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찾는 이들에게 : 다시 읽는 신애론(神愛論) (2012.04.22 소식지)

작성자 : 라파엘    작성일시 : 작성일2014-01-02 14:18:02    조회 : 659회    댓글: 0
「하느님을 찾는 이들에게 : 다시 읽는 신애론(神愛論)」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찬성 역, 바오로딸, 2009)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과 삶이 펼쳐지는 이곳이 모두 하느님께로 향하여 있는 영적 여정의 도정이라는 것을 잊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매일 주어진 일들에 급급하여 살아가거나, 자기 성취에 도취되어 덕행을 쌓는 대에 투신하기보다는 많은 업적을 이루어 내는 대에 관심을 쏟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영적 생활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영적생활을 하고 있는지, 또한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내면에 어떤 것들이 영적생활을 방해하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하느님을 찾고 바라보며 그 사랑을 깊이 느끼고자 하는 열망을 일깨워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질책하는 것만으로는 영적 성장에 있어 큰 도움을 주지 못하기에 진정으로 영혼이 바라고 그리는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적 스승이 필요합니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저자가 말하는 영적 삶의 모습들은 우리에게 깊은 동의를 주고, 지쳐있는 혹은 메마른 영적 삶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는 자극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테오티무스여, 그대가 하느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십니다.”(1요한 3,20 참조)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이 신심을 키워가고자 열망하는 모든 이들의 정신을 향하여 ‘테오티무스여!’라고 부르며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하느님을 찾는 이들을 향해 노련한 영성가가 섬세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하나의 편지와 같습니다. 실제로 성인은 자신이 연구하고 통찰하며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 알기 쉽게, 그러나 좀 더 심오한 단계까지 염두에 두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인의 이 글을 읽으면서 자연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을 너무나도 탁월하게 이용하여 하느님 사랑에 관하여, 그리고 영성적인 내적 과정들에 관하여 잘 묘사해 주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깊은 통찰과 지식이 아름다운 표현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지식뿐만 아니라, 성경과 성인들의 저서들에서 인용하는 대목들 또한 하느님을 향해 찾아나가는 이들에게 깊은 통찰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꽃을 찾아다니는 꿀벌은 아무렇게나 날아다니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봄철을 즐기기 위해 날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꿀벌의 목적은 꿀을 모으는 데 있습니다. 꿀벌은 꽃가루를 묻혀 돌아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양분으로 방을 채웁니다. 묵상하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묵상은 신비에서 신비로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이 아닙니다. 묵상의 목적은 하느님의 일을 즐기는 개인의 즐거움에 있지 않습니다. 묵상의 의도는 동기를 부여하는 사랑을 발견하기 위함입니다.
 
위의 말처럼 우리는 아무런 초점 없이, 개인적인 영적 욕심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시편 42,2)”라는 구절처럼 우리 영혼이 그리워하는 하느님의 사랑 그 자체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하여금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영성가의 안내에 따라 하느님 사랑을 마음에 그려볼 수 있는 좋은 독서가 되리라 믿습니다...
강이 흐르는 유일한 목표는 자신을 존재하게 한 원천과 하나가 되는 데 있습니다.
 
글 김만희 요셉 보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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