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6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열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9-06-26 07:40:14    조회 : 224회    댓글: 0

▣ 2019년 다해 6월26일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창세기 15,1-12.17-18
복음 마태오 복음 7,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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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2019년 다해 6월26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안식년을 하는 신부님들과 며칠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함께 할 동료가
있다는 것, 시간이 있다는 것, 여유가 있다는 것, 건강하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대화하는 것도 기쁨입니다.
대화의 주제는 사목, 문학, 정치, 건강 등 다양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국이 힘이 강하니 미국 편을 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중국이 미국과 맞설 것이니 중국 편을 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거의 없다는 비관론도 있었습니다. 비록
강대국 사이에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분명히 있다는
낙관론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과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빠져나갈 길이 있다고
합니다. 벼락이 내리쳐도 정신을 차리면 분명 밝은 길이 보인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무엇인지요? 

며칠 전에 몸과 마음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몸은 물질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늙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은 물질이 아니므로 시간이
지난다고 늙고 노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몸이 늙어가면서
마음도 함께 늙어간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식이 더 늘어나고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습니다. 많은 분이 나이를 먹었다고 하면서
마음까지도 늙은 것으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한
것이고, 우리는 비록 몸은 늙겠지만 마음은 언제나 새롭고, 지혜는 더
커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지만 잘 자랄 수 있다고 합니다.
가지치기하지 않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햇빛을 잘 받지 못하기
때문에 나이테도 선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행동과 생각도 가지치기를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분심, 욕심, 질투,
시기, 교만’을 가지치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 희망, 사랑’의
줄기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지치기하는 것은 나무에는
큰 고통입니다. 생가지를 잘라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꼭
필요하기에 가지치기하는 것입니다. ‘분심, 욕심, 질투, 시기, 교만’의
가지를 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내 마음 안에 이미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서는 꼭 그런
가지들을 쳐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와 열매’를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가 열린다고 하십니다.
좋았던 나무도 거름을 주지 않고, 관리를 소홀히 하면 나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빴던 나무도 정성을 다하고, 거름도 주고, 잡초를 뽑아주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밀과 가라지’는 밀은 계속
밀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는 늘 가라지가 아닙니다. 밀처럼
자란 사람이 가라지와 같이 변할 수도 있고, 가라지와 같이 자란 사람이
밀처럼 변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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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의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들을 보자.

2019년 다해 6월26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나의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들을 보자>
복음: 마태오 7,15-20

미국의 뉴멕시코주에 열두 살 된 흑인 소년이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아들아, 네게 남겨줄 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그러나 이 말씀을 꼭
기억하거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세 가지 보석이 있단다.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 

소년은 눈물로 어머니를 떠나보냈습니다. 1년 전 아버지를 잃은 소년은
고아가 되어 할머니의 집에 맡겨졌습니다. 소년은 소아마비
장애인이어서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인종차별과 가난과 병마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에게
배운 ‘믿음’ ‘소망’ ‘사랑’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는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195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의 정치학자 랠프 번치 박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며 충고하십니다.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내가 참된 예언자라면 나는 참으로 좋은 열매들을 맺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신앙생활을 해왔다면 나의 자녀들이 좋은 열매를 맺고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의 삶과 가르침이 곧 예언이 됩니다. 그리고
그 예언에 따라 나의 자녀들이 열매 맺힙니다.  

일본의 자녀교육의 핵심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오랜 사무라이 문화에서 지내야했기 때문에
남에게 폐를 끼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문화를 여전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시골 거리를 가더라도 휴지 하나 버려져 있는
것을 보기 힘듭니다. 부딪히면 무조건 자기가 먼저 미안하다고 합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사회의 문화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미국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이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그리스도교 문화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기부문화가 잘 발달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자녀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을까요? 혹시
거짓 예언을 알려주고 있지는 않을까요? 마치 경쟁에서 이기고 돈과
권력을 많이 차지해야 행복하다고 알려주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러면
돈과 권력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열립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예언을 받아들일 환경에서 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가출로 가세는 급속히 기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순간을 즐기는
책임 없는 예언을 자녀에게 준 것입니다. 어머니는 탄식과 저주를
퍼붓다가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소년은 부모를 통하여 돈과 권력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장하여 정치인이 되었고 전쟁을 주도했으며 무자비한
인종청소를 자하였습니다. 13년간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가 유고슬라비아 독재자인 밀로셰비치입니다.
그는 2001년 4월 세르비아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해 7월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송되어 전범으로 재판을 받던 중 2006년 3월 11일 감옥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예언을 남겨주고 떠나야할까요? 믿음, 소망,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할까요, 아니면 돈과 권력, 성공
등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고 말해주어야 할까요? 거짓 예언자들은
겉으로는 양의 탈을 쓰고 있지만 속엔 이리가 들어있습니다. 좋은
가르침처럼 위장하여 가르치지만 결국 세상에서 물질이나 명예의
노예가 되어 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예언자들인지
우리의 자녀들을 바라보며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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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연중 제12주간 수요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6월26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7,15-20: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15절) 예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들에게
속았던 조상들에게 일어난 일을 떠올리게 하신다. 우리의 신앙의 길이
좁고 비좁아 힘든 일이 많다는 것에 절망하지 않도록 조상들이 겪은
일을 떠올리게 하셨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쉽고 편한 길이
아닌데 그렇게 하여 하느님께 잘못하였던 조상들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우리 신앙인은 일반 대중의 유행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닌, 그 반대로
세상을 거슬러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신앙인은 돼지와
개로부터 만이 아니라, 이리로부터도 자신을 지켜야 한다. 이 이리는
개나 돼지보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개와 돼지는 잘 보인다.
그러나 이리는 어둠 속에 숨어 지낸다. 이리는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고 하신다. 이리의 공격은 그것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시나무에서는 포도를 거두지 못한다. ‘거짓 예언자들’은 덕의 가면을
쓰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사기꾼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20절)고 하신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힘들고 고생스러운 길이다. 위선자는 수고하려하지 않고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려고 한다. 그러므로 가면을 보지 말고 좁은 길을
따라가는 이들의 행실이 맺는 열매를 보아야 한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7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악인은 변화할 수 없다거나 선인은 결코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사람이 타락한 생활을
하는 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말이다. 악하게 살았더라도 선으로
돌아설 수 있지만, 악하게 사는 동안에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떤 열매를 맺으며 살고 있는가?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19절)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에서 나쁜 열매를 거둘 수 없고 가시를 맺는 나무에서
포도나 무화과를 거둘수 없는 것처럼 마음이 악한 사람은 좋은 말씀을
듣지 못한다. 그리고 신심 깊은 교사가 나쁜 것을 가르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나쁜 것을 가르치려는
사람들을 막기도 하시는 것이다. 자신의 입으로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벌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분의 말씀을 올바로 실천하면서
그분께 나아가도록 하여야 하겠다.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도록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는 모든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하느님 안에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삶도 참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좋은
열매를 맺는 생활을 위하여 기도하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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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년 다해 6월26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마태7,15-20)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열매

과일이나 채소에 이르기까지 잘 익어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햇빛과 비, 그리고 밑거름이 충분하게 있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보면 필요한 것들을 제대로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보면서 그 사람을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이 큰 사람이었는지는 입술로 하는 말에서가 아니라
그의 삶의 여정을 통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지금 당장은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도 그 끝을 보면 놀라워할 사람도 있습니다. 또 그 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기다리며 햇빛과 비를 감당하고,
거름을 주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외견상으로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겉만 보아서는 그
사람이 사심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위선적으로 사는 사람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속이 훤히 드러나게 됩니다. 거짓예언자가
맺는 열매는 시기, 질투, 미움, 증오, 적개심, 다툼, 분열과 같은
것입니다. 더군다나“사람은 속여도 하늘은 못 속입니다.”

그러므로 눈속임으로 하지 않고 생각과 말과 행동의 일치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수와 양으로 따져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고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를 나누어지는 참되고 선한 삶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함께야).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고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멋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매력이 없어지면 힘이 듭니다. 따라서
처음이나 끝이나 변함이 없어야겠지만 기왕이면 갈수록 깊어지는 멋을
담아야겠습니다. 속빈 강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 그레고리오 주교는“우리의 전체 생활은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합니다
…...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 이 세 가지
각각이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지 또는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가 있는지
판단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할
때 좋은 열매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집니다.’결국 신앙과 사랑으로 무르익은
삶만이 심판의 불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익은 좋은
열매가 되십시오! 혹 시들한 열매가 보이거든 햇빛을 보게 하고 비를
맞을 수 있게 하며 그리고 거름을 주십시오. “열매를 보면 나무도 알게
됩니다.”마찬가지로 그 자녀를 보면 부모를 짐작하여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아버지는 하느님이십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부끄럽게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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