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0일 죄악의 시대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9-03-20 06:33:28    조회 : 230회    댓글: 0

▣ 2019년 다해 3월20일 [(자)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예레미야서 18,18-20
복음 마태오 복음 20,17-28

**********
◈ [서울] 사순 제2주간 수요일

2019년 다해 3월20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스마트 폰의 통화기능이 정지되었습니다. 긴급통화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설정으로 들어가서 이것저것 만져보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기능까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통신사의 서비스센터로 가서 문의했더니 유심칩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유심칩은 소모품이고 고장 나면 다시
갈아끼면 된다고 합니다. 외국에서도 유심칩만 바꿔주면 지금의
스마트 폰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잘 몰랐는데
유심칩이 스마트 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유심칩에는
사용자의 모든 정보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스마트 폰을 바꾸어도
유심칩만 옮기면 정보를 다시 저장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유심칩이
있기에 인터넷 은행 업무도 가능하고, 정보의 저장과 처리도 빠르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상통화가 가능한 것도 유심칩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지만 아주 유용한 기능을 가진 것이
유심칩이었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대형화되고 있고, 중산층화되고 있고,
가난한 이들이 함께하기 힘들고, 주일미사 참례 수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박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사제의 수가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원하기만 하면 가까운 거리에서 기도할 수 있는 성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본과 물질의 유혹이 교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초대교회의 정신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가셨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보여주었던 삶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스마트 폰은 유심칩을 바꾸면
새롭게 사용할 수 있었듯이, 교회도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산적한 많은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수도자들은 전에 했던 소임, 능력이나 경험을 가지고 소임을 정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수녀님은 관구장을
했었지만, 다시 본당 수녀의 소임을 기쁘게 하셨습니다. 나중에는
보육원에서도 소임을 하셨습니다. 능력과 재능 그리고 연륜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분에게 맡겨진 어떠한 일에도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아름다우셨습니다. 제가 아는 또 다른 수녀님은 노인 수녀님들을 위해
주방을 돌보는 일도 기쁘게 하셨습니다.  

가끔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신부님 영전하셨습니다.’ 이런 말을 듣는
것은 규모가 큰 본당으로 가게 되는 경우입니다. 아니면 조직이 큰
단체를 맡게 되는 경우입니다. 일반 사회라면 ‘영전’이라는 말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제의 직책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구상 선생님께서 쓰신 ‘꽃자리’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시방 네가 가시방석같이 생각하는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이다.’ 조롱과 멸시를 받는 자리라 해도, 고난과 역경이 있는
자리라 해도,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자리라 해도, 보람과 가치가 있는
자리라 해도 그 자리를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라 생각한다면 바로
꽃자리가 될 것입니다.  

다만 어떤 일을 할지라도 꼭 잊지 말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상위 1%가 되려면 99%가
안 하는 것을 해야 한다

2019년 다해 3월20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상위 1%가 되려면 99%가 안 하는 것을 해야 한다>
복음: 마태오 20,17-28

우리는 성공하는 삶을 살고 싶은가요, 패배한 삶을 살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자동차가 성공한 삶을 산다는 것은
그 만들어진 능력대로 최대한 사용되는 것일 것입니다.

스티븐 코비 박사는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공통점 7가지를 책으로 정리해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분명 그 공통된 7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

누구나 한 인생이 주어져있고 그 인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들은 핑계를 대는 일이 없습니다.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이 책임집니다. 시대나 환경 탓을 하지 않습니다. 노력만하면 다
된다고 믿습니다. 누군가의 결정에 끌려 다니지 않고 자신이 이끄는
삶을 살아갑니다.  

2. 목표를 설정하라.

목적 없이 만들어진 물건은 없을 것입니다. 자동차도 스마트폰도 다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구약의 요셉에게 꿈을 통해 그가 만들어진 목적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목적을 알고 사는 사람과 그냥 사는 사람은 어항에서 5cm 크는
금붕어와 강에서 1m 크는 금붕어의 차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사람으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 무언가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이들입니다.  

3. 중요한 것부터 먼저 하라.

내가 누구인지 알면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압니다. 하느님의 자녀면
당연히 기도가 가장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하루를 계획 없이 사는
사람들은 열심히 살기는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일은 빠뜨립니다. 내가
하루에 꼭 해내야 하는 것들을 전날 5~6개 정도 적고 그 우선순위별로
다음날 이루어내면 짧은 시간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과 엄청난
차이를 만들게 됩니다.  

4. 상대도 잘 되게 만들라.

자수성가한 사람치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항상 더 가지려거든 그것을 먼저 내어주라는 말을 합니다. 내어줄 때
더 가지게 된다는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일본 최고 부자인 손정희
회장은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려는 마음 때문에 부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5. 나를 이해시키기 이전에 상대를 먼저 이해하라.

나의 것만 주장하다가는 항상 그 반대 세력에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갈라지면 그 사람들을 데리고는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합니다.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상대를 이해시키며 함께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됩니다.  

6. 시너지를 활용하라.

‘1+1=2’가 아니라 ‘11’도 될 수 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혼자 이루는
업적은 한계가 있습니다. 손정희 회장은 자신의 돈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자들을 찾아 투자할 돈의 액수를 엄청나게 늘립니다. 그
힘으로 투자하면 성공하지 않을 사업도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은 아담에게도 화와라는 협력자를 만들어주셨습니다.  

7. 지속적으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라.

자기관리가 안 되는 사람이 큰일을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명상이나 독서를 합니다. 김승호 회장은
팔굽혀펴기를 쉬지 않고 100번 이상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침에 한 시간 명상을 하였습니다. 워런 버핏은 하루 종일
책만 읽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성공할 만한 무엇이 있는 사람은 성공하고
평범한 사람은 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 아닌 것처럼, 하늘나라에서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꿈을 품어야합니다. 자녀가 어머니에게 “어머니, 저는 그냥 가장 못난
아들로 남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겸손이 아닙니다. 불효입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일들을 기억한다면 더 큰 보답을 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렇게 하늘나라의 높은 자리를 추구하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바람을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 방법을 알려주실 뿐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주님께서 마시려는 잔은 ‘십자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사형선고 당하시고 조롱과 채찍질,
그리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하실 것임을 선포하십니다. 즉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만큼
하늘나라에서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란 뜻입니다. 

남들보다 더 기도하는 사람은 당연히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높습니다.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더 용서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하는 기도와 자선과 단식이
타인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나는 하늘나라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상위 1%에 들려면 당연히 99%가 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합니다. 혹
99%가 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하는 것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평범한 자녀가 되라고 부르시지 않습니다. 당신이 마신 잔을 마셔
당신처럼 되라고 하십니다. 하늘에서 별처럼 빛나는 성인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어쩌면 세례 때 그런 결심을 했었는데 지금은
잊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는 대로 저 세상에서의 나의
위치도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구원받겠다는 마음으로 사는 것보다는 성인이 되려는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래야 바라는 대로 되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 [수원] 사순 제2주간 수요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20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20,17-28: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제자들은 주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계속 들어 왔지만,
주님의 기적을 보고도, 말씀을 듣고도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것을 듣는 것 자체가 괴로운 말씀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분이
행하신 무수한 기적들을 보았는데, 이런 분이 고난을 당하신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제배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나아가
예수님께 청하고 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21절) 이 자리는 분명히 두
아들들이 원하는 것인데 그들은 어머니를 내세워 대신 청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지금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계시며,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인데, 이 순간에 아직도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볼 때, 더욱 서운하셨을 것이다. 자리다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22절) 복음에서는 잔과
세례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런데 잔과 세례는 같은 것이 아니다. 잔은
수난을 의미하지만, 세례는 죽음 그 자체를 말한다. 예수님께 잔은
수난이었고 세례는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에는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모든 고통이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난은
당했어도 죽임을 당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이들이 고백자이다. 실로
주님의 잔을 마시기는 했어도,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는 받지 않았다.

“할 수 있습니다.”(22절) 그들은 시련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전쟁을 모르는 사람은 전쟁놀이가 재미있다. 그
잔의 의미를 모르니까 그렇게 대답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길 앞에서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하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이 그
잔이 어떤 것인 줄 알았다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수난의 괴로움은 참으로 크다. 그러나 죽음은 훨씬 더 무서운 것이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마태 10,39-40) 이 말씀은
거절하는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나머지 제자들이 불쾌했다고
한다. 모든 사도들이 세속적인 마음으로 주님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주님께서는 사도들 사이에 형제애가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모두가 희망을 가지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의 예를 드시면서 그들과 같이
백성들 위에 군림하지 말고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26절)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과 같이 하느님 안에 능력 있고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다 잘 섬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28절)고 하셨다. 그분을 본받도록 하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 [수도회]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루카 20, 27)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20일 수.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루카 20, 27)

죽었던 그 자리에서 봄꽃이 피어납니다.
나중에서야 깨닫게되는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십자가가 모든 삶의 기초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정확한 표지판이 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섬기고 나누는 십자가의 생명입니다.
십자가는 옛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옛 것을 옛 방식을 내려놓아야 탈출구가 보입니다.
우리또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치유하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자유롭게합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은 완성됩니다.

사순시기는 십자가에서 충만한 사랑의 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거룩한 지혜이며 가장 살아있는 참된 진리입니다.
십자가에서 비로소 믿게되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우리를 살리시는 하느님께서 직접
걸으신 생명의 길입니다.
그 길을 믿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무엇을 원하느냐?|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년 다해 3월20일 사순 2주간 수요일 (마태20,17-28) 

무엇을 원하느냐?

많은 사람이 으뜸으로 인정받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대접을 받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하더라도 진정한 존경과 사랑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속 안에 있으면서도
세속을 떠나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진정 존경을 받을 사람입니다.
세상은 높아지라고 하지만 오히려 섬기는 사람, 세상은 첫째만을
기억하지만 오히려 종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께로부터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는 자기 두 아들이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을 어찌 탓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아무 정성과 노력이 없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욕심을
지니게 되면 반드시 적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는 낌새를 알아챈 다른 열 제자가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생각한 것에서도 바로 그러한 마음을 대변해 줍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물론 영광을 원합니다. 그러나 영광은 고통 없이
주어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부활의
영광에로 나아가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수난을 예고하시지만
제자들은 딴청을 부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태20,22)하고 물으시자 “할 수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지만 사실 그들은 의미도 모르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 잔은
모욕과 천대,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을 뜻했습니다. 종이 되어 남을
섬기는 낮아지는 삶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덥석 대답해 놓고는
딴전을 피우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여전합니다.

세례성사를 받으면서 마귀를 끊어버리겠다고 선언해 놓고서는 어려운
일이나 우환이 닥치면 하느님 보다는 ‘어디 용한 사람이 없나?’ 살피게
됩니다. 허례허식을 버리겠다고 맹세하고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을 합니다. 남이 나를 섬겨주기를
바라는 허영의 마음이 가득할 때도 있습니다. 오로지 주님을 믿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고백하고서는 미사참례를
소홀히 할 때도 있습니다. 모처럼 손님이 오면 함께 미사 참례하자고
권유하면 좋으련만 그를 배려한다는 빌미로 주일미사까지 궐합니다.
약속된 영생에 대한 희망을 말하면서도 눈앞에 것에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아직도 아무
수고와 땀도 없이 영광을 바라느냐? 고 물으십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기꺼이 “할 수
있습니다.” 대답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대답에 항구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군림해서 힘으로 내리누르는 삶이 아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내어바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하기를 갈망해야 하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 [기타] 3월 20일 (수) - 죄악의 시대

오늘은 ‘죄악의 시대’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창세기 19장 5절 말씀에 “오늘밤 네게 온 사람들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천사가 소돔성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 롯이 두 천사를
간청하여 집으로 데리고 가 잘 대접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재워 자려고 하는 순간 소돔 백성들이 나이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먼 곳에서도 가까운 곳에서도 몰려와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며 오늘밤에 찾아온 두 천사를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소리를 칩니다.

하지만 롯이 문을 걸어 잠그고 막아섰습니다. 그리고는 롯이 약혼을
한 두 딸의 사위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인데 빨리
이곳을 피하라고 했지만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해 뜰 즈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롯이 소알 땅으로 도망을 가는데 소돔과 고모라
성에는 유황과 불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 때 롯의 아내는 천사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잊어버리고
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험악한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어 보십시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