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4일 사랑밖엔 난 몰라!

작성자 : 김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9-04 06:45:05    조회 : 462회    댓글: 0

◈ [인천] 2014년 가해 9월4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제1독서 1코린 3,18-23

형제 여러분, 18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19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20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을 아신다. 그것이 허황됨을 아신다.”
21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두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2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3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복음 루카 5,1-11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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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태어난 갓난아기에 우리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혹시 갓난아기가 대소변 가리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유창하게 말하기를 원합니까? 또 이것도 아니면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기를 원하십니까? 아무도 이러한 것들을 원하지 않지요. 당연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실수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도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반복된 실수라면 조금 생각을 해 보기는 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넘어졌을 때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은 실패자이고, 벌떡 일어나 다시 계속하는 사람은 성공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에 대해서 의연해질 수 있어야 실패자가 아닌,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신기하게도 성공자보다 실패자가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실제 상황이 되면 대부분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실패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기에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실패했을 때에는 자존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래야 쉽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체면과 자존심만으로는 쉽게 일어날 수 없으며, 계속 주저앉는 실패자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부였던 시몬 베드로 역시 실패를 체험합니다. 그는 밤새워 고기를 잡았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입니다. 이 실패를 경험한 베드로였지만, 그는 포기하지도 또 주저앉지 않습니다. 그래서 밤을 새워서 고기를 잡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지요.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는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라고 말씀하시지요. 어부생활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던 목수 출신의 예수님 말씀입니다. 과연 평생 어부로 생활했던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자기 자존심과 체면을 버리고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몬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움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모두 버려야 진실되이 주님을 따를 수 있으며, 주님으로부터 커다란 선물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소위 ‘자존심 빼면 시체다.’라는 말도 있지요. 그러나 주님 앞에서 내세울 자존심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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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물 때문에 반드시 멈출 필요는 없어요. 벽에 부딪힌다면 돌아서서 포기하지 말아요. 어떻게 벽에 오를지, 뚫고 갈 수 있을지, 돌아갈 순 없는지 생각해봐요(마이클 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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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느끼는 이유

한 자매님께서 본당 신부님께 묻습니다.

“신부님, 저는 밤에 혼자 외출을 하면 왜 이렇게 무서운지 모르겠습니다. 왜 밤에 혼자 외출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힐까요?”

그러자 신부님께서는 대답하세요.

“아직도 이 세상의 삶이 자매님에게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 대답에 무릎을 치며 감탄을 하게 됩니다. 솔직히 우리가 두려움 속에 종종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자신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을 버리지 못해서 우리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길, 어쩌면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길이 참으로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기를.... 그리고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 있기를....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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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순명은 기적을 낳는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가해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루가5,1-11)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울 따랐다.>
루카 5,1-11

순명은 기적을 낳는다.

순교자 성월입니다. 죽음에 이르기 까지 믿음을 증거 한 분들을 순교자라고 합니다.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 한 고귀한 삶을 기리고 우리도 세례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로마 6,5)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성 예로니모는 “순교자의 피는 믿음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는 “사랑의 순교라고 하는 또 다른 순교가 있습니다. 이 순교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끝없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명을 존속시키어 그들을 동시에 순교자와 증거자가 되게 하십니다.”고 말합니다. 매일의 일상 안에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랑의 순교자가 되길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배를“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밤새도록 애썼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오랜 경험으로는 예수님께서 그물을 치라는 시간은 고기가 잡히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며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쳤고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고기를 얻게 되었습니다(루가5,5). 예수님께서는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요청했고, 베드로도 그저 예수님의 뜻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믿음을 요구하셨고 믿음은 순명을, 그리고 순명은 기적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믿음은 모두를 얻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결국 구원은 믿음을 요구 합니다.

그런데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운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왜 많은 고기를 잡았는데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두려워했을까요? 동안에는 고기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능력의 예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떠나 달라 합니다. 거룩하신 분을 가까이에서 모시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 되게 무릎 꿇는 그 모습이 오히려 제자의 참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죄 많은 자의 고백을 받아들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이제는 더 이상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 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지만 베드로와 제자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지식이나 경험, 업적, 애착, 인정으로부터 벗어나 주님의 자유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따름으로써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믿게 되고 전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따를 수 있는 마음의 준비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겸손과 순명을 우리의 예물로 봉헌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순명의 역사가 고기를 잡지 못한 피로와 절망을 한 순간 희망과 성공으로 바꾸었듯이 하느님을 깊이 만나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선입견과 지식, 경험들이 주님 안에서 녹아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그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또 행동해야 하는데 내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면서도 그분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야 어찌 사람들이 나의 낚시에 낚이겠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그분이 원하시는 모양으로 축복된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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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랑밖엔 난 몰라!

2014년 가해 9월4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복음: 루카 5,1-11

< 사랑밖엔 난 몰라! >

유투브에서 ‘어느 뇌 과학자가 발견한 깨달음’이란 제목을 치면 한 여성 뇌 전문가가 강연한 20분정도 분량의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오빠가 정신분열 증세가 있어서 그 계기로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뇌는 좌뇌와 우뇌로 나뉘는데 그 두 뇌는 완전히 분리되어 전혀 상반되는 일을 합니다. 이 두 개의 뇌는 뇌량(腦梁)을 통해서 정보를 주고받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분리된 것입니다. 우뇌는 ‘현재’에만 관심이 있으며 모든 감각기능을 통해 자신과 주위의 에너지들을 인식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 좌뇌는 그렇게 저장된 정보들을 분석하고 체계화 하여 미래에 어떻게 대처할지 등을 계산합니다. 즉, 과거와 미래에 관계된 것입니다. 우뇌는 온 우주 공간 안에서 ‘나’라는 것을 분리해내지 못하지만, 좌뇌는 ‘나와 너’를 분리해 나눕니다. 사람을 바보로 만들지 않게 하는 것이 좌뇌의 덕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뇌 전문가에게 아침에 갑자기 뇌출혈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좌뇌의 기능을 잃어갔습니다. 전화를 하려고 해도 숫자가 기억나지 않고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이 기억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하는 말도 그저 웅웅 거리는 소리로 들립니다. 정말 바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천국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세상과 나의 구분이 없어져 사랑이라는 바다 속을 헤엄치는 거대한 고래처럼 자유롭게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판단하고 사고하고 기억하는 소위 인간의 지혜의 총체인 좌뇌가 활동을 멈추니 곧 최고의 행복에 도달함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우리 능력으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너무 머리를 쓰고 사는지 모릅니다. 그것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데도 말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세상의 지혜를 심판합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자는 하느님께서 그 지혜로 함정에 빠지게 하시겠다는 성경의 말씀도 인용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지혜로운 자들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것인 것처럼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짓습니다.

참다운 지혜는 아이들처럼 자신의 능력을 포기하여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아기는 부모를 버리고 집을 떠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절대 하지 않습니다. 아기는 능력이 없기에 지혜롭습니다. 그래서 항상 부모의 것이 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보려고 하는 지혜가 바로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 죄를 지은 것입니다.
우리도 아주 잠시만이라도 ‘나’라고 하는 ‘좌뇌’에서 말하는 목소리들을 무시하여 바보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심수봉씨의 ‘사랑밖엔 난 몰라’란 노래에서 참다운 지혜는 사랑 때문에 바보가 되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밖엔 난 몰라 - 심수봉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 할꺼야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 했어요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당신 없인 아무 것도 이젠
할 수 없어 사랑밖엔 난 몰라   

무심히 버려진 날 위해
울어 주던 단 한 사람   

커다란 어깨 위에 기대고 싶은 꿈을
당신은 깨지 말아요   

이 날을 언제나 기다렸어요
서러운 세월 만큼 안아 주세요   

그리운 바람처럼 사라질까봐
사랑하다 헤어지면 다시
보고 싶고   

당신이 너무 좋아   

그렇습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 빠지면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던 우리 안의 자아가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사랑밖엔 모르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솟아나거든 “몰라! 됐어!”라고 우리 생각들을 무시하여 바보가 되십시오. 오직 그리스도의 뜻만이 남게 하십시오. 갈등이 사라지게 하십시오. 내 지혜를 포기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기획 담당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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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2014년 가해 9월4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울 따랐다.>
루카 5,1-11
 
 제 방에는 탁상용 달력이 있습니다. 9월 달력에는 둥근 보름달이 그려져 있습니다. 9월에 ‘추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추석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보름달, 제사, 고향, 가족, 휴가, 송편, 햇과일’과 같은 것들입니다. 추석에 함께 나누는 것들 중에는 송편이 있습니다. 송편은 그 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궁금합니다. 어떤 것은 콩, 깨, 녹두, 밤 등을 넣습니다. 저는 깨가 들어있는 송편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송편도 그렇고, 사람도 겉모습 보다는 ‘속’이 꽉 차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하루에 30명씩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1년이면 10,000이상이 스스로 자살을 합니다. 물론 안타까운 사연이 많겠지만, 겉모습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허전함과 외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 분노하고, 쉽게 절망하고, 싸우는 것도 우리들의 내면이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요?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고자 합니다.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9, 16-19)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하시고자 했던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기쁜 소식을 내면에 채웠던 분입니다. 그래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발전과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화려하고 멋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배설’을 해야만 건강하듯이 발전과 성장 또한 이웃에 대한 배려와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십니다. “나는 이제 여러분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행복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물이 터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은 것이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고 합니다. 묶인 이를 풀어주고, 갇힌 이에게 자유를 주고, 눈먼 이는 보게 하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라고 하십니다. 바로 그런 일을 함께하고자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가지려고 노력했던 그만큼, 내가 받으려고 했던 그만큼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것, 내가 받은 것을 줄 줄 아는 것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사랑, 기쁨, 나눔, 친절, 겸손’을 채웠으면 좋겠습니다. 이웃들과 함께 정성껏 만든 송편을 나누듯이, 우리들의 사랑, 기쁨, 나눔, 친절, 겸손을 고향의 가족과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하느님께 대한 열정을 채운다면, 우리는 형제의 실수나, 형제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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