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5-06-29 07:17:21    조회 : 328회    댓글: 0

◈ [서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2015년 나해 6월29일 월요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

제1독서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헤로데의 손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2,1-11

제2독서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6-8.17-18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모태신앙이었고,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해서 신학을 7년 동안 배웠고, 사제생활 24년을 하고 있습니다. 공기가 늘 내 곁에 있기 때문에 고마움을 모르는 것처럼, 물이 주변에 있기 때문에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지낸 것 같습니다.

어려서는 신앙생활이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매일 기도하셨고, 주일미사 참례를 하셨고, 기일이 오면 가족들이 모여서 연도를 바쳤습니다. 시골에 가도, 모든 것의 중심은 미사였습니다. 문법을 몰라도 말을 배우는 것처럼, 신학을 몰라도 신앙은 자연스럽게 저의 몸에 옷처럼 다가왔습니다. 저는 ‘예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를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믿으셨고, 부모님이 제게 물려준 것이 신앙이기에 받아들인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가500만 명이 넘었습니다. 저처럼 모태신앙인 신자들보다는 스스로 예비자 교리를 배워서 신앙인이 된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분들은 이성으로, 가슴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생각하였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죄, 죽음,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분이시고, 성령을 보내주시어 우리를 도와주시고, 교회를 세우시어 우리에게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스스로 공부하고, 선택한 분들이 신앙생활을 더 잘 할까요? 모태신앙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분들이 신앙생활을 더 잘 할까요? 궁금합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두 분은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참된 신앙인입니다. 하지만 이 두 분은 완벽한 신앙인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열정은 있었지만 그것을 꽃피울 냉철한 이성은 부족했습니다. 말은 하였지만 그것을 실천할 추진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겨 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교회의 첫 순교자 스테파노가 죽을 때 바오로 사도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자들을 잡으러 가던 길에 예수님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해박한 지식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세운 교회에 편지를 보냈고, 그의 편지는 초대교회의 신학과 교리의 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강한 추진력 때문에 때로 다른 사도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바오로의 부족함을 아시면서도 그에게 초대교회를 이끌어 갈 사명을 주셨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 교우 분들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신부님은 자상하신데, 다른 신부님이 오시면 어떻게 하나요?’ 저는 자상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당 사목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어르신들께서 좋아하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베드로 사도처럼 열정은 있지만 추진력이 부족합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주님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바리사이파처럼 주님을 따르기도 하였습니다.

하느님 앞에는 너무 빠른 것도, 너무 느린 것도 없습니다. 천년도 하느님 앞에는 지나간 어제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앞에는 완벽한 것도, 똑똑한 것도, 재능이 있는 것도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길가의 돌 하나로도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 사도가 흘렸던 참회의 눈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오로 사도가 보여주었던 새로운 삶으로의 회개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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