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종, 11월15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주일미사 강론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0-11-17 18:56:20    조회 : 201회    댓글: 0

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11월 12-15일)<!--/CM_TITLE-->

장기풍( editor@catholicnews.co.kr ) 

승인 2020.11.16 11:09  최종수정 2020.11.1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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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중심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종, 11월15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주일미사 강론

11월 셋째 주일은 지난 2017년 프란치스코 교종이 제정한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15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제4회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미사를 봉헌하고 강론했다. 세계 빈민 대표 100명이 참석한 미사 강론에서 교종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규칙만 내세워 자선을 제한하는 사람들은 올바른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다가오는 성탄절에 우리는 무엇을 베풀고 무엇을 사들여야 하는지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마태 25,14-30) 말씀은 인간의 각자 재능에 대한 비유입니다.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재화를 종들에게 맡기는 이야기에는 우리들 삶 전체를 관통하는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 각자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은혜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선, 하느님께서 주신 아름다움,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 각자는 하느님 눈에 소중하며 개개인이 모두 독특하고 대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이 부족한 것만 봅니다. "어쩌면!"이라는 유혹에 굴복합니다. 어쩌면 나도 그 직업을 가졌을 수도 있고, 그 집을 가졌을 수도 있고, 돈과 성공을 가졌을 수도 있고, 그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고, 주위에 더 나은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우리가 가진 좋은 것들과 하느님이 우리를 믿고 맡기신 은사를 보지 못하고,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됩니다. 이보다는 자신이 받은 것을 잘 활용하고 현재를 잘 활용해야 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스스로 다른 사람의 선물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받은 재능이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은 ‘종들의 의무’입니다. 즉 봉사하는 일입니다. 봉사하기 위해 살지 않는 사람들은 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 번 반복하지만 사실 우리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봉사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착하고 성실한 종’은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받은 것을 지키지 않고 사용합니다. 좋은 것은 투자하지 않으면 잃게 됩니다. 우리 삶의 위대함은 우리가 얼마를 보관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선을 행하는 것보다는 잘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삶을 보냅니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지 않고 필요를 추구하는 삶은 매우 공허한 삶입니다. 우리에게 하느님께 받은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선물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나 혼자의 필요에 따라 사는가, 아니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풀며 사는가?” 위험이 없는 충실함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종들의 충실성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충실하다는 것은 봉사의 요구에 자신을 투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규칙을 지키고 계명을 존중하는 데만 집착하는 것을 보면 슬픕니다. 기독교인이 삶에서 실수하지 않고 ‘창조성’ 없이 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심지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부르는 종처럼 받은 선물을 묻어 잘못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종은 자신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시는 하느님께 신실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최악의 공격을 가한 것입니다. 즉 받은 선물을 되돌려 준 것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이것을 주었고, 나는 당신에게 이것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너그럽게 참여하고, 사랑의 용기로 두려움과 수동성을 극복하도록 초대하십니다. 오늘날 불확실하고 취약한 시대에 우리는 무관심한 태도로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삶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화와 안전이 있다!'는 말로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고 할때, 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1테살 5,3)라며 우리가 무관심에 감염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초대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를 사랑으로 풍요롭게 합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주인은 불충실한 종에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했는지 설명하면서 하다못해 자신이 받은 재능을 은행가들에게 맡기고 이자를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도 하느님을 위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에게 지속적인 이자를 제공할 수 있는 ‘은행가’는 누구입니까? 잊지 마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의 중심에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없이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고 십자가형을 받으신 예수님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수입을 보장하고 우리 자신을 사랑으로 풍요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가장 큰 가난은 ‘사랑의 가난’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가난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 잠언에 묘사된 여인처럼 사랑에 애정을 갖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하느님께 받은 선물을 배가시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무엇을 살 수 있을까? 무엇을 더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상점에 달려갑니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자신을 내어 주고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처럼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삶을 낭비하고 결국 ‘가난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인생의 끝에서 그 현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성공, 힘, 돈이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세계의 허구는 사라질 것이고, 우리가 준 사랑은 진정한 부로 나타날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예수님으로 섬길 수 있는 은혜를 구합시다. 얼마 전 자신이 도움을 주던 정신질환자에게 살해당한 이탈리아 코모의 사제 로베르토 말게지니 신부를 통해 ‘복음에 대한 명확한 간증’을 제공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입으로만 아닌 그리스도인이 되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열매를 맺으려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재난과 가난에 허덕이는 이웃에게 눈을 돌리라”

교종, 11월15일 ‘세계 빈민의 날’ 삼종기도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15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미사를 마치고 성 베드로 광장 발코니에 나와 군중들과 주일 삼종기도를 바친 뒤 전 세계 전쟁과 환경재난 그리고 가장 궁핍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기도를 촉구하면서 이날 복음의 핵심을 다시 강조했다. 말씀 내용.

저는 오늘 지난 몇 주 동안 태풍으로 황폐해진 필리핀 국민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가족과 재산을 잃은 사람들과 구조요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분들과 연대합니다. 지난 2주 필리핀은 두 차례 태풍의 파괴적 결과로 많은 피해를 당했습니다. 처음 26명이 사망하고 100만 명 이상이 재난을 당한 데 이어 엊그제는 또 다른 태풍 ‘밤코’로 최소 42명이 사망하고 20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수도 마닐라와 외곽지역에는 380만 가구 전기가 끊겼습니다. 관공서가 문을 닫았고 대부분 수업이 중단되었습니다. 필리핀은 매년 약 20건의 태풍과 열대성 폭풍을 겪고 있으며 활발한 지진과 화산으로 세계에서 환경재난에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입니다. 마닐라의 카리타스는 이미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한 교구에 원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와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저는 사회적, 정치적 긴장상태로 많은 희생을 야기한 상황에서 오늘 국경일을 기념하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민족적 화합을 위해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이 나라의 모든 아들딸이 화해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책임감 있게 협력할 것을 촉구합니다. 특히 공익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정당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양한 정치 주체들이 상호신뢰와 대화의 분위기를 재정립할 것을 권장합니다. 한편 유엔에 따르면 이 나라는 10월31일 대통령 선거 후 시위와 사회적 긴장이 심해졌으며 8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이웃나라로 피신한 가운데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또한 저는 오늘 복음말씀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가난한 모든 사람에게 ‘교회의 목소리’가 마음에 울리도록 초대하기를 원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손을 뻗으십시오. 가난한 사람은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긴 비유는 모든 사람을 위한 가르침이며 특히 그리스도인에게는 반성과 함께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겨 주신 선물이 열매를 맺기 위한 방법의 가르침입니다. 비유의 세 번째 종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느님의 선물을 숨겨서는 안 됩니다. 오늘 비유에서 게으르고 불성실한 종은 자신의 주인이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마태 25,24)라고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게으름을 방어합니다. 이것은 우리도 가지고 있는 습관입니다. 

우리도 때때로 다른 사람을 비난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방어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잘못입니다. 그러나 이 종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주인의 모진 성격이 자신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역시 우리도 똑같이 합니다. 주인은 그러한 종을 꾸짖고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아 집 밖으로 내던져 버리게 합니다. 사실 우리 도시에는 가난한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에게 이기적인 시선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 형제자매에 대한 봉사로서’ 삶에서 선을 행하기 위해 우리의 선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십시오! 때때로 우리는 기독교인이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해악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도시의 중심부에도 굶주림이 너무나 많고, 우리는 무관심의 논리에 여러 번 들어갑니다.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보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의 중심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말하도록 가르쳐 주신 분은 예수님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오신 분도 예수님입니다. 지금 당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십시오.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받았는데 당신의 형제, 당신의 누이가 굶주림으로 죽도록 내버려 두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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