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7일 그리스도인들을 새 계약의 이스라엘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9-03-27 07:12:36    조회 : 234회    댓글: 0

▣ 2019년 다해 3월27일 [(자)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신명기 4,1.5-9
복음 마태오 복음 5,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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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사순 제3주간 수요일

2019년 다해 3월27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작년에 제주도에서 중견사제 연수를 하였습니다. 전국에서 사제들이
모여서 함께 지냈습니다. 안식년을 하면서 다른 교구에서 사목하는
신부님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대구에 있는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멀리 벗이 찾아오니 즐겁다며 친절하게 맞이해준
신부님이 있어서 즐거웠던 대구에서의 시간이었습니다. 주교좌성당인
범어동 성당도 보았고, 동기 신부님이 사목하는 성당에서 미사를 함께
했습니다. 

대구에서 택시를 타면서 두 분의 기사를 만났습니다. 한분은
무뚝뚝하셨습니다. 대구에서는 볼 것도, 먹을 것도 별로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가족이 맛있다는 집에 갔는데 별로였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해 주었습니다. 처음 대구를 찾는 사람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설명이었습니다. 다른 한분은 무척 친절하셨습니다.
대구에서의 볼거리와 맛집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대구 사람이 즐겨
찾는 공원도 소개해 주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사분의 설명만
들어도 즐거웠습니다. 

운전에는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준법운전입니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운전입니다. 정해진
속도를 준수하고, 신호를 잘 따르고, 운전하면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실 준법운전만 해도 운전을 잘 하는 것입니다. 과속
때문에, 신호를 지키지 않아서 사고를 내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도 28년 운전하면서 교통법규를 어긴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안전운전입니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서 나의 안전과
타인의 안전을 고려하는 운전입니다. 운전하기 전날에는 가급적이면
술을 자제합니다. 장거리 운전을 하면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갖습니다.
과속하는 차가 있으면 먼저 가도록 자리를 비켜줍니다. 안전운전하는
사람은 앞에 가는 차와 뒤에 오는 차의 운전 상태까지도 살피면서
운전합니다.

세 번째는 양보운전입니다. 장애인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을 내는 분을
보았습니다. 봉성체를 위해서 차량 봉사하는 분도 보았습니다. 고장
난 차가 있으면 내려서 도와주는 분도 보았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운전은 누군가를 도와주고 먼 길 함께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친절하게
맛집과 볼거리를 알려주던 기사분도 양보운전을 하셨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신앙인이 가야할 겸손의 3단계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운전의 3가지 모습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겸손의 3단계를 깊이 묵상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미사를 지키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거짓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말했던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이 연구하고, 지키려했던 계명입니다.
이렇게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면 세상에서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습니다. 다만 율법에 얽매여서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보지 못한다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삶의 중심에 하느님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일미사는 물론 평일미사도 자주 참례하는 분입니다.
본당에서 실시하는 피정과 교육은 빠짐없이 참석하는 분입니다.
시간과 재물의 십일조를 충실하게 봉헌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이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신앙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밤하늘은 별들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처럼 이런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세 번째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이웃을 위한 사랑 때문에 가진
것을 모두 내주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이 영광을 위해서라면 건강보다
아픈 것을 택할 수도 있고, 부유함보다 가난함을 택할 수도 있고,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을 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밤하늘에
별들이 많지만 길을 알려주는 북극성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길에
이정표가 되어주는 분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습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 불릴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기도, 희생, 나눔, 봉사’를
충실하게 실천하여서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불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라면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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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사순 제3주간 수요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27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5,17-19: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쳐라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러 오지 아니하고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식사의 신비를 당신의 수난으로 완성하셨을 때
율법을 완성하셨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사람들이 건네준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고 하심으로써 당신에 관해
쓰인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분명히 보여주셨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1코린 5,7)라고 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계명들은 어느 것 하나도 폐지해서도 고쳐서도 안
된다. 모든 것을 그대로 보존하며 잘 가르쳐 하늘 나라의 영광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작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하찮은 것이 아니라 필요하게 여기신다.
주님께서는 그 계명들을 모두 가르치셨고 또 지키셨기 때문이다. 작은
것들도 하늘나라라는 위대한 미래를 가리킨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17절) 율법과 예언서는 둘 다
유효하다. 이 책들을 보면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과 살아가는 일에
관한 법이 담겨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를 둘 다 완성하셨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그 율법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말씀을
실천하며 우리는 주님의 계명을 완성해 갈 것이다.

우리에게는 주 하느님께서 만드실 새 하늘과 새 땅이 약속되어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면, 그에 따라 옛 것은 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8절)라는 말씀은 율법에서 가장 작다고 여겨지는 것조차도 영적
상징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 모든 것이 복음서에 요약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19절)는 곧바로 지옥과 벌을 떠올려야
한다. 이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가장 작은 자,
내쳐진 자요 말째가 되어 벌을 받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제쳐 놓는 이는 누구나 당신과
맞서는 자로 여겨 옆으로 제쳐 놓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 업신여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다. 부활을 향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이 단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행사로만 끝난다면, 우리가 맞는 부활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부활은 우리 자신의 새로운 탄생을 촉구하고 있으며, 또한
영광스러운 나 자신의 하느님 안의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가 부활을 축하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제 하느님의 사랑의
계명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올바로
실천하도록 하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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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 불릴 것이다.(마태 5, 19)|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27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
불릴 것이다.(마태 5, 19)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법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율법을 통해 구원과 은총이 필요한 죄인임을 절실히 깨닫게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삶을 변화시키는 가르침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하느님께 순명하는 삶으로 율법을 완성하십니다.

사랑과 감사 축복과 은총으로 율법을 더욱 풍요롭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율법과 계명들은 우리의 죄를 알게하며 하느님의 어린양은
그러한 우리 죄를 없애시는 분이십니다.
율법과 계명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께로 돌아가는 은총의 사순시기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시며 당신 사랑의 법으로
우리를 잔치에 초대하십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사랑을 지키고 사랑을 가르칩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오늘도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고 있음을 믿습니다.
율법을 완성하는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사랑을 배웁시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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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우리의 작음에 감사하고, 보다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야겠습니다!

2019년 다해 3월27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우리의 작음에 감사하고, 보다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야겠습니다!

형제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모든 것을 공유하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크게 느끼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형제들은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행복해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상처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그리도 목숨을 건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웃을 향해 뭐 대단한 것, 엄청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기대합니다. 작은 친절이나 작은 사랑, 작은
나눔이나 작은 도움을 기대합니다. 나의 작은 성취나 작은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작은 칭찬의 말 한 마디, 힘겨워하는 나를 향한
작은 격려의 말 한 마디에 그리도 기뻐합니다.

따지고 보니 작은 것이 큰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작은 것의 중요함을 그리도 강조하셨는가 봅니다.

“그러므로 이 작은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오 복음 5장 19절)

곰곰히 생각해보니 참 사랑은 뭔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작은 약속을 충실하고 꾸준히 잘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원치 않은 행동을 자제하는
일입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소확행(小確幸)을 존중해주고,
그의 얼굴이 늘 기쁨으로 빛날 수 있도록 그의 작은 행복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늘 나라에도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존재, 아주 작은 일도 크고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다. 반대로 늘 크고
화려한 것만 쫒으며 작은 존재, 작은 일을 경멸하고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입니다.

크기는 좀 작았지만 자태나 뿐만 아니라 향기까지 갖춘, 꽤 괜찮은 꽃
한송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은 늘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주변에 서 있는 위풍당당한 해바라기나 화려하고
큼지막한 맨드라미에 비교해보니 자신은 너무나 작고 초라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던 작은 꽃은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던
나머니 매일 매일 괴로워하다가, 힘이 빠져갔으며 고개는 점점 아래로
쳐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습니다. 작은
꽃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말을 건넨 꽃 한 송이를 발견했는데,
그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크기가 너무 작고 볼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주 작은 꽃은 불행하다고 작은 꽃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애! 넌 정말 크고 예쁘구나.”

작은 꽃은 아주 작은 꽃의 칭찬에 기분이 한껏 업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꽃 앞에서 자신의 자태를 한껏 뽐냈습니다. 그때 아주 작은
꽃이 작은 꽃에게 물었습니다.

“애! 내 이름은 개미눈물꽃이라고 해. 그런데 네 이름은 뭐니?”

그 순간 작은 꽃은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작은 꽃은 언제나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하는데만 신경을 쓰다보니, 자신이 누구인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름, 정체성, 신원 조차
몰랐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작은 것을 소중하고 크게 여기시는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구원된다면 크고 대단해서가 아니라, 작고 보잘 것 없어서 구원됩니다.
우리의 작음에 대해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작음에
감사하고, 보다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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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사순 제3주간 수요일|염철호 요한 신부 강론 묵상

2019년 다해 3월27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제1독서에서 모세는 시나이산 계약 때 하느님께서 명하신 율법 규정과
법규들을 잘 지키고,

그 가르침을 잊지 말며, 자자손손에게 일러 주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그래야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종종 율법 규정을
어기시는 모습을 보이시기에, 예수님을 마치 하느님의 율법을 없애러
오신 분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는 율법을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입니다.

율법의 정신을 다시 올바로 세우시어 모두가 하느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그래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 곧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려고 오셨다고 말합니다.

오늘 대목에 이어지는 산상 설교(마태 5―7장)는 모두 모세의 율법
규정을 새롭게 해석하시는, 곧 그 정신을 바로 세우시는 말씀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두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시며, 그 뜻을 지키는
사람만이 약속의 땅인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 7,21 참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참된 율법 정신을 알고 있는 위대한 스승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삶으로써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새 계약의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 가르침을 믿음의 후손들에게 계속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이들은 하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 부산 가톨릭 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염철호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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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3월 27일 (수) - 하나님께 영향을 받자

오늘은 ‘하나님께 영향을 받자’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창세기 24장 1절 말씀에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날마다 어린아이가 될 수 없고 날마다 젊음을 유지
할 수 없고 때가 되면 반드시 생로병사의 법칙을 따라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나이가 들었고 175세까지 살았지만 결국은
아들이삭을 결혼 시키고 대를 이어가는 과정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주셨는데 범사에 복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범사란 모든 순간순간을 말합니다.
모든 순간순간에 복을 받았다는 의미는 모든 순간순간에 아브라함이
그때그때마다 순종을 하였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사실은 복 받을 행위를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또한 반증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십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에만
치우쳐 환경의 영향을 받고 사람의 영향을 받고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그 어떤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말고
하나님께 영향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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