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2일 사랑으로 큰 사람이 되십시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9-06-12 06:33:11    조회 : 231회    댓글: 0

▣ 2019년 다해 6월12일 수요일. [(녹)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제1독서 코린토 2서 3,4-11
복음 마태오 복음 5,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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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2019년 다해 6월12일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초등학교 때 사칙연산을 배웠습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입니다. 제 기억에 나누기가 어려웠습니다. 나누기보다는 받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칙연산은 다른 모든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이 되었습니다. 사칙연산을 하지 못하면 다른
수학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사칙연산은 수학이라는 집으로 들어가는
열쇠와 같습니다. 

운전하기 위해서는 교통신호와 표지판을 알아야 합니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교통신호를 어기고, 표지판의 내용을 무시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5분 먼저 가려다가 50년 먼저 갈 수도 있습니다. 음주운전은
본인은 물론 타인의 생명에도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교통신호와 표지판은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원하는 목적지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속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인생에서 길을 찾는 사칙연산과 같습니다. 계명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교통신호와 표지판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계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율법과 계명을
어겨도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이 사람의 주인이 아니고,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듯이, 율법과 계명은 사람을 구속하고 억압하지
않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율법과 계명은 우리가 함께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사람을 하느님께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는
도구입니다. 그러기에 율법과 계명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율법과 계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겸손의 3단계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겸손의 첫 번째 단계는 십계명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불쌍한 이를 도와주고,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겸손의 두 번째 단계는 십계명은 물론 작은 규율까지 충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 미사 참례는 물론 평일 미사까지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는 것입니다. 본당의 피정, 교육에 기꺼이 참여하고, 단체
활동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겸손의 세 번째 단계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함보다
가난함을 택할 수도 있고, 건강함보다 질병을 택할 수도 있고,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은 것을 택할 수도 있는 신앙입니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성인, 성녀들이 걸어갔던 겸손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과 꿈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자비를 베풀고,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하느님 나라는 ‘여성, 죄인, 병자,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모든 장벽을 허물고
싶어 하셨습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모든 율법과 계명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율법과 계명은 울리는 징과 같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율법과 계명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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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연중 제10주간 수요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6월12일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5,17-19: 새로운 정신과 옛 율법

율법과 예언서를 만드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를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 그래서 그분은 십자가를
통하여 이 모든 것을 완성하셨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사람들이
건네준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고
하심으로써 모두 이루어졌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그리고 이미
파스카 식사의 신비를 당신의 수난으로 완성하셨을 때 율법을
완성하셨다.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이 모든 것들은 아무리 작은 계명이라도 잘
보존하며 열심히 성실하게 가르쳐 하늘 나라의 영광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작은 것들도 하늘 나라라는 위대한 미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말만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 가르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르치려는 것을 행하여야 한다. 율법과 예언서에는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과 살아가는 일에 관한 법이 담겨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18절)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때, 그 때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해주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옛 것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는 율법에서
가장 작다고 여겨지는 것조차도 영적인 상징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의 가르침이 얼마나 참되며 거룩한지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알고 있다. 주님께서는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신데 어떻게 실제로 행하지 않으실 수 있었겠는가? 그분은
당연히 율법의 가장 작은 것까지도 지키셨다.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는 하느님의 계명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주님의 계명을 가르치지만 지키지는 않는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무서운 경고를 담고 있다. 계명들 가운데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느님과 반대되는 법을 만들어 낸 자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뜻을, 그분의 말씀을 충실히
지키고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법이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공동의 약속이다. 그리고 그것은
최선의 것은 아니다. 법은 어떤 최소한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그것을 어기게 되면 불편해지는 것이 법의 모습이다. 우리 모두는 법의
한계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기에 법은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인간이 법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율법주의에 매여,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마음의 죄를 짓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율법에 나의 이웃을 대입시키고
판단하는 그러한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좀 더 하느님의
눈으로 성서의 정신을 따라 인간을 생각하고 행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다. 율법주의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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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뿌린 대로 거두는 게 당연하다

2019년 다해 6월12일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뿌린 대로 거두는 게 당연하다>
복음: 마태오 5,7-19

한 요양원에 65세가 넘는 노인들이 입주해 있었습니다. 노인들이 어느
날 술렁대기 시작했습니다. 원장이 노인들에게 새로운 생활지침을
차별을 두어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1층 거주자들에게는 “오늘부터 여러분들은 모든 걸 스스로
하셔야합니다. 먼저 일주일에 한 번씩 보여드리는 영화관람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셔야 합니다. 또 정원의 식물을 돌보는 일과 물을 주고
풀을 뽑고 가지를 쳐 주는 일도 여러분이 알아서 해 주셔야 합니다.
저희는 이 일에 대해서는 손을 떼겠습니다.” 

2층에 사는 노인들에게는 이와 상반되는 생활수칙을 주었습니다.

“여러분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말씀해주십시오.
저희가 다 해드리겠습니다. 영화 관람도 가장 편안한 시간으로 저희가
정해드리겠습니다. 정원 관리도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각자의 건강만 잘 챙기시면 됩니다.” 

그로부터 18개월 후 노인들의 건강상태를 검사해보니 1층 노인들의
93%가 건강이 좋아진 반면 2층 노인들은 71%가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나왔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2층 노인들의 사망률이 1층 노인들의
두 배나 됐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일대학의 로딘(Judith Rodin)교수에
의해 주도된 실험입니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더 일을 많이 한 이들이 더 건강해지고 오래
삽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일하면서 스스로 자신은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믿게 되어 그 믿음에 맞추어 육체는 물론 정신적 건강도 함께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강의를 하다보면 당연히 받아들일 것 같은 사실까지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하늘나라에서는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늘나라 가면 똑같이 행복할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자신이 느끼는 행복은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각자에게 자신의 그릇
크기만큼 행복이 채워질 것입니다. 다만 그 그릇크기가 다를 뿐인
것입니다. 그 그릇 크기는 이 세상에서 정해집니다. 이 세상에서 한
것대로 보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모 마리아나 성인들과 같은
대접을 받기를 원하면 그것이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당연하고 한 대로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서는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 어떻게 정해지는 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모든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 하나로 요약됩니다. 즉, 이 세상에서
한 사랑의 크기만큼 저승에서도 그 보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사랑하면
좋은 사람입니다. 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합니다. 반면 사랑이
적은 사람은 나만 먼저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사랑이 적을 가능성이 매우 많습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말에 ‘나’라는 단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셔비츠(Larry Scherwitz) 교수는 6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대화를 녹음하여 어떤 사람들이 “나”, “나의”, “나를”,
“내 것” 등의 말을 자주 하는지를 세어보았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나’에 관한 말수와 심장병 위험성이 정확하게
일치하네!”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이웃에 대한 배려도 적고
그래서 건강도 좋지 못한 것입니다. 

이 예들은 ‘왓칭’이란 책에 소개된 사례들입니다. 저자가 평행이론 등을
믿고 있어서 뉴에이지적 성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내용 자체보다는
소개된 사례들이 좋아서 인용하는 것뿐이니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건 이 예들은 정확히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 타인에 대한 사랑이
적어지고 그러면 건강도 그만큼 안 좋아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이 세상에서 이렇게 영향을 준다면 그 사랑으로
심판 받는 하늘나라에서도 영향을 미칠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서 아주 작은
사랑의 계명이라도 어기거나 어기도록 가르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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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작은 계명이나 규칙 하나, 작은 선행이나 봉사 하나에
대한 충실함!

2019년 다해 6월12일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작은 계명이나 규칙 하나, 작은 선행이나 봉사 하나에 대한 충실함!

뒷동산을 산책하다가 아주 작고 앙증맞은 노란 꽃 한송이를
발견했습니다. 요즘 너무 좋은 시대라, 스마트폰 어플에 그 어떤 꽃이든,
찍은 사진만 입력하고 질문을 하면, 즉시 꽃 이름이 나오고, 꽃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입력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즉시 이름이 나왔습니다.
‘세잎 양지꽃’이랍니다.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눈에 제대로 띄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작고 또 깊은 산중에 피어 있어, 뭔 이름이나 제대로
있겠나, 생각했었는데, 나름 멋진 이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깊은 산속에,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었지만, 나름 활짝 피어나서
창조주 주님을 온 몸으로 찬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꽃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니 나름 사연도 있고, 동시에 뿌리는 한약재로 활용되는
유용한 꽃이었습니다.

우리 눈에는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존재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든 피조물들은 자신의 창조주 주님을 향해 있고, 주님
섭리의 손길 안에 존재하고 있고, 주님의 위대한 업적을 찬미하고
있었습니다.

작다고, 눈에 별로 띄지 않는다고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겠습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부여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면서, 작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오 복음 5장 19절)

지나치게 경쟁 사회, 극단적 물질만능주의 속에 푹 잠겨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작은 것의 소중함을 간과하며 살아갑니다.
이왕이면 적은 것 보다는 큰 것, 작은 숫자보다는 크고 엄청난 숫자를
선호하고 추구합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 쉽게 작은 존재의 작은
목소리는 무시합니다. 작은 성취, 작은 성장, 작은 손길은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우리네 인간은 외형을 따지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내면을
중요시여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세상은 번쩍번쩍한
외형과 화려함을 추구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작음과 겸손함,
소박함과 진실된 마음을 즐겨받으신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성화(聖化)되고, 어떻게 주님을 닮으며, 주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요? 뭔가 대단하고 엄청난 업적과 성취를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그보다는 매일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구체적인 일상
안에서,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 대한 충실함을 통해 성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작은 계명 하나, 작은 규칙 하나, 작은 선행하나, 작은 봉사 하나에 대한
충실함을 통해 우리는 주님께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수 있습니다.

그 작은 꽃 송이 하나도 존재 전체로 창조주이신 주님을 한껏 찬양하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으뜸인 우리,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
우리는 그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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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6월12일 수.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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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사랑으로 큰 사람이 되십시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년 다해 6월12일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마태 5,17-19)

사랑으로 큰 사람이 되십시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 되려면 아는
것을 제대로 사용할 때 힘이 됩니다. 실천이 없으면 아는 것이 오히려
병이되고 맙니다.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는 것을 실천하여
하나라도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머리를 크게
하기보다 가슴을 키워야 하고 손발에서 열매를 맛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기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고 하셨습니다.
완성한다는 것은 부족함을 완전하게 채운다는 의미입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근본정신이 사랑인데 그 부족한 사랑을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의 가르침과, 십자가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일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로마13,10). 그리고 율법을
듣는 이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가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실천하는
이라야 의롭게 될 것입니다(로마2,13).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계명을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계명의 핵심인 사랑을 살고 또 가르침으로써 큰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작은 것, 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직은 것이라도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큰 사람처럼
보이려 하지 말고 정말 큰 사람이 되어합니다. 남을 위한 작은 배려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큰 사랑을 모아서 하려는 사람은 결코 사랑을
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성을 이루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삶을 잘 따라 살 수 있길 희망합니다.

마지막 날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업적을
쌓았느냐?'를 묻지 않으시고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느냐?'를 물으실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억지로 마지못해서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지킬 것을 지키는,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가운데 큰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신 계명의 근본을 고수하는 기쁨 안에
머물기를 기도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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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6월12일(수) 영적상태 점검

오늘은 ‘영적상태 점검’이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출애굽기 25장 22절 말씀에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병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듯이
영적인 병도 조기 발견하고 조기 치유 받으면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장막복음은 영과 육의 삶을 종합 진단하는 영적 청진기입니다.
장막의 한곳 한곳마다 우리를 점검하도록 예시하고 있습니다.

문 앞에서는 ‘나는 정말 예수님을 나의 유일한 구주로 믿는가?’를
점검하고 번제단에서는 ‘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예수의 피로 속죄함
받은 것을 확실히 믿는가? 용서받은 의인으로 확신하는가? 또 물두멍
앞에서는 ‘죄사함 받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결된 생활을 하고 있는가?’

촛대 앞에서는 ‘나는 빛 된 사명을 다 하고 있는가?’ 떡상 앞에서는
‘나는 헌신된 마음으로 생명의 떡인 예수님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있는가?’

또 분향단 앞에서는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는 않는지?’ 또 법궤
앞에서는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살려고 애를 쓰는가?
예수님을 통하여 부활할 것을 믿는가? 죽은 나무에게도 싹이 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가? 또 모든 삶에 나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는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영적성막 앞에서 나의 영적상태를 점검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할렐루야! (임준식 목사 성막계시 참조)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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