06:46:42    조회 : 205회    댓글: 0

▣ 2019년 다해 3월6일 [(자) 재의 수요일]

제1독서 요엘 예언서 2,12-18
제2독서 코린토 2서 5,20─6,2
복음 마태오 복음 6,1-6.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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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재의 수요일

2019년 다해 3월6일 재의 수요일

태국에 잠시 머물 때입니다. 직원에게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직원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서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저는 그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아는지 물었습니다. 직원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태국의 한적한 시골에 사는 사람에게 북미 정상회담은 별 관심이 없는
주제였습니다. 당연히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몰랐습니다. 하나만 더 물어보았습니다. 태국의 왕 이름은
아시나요? 직원은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스마트 폰 검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게 태국 왕의 이름과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나라
왕의 이름도 모르는 것이 조금은 이상했지만, 그 직원의 표정은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지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모든 사람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스마트 폰과 인터넷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돌아보면 그다지 큰 의미와 가치가 없는 것들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부터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교회는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일상의 분주함 때문에, 세상의 일들 때문에
분주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말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길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죄를 지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으며, 나의 구원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셨음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쾌락과 욕망과 시기와 질투의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자선과 단식과 기도와 나눔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태국은 운전하는 방식이 일본과 같습니다. 태국의 차량은 대부분
일제 차입니다. 일본은 오랜 기간 아무런 조건 없이 태국을 위해서
길을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아스파트 길, 고속도로를 건설해
주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태국 사람들은 일본의 그런 태도가
고마웠을 것입니다. 길이 완성되면서 태국 사람들은 당연히 일본 차를
수입해서 타게 되었습니다. 운전하는 방법도 일본의 방식을 따라
했습니다. 일본은 차를 팔기 전에 태국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고,
태국은 일본 차가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눈에 보이는 행동보다는 마음을 얻는 행동을
하라고 하십니다. 시간을 알려 주는 사람(Time teller)이 되기보다는
시계를 만드는 사람(Clock builder)이 되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기도가 얼마나 소중한지,
기도하면 어떤 열매가 맺어지는지 보여주라고 하십니다. 자선을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선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따르는 것임을 보여주라고 하십니다. 나의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맡았던 이웃의 것을 되돌려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단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단식임을 알려 주라고 하십니다. 나의 주장과 나의 뜻을 관철하는
단식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주님의 수난에
함께하는 단식이 되라고 하십니다.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잠시 꺼주셔도 좋다는 휴대폰 광고가 기억납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순시기에는 다른 것들은
잠시 멈추는 것도 좋겠습니다. 가족과 이웃에게 보이기 위한
것일지라도 성경 필사를 하면 좋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하면
좋겠습니다. 자선단체에 실명으로 기부를 해도 좋겠습니다. 술자리
모임이 있을 때,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금주를 한다고 밝히는 것도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의미와 가치의 시간을 사는
것이 좋겠지만 속 좁은 내가 그렇게 못한다면 남들의 눈에 보이는
자선, 단식, 기도라도 충실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2019년 안식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기에 묵상한 것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나눌 수 없는 오지에 있지
않다면 하루하루의 삶을 나누는 것도 사순시기를 지내는 작은
정성이라 생각합니다. 고상하게, 품위 있게 사순시기를 지낼 용기와
엄두가 없으시다면 사순시기가 되었으니 남을 의식해서라도 주님의
수난에 함께 하는 것은 어떨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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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재의 수요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6일 재의 수요일

복음: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다. 성서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리키는 숫자이다. 하느님께서는 노아 홍수
때 40주야 동안 폭우가 내리게 하여 심판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400년을 종살이하였으며,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에
40주야를 단식과 기도로 지냈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 40년이나 걸렸다.

예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주야를 광야에서 기도와
단식으로 준비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시작되는 사순절도
오늘부터 시작하여 부활 때까지 주일을 제하고 세어보면 40일이 된다.
교회가 이렇게 사순절을 제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순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으로 차지하신 영광스러운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그분의 영광에 우리도 참여하기 위하여 그분의
수난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인간의
죄, 그 죄에 대한 보속을 하며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회개와
보속의 시기이다. 이럼으로써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사랑 받는 자녀들이 되어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 “재의 예절”을 거행한다. 이 재의 의미는 회개와
보속, 죽음과 겸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머리에 재를
받는 것은 우리 죄로 인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및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보속 하겠다는 약속의
표시이다. 그리고 이 재의 예절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죽음을
미리 묵상하게 한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현세적인 삶의 종착점인 죽음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이기적인 생활과 그럼으로써 하느님을 멀리 떠난 듯한
삶에서 회개와 나를 필요로 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에로
돌아서게 하는데 있다.

죽음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를 알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재는 한 줌의 흙이다. 우리가
죽어 땅에 묻히면 한 줌의 흙이 된다. 그 자리에는 아무런 형체도,
권세도 명예도 볼 수 없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재를 교만과 명예의
자리인 머리에 얹음으로써 인생무상과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겸손하라고, 자신의 본 모습을 찾으라고 하는 것이다. 겸손하지 못하면
회개와 보속의 실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을 행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면서 자선과 기도, 단식에 관한 세 가지 본보기를 알려주신다.
자신의 덕을 내보임으로써 사람들의 칭찬을 얻으려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넘치게 기도하면서 자기의 신심을 자랑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2절) 내가 하는 일을 떠벌리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의 찬사를 얻으려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신심
깊은 마음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절한 행동은 그 자체가
나팔이다. 그러기에 숨겨야 할 것은 그런 행동이나 장소보다도
베풀려는 뜻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3절) 이 말씀 역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인데, 할 수 있으면 우리가 선을
베풀 때, 베푸는 손조차도 그 사실을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다. 또한
이 말씀은 오른손은 의인과 의로운 행위를 뜻하고 왼손은 죄인과 죄가
되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루어지려면, 의인인 오른손은 왼손이 하는 일을 몰라야 한다. 즉
우리가 충실하고 신심 깊게 행하기 위해서는 죄안들 앞에서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6절) 우리의 기도는 인간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어디에나 계시며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들으시고
마음의 비밀을 이미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분께
기도하면 우리는 큰 상을 받을 것이다.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6절) 하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서 상을 받으려 하는 자들은 하느님께로부터 또 다른 상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16절)
교회도 또한 이 시기에 극기와 절제를 통하여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
그리스도를 닮고, 어느 때보다 기도를 많이 하여 은총을 받고자 마음을
모으는 때이며,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우리도 누리기 위해
속죄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 사순시기를 통하여 우리가 더 하느님의
자녀로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면서 기도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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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의 삶에 사순이 없으면
믿음도 없는 것이다

2019년 다해 3월6일 재의 수요일

<나의 삶에 사순이 없으면 믿음도 없는 것이다>
복음: 마태오 6,1-6.16-18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에 소개되었던 사연입니다.

시장 통 작은 분식점에서 찐빵과 만두를 만들어 파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아침부터 꾸물꾸물하던 하늘에서
후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나기였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그치기는커녕 빗발이 점점 더
굵어지자 어머니는 서둘러 가게를 정리한 뒤 큰길로 나와 우산 두
개를 샀습니다. 그 길로 딸이 다니는 미술학원 앞으로 달려간 어머니는
학원 문을 열려다 말고 깜짝 놀라며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습니다.
작업복에 낡은 슬리퍼, 앞치마엔 밀가루 반죽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 딸이 상처를 입을까
걱정된 어머니는 건물 아래층에서 학원수업이 마치기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한참을 서성대던 어머니가 문득 3층 학원 창가를 올려다봤을 때, 마침
아래쪽의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던 딸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어머니는 반갑게 손짓을 했지만 딸은 못 본 척 얼른 몸을 숨겼다가
다시 삐죽 고개를 내밀고, 숨겼다가 얼굴을 내밀곤 할 뿐 초라한
엄마가 기다리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슬픔에 잠긴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그냥 돌아섰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어머니는 딸의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딸이 부끄러워할 것만 같아
한나절을 망설이던 어머니는 늦은 저녁에야 이웃집에 잠시 가게를
맡긴 뒤 부랴부랴 딸의 미술학원으로 갔습니다.

‘끝나 버렸으면 어쩌지?’

다행히 전시장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벽에 가득 걸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던 어머니는 한 그림 앞에서 그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비, 우산, 밀가루 반죽이 허옇게 묻은 앞치마, 그리고 낡은 신발. 그림
속엔 어머니가 학원 앞에서 딸을 기다리던 날의 초라한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날 딸은 창문 뒤에 숨어서 우산을 들고
서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가슴에 담았던 것입니다. 어느새
어머니 곁으로 다가온 딸이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모녀는
그 그림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사순’은 믿음을 가진 누구에게나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습니다.
믿음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을 믿으면 보답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보답하려는 노력이 곧 사순의 시작인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죄
때문에 죄인이 되시고 그분의 의로움을 나의 것이 되게 하셨음을
믿는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죄인이 되는 덕분으로 나는 하느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이면서도 하느님처럼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임을 믿게 되면 자신 안에 하느님이 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죄가 자아로부터 나오는
세 가지 원수 즉, 세속-육신-마귀입니다. 세속은 돈이고 육신은
성욕이며 마귀는 판단입니다. 이것들 때문에 내가 하느님의 자녀처럼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제1독서에서 요엘 예언자가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고 하듯 가슴이
미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어떻게 광야에서 40일을
보내야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면 이 세
가지를 죽여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그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즉, 세속은 청빈으로, 육신은 정결로, 마귀는
겸손한 순종으로 이겨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세 덕, 청빈-정결-순명을 복음삼덕이라
부릅니다. 믿음이 생기면 필연적으로 이 복음삼덕을 키우는 광야의
시기를 거쳐야만 하는데 이는 40일이 아니라 평생을 의미하는 40년
동안 해도 부족합니다. 우리 평생의 신앙생활이 결국은 자아의 세
원수를 복음삼덕으로 이기려고 노력하는 광야의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청빈-정결-순명을 강화시키기 위해 세
가지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십니다. 우선 청빈의 덕은
‘자선’으로 길러집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리고 정결의 덕은 ‘단식’으로 길러집니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마지막으로 순명의 덕은 ‘기도’로 길러집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실천방법을 알려주시며 빼놓지 않고
말씀하시는 것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으로 남에게 칭찬을 바란다면 이는 자아를 죽이려는 본 목적과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자아를 죽이기 위해 하는 행동인데 그것들이
자칫 자아를 더 크게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선과 단식과 기도의
실천은 내 자아가 죽는 것 하나에서 그 보상을 찾아야만 합니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결국 밑 빠진 독과 같아서
주님의 은총을 담아놓을 수 없게 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라고
말하는데, 이는 이런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사순절의 목적은
자아를 죽이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순은 이렇게 우리 평생의 신앙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또한
일 년 중 ‘사순절’을 두는 이유는 새롭게 시작해보라는 뜻이 있을
것입니다. 사순절이 끝나면 바로 부활이 오기 때문에 사순절이
자아와의 싸움의 ‘시작’이라 말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간
유혹받으시고 끝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싸움은 죽음 직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도 사순절을 싸움의 시작이요 계기로 삼아야지
그때만 단순히 절제를 하고 끝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작년 사순절 때 습관일기를 써가며 여러 가지를 끊어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순절을 하나하나 끊어가는 계기로 삼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실천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실천되는 것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작년의 사순절이 저에게 남긴 열매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만 변화된 것입니다.

내가 결심한 것들이 사순절 때 반짝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내가
극기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더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오늘부터 또 새로운 것들을 도전해보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보려 결심을 합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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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 6)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6일 재의 수요일.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 6)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다시 보게됩니다.
사순시기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순종하는 회개의 참된 시간입니다.
우리모두는 하느님을 찾도록 흙으로 빚어진 흙의 피조물들입니다.
흙의 사람들은 흙의 순리를 따라야합니다.
흙의 십자가는 언제나 하느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흙의 토대위에서 우리는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흙의 여정을 통해 사람이 되어갑니다.
자기를 내어주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십자가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됩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삶의 질서는 사랑의 질서입니다.
흙으로 빚으진 너, 사람아!
사랑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흙먼지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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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십자가가 다가올 때,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킵시다!

2019년 다해 3월6일 재의 수요일

십자가가 다가올 때,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킵시다!

유럽이나 남미의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재의 수요일 하루 전날, 큰
축제를 성대하게 지냅니다. 카니발이라고도 하고 사육제(謝肉祭)
라고도 합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40일간 계속되는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평소 즐겨
먹던 육식을 자제해야 하니, 기괴한 복장과 분장, 가면을 쓰고,
산더미처럼 차려 놓은 다음, 원없이 먹고 마시고 노는 조금은 웃기는
축제입니다. ‘고기여! 잘 있거라!’고 외치며 고기와 잠시 작별하는
셈입니다.

우리 한국 신자들에게는 그리 크게 와닿지 않는 축제입니다만, 우리도
또 다시 시작한 사순절을 맞아, 이 은혜롭고 특별한 시기에 걸맞는
의미있는 노력을 시작할 순간입니다.

제 지난 사순시기를 돌아보니, 매년 비슷한 후회가 반복되었습니다.
이번 사순절은 뭔가 좀 달라져야 할텐데, 뭔가 나아져야 할텐데, 하고
결심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성삼일이요, 부활절이었습니다.

사순절에 걸맞는 단식이나 자선, 기도나 사랑의 실천은 손톱만큼도
못해놓고, 부활절 계란 그리기 때, 계란만 원없이 먹으면서 허탈해하던
기억, 부활성야 미사 때, 부활찬송이나 알렐루야를 노래하기가 너무
쑥스럽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이번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여러 많은 계획들과 결심들보다는 한
가지 노력에만 좀 더 집중해볼까 합니다.

어쩔수 없는 근본적 한계와 부족함을 지닌 인간 존재로서,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매일의 고통과 십자가 앞에서, 더 이상 투덜거린다거나,
주저리주저리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이번 사순 시기, 고통과 십자가가 다가올 때 마다,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과
시선을 맞춰봐야겠습니다. 주님의 고통에 비교하면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은 새 발의 피라고 여기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내 십자가를
바라봐야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통과 십가자가 다가올 때 마다, 여러가지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과 깊이 연대한다는 마음으로 견뎌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젠가 제가 고통에 대해 묵상을 하다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고통이라고 해서 다 같은 형태의 고통이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어디서 다가온 고통인가?’ 즉 고통의 원인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했습니다.

첫번째는 우리 인간 측의 잘못이나 과오, 그릇된 삶의 습관으로 인한
고통입니다. 갑자기 제가 알고 지내던 ‘껌 좀 씹던’ 한 청소년이
떠오릅니다. 안그래도 위험한 모터 사이클(오토바이)을 제발 좀 타고
다니지 말라고 해도, 절대 말을 안들었습니다.

정 타고 싶으면, 꼭 헬멧을 착용하고, 빗길이나 야간에는 가급적 타지
말고, 과속이나 급방향 전환을 절대 하지 말라고 그리도
신신당부했건만...

멋부린다고 헬멧도 쓰지 않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엄청난 소음과
클랙슨을 울리며 달립니다. 핸들도 한 손으로 잡고, 과속에,
급브레이크에, 자동차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그렇게
몇시간이고 달리더군요.

결과는? 대형 추돌 사고 결과, 팔다리 골절에, 전치 1년의 선고를 받고
입원할 수 밖에요. 늦게서야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부속 병원
경당으로 가서‘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어찌 제게 이런 극심한 고통을?’
하고 울부짖으니, 분명 하느님도 웃으셨을 것입니다.

이런 류의 고통은 인간 측의 과실로 인해 다가온 고통입니다. 예방이
100퍼센트 가능했던 고통이니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가슴 크게 치며 한님의 자비를 바래야겠지요.

그러나 또 다른 류의 고통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정말이지 억울하게 다가온 고통입니다. 난데 없이
돌 하나가 내 인생의 창문을 깨고 날아 들어와, 나를 울부짖게 합니다.
바로 신비로서의 고통이요, 주님께서 보내신 십자가입니다.

신비의 십자가 앞에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도망가려 하면 점점 더
커집니다. 그저 그 십자가 꼭 끌어안고,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처방입니다.

우선은 그 어떤 위로나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한 걸음 뒤로 멀찌기 물러서서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긍정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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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희망 속에 기뻐합니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년 다해 3월6일 재의 수요일(마태6,1-6. 16-18)

기쁨을 준비하라.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사순절입니다. 사순이라는 말은 40일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중대한 사건을 두고 그를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켰고, 엘리야도 호렙산에 갈 때 천사가 주는 음식만 먹으며 40일을
걸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전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인 부활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40일간의 기간을 정하여 기도와 희생으로 재를
지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부활의 영광이 없다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몸소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기쁨이 큰
만큼 거기에 걸 맞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것을 자선과
기도, 단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단식은 자신에 대한 절제와 극기의 상징입니다. 그냥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단식을 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겪으신 배고픔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 순간부터 배고픈
이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온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돕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내가 허기져봐야 굶주린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단식을 통해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기도는 내 삶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과 통교하게 됩니다. 마치 전등이 발전기와
연결됨으로써 빛을 발하듯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과 연결시켜 줍니다
(구엔 반 투안 대주교). “기도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입니다.” 사실
기도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안에
살려면 호흡을 하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왜 호흡을 해야 합니까? 하지
않으면 이미 죽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으면 이미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
(샤를 드 푸코).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자선은 단식과 기도의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풀어야 합니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고 또 민첩하게 해야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누가 보든 그렇지 않든 자선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바치는 좋은
예물입니다. “자선으로 씨를 뿌리면 열매는 천국에서 넘치도록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저함이 없이 베푸십시오. 주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자선을 통해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기도와 단식, 그리고 자선은 서로를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이웃, 나 자신과의 관계를 말해 줍니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다른 것이
불완전 해 집니다. 그러므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재의 수요일을 맞으면서 기도하고
단식을 지켰는가? 그렇게 하셨다면 그 희생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려고
마음먹었는가? 사실 아침을 굶고 나니 배가 고파요. 그래서 점심을
평소보다 더 많이 잡수셨어요. 그렇게 한다면 알맹이가 빠진
것이지요. 평소에는 굶어도 굶었다는 생각도 없이 지나치는데
사순절이 되면 유난히 배가 고파 옵니다. 합동 판공성사에 다니다
보면 알게 모르게 살이 올라요. 가는 곳마다 오랜만에 오신 신부님
대접한다고 고기에, 회에 넘치도록 챙겨주시거든요. 마음을 먹고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 유혹의 빌미는 항상 생기게 마련입니다.
핑계거리는 늘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해요. 그러면서
하루세끼 식사는 꼭 챙겨 드시려고 하거든요. 오히려 너무 바빠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바빠서 제 길을 걷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자선은 베풀면 베풀수록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아쉽고 아까운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시면 하실수록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 한꺼번에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시는 분은 평생 아무 일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일상생활의 작은 일에서부터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외적인 기도와 단식, 자선에 앞서 마음의 단식과
자선, 그리고 기도에도 소홀함이 없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은혜로운
때, 구원의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 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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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3월 6일 (수) - 하나님이 기뻐하는 성도

오늘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성도”에 대해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신명기 20장 1절 말씀에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말과 병거와 사람들의 숫자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한 마디로
크고 많은 것을 좋아하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적군의 말들과 병거와 백성들의 숫자에 놀라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하나님
그분이 함께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싸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수많은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 올 때도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로 이겼고 하늘의
별처럼 군인이 많고 바다의 모래처럼 낙타가 많은 미디안 군사를
지도자 기드온은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로 전쟁에서 승리를 했으며
히스기야는 밤샘 철야 기도로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대를 송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사람 숫자에 기죽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을 담대하게
선포하십시오.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들로 가득
채워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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