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2일 포도나무의 비유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9-05-22 06:57:20    조회 : 235회    댓글: 0

▣ 2019년 다해 5월22일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15,1-6
복음 요한 복음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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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알지 못하니까 못 하는 것

2019년 다해 5월22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알지 못하니까 못 하는 것>

복음: 요한 15,1-8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독일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자 유럽은 연합군을 형성하여 독일 히틀러의 나치군과 대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국군 29만 명이 불란서를 도와주기 위해 불란서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전세를 뒤집을 수 없어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철수하는 영국군이 도버해협을 건너려는데 이를 알아차린 히틀러는
나치군에게 철수하는 영국군을 전멸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위급해진 영국군은 조지 5세에게 보고를 했고, 영국 왕은 영국
국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위기에 처한 영국 군대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
모두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하느님만이 우리를
구해주실 수 있습니다.” 

왕의 긴급 기도 요청에 온 국민은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영국군을 공격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독일군 지역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폭풍이 불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독일군의 전투기가 단 한 대도 이륙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단 한 대의 탱크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영국군이 철수하는 도버해협의 하늘은 화창하고 바다는
잔잔하여 29만 명의 영국군이 아무런 사고 없이 도버 해협을 건너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기도의 힘을 안다면 기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어제 어떤 신자가
“신부님, 요즘에 기도가 잘 안 돼요.”라고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고해성사를 듣다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죄를 고백할 때, “요즘 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신자분께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기도가 잘 되는 게 뭐예요?”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는 말은 결국 기도하기 싫다는 말입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면서 할 수 없어서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흔히 기도에 대해 착각하는 생각이 기도시간은 기쁘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보통 힘든 시간이 아닙니다. 성경은
기도시간을 마치 야곱이 하느님과 밤새 씨름하는 시간으로
비유했습니다. 씨름을 1분만해도 힘든데 밤새 했다면 얼마나
힘들까요? 혹은 열 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을 채우는 일은 보통 귀찮은
게 아닙니다. 기름을 채우려면 잠을 깨고 기름장수에게 다녀오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혹은 기도시간을 꾸준히 누군가에게 괴롭히듯
청하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이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운동을 하기 싫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는 운동을 안 해도
건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운동은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요?
유익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몸의 저항을 이겨내야 근육이 생기고
노폐물이 사라져 건강해집니다. 운동을 하고, 안 하고는 운동의 좋은
점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인 것입니다. 요즘 운동이 잘 안 된다고 말하면
그것은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가
힘들고 잘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도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시간을 ‘기도’라 합니다. 나무에 붙어있지 않은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가 힘든 일임에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며, 잠을 자지 않아도 그런 것을
아는 것처럼, 기도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아는 사람만이 예수님께
붙어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세기적인 과학자 뉴턴이 말년에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그 많던 지식을 망각해버렸습니다. 답답해하던
제자들이 안타깝게 묻습니다.

“지금 와서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뉴턴은 여유 있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내 구세주라는 사실이다. 이것 외에 더 무슨
지식이 필요 하느냐?”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이고 내가 가지라는 사실만 안다면 기도를 꾸준히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 기도해야하는지 모르니까 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방법은 기도를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유익한
일도 할 수 없고 지옥에 살게 됨을 삶으로 체험하는 길뿐입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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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부활 제5주간 수요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5월22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포도나무의 비유

복음: 요한 15,1-8: 내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1절) 아들은 우리가
아들 안에서 열매를 맺도록 우리에게 참포도나무가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것 그리고 당신과 결합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얻는지 보여주시고자 하신다. 당신을 포도나무라 하시며
그분과 결합된 이,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린 이 그리고 성령 안에서
그분께 결합된 이들은 가지이다. 가지들은 포도나무와 연결됨으로써
포도를 맺는다. 우리는 삶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경작하시어 우리 마음에서 사악한 씨앗을
없애고, 말씀의 쟁기로 우리 마음을 갈아엎고, 계명의 씨앗을 뿌리시고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신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가지들은 열매를 맺고 자라는데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가지들은 모두 잘려 나가고 만다.
예수님의 복음이라는 포도나무도 세상 곳곳으로 심겨졌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예루살렘은 그래서 버려지고
말았다. 사랑에서 나오는 선행으로 우리가 단단히 결합되지 못하면
우리가 가지라고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모사는 죽은 가지가 될 것이다.
그런 가지는 잘릴 것이고, 농부는 잘린 가지들을 쓰레기처럼 태워 버릴
것이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아버지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더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신다. “깨끗이 손질하시어”라는 말씀을 박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박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강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머물러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4절) 가지가 어머니인 포도 줄기로부터 생명의 수액을 받지
못한다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우리도 우리를 기르시는 분과 결합되어
있다면 생명을 주시는 물과 같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지는 자신의 생명의 수단이 되는 것을
나무에서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안에
머무시는 것은 제자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가지가 잘려 나가도
줄기에서 새로운 가지가 움트며, 잘려나간 가지는 뿌리와 떨어지기
때문에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5절) 가지들이 포도나무와 본질이 같고, 거기에서 생겨나듯,
주님의 육체와 같은 육체를 지닌 우리도 그분의 충만함을 받으며
그것을 부활과 구원의 뿌리로 지닌다. 아버지께서는 농부로서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육체인 포도나무를 보살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선행을 하려 해도 선을 베푸시는 분 없이는
아무것도 완성에 이르게 할 수 없다.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다. 그때에 그는 많은 열매도 적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아버지는 경작을 하시는 분이며 동시에 심판관이시다. 그분은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보시면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들처럼 그들을
잘라 불에 던져 버리시고,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당신께서 주시는
은총에 힘입어 더욱 많은 열매를 맺도록 보살펴 주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무르면, 우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신다.(7절 참조) 우리는
언제나 그분의 말씀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8절)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의 삶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그 영광은 하느님의 영광이지
사람의 영광이 아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여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는 것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다.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영광을 나 자신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그 영광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복음에서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고 하신 것이다. 그런 선행이
인간의 힘만으로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시는 것은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이다. 우리 주님 덕분에 우리는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에페 2,10)라고 쓰여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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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 1)|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5월22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 1)

포도나무도 포도나무 가지도 모두 농부이신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생명의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생명의 길은 서로에게 더 많이 머무르는 길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가장 좋으신 머무름의 농부이십니다.
농부에게 농사는 모든 사랑입니다.

농부의 사랑을 먹고 자라납니다.
농부의 자식은 모든 들판의 곡식들이며
모든 포도밭의 포도나무들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생명을 심으시고
자라게 하시는 생명의 농부이십니다.

작은 생명까지 소홀히 여기는 법이 없습니다.
생명은 하느님을 닮아갑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모두는 농부이신 하느님 사랑안에 살아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더 많이 하느님께 머무르는 성모성월 되십시오.
머무름이 가장 좋은 사랑이며 가장 좋은 열매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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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부활 제5주간 수요일

2019년 다해 5월22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혜민 스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변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때로는 가만히 침묵하고 있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흙탕물은 흔들면 계속 흙탕물이 됩니다. 그냥 보기만 하면 흙은
가라앉고 맑은 물이 비로소 보이기 마련입니다. 격렬하게 논쟁을 벌일
때가 있습니다.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도 침묵 중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면
비로소 해결책이 보이곤 합니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필요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새로운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도 충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감성과 이성을 지닌 사람에게 충전의 시간은 더욱 필요합니다. 사람은
전기만 채워지면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성은
때로 독선과 독단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사람의 감성은 수치로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성은 따뜻한
감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감성은 냉철한 이성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는 냉철한 이성과 다양한 감성이 모인 곳입니다. 이성과 이성이
충돌할 때, 감성과 감성이 대립할 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의 시간입니다. 할례의 문제, 음식의 문제, 나눔의
문제, 교리의 문제, 전례의 문제로 교회는 심각한 갈등이 있었고,
때로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비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멈추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을
‘공의회’라고 하였습니다. 현대 사회의 도전과 질문에 응답하는 것도
교회의 사명입니다.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는 것도 교회의 책임입니다.
이런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도 침묵과 기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청해야 합니다. 

연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연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이 있어야 합니다.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몸체와
방향을 정하는 꼬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줄입니다. 연줄은 연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 같지만
연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연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연도 연줄이 끊어지면 곧 땅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연도 연을 날리는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면
바람을 이겨낼 수 없을 것입니다. 

우주는 물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두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주는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속한 은하수 은하,
우리와 한참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도 에너지의 관점에서는 모두
연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먼지도, 뜨겁게
타오르는 저 붉은 태양도 모두가 소중한 것입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이 에너지의 관점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라면
신앙은 당연히 신앙의 시작이며 마침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점을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십시오. 여러분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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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원하는 바를 다 이루어라|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년 다해 5월22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요한 15,1-8) 

원하는 바를 다 이루어라.

우리는 흔히 기도한다고 하면 무엇을 청하는 기도를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무엇을 달라고 합니다. 나의 바람을 정해 놓고 그것을 꼭
이루어 달라고 하소연 할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라는 기도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것도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달라고 떼를 씁니다.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을 보면,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이시여, 당신의
위대한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제 영혼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시어 이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성모님의 사랑과 뜻에 일치하게 해
주소서…..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서도 자라시게 해 주소서……
이 세상과 영혼들에게 그리스도를 모셔다 드리게 해 주시고……
복되신 성 삼위의 영광 안에 살게 해 주소서….당신께서 저를 받아
주시고 저를 써 주시며 저의 나약함을 굳센 힘으로 만들어 주시리라
확실히 믿으며 다짐하나이다.”하고, 이어서 충실한 봉사와 규율에 대한
엄격한 복종을 선서합니다.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봉헌의 기도요, 성령의
도구가 되기를 소망하며 성령께 각별한 사랑을 드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주님 안에 머물고 말씀
안에서 주님의 뜻과 일치할 때 효과적인 열매를 맺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신앙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예수님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달라고 매달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먼저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빌면 무조건 이루어지리라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맹목적인
신앙논리를 펼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나의 할
일은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충성심을 바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원의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타인 지향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바람이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과 일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아버지와 사랑으로 철저히 하나가 되셨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 스스로 인간과 하나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열려있고 그분과 하나 되어 살아간다면
우리의 모든 바람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나의
열매가 아니라 하느님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그러므로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전에 그분과의 일치된 마음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포도나무와 그 가지는 붙어있을 때 생명력을 지닙니다. 열매는 가지에
달리지만 가지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몸통이 튼튼하기 때문에
가지의 열매도 튼실합니다. 포도나무는 전체고 가지는 부분입니다.
부분과 전체는 나뉠 수 없는 사이입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제자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사랑’과 ‘순명’입니다. 우리의
관계도 그러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의 명을 좇지
않는다면 그는 참 제자가 아닙니다.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좇아 살다보면 우리 인생에 알찬 열매가
맺을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이가 늘어난다는 의미와 함께 신앙의 삶을 통해 더 큰
생명력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로 주님 안에 머물러 원하는
바를 다 이루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당신의 것, 오로지 당신의 뜻대로 그것들을 처리하소서.”
하고 기도하며 오늘을 봉헌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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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5월 22일(수) - 사모하는 자의 기적

오늘은 ‘사모하는 자의 기적’이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 15절 말씀에 “그림자라도 덮일까 바란다”라는 내용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난
다음에 정말 놀라운 기적들이 넘쳐났습니다.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기도를 하는 곳마다 정상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질병들이 나았습니다. 중풍병으로 걷지 못하는 자가 낫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각종 귀신들린 자들이 정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오죽하면 사도들의 그림자라도 지나치게 되면 나을 수 있으리라 간절히
사모하는 그 모습이 다 나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이와 같은 기적들이 넘쳐납니다. 심지어 원준상
선교사가 기도를 할 때 85kg의 성도가 순식간에 75kg, 10kg가 빠져
바지가 헐렁헐렁 하게 되는 기적도 생기는 것들을 보면 정말 거짓말
같은 이적들이 속출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이와 같이 가는 곳곳마다 놀랍기만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이 하실 때 가능한 일이며 사모하는 자에게 성령이
함께 하시면 이보다 더 놀라운 이적과 기적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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