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0일 성령이 함께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9-03-10 17:23:30    조회 : 276회    댓글: 0
721916171d0f62004a2501184dcdc200c818cc29
  • ▣ 2019년 다해 3월10일 [(자) 사순 제1주일] 제1독서 신명기 26,4-10 제2독서 로마서 10,8-13 복음 루카 복음 4,1-13
5cdf79c24caafdea2b9ac9f5ba233f1f92938d7c
  • ◈ [서울] 사순 제1주일 2019년 다해 3월10일 사순 제1주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많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 모세의 부르심, 예언자들의 부르심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원체험들입니다. 그중에 가장 큰 체험은 오늘 제1 독서에서 들었던 것처럼,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들어 주셨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과 아픔에서 구해 주셨다는 체험입니다. 한국인들의 역사에도 많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서 용감히 싸웠고 승리한 장군들이 있었습니다.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장군이 있습니다.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투쟁하였던 임시정부의 활약이 있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값진 투쟁들이 있었습니다. 4·19 혁명, 5월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화 운동, 촛불 혁명이 있었습니다. 사제생활 28년을 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가장 큰 체험은 28년 전의 체험입니다. 저는 유행성 출혈열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나중에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좀처럼 열이 내리지 않았는데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병원에 오셔서 기도를 해 주신 후부터 열이 조금씩 내렸다고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기도, 어머니의 정성 어린 간호, 의사 선생님들의 치료 덕분에 저는 건강을 회복하였고,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저를 열병으로부터 지켜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체험이 있으셨는지요? 며칠 전입니다. 2호선 지하철에서 한 학생의 가방을 보았습니다. 가방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Love, there may be no more tomorrow!” 짧은 글이지만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침 그 시간에 지하철은 양화대교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바다로 흘러가는 한강 물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 학생은 그 문구를 보고 가방을 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구의 의미를 깊이 생각했다면 가방은 그 학생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3가지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재물, 명예, 권력에 대한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저는 재물, 명예, 권력에 대한 유혹보다는 다른 유혹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 번째 제게 다가오는 유혹은 '다음에 하지’입니다. '사랑하자, 내일이 없는 것처럼'이라는 말을 마음에 담아야 하는데 저는 늘 내일을 생각하면서 오늘 꼭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곤 했습니다. 유명한 사상가도 자기의 묘비명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너 그럴 줄 알았다.' 매번 내일로 미루더니 오늘 땅에 묻혔다는 의미입니다. 담배를 끊겠다고 하는 것도, 평일 미사를 가겠다고 하는 것도, 부모님께 전화하겠다고 하는 것도, 사과의 전화를 하겠다고 하는 것도, 다음에 하지라는 유혹에 넘어가곤 합니다. 두 번째는 ’남들도 그렇게 하는데‘입니다. 나의 잘못과 허물을 남들에게 떠넘기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앞의 차가 빨간 불인데 갔습니다. 저도 따라갔습니다. 경찰이 저만 잡았습니다. 앞의 차도 갔다고 말을 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남들도 그렇게 하는데’라는 표현은 나보다 더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따라갈 때 사용하면 좋을 것입니다. 저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이태석 요한 신부님을 따라가면서 그런 표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나는 안돼’라는 열등감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유다 사도는 똑같이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의 삶은 달랐습니다. 유다 사도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안돼’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는 안돼’라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하였지만,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한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죄가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는 안돼’라는 열등감에 마음을 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뉘우치기만 한다면, 우리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는 우리의 신앙은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9997BA485AAEA46C04CF18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생각이 곧 유혹이다 2019년 다해 3월10일 사순 제1주일 <생각이 곧 유혹이다> 복음 : 루카 4,1-13 영화 ‘매트릭스’(1999)는 성경을 그대로 영화에 옮겨놓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스도교의 세계관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낮에는 평사원, 밤에는 해커로 활동하는 청년 ‘네오’는 선지자라 할 수 있는 누군가로부터 이 세상은 현실이 아니라는 암시를 받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보아온 이 세상이 전부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네오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선지자 ‘모피어스’의 말에 따라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보고 초인적인 능력도 발휘해보며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것이 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이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꿈속에서는 자신이 믿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이점을 이용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현실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은 사실 꿈을 꾸고 있는 것이고 실제의 자신들은 기계들의 에너지원으로 쓰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지닌 기계들이 어디에서도 에너지원을 얻을 수 없게 되자 인간들이 생산해내는 단백질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인간들이 꿈에서 깨어나면 이 현실을 알게 되어 문제가 되기에 자신들이 만들어낸 프로그램 내에서 평생 꿈을 꾸며 잠들어있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태어나자마자 이미 정해진 시스템 속에서 의심 없이 살아갑니다. 이 헛된 세상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공부하고 돈 벌고 결혼하고 여행 다니며 늙어갑니다. 그리고 삶을 참 잘 살았다고 느끼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완용이 죽으면서 자식에게 “앞으로는 미국이 득세할 테니 일본보다는 미국에 붙어라!”는 유언을 남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에겐 이 세상이 처음이자 끝입니다. 그러나 개중에 깨어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으로 가는 통로일 뿐이라고 외칩니다. 물론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 세상이 꿈임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통해 증명해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죽음과 부활은 이 세상을 목적지가 아닌 여행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여행자는 그 나라의 환경에 영향을 받기보다는 좋은 경험으로 즐깁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거꾸로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행복하다 말합니다. 더 가난해지고 더 절제하고 더 낮아지는데도 행복하다 말합니다. 마더 데레사나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분들이 그 예입니다. 어찌 보면 이들은 세상 부적응자들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역할을 교회가 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세상을 떠나 ‘광야’에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 부적응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핵심주제는 ‘생각하지 말고 인식을 하라.’입니다. ‘모든 인간은 감옥에서 태어난다.’는 진실을 인식하고 ‘이 세상은 그 감옥에 머물게 하기 위해 악한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허상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이 노력을 하였고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 세상의 헛됨을 알게 됩니다. 이 깨달음을 위해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사탄은 우리 머릿속에 어두운 기운을 불어넣어 생각이라는 매개체로 우리를 지배합니다. 생각은 사탄이 나를 얽어매는 포승줄입니다. 생각을 많이 해서는 절대 이 세상의 허구성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에 더 집착하게 됩니다. 생각을 끊는 곳이 ‘광야’입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광야’로 나아가야합니다. 광야는 생각할 거리가 극도로 제한된 장소입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사탄은 여전히 유혹합니다. 먹는 것으로 유혹하고 높아지라고 유혹하며 더 많이 가져보라고 유혹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받으셨다는 뜻은 예수님의 자아가 사탄일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왜 굳이 40일 내내 악마와 함께 지내셨을까요? 우리도 우리 생각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듯, 예수님도 악한 유혹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라는 이점으로 사탄을 이겨내기는 하였지만 사탄은 다음 기회를 엿볼 뿐입니다. 예수님은 유혹은 받으시지만 그 유혹에 동의하시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보여주시듯 세속과 육신과 교만의 유혹을 말씀의 힘으로 끊어버리십니다. 이를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끊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생각을 끊고 주님의 뜻만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면 그 사람은 광야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세상 안에서도 광야를 살아갈 때 꿈을 꾸는 사람들 가운데 홀로 깨어있는 선지자가 됩니다. 기도는 이렇듯 생각을 통해 오는 유혹을 끊어 이 세상의 흐름과 정 반대로 살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래야 더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순응하며 그 노예생활이 행복이라 말합니다. 매트릭스와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영화가 많습니다. ‘트루먼쇼’나 ‘쇼생크 탈출’과 같은 영화가 그 대표적인데 ‘월-E’란 영화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역시 미래의 이야기인데 환경오염으로 지구에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자 인간들은 아주 커다란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의 환경이 나아질 때까지 지구 밖에서 삽니다. 지구의 고철을 정리하라고 만들어놓은 ‘월-E’라는 로봇만이 수백 년 동안 혼자 지구를 지킵니다. 그러나 생명을 사랑하는 따듯한 마음이 있어서 조금씩 명령을 어기며 곤충도 살려주고 잡초도 보호해줍니다. 지구상의 기계 중의 유일하게 인간성을 지닌 기계인 것입니다. 반면 우주에 나가 살고 있는 인간들은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매일 의자에 앉아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기계보다 더 기계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들이 땅을 버리고 왜 우주를 떠돌아야 하는지도 잊어버렸습니다. 그저 그렇게 정해졌으니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지구에 식물이 자라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렇게 살았기에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믿습니다. 기계지만 유일하게 인간적인 ‘월-E’라는 고철로봇이 그들을 다시 지구로 초대합니다. 이 월-E를 만나는 장소가 광야이고 그 만나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려고 순응하는 것이 곧 죽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죽어야만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도시가 아니라 광야로 나오라고 권하고 계십니다. 광야는 교회이고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만 내 생각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에서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은 한 편으로는 “내 생각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올 때 그냥 “에이, 몰라!”라고 외치셔야합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교만해지고 육체적이 되고 욕심이 커집니다. 생각을 없애는 훈련을 많이 해야 어린이처럼 될 수 있습니다.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없어져서 막상 힘을 써야 할 때 쓸 수 없게 됩니다. 기도는 생각을 끊는 근육을 키우는 운동과 같습니다. 생각을 끊고 싶을 때 끊을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해방의 길입니다. 생각이 좋은 것이라 믿는 것에서부터 죄가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도 뱀과 대화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 여겨 죄에 떨어졌습니다. 생각 자체가 유혹임을 잊지 말고 생각을 끊는 연습인 기도를 꾸준히 해야 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9997BA485AAEA46C04CF18
  • ◈ [수원] 빠스카 신비에 참여하기 위하여/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10일 사순 제1주일: 다해: 빠스카 신비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 교회 안에 파스카 축일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날은 없다. 빠스카 축일이야말로 다른 모든 축일을 거룩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승리와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는 파스카 축일의 신비에 합당하게 참여하기 위하여 40일간을 준비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의 충만성에 참여하기 위하여 필요한 기간으로 사순절을 살고 있다. 오늘의 성서 대목들은 이 파스카라고 하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피곤하지만 기쁨에 차 있는 우리 여정의 의미와 방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다. 제1독서: 신명 26,4-10: 선택받은 백성의 신앙고백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8-9절)에서 수확한 첫 결실을 봉헌하면서 하느님께 감격에 찬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들은 첫 결실을 바치면서 자신들을 구원하신 역사를 고백하고 있다. “저의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 이었습니다. 그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저희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저희에게 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저희의 소리를 들으시고, 저희의 고통과 불행, 그리고 저희가 억압당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 큰 두려움과 징표와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5-9절). 이 대목을 사순절과 연결시켜보면 다음과 같다.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은 12부족의 시조인 이스라엘이고, ‘떠돌아다니는’이란 말은 유목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길을 잃은 양처럼 (예레 50,6; 에제 34,4.16; 시편 118,176; 루카 14,4-6) 구원의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자의 모습이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이 오랜 유랑생활 끝에, 즉 고통의 시기가 끝난 다음 하느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고, 둘째로는 억압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께 아우성을 치자 주님께서는 ‘징표와 기적’(8절)으로 그들을 해방시키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기 위해 오랫동안 시험과 단련을 받았듯이 우리도 약속의 땅인 파스카의 영광에 참여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거기에 도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사순절을 지내는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파스카의 신비는 약속의 땅보다 더 의미가 깊다. 복음: 루카 4,1-13: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예수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사순절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오늘 복음은 단순히 유혹의 내용이 아니라 이 사순절을 통하여 우리의 정신이 단련되고 또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을 체험 중심으로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유혹은 예수님의 수난까지 계속된다. 즉 예수님의 전 생애에 걸쳐 계속되는 유혹이다. 즉 예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1-2절)고 하고 있고,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13절). 그 ‘다음 기회’란 ‘수난의 때’이다. 그 악마는 유다의 배반과(루가 22,3)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이 권세를 떨칠 때다.”(루가 22,53)라고 당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둘째, 이 유혹은 예수께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포한(루가 3,22) 세례 후에 나타난다. 사탄은 아주 고도의 수법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사명을 세속적 권세와 명예와 영광에 결부시켜 세속주의적인 ‘메시아’로 만들려고 한다. 사탄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유혹을 한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3.9절). 이러한 유혹은 계속 예수님께 그분의 공생활 중에도 나타났던 것이었다. 군중들(14,15; 19,11)과 고향 사람들(4,23) 그리고 사도들 (10,20)로부터도 나타났다. 십자가 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23,35). 사탄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 같다. 이 유혹은 바로 예수께 하느님의 뜻에 맞는 메시아로서보다도 인간들이 바라고 원하는 그런 메시아가 되라는 무서운 유혹이다. 즉 현세적 메시아가 되라는 유혹이다. 이것이 또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동요시키는 유혹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이 보여주신 것을 통해 원하시는 것과는 달리, 즉 하느님의 뜻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눈치에 자신을 맞추라는 유혹이다. 이것이 예수님께는 성공하지 못하고 우리에게는 성공하는 영원한 유혹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의 표현인 ‘말씀’에 당신 자신을 완전히 일치시키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는 성공하지 못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4.8.12절). 즉 예수님은 ‘말씀’의 식별력에 따라 행동하고 판단하신다는 명확한 의지의 표명이다. 즉 하느님만이 우리가 받들어 모셔야 하는 유일한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제2독서: 로마 10,8-13: 그리스도 신자들의 신앙고백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신앙이란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시어 구원해주실 수 있는 그분께 도움을 청하며 의탁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신 것과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구원행위를 말하고 있다. 그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 자신과 모든 인류를 위해 죽음의 멍에까지도 없애셨다. 이제는 그 구원에 이르기 위해 그 구원을 갈망하며 하느님께 호소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때에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 10,13).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 여정도 그리고 그 도착지도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사순절은 파스카와 함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은총이다. 이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감으로써 말씀을 실현시켜 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예수님께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하느님의 뜻보다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라고 더 애쓰는 (갈라 1,10) 예수님께서 공생활 전체를 통해 받으셨던 유혹을 우리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나를 하느님의 뜻으로부터 멀리하고 인간적인 원의를 이루도록 끊임없이 나를 붙들고 늘어지는 유혹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좀 더 나 자신을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순절이 되도록 사순 제1주일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9997BA485AAEA46C04CF18
  • ◈ [수도회]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루카 4, 2)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10일 사순 제1주일.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루카 4, 2) 말라 시들해버린 곳에서 생명의 새순이 시작됩니다. 사순과 새순 사이에 길을 찾는 생명이 있습니다. 삶이라는 시간안에는 고통스러운 광야도 있습니다. 힘겨운 광야에서 우리가 사로잡혀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됩니다. 재물, 명예, 폭력성의 욕망을 다시 보게됩니다. 악마의 유혹은 언제나 먹음직스럽고 그럴싸합니다. 악마의 유혹을 통해 우리의 약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아프게 깨닫습니다. 우리를 되살리시기 위해 당신 먼저 광야의 여정을 걸어가셨습니다. 광야에서 길을 찾게됩니다. 하느님을 향하는 길을 찾게됩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믿음을 발견하게됩니다. 광야는 절실함 가운데서 하느님을 만나는 은총의 장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광야의 여정을 통해 참으로 소중한 것이 하느님과 우리자신의 관계임을 깨닫게하십니다. 우리모두는 하느님의 소중한 인격체들입니다. 하느님을 회복하는 길만이 잃어버린 인간의 품위를 되찾는 길이 됩니다. 우리는 어떠 어떠한 일을 하여야만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하느님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명입니다. 이 사순시기가 우리 힘만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교만에서 벗어나 은총의 시간 겸손된 생명의 여정이길기도드립니다. 이 생명의 사순시기가 빵도 말씀도 낮은 곳도 높은 곳도 바닥도 꼭대기도 하느님으로부터 왔음을 깨닫는 감사의 시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봄의 새순처럼 생명은 가장 빛나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사순과 새순사이에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뜨거운 회개로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끄시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9997BA485AAEA46C04CF18
  • ◈ [수도회] 성령께서 우리의 여행길에 밀착 동반하신다면, 광야 생활 결코 외롭거나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2019년 다해 3월10일 사순 제1주일 성령께서 우리의 여행길에 밀착 동반하신다면, 광야 생활 결코 외롭거나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본격적인 사순시기로 접어든 오늘,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후, 성령으로 가득 차 돌아오신 예수님께서는, 잠시의 지체도 없이 성령에 이끌려, 거칠고 황량한 유다 광야로 들어가십니다. 유다 광야! 한번 가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을도 인가도, 강도 샘도, 나무도 풀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거친 황야와 하늘만 끝도 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예수님께서는 동행자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생필품도 없이,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 한 가운데로 들어가셔서, 40일간의 대피정을 시작하십니다. 본격적으로 사순절을 시작한 우리도, 스승 예수님을 따라 깊고, 황량한 광야, 조금은 외롭고 쓸쓸하고, 춥고 배고픈 광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이번 사순절 광야로 들어갈 때는, 다른 해 처럼 준비없이 들어가지 말아야겠습니다. 예수님처럼 성령으로 가득 차고, 성령에 이끌려, 성령과 함께 광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우리들 생애 안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사순절이 많은 경우 실패로 끝난 이유는, 주님 없이, 성령 없이, 내 힘만 믿고, 나홀로 광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광야 생활이라는 것,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한낮에는 피할 곳도 변변치 않은데, 엄청난 더위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합니다. 밤이 되면 기온은 또 얼마나 내려가는지 모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백퍼센트 인간 조건을 그대로 지니셨던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허기와 갈증은 또 얼마나 극심했을까요? 어쩌면 그분께서는 언젠가 겪게될 골고타 언덕에서의 극심한 십자가 죽음의 고통을 광야에서 미리 맛보셨던 것입니다. 올해도 우리의 광야인 이번 사순시기, 여느해처럼 갖은 고통과 시련, 세찬 모래 바람과 극한 체험으로 가득하겠지만, 성령과 함께라면 큰 문제 없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여행길에 밀착 동반하신다면, 광야 생활 결코 외롭거나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맞이한 사순시기 우리 앞에 펼쳐질 광야는 어디일끼요? 나와 너무나도 다른 그, 정말이지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용납이 안되는 그가 득실거리는 우리의 공동체가 광야입니다. 평생토록 혼신의 힘을 다해 한번 벗어나보려고 그토록 발버둥쳐 봤지만, 그 지독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반복되는 내 악습과 결함이 광야입니다. 게으름과 나태함, 갖은 유혹거리로 가득 찬 내 부끄럽고 참혹한 매일의 일상이 광야입니다. 바로 그 광야에서 주님과 함께, 성령과 함께 새출발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9997BA485AAEA46C04CF18
  • 앤드류 요크/ Home(2018) - 앤드류 요크(기타)Shine 7'4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