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0일 예수님은 하느님 뜻이 육화되신 분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9-12-10 05:53:13    조회 : 275회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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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9년 가해 12월10일 [(자)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야서 40,1-11 복음 마태오 복음 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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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대림 제2주간 화요일 2019년 가해 12월10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성당 주일학교 친구가 워싱턴에 산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뉴욕에서는 차로 5시간 정도 걸립니다. 1981년에 만나고 못 만났으니 38년 만의 만남입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있을까? 만나면 무슨 이야길 할까? 친구의 남편에게는 어떻게 인사할까? 가는 길에 조금 걱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친구의 얼굴을 보니,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눈망울도, 목소리도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제게 고등학생 때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기억납니다. 언젠가 여름 성당 마당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성당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가족 이야기, 이민 온 이야길 하니 하루가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진눈깨비가 왔지만,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해준 도시락을 먹으니 진눈깨비도 그치고 다시 날이 맑아졌습니다. ‘7080’이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같은 신앙 안에서 맺은 인연이기에 더 소중하고, 반가웠습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오랜 시간의 골짜기는 우정이 있으니 매워졌습니다. 권위와 직책은 학생 시절로 돌아가니 하나가 되었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도, 오랜 이민 생활의 고달픔도 함께 만나니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좋은가 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분명 골짜기가 있습니다. 학력, 지역, 이념, 직업, 계층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너무 깊어서 넘어가기도 힘들고, 넘어오려는 사람의 손을 뿌리치기도 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 듯이 우리의 삶도 짧은데 우리는 골짜기를 메우기보다는 더 깊게 만들곤 합니다. 이런 골짜기를 메우는 길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산과 언덕이 있습니다. 권력, 재물, 명예라는 바벨탑이 있습니다. 바벨탑은 교만, 욕심, 허영, 위선, 가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탑을 낮추어 평평하게 하는 길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착한 목자 이야길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기쁨과 슬픔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부유함과 가난함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행운과 좌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길 잃어 방황하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려고 기다리십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은 ‘희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주님의 날이 가까이 왔다. 보라,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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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원] 대림 제2주간 화요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가해 12월10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 18,12-14: 목자와 길 잃은 양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10절)라고 하시고 나서 길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착한 목자는 이 길 잃은 양을 어깨에 메고 나머지 양떼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이 목자는 길 잃은 양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 오셨다. 이 목자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필리 2,6-8) 분이시다. 백 마리의 양떼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 그것은 목자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양이 무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 양은 태초에 주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신 인간 아담이다. 그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써 천사들의 무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인류 전체가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졌다. 주님께서는 인류를 죽음에서 삶으로 다시 부르십니다. 그분의 죽음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죽었던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분은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길잃은 백 번째 양을 찾으면 더욱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신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듯이 ‘그리스도 안에 모두가 한 몸’ (1코린 12,12-31 참조)이 되려면 모자라는 부분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모자라거나 빠진 부분이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죄인들, 또한 윤리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버림받은 사람들, 저주받은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이렇게 사회로부터 냉대 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면 그들과 함께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실 만큼 기뻐하신다. 그것은 예수님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더 기뻐하시리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우리 공동체에 어떤 사람이라도,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신분의 귀천 없이 신앙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볼 때는, 그가 멸망하지 않고 구원되도록 모든 교우들이,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이 힘써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를 한다고 하면서도 조건이나 기억을 가지고 대하지만 하느님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기쁨만이 있다. 우리도 이러한 사랑을 갖고 살도록 노력하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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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의 크기는 나의 사랑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와 같다. 2019년 가해 12일10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나의 크기는 나의 사랑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와 같다.> 복음: 마태오18,12-14 로마 멸망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양합니다. 그런데 로마 제국이 멸망하게 된 출발점은 한 사건으로 귀결됩니다. 서기 378년 한 로마 병사가 잘못 쏜 화살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고트족이 훈족에게 밀려 로마 접경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평화롭게 살 수만 있다면 로마인으로 사는 것도 받아들이려 하였습니다. 동서로 나뉜 고트족 중 서고트족은 이미 로마 지배하에 있는 땅에 정착할 수 있는 약속을 받아놓는 상태였습니다. 동고트족 역시 같은 수순을 밟아가고 있었습니다. 동고트족이 서고트족에서 도망친 이들을 포섭한 상태로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도 쓸데없는 전쟁은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화평 회담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양측 기마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공격태세를 갖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로마 병사 한 명이 긴장한 나머지 화살 한 발을 고트족에 쏘았고 그 때문에 고트족 호위대가 이에 대항해 공격하였으며 이를 본 로마 기병대는 공격 진영을 갖춰 고트족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좌우 숲 속에 숨어있던 고트족 기병대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로마 군대는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됩니다. 고트족이 로마를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전투로만 4만 명의 로마 군인이 전사하게 되었고 로마 병력은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로마는 이 전투 이후로 두 번 다시 이탈리아 전역을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참조: ‘세계사를 바꾼 49가지 실수; 화살 하나가 바꾼 역사’, 빌 포셋, 생각정거장] 세계를 호령했던 로마가 일개 병사 한 명의 잘못된 실수로 무너질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건들을 볼 때 세상에 가볍게 여길 사건이나, 무시해도 될 사람이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쉰들러 리스트’(1993)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1,100명의 유태인을 구하고 자신은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서 한 유태인이 자신의 금니를 빼서 만든 반지를 쉰들러에게 감사의 표현으로 선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그 반지에 새겨진 탈무드의 명언이 이것입니다. “한 사람을 구함은 세상을 구함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서도 한 병사를 구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밀러 대위는 죽어가면서도 라이언 일병이 무사 귀환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해합니다. 밀러 대위는 라이언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입니다. “라이언 ... 값지게 살아 ... 값지게 ... ” 값지게 살라는 말이 무엇일까요? 전투의 베테랑이었던 자신이 일개 병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처럼 그렇게 가장 작은 사람들까지도 목숨을 내어줄 수 있게 살라는 말일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할아버지가 된 라이언이 밀러 대위의 무덤 앞에서 아내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여보, 나 부끄럽지 않게 살았지? 라이언 부인이 대답합니다. “그럼요!” 이 대답은 실제로 무덤 속에 있는 밀러 대위로부터 듣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대답을 들어야합니다. 내가 값지게 살라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가장 보잘 것 없는 우리 각자를 위해 피를 흘리셨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의 아주 작은 사람들을 위해 피를 흘려야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때에 “저 부끄럽지 않게 살았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 최고 부자인 손정희 회장도 병중에서 죽음 직전에 있을 때 자신의 딸과 같은 저 멀리의 한 아이를 웃게 해 주고 싶은 소망을 찾습니다. 그리고는 건강이 회복되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갓 태어난 자신의 딸만 잘 살게 해 주고 싶었다면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저 먼 세상의 굶고 있는 아이에게까지 퍼져갔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가 확장되니 하느님께서 그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입니다. 이 복음이 루카복음에도 나오는데 그 쓰임새가 다릅니다. 루카복음의 99마리 양은 결국 버려져야 할 바리사이-율법학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복음에서는 99마리의 양을 ‘광야’에 내버려둡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99마리의 양을 ‘산’에 둡니다.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99마리 양을 주님께로 이끌었다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 양이라도 더 찾아내 꼭 데려오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왜 크신 분이실까요? 세상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심지어 가리옷 유다와 같이 마귀가 다 되어버린 인간까지 사랑하여 구해주시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재의 크기는 그 사랑이 도달하는 거리와 같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어디까지 퍼져나갑니까? 나 자신입니까, 가족입니까, 친구들입니까, 나라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작은 피조물들까지입니까? 어디까지 나를 확장하느냐에 따라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살기도 하고, 작은 사람으로 살기도 할 것입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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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 14)|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가해 12월10일 화.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 14) 길을 잃은 우리를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길을 잃은 우리를 되찾으시는 아버지의 뜻입니다. 회개는 길을 잃은 사람들이 길을 되찾는 기쁜 소식입니다. 길을 잃은 곳에서 주님을 다시 만납니다. 길을 떠난 이들만이 길을 잃고 길을 다시 발견합니다. 주님께서는 길을 떠난 이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길을 잃은 우리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십니다. 애타게 찾아 나서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 하나도 잃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뜨겁게 스며드는 회개의 대림되시길 바랍니다. 잃어버린 우리를 되찾으시는 주님을 통해 우리모두가 이렇게 어여쁘고 소중하다는 것을 믿게됩니다. 부르시고 찾으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오십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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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회] 2019년 대림 판공성사를 위한 몇가지 팁! 2019년 가해 12월10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2019년 대림 판공성사를 위한 몇가지 팁! 또 다시 우리 교우들께서 은근 부담스러워 하시는 판공 시즌이 다가왔습니다. 고백성사가 부담스럽기는 저희 사제나 수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몇십년 동안 반복해온 죄를 또 다시 고백해야 하고, 고백한다고 한들 나아질 기미도 안보이고, 무엇보다도 나를 잘 아시는 신부님께 부끄러운 내 치부나 흑역사를 드러낸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립니다. 그러나 꼭 기억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고백성사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짐이요 십자가가 아니라, 선물이요 은총이란 사실입니다. 고백성사는 우리 가톨릭 교회만이 소유하고 있는 빛나는 신앙의 보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도 사정상 오랫동안 고백성사를 보지 못하고 있다가, 며칠 전 기회가 되서 성사를 봤는데, 정말이지 성사에서 오는 은총과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켜켜이 쌓인 죄들을 그냥 껴안고 지낼 때와, 훌훌 털어놓고 난뒤 영혼의 상태는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그래서 판공성사를 앞두고 꽤나 부담스러워 하시는 교우들을 위해 몇 가지 팁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지은 죄를 최대한 간단히 요약하고 정리하십시오. 판공 때만 되면 연세 꽤나 많으신 한 자매님이 머릿 속에 떠오릅니다. 당신 죄는 하나도 고백하지 않으시고 남의 죄만 잔뜩 고백하십니다.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첫째 며느리, 둘째 아들, 셋째 딸의 죄를 순서대로 쭉 훑으시니, 시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세밀한 묘사나, 주고 받은 대화 내용까지 다 나열하시면, 뒤에 서 계신 교우들이 순서 기다리다 또 죄 짓게 되니, 판공성사 때는 죄를 최대한 요약하고 또 요약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죄책감 탓인지, 우물우물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니, 전혀 안 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사제께서 잘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간단명료하게 정리하셔서, 핵심만 정확하게 말씀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수녀님들께서는 늘 작은 노트에 메모를 하고 들어오십니다. 2. 그러나 지은 죄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솔직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고백하셔야 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어르신을 봤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죄를 엄청 많이 지었습니다.” “그게 다입니까?” “그게 다입니다!” 그 어르신께서는 죄를 요약해도 지나칠 정도로 요약하셨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부족한 점은 없었는지? 이웃들과의 관계 안에서 잘못한 점은 없었는지? 십계명 가운데, 크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없는지? 조금 더 성찰하셔서, 요약하시면 좋겠습니다. 3. 가장 큰 죄, 너무 수치스러워 감추고 싶은 죄, 고백하고 싶지 않은 죄를 제일 먼저 고백하십시오! ‘이 고백을 들으시고 신부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엄청 혼나는 것은 아닐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고백성사의 비밀은 이천년 교회 전통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행되어 온 가장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사제들은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 처럼 큰 죄인일수록 더 크게 환영합니다. 아무리 큰 죄라도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 청한다면,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백번 천번 용서하십니다. 4. “지난 보속이 뭔지 잃어버렸습니다!” 고백소 안에 앉아 있을때, 가장 황당하고 이해하기 힘든 순간입니다. 신부님들께서 엄청난 보속을 주신 것도 아닐텐데...어떻게 보속도 이행하지 않고, 또 다시 고백소로 들어오실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보속은 미루지 마시고, 고백소에서 나오는 즉시 이행하시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혹시라도 기억이 안나시면, 그냥 들어오셔서 ‘보속을 못했습니다.’라고 하지 마시고, 들어오시기 전에 보속하는 마음으로 묵주기도 한번 바치고 들어오시면 좋겠습니다. 보속이다 생각하시면서 어려운 시설이나 단체에 후원금 조금 내시고 들어오시면 되겠습니다. 절대로 고백소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자비하신 주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길 잃은 어린 양 한마리 되찾는 것을 당신 삶의 가장 큰 보람이요 기쁨으로 여기시는 주님께서 그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마태오 복음 18장 12~13절)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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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예수님은 하느님 뜻이 육화되신 분 2019년 가해 12월10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예수님은 하느님 뜻이 육화되신 분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오18,12~14)” 착하고 부드럽고 온유 겸손 희생으로 오시는 하느님 뜻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뜻이 육화되신 분이시므로 착한목자로 오신분입니다. 가야할 길 잃은 한 인간 때문에라도 구해주시려고 오신 예수님입니다. 편히 걸어다니고 뛰어다닐 수 있는 인간의 자유가 인생길까지 바꾸죠. 중구난방 자유라며 동물 끼대로 사는 인간들 참 불쌍한 인간이겠고요. 회개 절대거부 오만방자 남 영혼까지 죽이는 자 구원불능 지옥행이죠. 예수님을 통해 하늘 아버지의 뜻에 감탄하며 방황 벗어나 회개합시다. 잘못 온 인생 되돌리는 회개로 하느님과 한가족되어 영복찬미 합시다.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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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타] 12월 10일(화) - 지혜로운 여인과 미련한 여인 오늘은 ‘지혜로운 여인과 미련한 여인’이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잠언서 14장 1절 말씀에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화) 한 여인이 전 남편의 아들과 남편을 약을 탄 카레를 먹여 죽인 사건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한마디로 그 집안에 여자가 잘못 들어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제가 아는 교회의 권사님은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반대했습니다. 몸도 너무 마르고 자기 아들보다 못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고 그렇게 몸이 말랐었는데 살도 근육이 붙어 보기에 딱 좋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시어머니에게 같이 살겠다며 제발 따로 살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모든 것에서 시어머니 위주로 살림을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나 자신이 우선하는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힘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선하는 모든 행위들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상대방이 우선하는 이웃사랑으로 하나님을 우선하는 하나님 사랑으로 지혜로운 성도가 되십시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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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뷔시//'2개의 아라베스크' Deux Arabesques L. 66 (하프 편곡) -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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