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일 내가 떠나가야 더 잘 됩니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20-01-03 06:04:46    조회 : 205회    댓글: 0

~▣ 2020년 가해 1월3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제1독서 요한 1서 2,29―3,6
복음 요한 복음 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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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2020년 가해 1월3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신문사의 건물은 화재보험을 들었습니다. 갱신하기 전에 보험사에서
직원이 왔습니다. 직원은 건물을 돌아보고 결과를 우편으로
보내왔습니다. 보험을 갱신하려면 몇 가지 보완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익숙하기에 어쩌면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문제를 보험사
직원은 찾아냈습니다. ‘숨은그림찾기’를 할 때도 그랬습니다. 잠시 다른
데를 보고, 그림을 보면 숨은 그림이 보이곤 했습니다. 보험사 직원은
경험이 풍부하고, 그런 검사를 전문으로 하기에 잘 보았을 겁니다.  

미국에 와서 몇 번 들었던 말입니다. ‘미국 사회는 허술해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신문사 입구에 난간을 설치하라고 했습니다.

 
소화기는 벽에 고정하라고 했습니다. (신발장 뒤에 있어서 찾기
어려웠습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파이프는 철제로 보호하라고
했습니다. 어지러운 전선은 정리하고, 뚜껑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익숙하기에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 비용은 들겠지만 잘
정리해서 보험을 갱신하려고 합니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적응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는 변방의 사람 예수님의 가르침이 빠르게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겨졌던 ‘나자렛파’가 세계 종교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장의 4가지 요소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교육’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르쳤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전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와 복음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교리서였고,
교재였습니다. 제자들은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선교하였습니다.
헬레니즘의 사상을 넘어설 수 있었던 건 교육의 힘이었습니다. 새로운
기업, 새로운 종교가 성장했던 첫 번째 요인 역시 ‘교육’이었습니다.
말씀이 살아있는 공동체, 말씀이 중심에 있는 가정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샘이 깊은 물과 같습니다.

 

두 번째는 ‘친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겨 주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권위는 있지만
권위적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힘과 업적에 있지 않았습니다.
헌신과 나눔에 있었습니다. 제자도, 이방인도, 세리도, 고아도, 과부도,
아픈 사람도 모두 한 형제요 자매였습니다. 이런 평등의식은 강력한
연대감을 형성했습니다. 섬기는 공동체는 시련의 때가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하느님 나라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공정과 정의’입니다. 초대교회는 가진 걸 기쁜 마음으로
나누었습니다. 우리 몸의 지체가 한 몸을 이루어 성장하듯이,
초대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여유가 있는
공동체는 어려운 공동체를 기쁜 마음으로 도왔습니다. 굶주린
형제에게는 먹을 걸 나누어 주었습니다. 옷이 없는 형제에게는 입을
옷을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회복지는 초대교회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공동체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된다면 분열과
갈등은 사라질 겁니다.

 

네 번째는 ‘복음적인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을 체험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말과 행동으로 실현하였습니다. 제자들의 헌신과 변화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난향천리(蘭香千里) 덕향만리(德香萬里)’라고
합니다. 제자들의 복음적인 삶은 세상 끝까지 전해졌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지키는 공동체는 바위 위에 세워진 집과 같습니다.

 

지금 교회에 당면한 문제가 있다면, 지금 교회가 익숙함에 젖어있다면,
지금 교회가 성장을 멈추고 늙어가고 있다면 초대교회가 성장했던
이유를 다시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교회가 가고 있는 방향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인지 알고 싶다면 역시 초대교회의 삶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과연 나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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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사람위에 사람 없다 하잖아요.

 

2020년 가해 1월3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사람위에 사람 없다 하잖아요.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요한 1,32~34)”

 

성령으로 세례주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요한은 선언하였습니다.
예수님 말고는 하느님 아드님이 아니라며 정확히 지적해 주었습니다.


요한의 그 때 그 외침은 그 때로부터 오늘까지 변함없이 전해옵니다.

인류에서 단 한 분 예수님만이 하느님의 아들일 뿐 모두 다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이 인류의 길 제대로 알려주신 분 다른 인물 또 없습니다.
3대김씨 신화독재 공산독재 권력집단도 사람위에 사람 없다 하잖아요.

생명가치 자유보장 인간존엄 남녀평등 이웃사랑 예수님의 업적입니다.
가톨릭의 근본이 민주주의이므로 오염집단에 휘말리지 말도록 합시다.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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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변했다면 믿음이
생긴 것이고 믿음이 생겼다면 성령(하느님의 사랑)을 본 것이다.

 

2020년 가해 1일3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내가 변했다면 믿음이 생긴 것이고 믿음이 생겼다면 성령
(하느님의 사랑)을 본 것이다.)


복음: 요한 1,29-34

 

존은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회사 다니며 한 여자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관계를 정리하자고 했을 때부터 스트레스를 술로
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음주 운전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인도로 차를 몰아 정지 표지판을 들이받았습니다.
아이의 팔이 부러지고 얼굴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알코올 중독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을 드나들었습니다. 13개월 동안 이틀에 한 번씩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참석했고 그렇게 술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이런
술주정뱅이들이랑 어울려야 할 정도로 패배자는 아니잖아?’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에 관련된 모든 모임에서
탈퇴하였습니다.

  

2년 동안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고 암이 상당히 진전된 상태라는 소식을 접하고는 바로 술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2년 뒤 아내가 집을 나갈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습니다. 심지어 코카인을 흡입하는 상태까지 갔습니다.
아이들을 태우러 가는 도중 또 트럭과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만약
아이들을 태우고 돌아오는 도중 그런 사고가 났다면 아이는 죽었을
것입니다. 조수석 쪽이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다시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뜻대로 절제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버리기로 했습니다. 내 삶을 결정하는 더 높은 힘이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떠한 도움도
받으려하지 않게 됩니다. 물론 아직도 저는 무신론자이지만 나보다 더
강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어보려 했고 그러자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 존재가 하느님인지 아니면 다른 신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이후로 7년 동안 술을 끊고 지내는 데 도움을 준 강력한 존재가
있다는 건 압니다. 그리고 그 존재를 공경하면서 두려워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알코올 치료 재단인 AA는 ‘신’의 존재를
믿도록 유도합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의 나눔에는 신과 영성이란 단어가
끊임없이 언급됩니다. 믿어야 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진 공동체에 머물러 있을 때 믿음이 약해지지 않기 때문에
결국엔 탈출이 불가능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참조: 「습관의 힘; 개인의 습관」, 찰스 두히그, 갤리온]

 

사람이 부모처럼 두 발로 걷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믿어야 변할 수 있는데 그 믿음은 사랑을
보아야만 생깁니다. 사랑은 믿어서 변하려는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공동체 안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사랑 자체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부모의 사랑을 봅니다. 그러면 자신도
부모와 같은 인간임을 믿게 되고 부모처럼 될 수 있다고 믿어 수천 번
넘어져도 두 발로 걷는 연습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본성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람이 하느님이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하느님이 될 수 있음을 믿게 만들 하느님의 사랑, 즉
성령을 보아야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 위에 머무시는
성령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사랑이 담긴 아버지의
선물임을 본 것입니다.

 

저는 매일 라면만 먹으면서도 부모님의 손과 발의 굳은살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굳은살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부모님께서 주시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령을 품고 있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당신 사랑을 믿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절대 그리스도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믿음을 가진 베드로 위에 시작된 교회
공동체에서 성령을 받아야만 그 믿음을 유지하고 처음엔
비틀거리겠지만 언젠가는 물 위를 걷게 됩니다. 교회는 물 위를
걸으려고 시도하는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 세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며
자신이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존은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처음엔 성령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힘으로 술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엔 그
공동체 안에 살아있는 믿음을 보았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믿음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이 믿음을 보아야합니다. 교회는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물 위를 걸어보겠다고 시도한 베드로 위에 세워졌고
성체를 통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요 하느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속적으로 제공합니다. 교회에서 이 성령이 머무시는 것을 보지
못하면 진정한 삶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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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20년 가해 1월3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

 

복음: 요한 1,29-34: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도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언하고 있다. 즉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
(29절), 희생적인 구원자이시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32절) 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33절)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렇게 요한 세례자는 구체적으로 더
깊게 주님을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께 대한 이 증언의 내용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는 것은 그분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힘을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오늘 독서인 1요한 3에 근거해서 ‘하느님의 어린양’을 하느님의
영을 당신 자신이 가지고 계시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세례로 사람들에게 성령을 가득히 부어주시는 ‘하느님의
종’으로 이해한다면,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것”은 1요한 3,5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반복 불가능한 구원의 업적으로 볼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5a), 죄 없으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하시고(5b), 그분 안에 머물면서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6절).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것”은 전
인류의 죄를 의미하는 것으로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개념이다. ‘없애다’라는 것은 죄에 대한 벌을 자신에게 지우는
것과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마르 8,34의 십자가 참조). 즉
하느님의 어린양은 하느님의 종이시다.

 

세례자 요한은 이제 고통 받는 하느님의 종이신 어린양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라고 증언한다. 이 증언으로 세례자 요한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에 대하여 말하면서 29절 이하의 말씀에
대해 그의 그리스도론적인 고백을 확대하고 있다. 즉 거룩하시고 먼저
계셨던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메시아께서 당신의 참혹한 죽음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신 분이시며, 오직 그분만이 탁월하게 구원의 선물
즉 성령을 인간들에게 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에 근거한 예수께 대한
증언을 수렴하고 있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34절). 우리도 역시 주님의 말씀에 따라 충실한 삶을
살아가면서 그분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시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이라는 우리의
십자가를 잘 짐으로써,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를 닮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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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 1, 29)|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20년 가해 1월3일 금.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 29)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삶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더 나은 삶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진정한 희망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몸소 당신 삶으로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통해 우리의 체험은 영광스러운 영원한
체험이 됩니다.
사랑때문에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바치십니다.
하느님의 어린 양은 소중한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어린 양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린 양은 우리자신을 보게합니다.
사랑으로 생명으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십니다.
하느님은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사랑의 진리를 하느님의 어린 양이
몸소 보여주십니다. 어린 양의 발자국을 따라갑니다.
가장 아픈 곳에서 가장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어린 양을 따라갑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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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나는 그분을 위해 기쁘게 무대 뒤로 물러섭니다. 형체도
없이 사라집니다!

 

2020년 1월3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나는 그분을 위해 기쁘게 무대 뒤로 물러섭니다. 형체도 없이
사라집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다가오시자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위 문장에서 우리는 특별한 단어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코스모스(Cosmos)입니다. ‘세상’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질서’라는 의미도 지닙니다.

 

요한 복음에서 코스모스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인간의 극단적
자기 중심주의,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의 그릇된 질서입니다. 위의
세상이 아니라 아래 세상의 질서입니다. 그 세상은 인간의 그릇된
이기심이 지배하는 세상의 질서입니다. 결국 극복되어야 할 세상의
질서입니다.

 

이런 세상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때가 이르자 세례자
요한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외칩니다.
“세상이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세상의 죄’는 결국 우리 인간의 이기심이며 자만심입니다. 세상의 죄는
인간 각자의 개인적인 죄를 넘어서는 죄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그분을 적대시하는 세상의 죄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인류, 상처입은 인간 세상을 치유하고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의 어린양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어린양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다는데, ‘없애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치워 버리다.’는 일차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보다 깊은
뜻은 ‘짊어지다.’입니다.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결국 우리 인간 각자의 죄,
세상의 죄, 집단적이며 구조적인 죄를 당신 어깨 위에 짊어지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 양”이라 외치며, 머지않아
우리들의 모든 죄를 자신에게 짊어진 후, 묵묵히 수난과 십자가 죽음의
길을 걸어갈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암시하고 예언한 것입니다.

주인공이신 예수님, 세상을 구원하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보다
확연히 드러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정말
눈물겹습니다.

 

그분을 위해 자신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하나의 불쏘시개가
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더 이상 나 자신의
영예나 체면, 백성들의 관심과 박수갈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한 송이 꽃으로 활짝 피어나도록, 한 줌 재로
산화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정녕 감동적입니다.

요즘 또 다시 교회 인사이동 시즌입니다. 다른 임지로 떠나가시면서
걱정이 많은 분들도 계시겠지요. 내가 떠나가면 여기 이곳은 어떻게
될까? 그간 공들였던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좀
더 남아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돌아보니 저도 젊은 시절 보따리를 쌀 때 마다 걱정이 참 많았습니다.
내가 떠나면 나만 바라보던 저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데, 내가 가버리면 이 시설이 과연 제대로
운영이나 될 수 있을까? 저 많은 후원자들 다 떠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몇년 뒤에 슬쩍 그 소임지를 가봤더니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나 없는데도 다들 환한 얼굴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공연히 부질없는 걱정을 했습니다.

 

내가 떠나가야 더 잘 됩니다. 내가 떠나가면 내 뒤에 오실 그분께서 더
큰 사랑으로, 더 활기찬 모습으로 아름답게 모든 것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큰 행복, 큰 충족감을 안고 무대 뒤로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자 요한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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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1월 3일(금) - 성경을 믿는 성도

 

오늘은 ‘성경을 믿는 성도’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여호수아 6장 20절 말씀에 “백성이 외치매 성벽이 무너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초현실적인 사건들을 거의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나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에서 예수님이 하늘에서 다시 재림한다는
말씀이나 이 모든 내용들이 일반 상식을 떠난 초현실적이고
초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성경 안에 이적과 기적들은 무수히 많지 않습니까?
이 모든 내용들은 하나같이 보통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초현실적인 사건과 내용들 입니다.

 

하지만 이 엄연한 현실을 기록하셨고 진리라고 말씀하셨고 사실로
증명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어떻게 고함 소리로 성벽이
무너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론을 증폭시키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들이 하나씩 증명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침대가 흔들리고 떨리며 안마를 하는 침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침대를 기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파장으로 침대를
떨리게 만드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고 실제상황으로 시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백성이 고함을 칠 때 성벽이 무너진 것 소리로 얼마든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임을 그대로 믿을 때 성경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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