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6일 영적식별을 잘 하는 사람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5-09-26 07:03:44    조회 : 457회    댓글: 0

◈ [서울]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2015년 나해 9월26일 토요일 [(녹)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제1독서 
<정녕 내가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5-9.14-15ㄷ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3ㄴ-45
 
민족의 명절인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오늘은 어머니가 계신 의정부 집으로 가려고 합니다. 추석하면 떠오른 것들이 있습니다. ‘둥근달, 송편, 가족, 귀성길, 연도, 선물, 만남’과 같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추석이 외로운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군에서 추석을 보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노숙자가 되신 분들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추석을 보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추석을 보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독거노인들도 계십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이 외로운 이들에게도 따뜻함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추석 선물로 ‘영적식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광고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선택이란 참 중요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서에서 식별이란 말은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저울로 재 본다는 뜻입니다. 우리 어르신들은 예전에 손으로 들어 보면서 물건이 좋은지 아닌지를 판별하였습니다. 수박도 들어보고, 두들겨 보고 맛있는지를 살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씩 쪼개 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분석을 한다는 뜻입니다. 식약안전청에서는 물건의 성분을 분석할 때 잘게 쪼개 봅니다. 그것도 부족하면 분쇄해서 갈아 봅니다. 그러면 물건의 성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식별이란 전체적으로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고, 식별이란 구체적으로 하나의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를 따져 보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고를 때, 차를 살 때, 집을 살 때 우리는 꼼꼼히 따져보고, 신중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잘못 판단을 하면 커다란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하느님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식별’입니다. 처음에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한번 써보고, 살아봐야 안다.’ 겉보기와는 다른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식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식별의 결과입니다. 결과가 좋고, 결실이 있으면 영적식별을 잘 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고, 결실이 없으면 그것은 악의 유혹을 따른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위로와 고독’이 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면 결과는 늘 기쁨과 평화입니다. 악의 유혹을 따를 때도 ‘위로와 고독’이 있습니다. 악의 유혹을 따를 때 결과는 늘 불평과 불만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늘 감사하십시오. 항상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영적식별을 잘 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영적식별을 잘 하는 사람은 3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남의 의견도 충분히 듣습니다. 누군가 영적 식별을 잘 했는데, 교만하다면 그것은 악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둘째는 진중함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습니다. 남의 허물과 탓을 이웃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깊은 바다와 같아서 사람들을 품어 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순종입니다. 비록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할지라도 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의견이 교회의 가르침과 다를 때, 교회를 비판하고 순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영적식별이 아닙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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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하늘나라의 계산법을 따르는

2015년 나해 9월26일 토요일 [(녹)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제1독서 
<정녕 내가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5-9.14-15ㄷ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3ㄴ-45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고받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이만큼 주었으면 또 그만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지요. 마치 정확하게 숫자를 계산하는 회계원들처럼 대변과 차변을 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사실 주고받음은 도저히 균등한 비율로 나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맞벌이 부부가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기 때문에 가사 분담을 정확하고 공평하게 나누기로 했습니다. 습식은 남편이, 건식은 아내가 하기로 했지요. 즉, 설거지나 물걸레질, 화장실 청소 같이 물이 닿아야 하는 것은 남편이 담당하고, 재활용쓰레기를 버리거나 먼지를 털거나 장을 보는 것 같은 물이 닿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내가 담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감기몸살로 너무 아팠습니다.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데 머리가 아파서 도저히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지요. 그래서 남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내가 설거지도 했는데 쓰레기도 버리라고? 쓰레기는 자기 몫이잖아.”라고 말하면서 거절합니다.

가사 분담을 정확하고 공평하게 나눌 수 없듯이, 이 세상 안에서 주고받음은 도저히 균등하게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회계원이 되어 주고받음이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시간이나 힘이 없어서 상대방이 해준 만큼 줄 수 없는 날도 있었는데, 우리들은 내가 준 것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면서도 내가 받은 것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사랑을 기억한다면 당연히 수난과 죽음이라는 끔찍함을 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오히려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이라는 대답이 돌아와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대답이 아닌 오히려 자신을 반대할 것이라는 예언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사랑을 준만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시니 소위 요즘 말로 멘붕(멘탈 붕괴)에 빠져 아무 말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에 대해 주는 것만큼 받아야 한다는 세상의 논리인 회계원이 되는 모습을 우리들에게 원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는 것에 집중하고, 대신 받는 것에는 무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받는 것은 지금 이 세상에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보상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계산하려고 하는 회계원이 되지 맙시다. 대신 하늘 나라의 계산법을 따르는 사랑을 전하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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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서로를 돕길 원하다. 인간 존재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불행이 아니라 서로의 행복에 의해 살아가기를 원하다(찰리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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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사랑밭 새벽편지’ 중에서)

약 10년 전 유튜브 검색에서 우연히 발견한 자신의 동영상. 400만 명이 넘게 조회한 8초짜리 동영상엔 그녀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리고 댓글은 끔찍했습니다.

“불에 태워 죽이고 싶다”

“세상을 위해 그냥 자살해라”

누가 올렸는지도 모르는 동영상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

올해 스물여섯 살인 리지는 157cm의 키에도 체중은 25kg을 넘지 못 합니다. 하루 60번씩 소량으로 먹지만 지방이 몸에 쌓이지 않는 희귀병에 걸렸습니다. 튀어나온 앞니와 두 눈, 뼈와 가죽밖에 없는 몸, 하얗게 변해 눈동자도 잘 안 보이는 오른쪽 눈...

리지는 유치원 첫날부터 왕따를 당했지만 유튜브에서 전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된 그날부터 그녀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기로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연설가가 되었죠. 그녀는 자신을 조롱하는 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남을 보는 것을 멈추고, 이제 좀 배우세요.”

“겁쟁이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모니터 밖으로 나와 얼굴을 보이세요.”

“사람들은 내게 죽으라고 했지만 난 살아서 행복해질 것을 선택했어요.”

리지는 자신의 희귀병이 오히려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안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뭐라 해도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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