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9일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계시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20-01-09 06:07:58    조회 : 228회    댓글: 0

~▣ 2020년 가해 1월9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제1독서 요한 1서 4,19―5,4
복음 루카 복음 4,14-22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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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2020년 가해 1월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꽃동네 후원의 밤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아이티에서 사목하시는
신부님과 수녀님이 오셨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사랑하면’이라는 말로
영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랑하면 부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후원의
물품이 상자로 왔다고 합니다. 상자를 보관하기 위해서 창고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면 변한다고 합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가 정상으로 자라는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랑하면 외국말도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수녀님이 한국말을 하는데도 아이티의 아이들은
다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아이티의 꽃동네는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합니다.
가난하고 헐벗은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아프고
병든 아이들이 약을 먹고 치유된다고 합니다. 사랑이 있으니 희망의
꽃이 피어난다고 합니다. 꽃동네는 꽃이 있는 동네가 아닙니다.
꽃동네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동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간결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요한 사도도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인은
‘연탄 한 장’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아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어릴 때, 연탄을 갈면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시인은 연탄 하나를
가지고도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 냅니다. 연탄구멍을 잘 맞추어야 하고,
적당한 때에 새 연탄을 올려놓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습니다. 온몸을
뜨겁게 달구어 새 연탄에 불을 붙여 주고, 자신은 다 타서 재가 되어
버려지는 것이 연탄입니다. 하지만 연탄은 방안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예전에는 연탄불에 음식도 해서 먹었습니다.

 

미아리에 있는 ‘성가병원’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료로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병원이 곧 문을 닫을 거라고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3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그 병원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많은 의사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으며,
독지가들이 약을 지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등포에 있는
요셉의원도 3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을 위해서 무료로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역시 나눔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국회에서 좋은 법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법부가 공정한 판결을 내려서 세상을 정의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존의 그늘을 밝게 비추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나눔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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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가톨릭(=보편이라는 뜻).

 

2020년 가해 1월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가톨릭(=보편이라는 뜻)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루카 4,17~22)”

 

이제는 그분의 소문이 온 세상에 퍼졌고 위의 본문이 그 내용입니다.
세계여행 다니면서 사람들이 다 형제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세상이 한동네이고 이 골목 저 골목처럼 입출국 여권 없이 말입니다.

 

왜 힘들게 국경이다 정책이다 보이지도 않는 선을 긋고 난리들입니까.
예수님사상으로 인류 모두가 언어 제도 같아 하느님 백성이면 좋은데.
해서 가톨릭(=보편이라는 뜻)이라는 단어를 예수님 사상대로 쓴 거죠.

여행 중에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 분위기에서 이미 감 잡았을 겁니다.
인터넷교리로 하느님의 가족 되어 예수님 뜻대로 세상살이 해갑시다.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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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 안의 성령의 작용을 보지 못하는 것이 교만이다.

 

2020년 가해 1월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내 안의 성령의 작용을 보지 못하는 것이 교만이다.>
복음: 루카 4,14-22ㄱ

 

하는 일마다 잘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으면 우리 마음은 마치
돼지비계처럼 교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젊은 나이게 자수성가한
어느 청년도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마음에 도취되었습니다. 가난한
어머니에게 집도 사 주고 차도 사주고 이젠 비싼 옷을 사드리기 위해
백화점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아들이 기세등등하게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우리나라에서 지금 제 나이에 저만큼 성공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가난하게만 살아왔던 어머니는 잠시 생각한 뒤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어미가 못 배워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네가 생각하는
숫자보다는 한 명이 적을 거다.”

 

‘라이언 홀리데이’의 「에고라는 적」은 과거의 성취에 우쭐해 있다가
그 교만으로 망하고 나서야 교만이라는 적을 조심해야 한다는 글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입니다. 이 책에서 미국의 기업가이자
자선사업가인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이른 성공은 그의 에고와 자만심을 자극했지만 그는 에고를 극복하기
위한 독특한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과 밤을
새워가면서 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지금 막 일을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니 네가 지금 굉장한
인물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정신 차려라. 그렇지 않으면
흥분해서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냥 지금처럼 꾸준하게
나아가라.”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교만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에고에 잡아먹혀 더 이상 숨 쉴 수도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노력으로만 두 발로 걷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사람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두 발로 걸을 수
없습니다. 늑대에게 키워졌으면 두 발로 걸을 수 없을뿐더러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한다면 부모에 대한 공경의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준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불효이고
교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보지
못한다면 그 사람 또한 하느님 자녀로서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자신의 힘으로 신앙을 지니게 되었고 자신의 힘으로 사제가
되었고 자신의 힘으로 멋진 성전을 건축하였다고 믿는다면 그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자신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 사랑인 성령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조차도 성령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은총이 넘쳤는데 그 이유는 그분 안에 성령의 은총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라고 하시며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 그리스도는 그 공로를
성령을 내려주신 아버지께로 돌리고 계신 것입니다. 내 안의 성령의
작용을 보기만 한다면 그것 자체로 성령을 주신 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활동을 느끼는 겸손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자동차에서
연료의 작용을 아는 사람과 같습니다. 연료게이지에 민감하여 항상
때가 되면 주유소로 향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작용에 민감한
겸손한 사람은 기도에 목숨을 겁니다.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교만해
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로 자신의 모든 능력은 성령을
통하여 나오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그러면 겸손한 것입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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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20년 가해 1월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복음: 루카 4,14-22: 성경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

 

사탄을 힘차게 물리치신 뒤에 주님께서는 성령의 힘을 지니고 능력과
권위를 떨치며 갈릴래아로 가셨다. 그분은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고
백성들은 놀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분은 성령의 힘을 당신 힘과
권능처럼 사용하심으로써 찬미를 받으신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시어 두루마리를 펼쳐 당신에 관한 예언 이사 61,1-2을 읽으셨다.
이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18절).
여기서 가난한 이들은 다른 민족들을 가리킨다. 그들에게는 하느님도,
율법도, 예언자도, 정의도, 나머지 다른 덕들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은 잡혀간 포로들이었다. 오랫동안 사탄에게 묶인 채 사로잡힌
신세가 되어 그에게 복종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18절) 하려고 오셨다.

 

말씀과 그분의 가르침으로 눈먼 이들이 앞을 본다. 그분이 가르치시는
것은 ‘잡혀간 이들’만 아니라 ‘눈먼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18절) 예수님께서
치유하여 떠나보내신, 짓밟히고 부서진 사람들이 바로 이 억압받는
사람들이었다.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19절) 그
때는 우리가 눈을 더 보게 되고, 사슬에서 풀려나고,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때이다. 즉 주님의 때, 주님의 은혜의 때가 되게 하는
가르침이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회중 앞에서 읽으시자, 그들은 배우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글을 읽나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분을 보고 있다. 그 때,
예수님은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1절)고 하시며 예언자 이사야가 말하는 이가 바로 당신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성경 말씀을 구체적으로 사심으로써 그
말씀을 현실화 시키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가난하고 하느님도, 율법도, 예언자들도 없는 영적으로 가난한
이방인들에게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잡혀있는 자들을 풀어
주시고, 사탄의 통치를 무너뜨려 어둠에 사로잡힌 이들을 영적인
빛으로 비추셨다. 그분은 죄 때문에 가슴이 부서진 사람들에게서 죄의
사슬을 끊어주셨다. 또한 장차 생명을 주실 것이며 죄인들이라고 하는
그들이 의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의 해이다.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을 구체적으로
이루심으로써 이사야서를 완성하셨다면, 그리고 이사야와 만나셨다면
우리도 그분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아냄으로써, 2000년 전의
예수님과 참으로 만나야 한다. 그분을 만나고 체험하는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고 구원을 체험케
하는 그리고 그분을 만나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말씀의 실천을
통하여!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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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 21)|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20년 가해 1월9일 목.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 21)

 

은총의 말씀이 간절히 필요한 우리들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오늘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사람의 길은 말씀의 길입니다.


이끌고 밀어주는 주님의 말씀에서 오늘의 길을 찾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걸어가야 할 우리의 길을 만들어줍니다.

오늘을 위한 구원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기쁨은 오늘의 말씀안에 있습니다.


말씀은 주님과 우리를 연결시켜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에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말씀을 이루십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르는 은총의 오늘 되십시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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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반신부의 복음 묵상

 

2020년 가해 1월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루카4,14-22)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향기가 있으면 벌 나비가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향기가
아니라 냄새가 나면 다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만한 향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힘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돌아가시자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습니다. 사실 갈릴래아지역은 유다인들이
지독히 멸시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빛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빛나는 존재,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바빌론 유배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은 느헤미야와 에즈라
예언자의 가르침대로 일대 종교 부흥을 일으키며 율법의 왕국을
건설하였고, 모든 종교 제사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만 이루어지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적어도 일 년에 세 번 제사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활동의 중심은 경신례를 바치던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의 중심은 작은 마을까지
퍼져있던 회당이었습니다. 회당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고 말씀의
전례를 위한 집회가 열리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의 전통대로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 가시어 성경을
읽으시고 설명을 하셨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당신의 사명을
이사야예언자의 말씀을 빌어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 말씀은 이사야서 61장 1-2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사야예언자는
해방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며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는 사명을 받은
예언자였습니다. 그가 전하는 구세주는 말씀과 행적으로 자신의 사명을
성취합니다. 그는 구원자이며 승리를 알리는 사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메시아가 오실 때 일어날 일들을 기록한 구절을
읽으신 후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4,21). 유다인들의 거룩한 관습과
약속을 담은 성경말씀이 당신 안에서 실현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구원의
때가 시작되었고, 구세주가 나타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구원의 메시지는 믿음을
요구하고 이 믿음은 들음에서 옵니다. 믿음은 말씀의 요구에 대한
응답입니다.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보다 날카롭습니다.”
(히브4,12) 그러므로 “듣는 가운데에서”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오늘 여기”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영원합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계시다”(1베드1,24-25).

 

구원의 말씀은 듣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듣는다는 것은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2) 듣고 행하는 가운데
구원을 이루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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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1월 9일(목) - 성령을 따라 행하라.

 

오늘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17절 말씀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마음대로 잘 안되지요? 그 이유는 내 몸이라고 내 기분 따라
내 생각 따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즉, 육신의 생각대로 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인 것 같지만 전 인생의
삶을 통하여 본다면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일은 거의 많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 자신이 기준이 되어 행동하는 것을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원하는 만큼 미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성령을 따라 행동하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많고 무한 광대한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한 인간에 불과했지만 성령과 함께 행한 모든 것들은
기적이었으며 보통 사람으로서는 꿈에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들을 많이
보여주었지 않습니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이만명이 먹고도 남았으며 38년 된
중풍병자를 ‘일어나라’는 말씀 한마디로 일으켜 세울 수 있었으며 죽은
나사로도 살릴 수 있는 것 바로 성령을 따라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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