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감리교 생태목회연구소 창립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2-02-19 22:02:33    조회 : 217회    댓글: 0

김기석 목사 

“오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코로나 같은 징조적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류의 방향을 어디로 돌리기를 원하는지를 인류에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사태는 단순히 바이러스의 역습뿐 아니라 더 큰 위기의 징후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후위기지요. 지난 20년 사이에 기후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은 참 많았습니다. 기후위기라는 불편한 진실에 직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호각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지난 몇십년 사이에 세상은 놀랄만큼 위기에 쳐해 기후변화라는 말은 기후위기로 바뀌었고 기후위기라는 말은 기후재앙이라는 말로 에스컬레이트 되기 시작했고 기후재앙은 급기야 기후붕괴라는 말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심각한 사태라고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까닭이 무얼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오늘 물질문명사회라는 것이 불교가 말하는 3독, 즉 탐貪·진瞋·치痴를 사회적으로 제도화 해 놓은 오늘의 자본주의 문명 때문입니다. ‘탐’, 인간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향으로 주신 자연을 닦달하여 내게 필요한 것을 내놓으라는 강도 같은 짓을 해 왔습니다. 이 탐심을 오히려 개발이니 발전이니 말 해온 것이 오늘 우리 문명의 모습이었습니다. ‘진’은 성낸다는 뜻인데 우린 끝없는 경쟁 속으로 내몰렸고, 인생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성공의 사다리 윗 단에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올라가기 위해선 다른 사람을 끌어내려야 했으며 바보처럼 미소 짓지 말고 화를 내며 자기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세상은 끝없이 가르칩니다. 바로 이것이 ‘진’을 제도화 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치’, 어리석음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뭔가 효율적이고 속도는 빨라졌지만 인간의 근원이랄 수 있는 사람됨에 대한 질문은 점점 실종되고 있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캐더린이 말한 것처럼 우리 시대는 궁핍한 시대입니다. 물질적으로 궁핍한 것이 아니라 정신의 궁핍이 많아졌다는 얘기 입니다. 사람됨에 대한 질문이 실종되었기에 우리는 가장 똑똑한 정보의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가장 어리석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3독이라고 이야기 하는 탐·진·치의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이 자본주의에 적응하느라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빼앗아 가는 능력가운데 가장 큰 것은 경탄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아름다움 앞에서 멈춰 서서 내 속에 있는 귀한 것들을 바라보면서 함께 기뻐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현저하게 약화되었습니다. 뭔가를 보고 경탄하는 사람은 한가로운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경탄할 수 있게 하는 삶의 자세는 멈춰서야 하고 자세히 봐야하고 오래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경탄할 수 있습니다.

구상 시인의 [말씀의 실상]에서 말한 것처럼 내 눈에 낀 무명의 백태가 벗겨지지 않으면 세상에 가득 찬 하나님의 신비를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이야기 하죠.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겨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萬有一切)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異蹟)이나 접하듯 새삼 놀라웁고 창밖 울타리 한 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부활(復活)의 시범(示範)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무명의 백태가 벗겨질 때 우리는 비로소 경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경탄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 필요한 인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경탄하고 멈춰 서고 시간 안에서 뜸 들이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 세태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폭주열차를 타고 달려가니 사람다움을 잃어 버렸습니다. ‘시간의 폭주’라는 이 압도적인 힘의 해독제가 있다면 이젠 멈춰서는 것이고 경탄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기독교인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깨운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어진 것들을 누릴 줄 아는 능력을 키워 줘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쉴러가 인간의 미학에 대한 교육이야기에서 들려줬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인간이 가장 아름다워 지는 것은 두 가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놀이할 때입니다. 놀이는 상대가 있는 법이고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놀이 속에 푹 빠질 때 우리는 자아를 망각하게 됩니다. 이게 인간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또 하나는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아름다워집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 가는 시대입니다. 바로 이것이 욕망의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에 생태목회연구소가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생태계라는 것,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만들고 나의 존재는 누군가의 덕분임을 깨닫게 만드는 게 생태계속에 속해 있음을 아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생태계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야 말로 이 시대의 기독교에 주어져 있는 가중 중요한 과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사도가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말하지만 이 시대의 중요한 열매는 절제일 것입니다. 나의 욕망을 컨트롤 하고 누군가를 위해 좋은 것을 남겨두고 그리고 함께 나누었기에 행복해 지는 삶을 연습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출범하는 생태목회연구소가 폭주하는 이 시대에 해독제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에 올바른 나팔소리를 울려서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꿈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일에 복되게 쓰임 받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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