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0일 연중 제29주일(전교주일)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9-10-20 05:29:18    조회 : 204회    댓글: 0

▣ 2019년 다해 10월20일
[(녹)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제1독서 이사야서 2,1-5
제2독서 로마서 10,9-18
복음 마태오 복음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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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29주일(전교주일)

2019년 다해 10월20일 연중 제29주일(전교주일)

어릴 때의 기억입니다. 동생과 함께 작은어머니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작은어머니는 장롱 위에서 사브레 과자를 꺼내서 하나씩
주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1975년도에 출시되었다고 합니다.
맛있는 과자는 한꺼번에 먹기보다는 하나씩 맛을 음미하면서 먹을
필요가 있습니다. 가격도 비싸지만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어릴 때는 ‘보물’도 많았습니다. 깡통에 가득 담긴 구슬, 종이 상자에
담긴 딱지, 정성스레 모았던 우표도 보물이었습니다. 그걸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고, 그걸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습니다. 좋은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꺼번에 하룻밤에 다 읽는 것도 좋겠지만, 어떤 글은
다 읽어가는 게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담으며 천천히 한 장
한 장 읽어가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읽은 글입니다.
“강을 막고 산을 깎아 돌진하는 것만이 인생은 아니다. 여기저기 묻혀
있는 소중한 것을 정성껏 파내어 쌓는 것 또한 인생이다.” 

‘포노 싸피엔스’를 읽으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생활에 도움을 주는 도구(어플, 앱)들이 많습니다. 새롭게 배우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적응하기가 어려워서 배우지
않았습니다. 도구를 찾아서 스마트 폰에 저장하니 생활이 편해졌습니다.
처음에 저장한 도구는 우버였습니다. 택시를 잡기도 어렵고, 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운데 우버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하면 왔습니다.
신용카드로 결제되기에 말썽의 소지도 없습니다. 몇 번의 손놀림이
가져다준 선물입니다. 다음에 저장한 도구는 ‘MTA(기차 탑승권
구매)'입니다. 한국의 코레일 어플과 비슷하였습니다. 굳이 역으로 가지
않아도 손놀림 몇 번으로 원하는 기차를 예약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복음의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는 겁니다.
복음의 기쁨은 신문과 방송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인터넷 검색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신문, 방송, 인터넷은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정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의 글도
인터넷이라는 고속도로에 올라가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빠른 속도와 많은 정보가 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하는 건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복음의 기쁨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검색으로
정보를 알 수는 있지만, 검색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기는 건 쉽지 않습니다.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들었던 것처럼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삶입니다.’ 복음의 기쁨을 삶으로 드러내는 겁니다.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과가 금세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이고, 사도들이 배운 방법이고,
선교사들이 전한 방법입니다.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는
삶입니다. 친구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고, 속옷을 달라면
겉옷까지 주는 삶입니다.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는 삶입니다.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삶입니다. 용서받기보다는 용서하는
삶입니다. 화려한 꽃이 되기보다는 어두운 땅속에서 양분을 찾는
뿌리의 삶입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지만 열매를 맺는
분은 하느님이라는 믿음을 갖는 삶입니다. 

진실한 삶으로 복음을 전하였던 자매님 생각이 납니다. 시부모님을
정성껏 모셨습니다. 시부모님도 며느리 자랑을 늘 하였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웠습니다. 마음도 반듯하고, 생각이 깊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입니다. 남편이 결혼기념일에 꼭 갈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근사한 식당을 예약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간
곳은 성당이었습니다. 남편은 결혼기념일 선물로 예비자 교리 신청서를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이
시부모님을 정성껏 모셨고,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워주어서 고마웠습니다.
그런 당신이 가장 기뻐할 선물은 내가 당신을 따라 성당에 가는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비자 교리 반에 등록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선물이 고마웠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남편이
세례를 받기까지 18년이 걸렸습니다. 엄마의 발표를 뒤에서 응원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손녀를 키우면서 복음을 전하던 어르신도 생각납니다. 어르신은 동네에
누가 이사 오면 기쁜 마음으로 찾아가셨습니다. 간단한 선물도
준비하였습니다. 새댁이 이사 왔으면 살림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입니다. 물난리가 났고, 어르신은 손녀를 업고
가재도구 청소를 도왔습니다. 우연히 방송국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전해졌습니다. 부산에서 살던 며느리가 남편에게 창피하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봉사하는 건 좋지만 손녀를 업고 하지는 마세요.”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런 모습이 싫으면 아이를 데리고 가라. 이
아이가 어려서 남을 돕는 모습을 보고 배운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느냐?.” 아들과 며느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이기적이었던
자신들의 마음을 반성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등에 업혔던 손녀가
지금은 누군가를 위해서 짐을 들어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미사 때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응답을 합니다.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계셨는지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
장애인, 죄인, 이방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은 주님께 대접할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람들에게 보답을 받으신 것도
없었습니다. 사제들도 바로 주님께서 함께했던 사람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우리 신자들도 바로 주님께서 함께했던 사람들과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민족의 복음화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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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10월20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오늘은 전교주일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복음선포이다. 복음선포를 통하여 모든 민족들이 복음화 되어 하느님
안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의 변화를 이룩하기로
결심하는 날이다. 더욱이 우리는 분단의 현실을 갖고 있다. 오늘 이
미사를 통해 온 민족의 염원인 평화적 통일을 기원하는 민족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겠다.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선교 2항).
선교야말로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확실한 이유임을 분명하게
천명한 선언이다. 이 선언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선교 역사에서
길이 기억될 공의회로 남을 것이다. ‘본성상 선교해야 하는 교회’라는
말 안에는, 교회는 “믿지 않는 만백성의 빛이 되고 구원이 되기 위해
파견된 자”임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교회는 예수님과 열 두 사도들의 복음선교 활동에서 생겨났고,
그 활동의 당연한 결과요, 그 활동이 원한 것이며, 그 활동에 가장
가까울 뿐만 아니라 그 활동에서 볼 수 있는 결과가 교회인 것”이다
(현대의 복음선교 15항). 이와 같이 교회는 예수님과 같은 사명 완수를
위해 예수님께로부터 파견되는 것이며, 「떠나셨지만 머물러 계신」
예수님의 새로운 현존에 대한 명백한 표징으로 계속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같은 곳). 다시 말해서 교회는 성령의 인도 아래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 세상에서 계속 수행하기 위해 불린 것이다.
그리스도 파견의 연장(延長)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니 이것은 성부의 계획을
따라 교회가 성자의 파견과 성신의 파견에서 그 기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회는 성부의 구원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의해 파견되며, 궁극적으로 성자와 성령을 파견하신
성부의 「원천적 사랑」을 파견의 최종 근거로서 인식하며, 마르지 않고
끊이지 않는 샘인 이 「원천적 사랑」에서 끊이지 않고 활력과 열성을
길어내는 것이다.
“선(善)은 자기 확산성(自己擴散性)을 지닌다.”
(Bonum est diffusivum sui).
“샘 같은(원천적) 사랑”이신 하느님의 사랑이 끊임없이 자신(사랑)을
확산시켜 나가기를 바랄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왜 성부의 “원천적
(샘 같은) 사랑”이 선교의 최종 근거가 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지 않은가? 조금 더 들어보자. “선은 자기를 확산시킨다.”고
했다. 그러므로 선하면 선할수록 자신을 더욱 확산시켜 나가야
마땅하다.

따라서 하느님은 선의 최상의 결과를 위해서 자신을 최대한으로
확산시켜야 했다. 그런데 하느님이 할 수 있는 선의 최상의 결과는
무엇일까? 인류의 구원사업이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최대한으로 쏟아 부으며 최상의 결과를 기대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하느님의 자기확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자기확산인 선교는 <선=사랑=하느님>에 너무 잘 어울리고, “기원을
갖지 않으시는 기원”이신 성부의 사랑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귀속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선교의 최종 근거는 결국 성부의 자기 확산적인
“샘 같은(원천적) 사랑”에 귀착된다.

하느님은 만선의 근원이요 사랑 자체이시다. 지선(至善)하신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은 그 본성상 선과 사랑을 확산시키지 않을 수 없는
분이시다. 선과 사랑은 합일시키고 합성시키는 힘일 뿐 아니라 동시에
자신을 확산시키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최고선이요 최고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자기확산의 일환으로 하신 최상의 사업이 바로 “만민
구원”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만민 구원”은 하느님의 “샘 같은(원천적) 사랑”에서
나오고, 하느님은 당신 사업의 성취를 위하여 최선의 방법으로 성자와
성령을 파견하시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교회의 파견이 이루어지고,
이로써 하느님은 ‘선교하는 하느님’이 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라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확산시키는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하느님을 우리와 같이 아버지로 부를 수 있도록
확산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한 형제요, 자매로서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복음: 마태 28,16-20: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라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갈릴래아에 나타나셔서
만민에게 세례를 베풀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침으로써 만민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신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세상 끝까지 교회
공동체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구약에서 야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셨듯이, 이제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느님의
새 백성인 교회 공동체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
(1,23)이시다. 그러기에 교회는 모든 민족들을 주님의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 우리가 처한 위치에서
자기 자신의 본분과 책임, 의무를 다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기는 그것이 더 필요한 때이다. 특히 오늘 우리의 삶과 신앙의
현주소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며 복음화의 소명을 새롭게 하도록 하자.
이러한 모든 은총을 주님께 구하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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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을 본 사람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

2019년 다해 10월20일 주알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부활을 본 사람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복음: 루카 28,16-20

유튜브에 있는 한 개신교 신자 간증을 들어보았습니다. 전직 유명한
무당이었던 김여은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무당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가족 중 누군가는
받아야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가족은 대대로 무속집안이었던
것입니다. 가족 대부분이 어렸을 때부터 귀신, 혹은 마귀를 보고
목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무당들은 그놈들이 하는 말들을 그대로
전하는 것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놈들은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가족에 해를 끼쳐서 집안을 풍비박산을 나게 만듭니다. 그래서
김여은씨도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녀가 받은 신은 천신으로 무속의 신들 중에서는 급수가 매우 높다고
합니다. 같은 무당들도 존경하는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무당의
말년은 참혹하다고 합니다.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마귀들은
쓸모없게 된 몸뚱이를 가진 자신들의 숙주들을 가차 없이 짓밟아놓고
떠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무당의 일을 멈출 수 없었고
결국 신들을 정성껏 섬겨야했습니다.  

그런데 김여은씨가 신을 섬기던 중 자신도 모르게 계속 “아멘!”이라는
말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몇 번 교회에 갔던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에 갈 때 독사에게 물렸었는데도 멀쩡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김여은씨는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귀들이 단체로 달려들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정말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그러다 ‘나는 죽었고 내 안에 예수님께서
주인으로 사시는데 내가 왜 싸우고 있지? 그분께 맡기면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더니 자신의 입을
통해 성령께서 신령한 언어로 마귀들을 다 쫓아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평생 보이던 마귀들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영원히 사는 것을
아니까요. 저희 집안 대부분이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아무렇게나 살아도 행복해요.”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가 있는 날입니다. 소위
전교주일인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야하는 신앙인의 소명을 되새기는
날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만큼 큰 사랑이 없기에 복음을 전하지
않는 사람은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구해주지 않는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지 못합니다.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잘 전하고 있을까요? 이전보다는 활기차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시대의 변화도 영향이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 믿음이 점점
더 약해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한다는 걸 안다고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쫓아다닐 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3년씩이나 따라다니며 온갖 기적을 본 제자들도 결국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실 때 다 도망쳤습니다. 기적을 보고 말씀을
배운다고 온전한 믿음에 도달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들에게 아직
부족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해야만 비로소 복음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그 의심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전한다 해도
가짜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인데 부활이 없는 복음은 십자가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는 복음은 남에게 짐을 지어주는
것입니다. 김여은씨가 마귀를 모시는 사람에서 주님을 모시는
사람으로의 부활이 없었다면 어떤 기쁜 소식도 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복음 때문에 기뻐야 그 복음을 기쁘게 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십일조에 대해 그나마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부활체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 1학년 때부터 십일조를 바치고 나서 단 한 번도
돈이 부족한 적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흘러넘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꼭 그것을 위해 십일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십자가 뒤에는
반드시 부활이 온다는 것을 체험하였기 때문에 열심히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학 가서도 주일에 꼭 쉬었습니다.
그랬더니 효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시간이 여유 있어지고 공부도 더
빨리 끝낼 수 있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십자가처럼
매우 힘든 시간입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나면 반드시 부활이
따라옵니다. 그런 것들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부활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두려움이 없어야
부활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이 부족한 것을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아직 부활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복음은 내가
십자가를 지며 피를 흘리고 있어도 부활할 것을 믿어 이미 기쁜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면서도 항상 부활하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먼저 십자가를 져보고 부활 체험을 합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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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이웃 전교는 우리가 지은 죄를 보속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요,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향기로운 선물입니다!

2019년 다해 10월20일 연중 제29주일(전교주일)

이웃 전교는 우리가 지은 죄를 보속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요,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향기로운 선물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독한 독감이 손님처럼 찾아와서, 한 며칠 끙끙
소리까지 내며 앓았습니다. 나중에는 열도 오르고 정신도 혼미해져,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가까운 시골 의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진료해주신 의사 선생님께서 얼마나 자상하고 친절한 분인지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나 힘드셨냐? 조금 빨리 오시지 그랬냐? 우선
열이 너무 많이 나니 수액부터 놔드리겠다. 제일 중요한게 푹 쉬시는
거다 등등.

너무나 따뜻한 말씀에 저는 그만 눈물이 왈칵 할뻔 했습니다. 이제
갱년기가 왔는지. ㅎㅎㅎ 아무튼 그 친절한 의사 선생님을 처음 뵙는
순간 부터 저는 벌써 제 몸에서 지독한 독감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의사 선생님께서는 저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의원을 매일같이 찾아오시는 단골 손님 할아버님 할머님들에게도
얼마나 큰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지 또한 놀랐습니다. 치료를 끝내고
귀가하시는 어르신들 얼굴 마다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신을 조금 차리고 나서 보니, 진료 대기실 벽 한
가운데에는 십자고상이 딱 달려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의사 선생님은 이 세상 그 어떤 선교사들보다 훌륭하게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전교 주일이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오늘 우리
교회에는 다양한 유형의 선교사들이 필요합니다. 청춘을 바치고 목숨을
바치며 머나먼 타국으로 건너가, 그 나라 백성들에게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고, 그 나라 땅에 뼈를 묻는 위대한 선교사들도
필요합니다.

저희 같이 여기 저기 다니면서, 주님의 말씀을 쉽게 풀어서 양떼들에게
전하는 유랑 선교사들도 필요합니다. 어깨띠를 두르고 직접 거리로
나가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교회로 초대하는 적극적인 가두 선교사들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실제 삶속에서, 자신이 행하는 매일의 직무
안에서, 이웃들에게 감동과 기쁨, 희망과 위로를 선사하는 일상의
선교사, 삶 속에서의 선교사도 필요합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이나 단체, 각종 모임에서 기쁘게 희생하고
봉사하십니까? 모임 안에서 이방인이나 걸림돌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겸손한 리더로서 헌신하고 있습니까? 어떻게서든 조직이 복음적이고
인간적으로 돌아가도록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까? 모임 안에서
친교와 나눔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훌륭한
선교사이십니다.

더없이 비관적이고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눈부시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크게 칭찬하실 위대한
선교사이십니다.

내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 숱한 도전들과 걸림돌들이 즐비한
여행길이지만, 마치 소풍 나온 소녀처럼 환하게 웃으며 걷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역시 훌륭한 선교사이십니다.

이웃 전교는 우리가 지은 죄를 보속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요,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향기로운 선물입니다. 선교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필수 사항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믿는 하느님, 우리가 지니고 있는 신앙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대상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해 우리는 구원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그토록 염원하던 하느님 나라에 입국할 수 있고,
하느님을 만나뵐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억만금을 준다하더라도 버리지 말아야 할 대상, 우리 삶
속에서 첫번째 가치가 곧 신앙인 것입니다. 이토록 좋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웃들, 특히 가까운 사람들, 가족들에게 전하지 않고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교 주일인 오늘, 용기를 한번 내보면 좋겠습니다. 주변에 지금 누가
홀로 외로워하며 울고 있습니까? 그는 가장 좋은 선교의 대상입니다.

주변에 누가 갑작스런 병고나 사고로 힘겨워하고 있습니까? 그는 가장
시급한 선교의 대상입니다.

주변에 누군가가 세상의 냉혹함 앞에 크게 상처 입고 정처없이
방황하고 있습니까? 어쩌면 그는 지금 우리가 내미는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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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10월 19일(토) - 하나님을 모르는 이가 많아지는 시대

오늘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가 많아지는 시대’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사사기 3장 7절 말씀에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까지 그리고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동안까지 또 여호수아가 죽어서도
여호수아가 기적을 일으켰던 모든 것들을 보았던 장로들이 살아있는
동안까지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이후에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호수아서 2장
10절 말씀에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으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과 닮아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또 모든 이들의 리더가 되었고 모든 인성과 윤리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성령 충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돌아가시면서 뜨거운 초대교회의 믿음이 식어지고 함께 부르짖던
성도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남은 성도들도 믿음이 식어져 가면서
급기야는 주일학교가 반 이상 교회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정말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현재 우리 시대의 교회 모습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테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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