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6일 불안하면 조급해진다.

작성자 : 김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9-26 06:48:10    조회 : 435회    댓글: 0

◈ [인천] 2014년 가해 9월26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제1독서 코헬렛 3,1-11

1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2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3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5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9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10 나는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일을 보았다. 1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복음 루카 9,18-22

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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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완벽한 아내감을 찾아 오랜 세월을 혼자 지낸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 형제님은 꿈에도 그리던 그런 완벽한 여자를 찾았지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결혼을 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결혼하지 못하고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자매님 역시 완벽한 남편감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사람을 원한다면 스스로 먼저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내가 완벽하지도 않으면서도 나와 관계되는 상대방은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지요. 그러다보니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며, 서로 일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완벽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먼저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이해의 기준 아래에서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신분에 관한 질문을 하시지요.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당시 사람들의 말을 따라서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옛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는 말을 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시지요. 즉, 그토록 나와 함께 다녔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아왔던 제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물으신 것입니다. 바로 그때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정답을 이야기합니다. 이 정답에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진리를 말씀해 주십니다. 바로 당신께서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완벽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완벽함을 제자들에게 강요하지 않으심을 복음서를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그보다는 계속해서 가르치시고 키우시면서 스스로 완벽할 수 있도록 만드시는 주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자기 자신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면서도 남들에게는 철저하게 엄격했었던 것은 아닌가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서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그들의 부족함을 보기보다는 나의 부족함을 먼저 바라봐야 하며, 그들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먼저 자신의 잘잘못에 대해 엄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원하셨던 완벽한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해하고 기다리셨던 주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 역시 내 이웃을 이해하고 기다리는 오늘 하루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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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해변에서 눈을 뗄 용기가 없다면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지 못한다(앙드레 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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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있는 곳(‘좋은생각’ 중에서)

세미나실에 50명의 사람이 모였다. 강사는 각자 풍선을 분 뒤 그 위에 이름을 쓰라고 했다. 그러고는 모든 풍선을 다른 방에 넣었다.

이후 강사는 자기 이름이 쓰인 풍선을 5분 안에 찾으라고 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풍선을 찾았다. 서로 부딪히고 밀리며 방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5분이 흘렀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자신의 풍선을 찾지 못했다. 강사는 아무 풍선이나 집어 적힌 이름을 보고 그 사람에게 주도록 했다. 그러자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이 풍선을 갖게 되었다. 강사가 말했다.

“우리가 한 것은 삶과 같습니다. 모두 필사적으로 행복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죠. 우리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함께 있습니다. 그들에게 풍선을 주듯 행복을 주세요. 어느 순간 여러분은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행복을 나누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 혼자만의 행복은 없습니다.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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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 - 불안하면 조금해진다.

2014년 가해 9월26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루카 9,18-22

불안하면 조급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유태인의 과월절에 꼭 등장하는 노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노래 제목은 ‘아니마민’인데, 히브리어로 ‘나는 믿는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노래가 작곡된 곳은 놀랍게도 공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였습니다. 이 노래의 시작은 이렇게 됩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리란 걸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 늦게’ 오십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모든 인간은 ‘의미’를 찾는다는 내용의 책을 저술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유태인 의사 빅터 프랭클은 당시 죽음이라는 엄청난 공포를 잘 이겨냈습니다. 바로 한 시간 전까지 자신과 이야기하던 사람이 가스실에 들어갔다가 동태눈을 하고 들려나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음식을 입으로 떠 넣었습니다. 그런 자신이 감정결핍자로 여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아야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깨진 유리조각으로 수염을 깎았습니다. 피가 날 정도로 붉고 푸르게 턱이 변했습니다. 그리고는 반잔의 커피를 옷에 찍어 얼굴을 닦았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치 군인들은 그렇게 얼굴을 말끔하게 하고 있는 프랭클을 가스실로 집어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포기할 때 남들도 나를 포기합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고 희망이 있는 사람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때’를 자신이 정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느님이 정해주시는 때를 끈기 있게 기다릴 뿐입니다.
저는 낚시를 할 줄은 모르지만 낚시에는 참 좋은 철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마치고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렁이를 매달고 멀리 던져놓습니다. 그리고는 찌가 흔들리기만을 기다립니다. 더 이상 무언가를 하는 것은 오히려 물고기를 잡는데 방해만 될 뿐입니다. 그리고 찌가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해서 바로 낚아채면 안 됩니다. 물고기가 확실하게 바늘에 걸리는 순간을 느껴야합니다. 그 때가 아니면 바늘이 물고기 입에서 빠져나가 허탕을 칠 수가 있습니다.
이 정확한 때를 물속에 들어가서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표징에 집중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설교자는 말합니다. 모든 일에 때가 있지만 우리는 그 때를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하느님이 정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가장 적당한 때를 알지 못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면 그저 그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멍하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 길을 다녀오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처럼 바람소리 속에서도 남편의 발자국 소리를 분간할 수 있는 마음으로 깨어 기다려야 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돌아오는 작은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러하였을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또한 하느님도 어떻게 하실 수 없기 때문에 그분도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이렇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하느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입니다. 오면 오고 안 오면 마는 것이지만 올 때 스쳐가게 놓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는 종말이 곧 오느니 마느니 하면서 불안함을 조장하는 종교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어차피 가야 하는 인생인데 왜 그 불안함이 벌써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해 버리는 것일까요? 불안하면 서두르게 됩니다. 그들은 이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그분이 정하시는 것이고 그 때가 오기 전까지는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조급함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망치는지 모릅니다. 경영학에서는 구매자와 가격을 흥정할 때 먼저 내가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지 말라고 합니다. 상대가 내가 원하는 가격보다 더 많이 쳐 주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말해버렸다가는 그만큼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서두르면 손해 봅니다. 모든 것을 정하시는 것은 주님이십니다. 모른다면 기다릴 줄 알면 됩니다.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 깨어 기다려야합니다.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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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인류사상 완전히 부활하신 단 한 분
 
2014년 가해 9월26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루카 9,18-22
 
인류사상 완전히 부활하신 단 한 분

그 어떤 사람도 죽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자연법칙이며 세상질서입니다.
어느 누구도 죽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게 자연 질서의 공평한 점입니다.
지위여하 부유한 자 가난한 자 권력자 노예 모두 세상질서에 속하지요.

예수님도 자연의 질서를 순순히 따르신 점에서 질서를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자연의 질서가 아닌 신의 영역이라는 점을 알게 해주십니다.
인류사상 부활하신 단 한 분 예수님의 그 소속이 세상이 아니라는 거지요.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루카 9,22)”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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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힘든 상황에 부딪힐 때는 항상 하느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2014년9월26일 연중 제 25주간 금요일 독서 묵상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렛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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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절실히 느끼는 부분입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오늘은 섭리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섭리란 쉽게 말해 하느님의 이끄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시간이 한참을 지난 후에야 그분의 뜻을 이해할 듯한 마음이 되는 경험을 하셨으리라 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섭리는 늘 과거형일 수밖에 없나 봅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누구 못지 않게 우여곡절의 길을 걸어왔고,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에 부딪힐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분의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었지요.
그러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내 계획과 그분의 계획이 달랐음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내 계획보다는 하느님의 계획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옳았음을 동시에 인정하게 됩니다.

여러분 힘드실 때가 많으시지요?
하느님한테 서운할 때도 많으시지요?
그 때는 분명 여러분의 계획이나 생각하고는 다르게 움직여지는 상황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는 반드시 이렇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적어도 “내가 세운 계획보다 나에게 더 좋은 계획을 하느님께서 가지고 계실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옳지 않은 길임을 아시는데 가만 보고만 계실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내 계획이 옳지 않다면, 그것을 깨닫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청하는 것이 그분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응답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믿어야 합니다.
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분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이 우리의 한계라고 해도, 그분께서는 우리가 가장 행복한 길을 선택하기를 바라시며, 한결같이 옳은 길로 이끄시고자 하는 분이십니다.

기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어떤 상황으로 전개가 된다고 해도, 그분의 뜻에 귀를 기울이려는 마음만은 포기하지 마세요.
그러면 반드시 세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201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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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은 밑의 링크를 눌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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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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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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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2014년 가해 9월26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루카 9,18-22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가 국운이 쇠하고, 조선이 새로이 등장할 때 고려의 충신이 지은 시조입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작은 세포도, 일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몸도, 국가도, 별도, 은하도, 우주도 ‘생로병사, 희로애락’을 겪기 마련입니다. 가을의 길목에서 아무리 봄의 따사로움을 기대해도 그것은 힘든 일입니다. 가을이 오면 나뭇잎은 떨어지고, 단풍은 들고, 그렇게 겨울은 준비하기 마련입니다. 겨울이 지나면 언 땅은 녹고, 녹은 땅에서는 새싹이 나기 마련입니다.

가끔씩 어릴 때 놀던 동네가 생각납니다. 널찍한 공터에서 친구들과 놀던 일이 생각납니다. 저녁때가 되면 밥 먹으라 부르시던 어머니의 목소리도 생각납니다. 동네를 흐르던 작은 개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던 우물도 그립습니다. 초상이 나면 상중이라는 등을 매달고 동네 사람들이 함께 천막을 치고 상을 당한 유족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 폰, 텔레비전, 가전제품들이 주는 편리함과 다양함은 적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이 줄 수 없는 ‘공동체, 나눔, 정, 그리움, 낭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을 보았습니다. 그 말씀은 새로운 권위가 있었습니다.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희망과 미래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은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게도 하셨고,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물위를 걷기도 하셨고, 유대인들의 지도자인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대화를 하셔도 당당하셨고, 오히려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용기와 힘을 주시고, 고통과 아픔 속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그리스도는 영광과 기쁨의 순간도 있겠지만 또 고난과 십자가도 질 것이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면 고난과 십자가도 다시 영광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쁨과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기쁨 속에서도, 행복 속에서도,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먼저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과 세상 사람들의 차이입니다. 신앙의 관점에서는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도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때 ‘무엇’을 하였는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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