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1일 주님을 등에 업고

작성자 : 김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8-31 17:31:52    조회 : 451회    댓글: 0

◈ [수도회] 주님을 등에 업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요셉 수도원)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8월31일 연중 제22주일,
예레20,7-9 로마12,1-2 마태16,21-27

<누구든지 내 뒤를 뒤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
마태 16,21-27                                    

주님을 등에 업고

믿는 이들의 순례는 예외 없이 주님을 등에 업고 주님을 따르는 여정과 흡사합니다.
제 십자가의 짐을 상징하는 무거운 배낭들입니다.
미사도구를 배낭에 담은 제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강론을 쓰는 새벽 2:30분, 여기는 떼스떼야 알베르게 입니다.
가격이 저렴하고(6유로) 친절한 시립 알베르게 이기에 많은 순례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알베르게 안내 판에도 유럽 여러나라들의 언어와 함께 '시립 알베르게'라는 한글어가 있어 반가웠습니다.

잠들어 있는 침실을 조용히 빠져 나올 때 어지러이 널려있는 침실의 모습은
그대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남녀 혼숙의 침실이지만 참 자연스럽고 자유스럽습니다.
모두가 순례를 향한 순수한 마음과 열정 때문일 것입니다.

내일 새벽이 되면 하나 둘 다 배낭을 메고 떠날 것입니다.
저와 함께 하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도반 둘 중 한 분(상암동 성당; 김승월 프란치스코)은 사정 상,

오늘 귀국길에 오릅니다.
'순례도우미'로서 그가 보여준 헌신적 사랑의 봉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제 한분(서원동 성당; 박용대 이냐시오)의 도반만 남았습니다.

우리 삶은 결국은 '떠남의 여정'입니다.
언젠가는 이승을 떠나야 할 우리 모두의 운명입니다.

참 축복 받은 땅 스페인입니다. 500년 전후의 마을과 건축물이 그대로요
사람들 순수하고 친절하기가 마치 중세 시대 무공해사람들을 연상케 합니다.
어제 오후 관광열차를 타고 시내를 관광하며 새삼 깨달은 사실입니다.
밝은 햇빛, 맑은 공기에 풍부한 물, 끝없이 펼쳐진 좋은 땅 등
축복의 요소를 다 갖춘 스페인 나라입니다.
바로 이 나라를 관통하는, 계속 떠나야 하는 산티아고 800km 순례길입니다.

주님은 길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길이신 주님을 등에 업고 주님을 따라 계속되는 순례길입니다.
주님 사랑의 열정이 순례길의 원동력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이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인도자는 주님 한 분뿐입니다.
주님을 따라야 환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순례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 향한 열렬한 사랑 있어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질책을 들어도 베드로처럼 즉시 뉘우치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을 벗어났을 때, 누구나의 가능성인 사탄입니다.

주님은 생명입니다.

주님의 생명은 말씀을 통해 분명히 들어납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주님 생명의 말씀에서 샘솟는 사랑이요 생명입니다.
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이는 주님 말씀을 사랑합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예레미야의 감동적인 고백, 바로 이것이 성소입니다.
말씀에서 샘솟는 생명의 열정임을 깨닫습니다.
말씀으로 끊임없이 영혼을 충전시킬 때 생명력 충만한 삶입니다.

주님은 빛입니다.

칠흑같이 어둔 밤, 헤드랜턴을 이마에 달고 미사를 드리며 빛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았습니다.
'하느님은 빛'이란 말씀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헤드랜턴 하나로 오리손 산장에서 새벽에 미사를 봉헌했던 기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캄캄한 새벽길, 헤드랜턴을 이마에 달고 걸을 때,
'주님은 내 발에 등불, 내 앞길을 비추는 빛이 옵니다.'란 시편 말씀도 실감했습니다.
말씀의 빛이, 은총이 우리를 진정한 내적변화로 이끕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바로 말씀의 빛이 우리를 현세에 동화되지 않게 하고 분별력의 지혜를 주어 바오로의 말씀대로 살게 합니다.
현세악의 어둠을, 무지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말씀의 빛입니다.
결국 말씀은 '영혼의 빛'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등에 업고 주님을 따르는 순례여정입니다.
주님을 등에 업고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은 우리를 업어 주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생명과 빛으로 충만케 하시어 주님을 잘 따를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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