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평화를 기도합니다.
눈을 감고 성탄절 밤을 상상해 봅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아담하게 지어진 성당에서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가가 흘러나오고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하면서 저절로 주님을 찬미하게 되는 풍경입니다.
바깥에서 살 때 저는 더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에 길들어 사느라 이처럼 작고 소박한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감옥의 독방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잊힌 사형수로 살아온 지 벌써 16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부르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제 앞에 오십니다. 그러면 저는 마음속 생각들을 다 말씀드립니다.
오늘 아침에도 운동을 나갔다가 방으로 돌아와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다짜고짜 하느님 우리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주님, 벌금을 내지 못하여 노역을 사는 사람들이 운동장으로 가기 위해 복도에 줄을 맞춰 서 있을 때 꼭 전쟁터 포로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사람들처럼 추워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는 것을 주님도 보셨지요. 얇은 옷에 검정고무신, 초라한 행색들…. 저에게 그들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옷과 신발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든지, 그것이 아니라면 아버지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니 천사들을 보내시어 손수 그들을 돌보소서.'
저를 여기 감옥에 살게 하신 '하느님의 계획'은 과연 옳았습니다. 남의 이익을 돌보지 않던 제가 저 아닌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됐으니 말입니다. 다시 눈을 감고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고요하고 거룩한 밤을 생각합니다. 올해 성탄절에는 흰 눈이 온 세상 가득히 내려, 마음이 가난하고 그리움에 사무치고 슬픔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어 주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2013년 12월 어느 추운 날에 이 아우구스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