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1일‘내 것’이라는 틀을 ‘하느님의 것’이라는 틀로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9-11-21 05:47:18    조회 : 172회    댓글: 0
c486775e1c3b1bf2bc2b9b7615e36cd0f5a82d56
  • ▣ 2019년 다해 11월21일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제1독서 즈카르야 예언서 2,14-17 복음 마태오 12,46-50
7a38a7cda2fe6535374da9d9e5499849a91f8add
  • ◈ [서울]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2019년 다해 11월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어릴 때의 기억입니다. 우리에게 ‘천자문’의 서체를 전해준 한석봉의 이야기입니다. 몇 년 동안 열심히 서체를 배운 한석봉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온 걸 기뻐하면서 이렇게 제안합니다. ‘나는 평생 떡을 만들어 팔아왔단다. 네가 서예를 배웠다니 우리 서로의 실력을 겨루어보자. 네가 나의 떡 써는 실력보다 글을 더 잘 쓰면 나는 너를 진정한 서예가로 인정하겠다.’ 한석봉은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벼루와 붓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색다른 제안을 추가하였습니다. ‘나는 불이 없는 데서도 떡을 썰어왔다. 그러니 불을 끄고 해보자.’ 한석봉은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어둠 속에서도 어머니가 썰었던 떡은 모두 한결같이 똑같은 크기였습니다. 한석봉의 글은 엉망이었습니다. 돌아온 아들이 반가웠지만, 어머니는 다시 공부하고 오라고 합니다. 어머니로부터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한석봉은 더 노력하고, 공부하여 빼어난 서체를 우리에게 남겨 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일본강점기에 태어나셨고, 한국전쟁을 겪으셨습니다.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깊이는 신학을 배운 저보다 더 깊으셨습니다. 이기적인 저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어머니는 영신수련을 하시지는 않았지만, 영신수련의 핵심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기도는 신학을 배운 저보다 훨씬 많이 하셨습니다. 지금도 가족을 위해서, 외국에 있는 저를 위해서 9일 기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손에는 늘 묵주가 있었습니다. 전교도 신학을 배운 저보다 더 많이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대녀는 수십 명이 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대녀들은 어머니와 꾸준히 영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도 가끔 강의하지만, 어머니의 열정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성모님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성모님께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을 선택하신 예수님을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신발, 옷, 책, 전자제품, 운동기구, 친구, 가족, 이웃’ 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제가 선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저를 선택해 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하면 애착이 있을 수 있고, 욕심이 생길 수 있고, 상실에 대해 아쉬움이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선택해 준 것으로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제 곁을 떠난다고 해도 속이 상하거나, 아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내 것’이라는 틀을 ‘하느님의 것’ 이라는 틀로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고 믿는다면 우리를 가로막는 많은 벽이 사라질 것입니다. 외롭지만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지구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 나라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9997BA485AAEA46C04CF18
  • ◈ [수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11월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복음: 마태 12,46-50: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오늘 축일은 예루살렘 성전 가까이에 세워진 성당의 축성을 기념하는 이 날, 성모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충만히 내리신 성령의 감도로 성모님이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바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전승에 의하면,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는 마리아가 세 살 되던 해에 성전에 봉헌하였다고 한다. 세 살 된 마리아가 선전으로 올라갈 때, 계단에는 성모님의 발자국 마다 장미가 피어났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되돌아오는 악령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여기에는 선한 영 일곱과 악한 영 일곱이 있다. 선한 영은 지혜, 분별, 경륜, 용맹, 지식, 경건, 하느님을 두려워함의 영이며, 악한 영은 어리석음, 오류, 무모함, 비겁, 무지, 불경과 하느님을 두려워함과 반대되는 교만의 영이다.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45절)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반박하기 위해, 악마는 교활하게, 예수님의 육에 따른 친척들을 등장시킨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그 친척들에게 향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 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 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47절) 이 말은 인간에게서 태어난 이가 하느님의 아들일 수 없다는 말이며, 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어떻게 하늘에서 왔다고 하느냐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악마인 그 자를 보시며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48절)고 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49절) 고 하신다. 즉 그분은 순종하는 이들을 가리키신다. 순종하는 친족관계로 당신과 맺어진 이들에게 가족관계에 따른 모든 이름을 붙인다.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키신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50절) 신앙으로써 주님의 형제자매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바로 복음을 전함으로써 그분의 어머니가 된다. 이것은 주님을 낳아, 듣는 이들의 마음에 그분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이웃의 마음에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이 생겨나도록 하는 사람이 어머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셨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셨기 때문에 복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며 육신이시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마음속에서 진리이시며, 마리아의 태중에서 육신이시다. 그분의 어머니이신 것은 그 진리를 말씀을 실천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말씀을 실천하며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리아를 닮는 우리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9997BA485AAEA46C04CF18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모는 자녀의 거푸집이다. 2019년 다해 11일21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부모는 자녀의 거푸집이다.> 복음: 마태오 12,46-50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세계적은 베스트셀러입니다. 기요사키는운이 좋은지, 나쁜지 두 아빠 밑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책 제목대로 한 아버지는 가난했고 한 아버지는 부자였습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진짜 아빠는 박사학위는 가졌지만 가난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의 아빠는 고등학교도 끝내지 않았지만 부자였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었던 기요사키는 두 아빠에게서 각기 다른 부자가 되는 법에 대한 조언을 듣습니다. 가난한 아빠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 취직하여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부자 아빠는 사람이 돈을 위해 일해서는 안 되고 돈이 자신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돈이 돈을 벌게 해야 한다는 마인드입니다. 좋은 직업을 가진 진짜 아빠는 은퇴 후에도 가난하게 살다가 돌아가십니다. 그런데 부자 아빠는 하와이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기요사키는 어떤 아빠를 따르기로 결심했을까요? 기요사키는 부자 아빠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물론 가난한 아빠는 매우 섭섭해 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기요사키는 부자 아빠를 따라서 많은 돈을 버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자녀는 정확히 자신이 부모라고 믿는 사람의 크기만큼 자랍니다. 사람은 스스로 변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다만 닮고 싶은 사람이 그 사람을 변하게 만듭니다. 종을 만들 때 거푸집 먼저 만들고 쇠를 녹인 물을 그 거푸집 속에 쏟습니다. 그러면 그 거푸집만한 종이 탄생됩니다. 부모가 딱 그 거푸집의 역할을 합니다. 자녀는 어떤 모양으로 성장하고 싶은가에 따라 부모를 결정합니다. 자녀가 크게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먼저 커져야합니다.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성모님만큼 크게 되신 분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낳았으니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성모님만 꼭 붙들고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은 어떻게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으셨을까요? 성모님의 부모님의 역할이 매우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성모님의 자헌기념일입니다. 성모님께서 성전에 봉헌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성모님은 3살 때 성전에서 봉헌되어 요셉과 결혼하기 전까지 성전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는 아기를 임신하기 어려운 나이에 기적적으로 마리아를 잉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리아가 자신들의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부모가 된 것에 대해 만족하고 3년이나 그 부모노릇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메시아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성전에서는 아이 때부터 동정녀들을 모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걷고 의사표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안나와 요아킴은 찢어지는 마음으로 예쁜 딸을 성전에 봉헌한 것입니다. 만약 안나와 요아킴이 마리아를 직접 키웠다면 어땠을까요? 행복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도 보통의 아이들처럼 부모의 뜻을 따라 열심히 공부하며 일하며 시집갈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어쩌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에 부적절한 환경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기에 합당하게 만든 큰 힘은 바로 부모님이 마리아를 자신의 자녀가 아닌 하느님 것으로 봉헌한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는 나자렛의 작은 집이 아니라 하느님의 집에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는 집과 같아서 아이들은 부모의 집에 자신의 크기를 맞춥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나자렛의 집에서 자랐다면 인간으로서는 훌륭하게 자랐겠지만 하느님의 집에서 자람으로써 하느님만큼 크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책 선전을 좀 하자면 일주일 정도 뒤에 출판될 ‘나는 왜 교회를 믿는가!’ 개정판에는 어떻게 부모가 유태인들보다 더 큰 자존감으로 자녀를 키울 수 있는지를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설명해 놓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부모가 자신들의 지위를 포기하고 참 부모가 하느님임을 알려주고 믿게 하는 것이 자녀 교육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머리가 좋아서 특출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창조자로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자녀를 하느님의 것으로 내어놓습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이고 하느님이라는 자존감이 결국엔 그 자녀를 성모 마리아처럼 역사에 길이 남는 삶을 살게 만듭니다. 자존감은 행복과도 비례하는데 그 자존감은 자신이 부모라 믿는 대상에 의해 결정됩니다.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성모 마리아의 부모처럼 자녀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집인 성전에 봉헌하여 자녀가 애초부터 하느님의 것이었음을 믿게 만들어야합니다. 이것이 자녀를 성전에 봉헌하는 목적입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9997BA485AAEA46C04CF18
  • ◈ [수도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 48)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11월21일. 목.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 48)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우리에게 봉헌의 참된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 것이 참된 봉헌의 길입니다. 봉헌은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봉헌의 삶은 활짝 열리어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봉헌의 삶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봉헌의 삶이 가로 영원히 사는 삶입니다. 봉헌하는 삶은 서로를 살립니다. 봉헌하게 되는 삶은 서로를 새롭게합니다. 봉헌의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입니다. 내어드리는 삶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습니다. 서로를 풍요롭게 합니다. 늘 정직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의 위령성월 되십시오. 거룩해지고 온전해지는 삶이 바로 봉헌입니다 봉헌으로 우리모두는 하나가 됩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9997BA485AAEA46C04CF18
  • ◈ [수도회] 이해하기 힘든 예수님의 말씀 앞에 또 다시 마리아는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기도하고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또 다른 영적 여정을 시작합니다! 2019년 다해 11월21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이해하기 힘든 예수님의 말씀 앞에 또 다시 마리아는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기도하고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또 다른 영적 여정을 시작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아기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을 알린 수태고지 사건은 마리아에게 있어서 엄청나게 충격적인 대사건이었습니다. 사건 당시 마리아는 오늘 날로 치면 중학생 나이였습니다. 수태고지 사건은 아직 어린 시골 소녀,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했던 마리아에게 있어 감당하기 벅찬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로 그녀가 얼마나 당혹스러워했는지는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었습니다. 만왕의 왕이자 영광스런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하신 마리아였지만, 당장 마리아 앞에 펼쳐진 상황은 참으로 난감하고 비호의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리아는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출산후 8일째 되는 날 마리아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치르기 위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예루살렘 성전을 올라갔습니다. 정결 예식 때에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바쳐야 했는데, 그 가격이 상당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들은 어린 양 대신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두마리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어린 양 대신 비둘기를 바친걸 봐서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크고 위대하신 주님께서 역설적이게도 가장 작고 가난한 마리아를 당신의 인류 구원 사업의 가장 첫째 가는 도구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어린데다, 못배웠지, 가난하지, 보통 사람들 눈에 백번 깨어나도 이해못할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혼전 잉태 오명까지 뒤집어 쓴 마리아였습니다. 이토록 보잘 것 없었던 시골 소녀였지만, 지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앙인이자 성인 중의 대성인, 하느님의 어머니이자 인류의 어머니로 자기매김하고 계십니다. 수태고지 복음을 천천히 묵상하다보니 마리아께서 크게 성공하신 비결이 있더군요. 주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보낸 메시지 앞에 그녀가 보인 반응을 한번 보십시오. 몹시 놀라워하면서도 천사의 인사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마리아는 아무 생각도 개념도 없는 철부지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어렸지만,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 앞에 나름 고민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으로는 믿어지지 않는 신비 앞에서 나름 이해하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던 의구심을 솔직히 표현했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마리아는 절대로 어수룩하거나 어리버리하지 않았습니다. 의심스런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따지는 당차고 야무진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적 의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초대를 향해 활짝 열려있는 건전한 의심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의구심에 참으로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마리아는 아무런 인간적 고민이나 갈등도 없이, 본인의 의지적 결단도 없이, 그저 힘있는 존재가 시키는대로 응답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로 거듭나기까지 만만치 않은 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마리아의 고민은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 동안에도 계속되었습니다. 하루는 아들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셨던 마리아께서 예수님 거처로 찾아갔습니다. 뜻밖에도 예수님은 밖에 한번 나와보지도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오 복음 12장 48~49절) 이해하기 힘든 예수님의 말씀 앞에 또 다시 마리아는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기도하고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또 다른 영적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한 단계 한 단계 그녀의 신앙이 성장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마리아의 의문과 고민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위대한 성경 말씀이 우리 손에 쥐어졌습니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우리는 비록 나약하고 무력하지만,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할 때, 하느님 권능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강건해집니다. 그분과 함께 할 때 불가능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어리고 가난하고 보잘 것 없던 나자렛 산골 소녀 마리아가 위대해진 것은, 그분이 찾아오셨을 때 가장 진지하게, 가장 겸손하게 응답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부단히 의심했고 또한 순종했습니다. 틈만 나면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가 하느님의 어머니였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9997BA485AAEA46C04CF18
  • ◈ [청주] 예수님의 참 가족|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월11월21일 연중33주간 목요일 (마태12,46-50) 예수님의 가족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잘났건 못났건, 경건한 사람이건 죄인이건 상관없이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입을 수 있고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죄인들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기도 하고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낫게 하셨습니다. 악령을 쫓아내시고 그야말로 파격적인 행동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위한 예수님의 행동은 오해를 사기도 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가족과 친지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붙잡으려 나서기도 하였습니다(마르3,2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고 반문하시며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의 참된 가족에 대한 기준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가족은 더 이상 혈연관계에 기반을 두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데에 기반을 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 공동체를 형성하고 결속시키는 데 초석이 되는 것은 혈연, 학연, 지연이나 좋은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때 비로소 그분의 참다운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는 뜻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10,37).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삶을 보면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하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지닌 복된 분으로서 사셨습니다. 그 믿음에 흔들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참된 가족에 속하십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낳아서 행복하신 분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지킨 분으로 참 가족이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성모님보다 더 잘 실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죽음을 무릅쓰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예수님의 잉태를 받아들였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이집트로 피난 생활을 하셨으며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아들과 함께 걸으셨습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했고 제자들과 더불어 다락방에서 기도에 전념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과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러 모든 것을 받아들이시고 행하신 분이십니다. 어느 누가 그분의 모범과 표양에 앞설 수 있겠습니까? 비록 예수님과 혈연관계에 있지 않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분의 가족이 됩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 된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로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따라서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보다 영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먼저입니다. 하느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 4,24). 영적인 사람,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해를 형님으로 달을 누님으로 고백했습니다. 해와 달은 생겨난 뒤로 하느님을 거역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순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래서 형님과 누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면 예수님의 참가족이 됩니다.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어 가족이기도 하지만 믿음에 따르는 행실로 형성되는 새 가족의 품위를 지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226C0D495876B4D021D83A
  • ◈ [기타] 11월 21일(목) - 통째로 삼키자 오늘은 ‘통째로 삼키자’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잠언서 1장 12절 말씀에 “그들을 산채로 삼키며 통째로 삼키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악한 자들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거꾸러뜨리고 넘어지게 하고 골탕을 먹이고 자신의 수중에 상대방의 것을 빼앗아 상대방이 골탕을 먹든 말든 어려움을 겪든 말든 자신들의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지극히 마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혹시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대다수 여러분들 주위에 몇 명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정말 저 사람은 아니다’ 하면서도 속이는데 그저 넘어갈 수밖에 없는 곳으로 빠져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요. 하지만 그들은 오늘 잠언서 1장 11절~16절 말씀에서 “피를 흘리게 하고 숨어 기다리다 완전히 망했을 때 산채로 삼키자 그리고 통째로 삼키자 온갖 보화를 빼앗아 우리 집에 채우자”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는 늘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이들의 밥이 되고 맙니다. 제 주위에도 아차 하는 순간 속이고 꾀는 말에 넘어가 가산을 통째로 날리고 나이 들어 정말 거지같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226C0D495876B4D021D83A
  • Schubert Grand Duo Sonata In C Major, D.812 (Op. Posth.140) Orchestrated By Joseph Joachim (1831 - 19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