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4일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에 헌신할 수 있기를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9-12-24 05:59:01    조회 : 215회    댓글: 0

~▣ 2019년 가해 12월24일 [(자) 12월 24일]

 

제1독서 사무엘기 하권 7,1-5.8ㄷ-12.14ㄱ.16
복음 루카 복음 1,6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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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12월 24일

 

2019년 가해 12월 24일

 

홍익희의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브라만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탄생과
문화를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문명과 문명이 만나면서 서로의
종교는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다른 종교의 교리와 신학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풍요로워지기도 합니다. ‘창조, 지혜, 선과 악, 윤회, 영지, 구원,
심판, 천국, 연옥, 지옥, 부활, 깨달음’의 개념이 종교의 틀에
들어왔습니다.

 

화이트 헤드는 ‘형성과정에 있는 종교’라는 책에서 세계종교 가운데
보편성을 지향하는 불교와 기독교를 가장 합리적인 종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에 따르면 불교와 기독교는 붓다와 그리스도의 영적
체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인간의 구원을 인간과 우주 만물의
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해를 통해 도달하는 반면, 기독교는 인간의
삶과 역사 안에 활동하는 신에 대한 신앙을 통해 달성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붓다는 인류에게 위대한 교리를 준 반면에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다윗은 하느님을 위한 성전을 짓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은 화려한 궁에 살면서 하느님은 장막에 모시고
있었습니다. 예언자 나탄은 다윗의 이야기를 듣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나탄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사람을 보낸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유배 갔습니다. 성전은 파괴되었고, 낯선
곳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을 준
것은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준
예언자였습니다. 예언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이야기합니다. 다시는
고통도, 눈물도 없는 참된 평화와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2019년 12월 24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어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어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오늘은 이 질문으로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요?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박노해 시인의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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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인류에 울려 퍼지는 하늘약속 실현

 

2019년 가해 3월24일 화요일

 

인류에 울려 퍼지는 하늘약속 실현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요한 1,67~72)”

 

즈카리아의 예언은 이스라엘과 전 인류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힘센 구원자가 우리를 해방시킨다는 겁니다.
바로 예수님의 성탄예언이 인류에게 울려 퍼지는 하늘약속 실현입니다.

우리 인류의 출생기원을 새로 정하게 될 정도 기본을 잡아 주셨습니다.
인류 역사 몇 년에 누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일깨워 주십니다.
세상에서 점점 사라지는 왕정 독제 군주 권력 공산주의 등 다양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세상에서 점점 커지며 인류 문화를 진화시켜갑니다.
예수님 뜻을 기본으로 한 유엔 평등 존엄 사상이 각국에서 피어납니다.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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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성탄 밤 미사|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가해 12월 24일: 성탄 밤 미사: 사람이 되어 태어나신 하느님

 

복음: 루카 2,1-14: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나셨다.

 

호구조사의 상황은 요셉과 마리아를 왕도 베들레헴으로 가게 한다.
이곳은 다윗의 왕권이 시작된 곳이다.


(루카 2,1-5; 참조 1사무 16,1-13, 성령의 선물과 함께 13절).
여기서 마리아, 시온의 딸인 그리고 성령의 거룩한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영원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
(루카 2,6-7)이 사람이 되어 탄생하신다.

 

들에서는 “주님의 천사”가 “주님의 영광”과 함께 깨어있는 목동들에게
나타나, 그들에게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복음을 전한다.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부활의 명칭). 그 표지는
“포대기에 싸여 누워 있는 아기”가 구유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천사들의 합창이 이어진다. “지극히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여기서 말씀이 전해졌다. 즉 복음화 되었다. 목동들이 알아들었고,
아기에게로 달려갔다. 이것이 “오늘”(11절) 모든 사람들에게,
가시적으로 영원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스도는 성령과 함께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참으로 거룩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 위에 죽으셨으며,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시며, “하느님의 일”을 행하시며, 인간들 사이에서 사셨고,
그러므로 그분은 참으로 탄생하셨다.

성탄의 그리스도교적 의미는 깊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 무덤에서 옛 시간의 날이 끝나고, 새로운 “날”, “낮”, “오늘”이
시작된다. 탄생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날은 무덤에서 지지 않는 날로
시작되며, 탄생에서도 그렇다.

* 같은 인격(위격)이 “살아 계신 분”으로 무덤에서 나오셨다. 때문에
탄생에서도 “살아 계신 분”으로 태어나셨다.

* 수의로 싸여 무덤에 모셔졌다. 탄생에서도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우셨다.

 

* 무덤에서 인간으로서 신적 생명으로서 나셨다. 때문에 그분의 탄생은
즉 인간이 되신 것은 무덤을 위한 것이다.

 

생명에로 태어나기 위하여 죽으셨다. 진정 부활로서 아버지는 성령의
복되신 영원 안에서 영원한 아들의 인성을 낳으셨다. 바오로 사도가
시편 2,7을 인용하여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바로 죽음을 위해 태어나셨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십자가는
탄생을 위한 것이며, 탄생은 십자가를 위한 것이다.

 

* 마리아와 아리마태아의 요셉은 무덤에 묻기 위해 수의로 싸는데
있었고, 그 마리아는 요셉과 함께 포대기에 쌓아 구유에 모신 것이다.

* 주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무덤이 없었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요한 19,41), “3일” 때문에라도 사랑으로 내어드려야 했다. 똑같은
모습으로 그분을 위해서는 탄생할 자리가 없었다. 때문에 가난한
이들의 자리를 차지해야 했다. 여관은 모두 예약이 되어 있었다.

*몰약은 무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위해 쓰였다.
(요한 19,39) 그 몰약은 박사들이 아기에게 바친 예물이었다
(한번만 쓰였다).

 

* 하늘의 천사들은 부활에도 있었으며, 탄생에도 있었다.

* 초자연적 신적 빛이 부활에도 빛났고, 같은 것이 탄생에도 있었다.

* 부활 사건에서 하느님의 나타나심(신현) 앞에서 두려움은 탄생에서도
나타난다.

 

* 제자들 사이의 부활에 대한 놀라움은 탄생에서의 목동들의 놀라움과
  같다.

* 두려움에 대해 부활에서 천사들의 안심시키는 “두려워 말라!”는
말이 탄생에서도 같이 나타난다.

 

* “큰 기쁨”은 무덤에서 여인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같은 기쁨을 목동들도
맛본다.

 

* “표지”로서 무덤에 있던 얼굴을 싸맸던 수건과, 끈이 표지가 되었으며,
같은 표지로서 포대기에 쌓여 구유에 누워있다고 하였다.

 

* 부활 사건에서 제자들이 달려가는 것, 미래의 “하느님 양떼의
목자들”, 탄생하신 곳으로 달려가는 목동들이 나타난다.

 

* 제자들에게 여인들을 통해서 전해진 부활, 탄생에서는 목동들의
주님의 찬미와 찬양을 볼 수 있다.

 

* 위대한 왕의 도시, 예루살렘(시온)에서 부활하셨고, 인간적인 왕의
도시, 메시아적 왕의 도시, 다윗 왕의 도시, 예수께서는 인성으로
그리스도의 선조인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였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부활의 “표지”는 탄생의 “표지”이다. 이것은
기쁜 소식(복음)이며 살아있는 표징이다. 이는 주님 자신이시다. 이분이
바로 “오시는 분”이시다.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나셨다. 그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분은 평화의 왕자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이 아기로 태어나셨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분이 바로 구세주이시고 하느님이시며 모든
이의 구세주이시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거룩하게 살도록 가르치시고
계시다.

 

복음에 나타난 성탄 사화가 바로 부활을 통하여 본 것임을 알 수 있다.
성탄의 신비는 바로 새로이 태어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성탄의
신비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십자가와 죽음의 신비, 부활의
신비가 모두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신비는 우리 자신이
사랑을 위하여 죽는 것을 말하며, 부활의 신비는 거기에서 오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성탄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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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람을 만나기 부담스럽다면 그때 만나라.

 

2019년 가해 12일24일 화요일

 

<사람을 만나기 부담스럽다면 그때 만나라.>
복음: 루카 2,1-14

 

먼 옛날, 앞을 못 보는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눈을 뜰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이 소문을 들은 부엉이 한 마리가 어느 날 밤 소경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하였습니다.

 

“아저씨, 난 아저씨의 소문을 듣고 아저씨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왔어요. 나는 밤에만 활동하니까 낮에는 눈이 필요 없거든요.
그러니까 낮 동안에는 내 눈을 빌려 드릴게요. 그러나 밤에는 꼭
돌려주셔야 돼요.” 

다음날 아침 소경이 깨어보니 환한 세상이 그의 눈에 보였습니다.


소경이 뛸 듯이 기뻐하며 눈을 빌려준 부엉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부엉이와 생활을 하며 낮에는 소경이,
밤에는 부엉이가 눈을 달고 먹이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소경의 마음에 은근히 욕심이 생겨났습니다.

 

‘부엉이와 눈을 함께 쓰는 바보가 어디 있담.’
소경은 부엉이가 잠든 낮에 먼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눈이
희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소경은 다시 더듬거리며 부엉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저찌, 난 밤에 먹이를 찾지 못해서 굶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 눈도
기운을 잃은 것이에요.”

가엾은 부엉이는 이 말을 마치고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소경은 다시
소경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나에게 무언가를 해 주어야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부모에게 “부모라면
당연히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마음이 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방적인
관계는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관계는 ‘계약’입니다. 관계가 계약인 것을 아는 사람만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나에게 당연히 해줘야 한다고
여긴다면 남의 땅을 빼앗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땅을
가지려면 그만한 액수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것이 계약입니다.

 
일방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즈카르야의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해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인간이
구원되려면 인간이 하느님임을 믿게 해야 합니다. 만약 인간이
하느님임을 믿을 수 있었다면 굳이 하느님이 되기 위해 선악과를
따먹을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지었더라도 아버지께서
당연히 용서하실 것임을 알아 숨을 필요도 없고 죄책감을 감추기 위해
이웃을 심판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않아 아버지 집에서 살 자격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양식으로 주시며 우리도
당신 자녀임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짐승의 밥그릇인 말구유에
놓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아버지와 함께 계신 것이 제일 편안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양식이 되지 않으면 인간이 구원받지 못하기에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셔 십자가에 수난하시고 인간의 양식이
되셨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나러 오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그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부담스럽지 않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내어주는 것이 있어야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는 내어줄 생각을 하지도 않고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밀떡과 포도주도 내어주지 않으면서 성체성혈은 당연하게 받아도
된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선악과는 십일조입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도 내어줄 마음이 없으면서 오시는 예수님만 기다리면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지도 않고 성체성혈만 달라고 보체는 격입니다.

 

새로 태어나실 그리스도를 볼 때,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받아 모실 때,
‘나는 무엇을 드려야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모기나 기생충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사람들을 만날 때 부담스러워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편하면 그때 만나라고 충고합니다.

 
그만큼 내가 그 상대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 하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서야 상대를 이용하지 않고 온전한 계약의 관계로
보게 됩니다. 자신의 행복만을 위하면 상대를 이용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상대의 행복만을 생각할 수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도 그래야합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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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루카 1, 78)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가해 12월24일 화.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루카 1, 78)

 

기다림 너머엔 탄생이 있습니다.
길을 만드는 탄생이 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의 빛을 기꺼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탄생을 보게됩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십니다.

 

달려옴과 기다림 사이에서 마침내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사랑을 어디에 두어야할지를 오시는 성탄을 통해
만나게됩니다.
우리도 예수님같이 사랑이 될 수 있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는 삶이 사랑이길 기도드립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오시는 주님의 성탄에서
비로소 우리는 삶이 선물임을 깨닫게됩니다.
성탄처럼 가장 기쁜 사랑이 됩시다.
뜨겁게 자신을 버리고 내려놓는 사랑말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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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모든 신앙 행위의 정수(精髓)는 거룩하게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의를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2019년 가해 12월24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모든 신앙 행위의 정수(精髓)는 거룩하게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의를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전해진 세례자 요한 잉태와 관련된 예언을
의심했던 이유로 아홉달 간이나 말못하는 신세가 된 즈카르야였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아기의 할례식날 주님의 자비에 힘입어 혀가 풀리고
말문이 열립니다.

 

말문이 열린 즈카르야의 입에서 최초로 흘러나온 노래는 라틴어로
베네딕투스(Benedictus), 곧 즈카르야의 노래입니다. 마니피캇
(Magnificat), 즉 마리아의 노래와 함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가난한 백성들 사이에 가장 널리 알려지고 불려졌던 노래였습니다.
결국 이 노래는 당시 백성들 사이에 가장 사랑받던 노래, 가장 보배로운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즈카르야의 노래의 내용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희망적입니다. 무척이나
교회적이고 영성적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전 세계 모든 수도자들이
아침마다 바치는 성무일도서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즈카르야 노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전반부는 종말론적
찬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즈카르야는 자신에게 일어난 특별한 사건을
하느님께서 친히 이루신 위대한 업적으로 보고 그분께 찬양을 드립니다.
그분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굽어보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셨음을
노래합니다.

 

후반부는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기리는 찬가입니다. 아기의 출생을
축하하면서 그가 받은 사명에 대해서 선포합니다. 요한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묘사하는 동시에, 그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선구자가
될것임을 노래합니다.

 

‘거룩하고 의롭게’라는 문장에 계속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모든 신앙
행위의 정수(精髓)는 거룩하게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의를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바칠 진정한 제물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인간이 목숨걸고 지켜야할 일은 지존하신 분께 바친 서원(誓願)을
채우는 일입니다. 불행의 날에 그분을 부르고, 공경하며, 영광을 드리는
일입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떠오르는 태양같은 메시아, 칠흑같은 밤하늘을 환히 밝히는 큰 별
같으신 메시아께서는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무장한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죄와 죽음에 짓눌려 있는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실 것입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니 비칩니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당시 앞에서 기뻐합니다.”(이사야서 9장 1~2절)

교회는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앙이 밤의 어둠을 몰아낼 때 마다
즈카르야의 노래를 부릅니다. 때로 먼저 떠난 이들이 곤히 잠들어있는
무덤가에서도 이 노래를 부릅니다. 떠오르는 태양이요 찬란한 별이신
메시아께서는 죽음의 어둠을 물리치시고 광명을 가져다주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죄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새로운 세계 안에서 만물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과거에 하느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 행위와 그
행위를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서 어떻게 완성시킬 것인지를
서술함으로써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모두 망라하는 요약의
노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세상 육화와 속죄의 목적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세상 모든 피조물들에게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고, 당신의
백성을 평화와 구원의 길로 이끌어주시는데 있음을 즈카르야 노래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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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예언자가 되어라|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년 가해 12월24일 대림4주간 화요일 (루카1,67-79)

 

예언자가 되어야

 

주객전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인과 손님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뜻으로,
사물의 선후, 경중, 본말이 서로 뒤바뀌었음을 말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는 지도자의 위치가 있고 권위와 모두를 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백성은 백성의 자리가 있고 지도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도자라고 하는 이들의 권위가 사라진지
오래고 그러니 존경과 사랑도 없습니다. 각자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의 즈카르야의 노래는 이스라엘을 해방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부분과 하느님의 예언자로 태어난 아기의 장래를 축복하는
부분으로 구별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베푸시는 해방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를 그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나 떳떳하게 주님을 섬기며 주님 앞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한평생 거룩하고 의롭게
주님을 섬기도록 해 주셨습니다(루카1,75). 이것이 해방의 시작이요,
마침입니다.

 

하느님의 예언자로 태어난 요한이 제 몫을 감당하여 주님의 길을 닦고
알려주는 것도 “하느님의 크신 자비”(루카1,78)덕분입니다. 시작도
마침도 모두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요한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서 주님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말라기3,1). “사막에 길을 내어라”(이사40,3).고
외치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마침내 요한은 오시는 주인의 길을 닦고 자신은 그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만한 자격도 없다는 겸손을 잃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주인의 행세를 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나서 큰일입니다. 주객이
전도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자기 몫을 알고
그것에 충실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언자들이 닦은 길을 바탕으로
구세주가 오셨습니다. 오신 분은 지배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섬기러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둠이 짙어질수록 우리의 소명은 더 간절해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또 하나의 예언자가 되어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둠을 탓하기보다 어둠을 밝히는
하나의 등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시작도 마침도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에 헌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안에서 아기 예수님을 기쁘게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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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12월 24일(화) - 임마누엘 예수

 

오늘은 ‘임마누엘 예수’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 말씀에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대할 때 거의
대다수 나의 관점에서 인간적인 관점에서 생각을 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나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모든 몸과 마음을 그 기준에 맞춰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가 없는 상태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결혼도 하지 않은 마리아를 통하여 잉태하게 하시고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 내심을
증거로 보여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하시고 그 함께하심을 증거로
보여주시고 이를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의 예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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